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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쯤 전이다. <긴급출동 SOS 24> 런칭 즈음, 가정폭력, 아동 학대 등 아이템을 찾아 산지사방의 기관을 찾아 헤매던 때, 한 지역의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사연은 모 산골 마을에 이상한 가족이 산다는 것.

 

그들에게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주목하게 된 이유는 부모가 아이 셋을 몽땅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으며, 그 주거 환경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열악하다는, 즉, 아동학대의 한 형태인 '방임'이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한 번 그 집을 다녀 왔다는 센터 팀장의 말은 제작진들의 머리를 한층 더 헝클어뜨려 놓았다.

 

“자신들을 UN이 지정한 UN 가족이라고 믿고 있구요. UN군 할아버지가 자기들을 팔라우라는 섬나라에 데려가기로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엄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녕 주석의 손녀딸이라고 주장하면서 친일파들이 있는 학교에는 못보낸다고 하구요."

 

동네에서 폭력적인 인물로 유명했던 아버지가 이웃 주민의 차를 박살내고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을 이유 없이 두들겨 팬 죄로 교도소에 간 뒤, 비닐하우스에는 어머니와 세 딸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누가 찾아오는 게 제일 싫어요!"라면서 외부인을 경계하는 막내딸을 얼르고 달래고 아양을 1시간 남짓 떤 뒤에야 우리는 개 오줌이 질퍽질퍽 묻어나는 카펫이 깔린 집 안(?)에서 그들과 대면했다. 대체 유엔은 뭐고 임시정부는 어디서 온 뚱딴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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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의 어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자신을 억압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주위의 친일파들이 임시정부 주석 이동녕 선생의 손녀딸인 자신을 너무나 못살게 군다는 것이었다. 해당 지역 군수와 아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 등 모두가 친일파의 후예들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눈엣가시로 보고 죽이려 든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게 아닌가.

 

동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기이한 사람들을 찾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이 집을 취재 왔다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서 되레 감동(?) 받고 돌아갔다는데, 나 역시 그 열변에 휘둘리지 않을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나름 독립운동가에 대한 지식도 꽤 있었고 역사 의식(?)도 투철해 보였다. 낡아빠진 비닐하우스 앞에서 펄럭이는 유독 깨끗한 태극기 앞, 고백컨대 정말 버림받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피해의식에 젖어 더러운(?) 세상을 피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럼 UN은 또 뭘까. 물어 봤더니 아버지가 6.25 때 참전해서 UN군을 훈련시킨 교관이었으며 그래서 16개 참전국의 UN군과 모두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백발이 된 UN군들이 아버지의 딸인 자기를 찾아 이 비닐 하우스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확인 결과, 그녀의 청산유수같은 웅변과 순결해 보였던 분노는 모조리 사실과 달랐다. 이동녕 선생과의 공통점은 연안 이씨라는 것 뿐이었고, 연락 끊고 살던 친정 식구들은 아주머니 아버지가 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건 맞지만 나이 19살의 벼락치기 소위였을 뿐, UN군을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걔가 완전히 이상해지긴 이상해졌구만."

 

그녀는 이미 굳건한 망상의 세계에 접어든 지 오래였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계기를 통해 그녀의 내면에 자리잡게 된 착각과 오해가 망상으로 굳어졌고, 그 망상은 그녀의 내면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진실'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세상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의 피해망상에 신경쓸 일이 무얼까 대수로이 여기지 말자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그 비닐 하우스에서 초롱초롱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자면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은 망상에 빠진 엄마로부터, 또 비슷한 망상으로 친일파 응징한답시고 교장을 두들겨 패 버린 아버지로부터 격렬한 피해의식을 주입받고 있었고, 피해의식을 넘어서 '바깥 세상'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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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나요? 미운 사람들 다 죽여 버리게..."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열 살 어린 아이의 까만 눈은 상어의 그것처럼 무서워 보였다. 그리고 '더러운 세상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딸들에게 함께 죽어 버리자며 극약 병을 내밀기도 했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망설이기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친정 가족은 개입을 거부했다. 그냥 놔 두라고 했다. 결국 ‘자해나 타해의 위협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교육청 사람들을 모시고 와 현장을 보게 했지만 강제 격리에는 자신감을 보이지 못했다.

 

뒷일이 두려운 것이다. 법대로 전문의 두 분을 끌어와서 이들을 진단시킨 결과를 들고 ‘공유 정신병’ (고립된 공간에서 망상 체계를 끊임없이 주입받으면서 같이 이상해지는 증상)이 확실함을 교육청과 경찰서와 아동학대예방센터에 들이밀고 지금 안하면 나중에 더 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아우성을 쳐서야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고, 아이들을 격리할 수 있었다.

 

임시정부 주석의 손녀딸이라 굳게 믿고 있는 어머니와 자신의 땅을 외부인이 침범했다는 이유로 무쏘 차량 한 대를 뾰족한 쇠막대기로 수십 군데 구멍을 냈던 아버지, 친일파(?)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던 아버지, 그 둘 중 누가 주도적으로 그 피해망상을 퍼뜨렸는지 모르나, 그들은 그들끼리 그 망상을 공유하고 키워 가며 깊은 병에 빠져들어 자신들을 괴롭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과격하다는 표현도 모자랄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잡아갔고, 학교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 어머니를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명백히 기이하게 보이는 이 가족에 개입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명확히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망상이 더욱 짙어지고 아버지가 보여준 공격성이 가족에게 더 깊숙이 퍼졌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일 뿐이었다. 경찰과 학교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법이 그랬다. 이상하긴 하지만 섣불리 개입하여 “당신들은 치료가 필요하다.” 고 강제 조치를 취했다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럴 수 있느냐고 따지는 내게 경찰은 이렇게 반문했다.

 

“허허 참, PD님. 그럼 우리더러 예비 검속이라도 하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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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를 하면서 이번 진주에서 참혹한 범행을 저지른 이와 같은 패턴은 수십 명도 더 보았다. 집에 오물을 뿌리고, 유리창을 깨기도 하고, 일부러 쇠뭉치를 새벽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아파트 복도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정말 ‘또라이’는 무수하게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통제도 받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해 본들 명확한 범죄가 아니면 개입하지 못했고 동사무소 복지사들도 난감할 뿐이었다. 법적으로 그들의 치료를 결정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 두 명을 유치할 주체도 없었고, 용케 연결이 닿으면 '병원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의사가 현장에 나오는 경우는 방송을 위해서나 가능했다) 누군가 그 험난한 코스를 악으로 깡으로 완주하지 않는 한, 그들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폭력성향의 소유자(정신질환자 중 폭력적인 케이스는 일반인에 비해서 적다. 그러나 위험한 케이스는 반드시 있다)들로부터 끝없는 시달림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경찰 탓을 하지만 권한을 주지 않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추궁하는 것만큼 모양 빠지는 일도 없다. 제대로 된 구호를 받지 못하고 있거나 일관된 폭력성을 지닌, 정신 건강상 문제가 있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개입은 지금보다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이건 주민센터건 정신보건센터건 누군가 이상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전문의를 호출하면 전문의가 현장에서 상황을 점검하고 결정을 내려, 신속한 대응을 할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의사에게 강제로 데려가는 것은 허용하든지.

 

물론 그 와중에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겠으나 원칙과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경우를 엄히 처벌하면 될 것이다. 그 인권 침해가 무서워 다른 사람들의 인권이 ‘떨이’로 무시되는 상황이 얼마나 눈물 날 만큼 우습고 가슴을 칠 만큼 갑갑한가를 경험으로 안다. 이번 진주의 살인마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이런 일을 예방하자면 누군가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그래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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