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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부 주

 

주원규 작가는 쉼터 청소년들과 교류하던 중 연락이 끊긴 가출 청소년들이 강남 클럽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남으로 간다. 아이들을 빼내기 위해 강남 클럽에 잠입했고, 6개월간 주류배달원과 '콜카 기사'로 일하며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강남 클럽 생태계의 이면을 직접 관찰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펴내기도 했다.

 

이 글은 주원규 작가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픽션이 아니다.

 

 

 

 

강남의 일상

 

태식에게 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태식과 차희는 한때 사귀는 사이였으니까. 과거이긴 하지만 만났던 사이라면 클럽에서 성매수남을 만나고 흰색 벤츠 뒷좌석에서 성매매를 기다리는 꼴을 그대로 보아 넘기진 않을 거란 생각에 질문한 것이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돌아오는 태식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아니, 화가 치솟는 답이었다.

 

"차희, 그 xxx, 지가 지 꼴리는 대로 개척한 거잖아. 그렇게 시작해서 잘 나가면 지가 잘나서 그렇게 된 거고, 뒈져도 지 책임이지."

 

"차희랑 너,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그런데, 그냥 놔둬도 되는 거야?"

 

"지랄하지 마. 그 xx같은 x, 생각만 해도 토 쏠리니까."

 

태식은 점점 난폭해지고 거만해졌다. 수중에 만지게 되는 돈의 액수도 점점 커져 갔다. 

 

클럽 가드는 실장이나 이사, 속칭 사업장이라 부르는 단골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MD들에게서 적지 않은 팁을 챙길 수 있었다. 클럽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폭행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임무도 가드가 맡고 있는데, 태식은 그런 면에서 꽤 유능한 편이어서 뒷돈으로 지갑을 심심찮게 채울 수 있었다.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태식은 슬슬 MD쪽으로 위치 이동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남엔 호텔을 끼고 운영하는 초대형 클럽이 성행하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클럽이 경쟁적으로 개업하기 시작했다. 그 개업 시기에 맞춰 태식도 가드에서 MD로 자리 이동을 모색하는 것 같았다. 나도 계속해서 콜카 일을 했다.

 

처음 차희를 흰색 벤츠에 태웠을 땐 우리 둘 다 놀란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두 번, 세 번, 클럽 안이나 강남 인근의 호텔 혹은 오피스텔에서 여러번 얼굴을 마주치자, 서글프게도 담담해졌다. 그쯤엔 나도 미성년자인 차희가 클럽을 무대 삼아 성매매를 벌이는 일이 강남 밤거리의 자연스러운 한 현상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차희를 만났다. 늦은 오후 언주역 사거리에 차희가 트레이닝복 차림에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채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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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클럽 오픈 전까지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차희가 먼저 무슨 이유로 강남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태식이, 은지, 그리고 차희 너. 애들하고 연락 끊어지지 않으려고."

 

그 뒤 잠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길고 끔찍하던 그 침묵을 틈새에서 나는 정말로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라기 보단 자조적인 회의감에 가까운 푸념이었다. 

 

"강남에서 돈 좀 만졌어?"

 

차희는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차희의 표정은 많이 어두웠다. 나는 내친김에 한 마디 더 물었다. 

 

"정말 강남 클럽이 다른 곳보단 확실히 수입이 다르긴 한 가봐. 태식이도 그렇고 때깔이 달라졌어."

 

돌아오는 차희의 답은 너무나 빠르고 분명했다.

 

"돈을 어떻게 벌어?"

 

"무슨 소리야?"

 

"xx 이번 생은 여기서 xx 끝이야. 그것만 알아 둬."

 

 

지옥도의 메아리

 

차희와 헤어진 그날 밤, 나는 일본형으로부터 선수금 20만 원을 땡겨 받고, 이제는 익숙해진 흰색 벤츠의 차 키를 받았다. 키를 받으면 내 휴대폰은 일본형에게 반납했고, 일본형은 검은색의 철 지난 디자인이 돋보이는 대포폰을 건네주었다(일본형이 그 핸드폰을 대포폰이라 불렀다. 번호 추적이나 다른 증거 남길 생각을 아예 하지 말란 의도로 읽혔다).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대포폰에 찍힌 텔레그램 메시지에 따라 강남 대형 클럽의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일반 고객들이 입장하는 문이 아닌 주차장 뒤 방치된 음향기기들이 놓여 있던 문을 통해 클럽에 들어섰다. 화려한 조명과 귓가를 찢을 듯한 음악을 뒤로하고 디제잉 박스 우측, 좁고 어두운 공간에 그림자처럼 벽을 기대고 서서 콜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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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 일을 하면서 클럽 안으로 들어서는 일은 많지 않았다. 클럽 밖 주차장에서 시동 켜 놓고 대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늘처럼 클럽 안에서 대기한다는 건, 고객을 부축해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림자처럼 서 있는 나를 신경 써서 쳐다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클럽 안이라면 그랬다. 검은 양복 차림의 가드들과 남녀고객 유치하는데 온 신경을 쏟는 MD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클럽 속에서 필자는 철저히 잉여 혹은 클럽 인테리어에 불과했다. 고객들 역시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고 언제라도 지갑에서 수표 다발을 쏟아낼 것 같은 현금부자들에게만 관심이 쏠려 있는 분위기였다.

 

그 어두운 공간에서 파티션이 보였고, 파티션 사이에 소파 정도로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넷과 여자 두 명의 모습이 눈에 뜨였다. 네 명의 남자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도 확실히 일반 담배 냄새와는 다르게 두통을 일으킬 만큼 역한 냄새를 풍기는 마리화나 혹은 대마가 의심되는(그들은 그것을 대부분 떨 혹은 캔디로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 약물을 피우고 있었고, 한 명의 여자도 남자들과 함께 그 마약 성분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나눠 피웠다. 그런데, 한 여자는 달랐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 벽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었는데, 남자들이 거칠게 밀치거나 성추행에 가까운 스킨십을 가해도 여자는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앉아 마약을 돌려 피우던 여자는 기절한 듯한 여자가 남자 넷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20여분 정도 지난 뒤 남자 넷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디제잉 박스에선 한 남자가 머리와 몸에 고가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남자 넷이 움직이는 순간과 발맞추어 클럽 가드들, MD로 보이는 클럽 관계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은 일반 고객들이 나가던 입구가 아닌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별도의 입구로 클럽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 나갔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한 통의 메시지가 내게 전달되었다. 

 

 ‘기절한 애 한 명, 업소애 한 명 태워 논현동 ** - * ** 20*호로 던지기. 20분 준다.’ 

 

문자를 보고 망설이던 내게 클럽 가드 한 명이 달려들었다. 그는 내 목덜미를 붙잡고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리곤 정신을 잃은 듯 보이는 여자를 둘러업게 했다. 검은 모자에 군용점퍼 차림인 내가 대기 중인 운반책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새벽 4시. 흰색 벤츠는 논현동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향하고 있다. '기절한 애'로 명명된 20대 초반의 여성한 여전히 기절 상태 그대로였다. '업소 애'로 명명된 여성은 진한 메이크업과 야한 옷차림으로 나이를 숨기려 했지만 미성년이 확실해 보였다. 차희와 함께 클럽에서 한 팀이 되어 움직이던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었기에 그녀가 미성년이란 확신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동 장소에 도착하자 미성년자로 보이는 여자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는 곧이어 한 밤 중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남자가 기절한 여자를 차에서 끌고 나갔다. 차 문은 닫혔다. 

 

눈앞에 기절한 여자를 둘러업고 들어가는 한 남자, 그 둘을 따라 들어가는 미성년 여자가 보였다. 순간, 낮에 차희가 들려준 말이 비수처럼 와 박혔다.

 

"처음엔 연예인 시켜주겠다며 끌고 왔지."

 

"누가?"

 

"일본형이 스카우터였는데, 그보다 윗대가리는 따로 있고."

 

"그래서?"

 

"그 다음부턴 말 안 해도 알 거 아냐. 세탁 필요하다며 대포 민증 갖다주고, 성형외과 소개해 코, 쌍수, 그런 거 하게 하고, 강남에서 지내야 한다며 오피 얻어주고, 마지막으로 …"

 

"마지막이 뭔데?"

 

"떨이나 뽕 피우고 맛 가는 거지."

 

"그렇게 한 다음에 뭐하는 건대?’"

 

"xx 뭐하긴 뭐해. 돈 버는 거지. 고객들은 이미 확보 되었으니 우린 끼워팔기로 일반 여자 애들 틈에 끼어들어 xx 들어가는 거지." 

 

"민증 위조했다고 그냥 클럽에 들어가긴 어려울 텐데."

 

"우리 같은 끼워파는 물게(물 좋은 게스트의 줄임말)들은 잘 나가는 MD들이 그냥 하이패스로 통과시켜. 들어가서 시키는 대로 놀다가 2차 뜨면 끝나는 거야."

 

"그런데… 돈을 못 번다?"

 

"중간에 들러붙는 게 한둘이야? 우리한테 떨어지는 건 거의 없어."

 

"한마디만 더 하자."

 

"뭐?"

 

"돈도 못 벌고, 마약에 노출되고, 공문서 위조 걸리고, 불법 성매매까지. 니들이 독박 쓰게 생겼는데, 그런데도 왜 여기에 계속 있는 거야?"

 

그 질문이 차희와 나 사이에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어 버렸다. 이후 그녀는 시간이 없다며 나와의 대화를 거부했으니까.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나와 연락이 닿는 가출 청소년은 몇 되지 않는다. 그때 차희가 들려준 말은 선명한 메아리가 되어 지금도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여전히 강남의 어느 한 거리를 떠돌고 있을 차희와 같은 가출 청소년들의 비명이 지옥도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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