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야. 어쩌다 보니 이번 주에 또 보는구나. 자주 보니 정들겠다야. 5월 첫째 주 <이슈vs.이빨>을 시작한다.

유승민 의원님아, 자 봐봐 

“선거법과 국회법은 과거 지금보다 훨씬 다수당의 횡포가 심할 때도 숫자의 횡포를 통해 결정한 적은 없었다. 특히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 어떤 다수당이 있었다고 해도 이 문제는 끝까지 최종 합의를 통해 (결정)한 게 오랜 국회의 전통이다.” (지난 28일 유승민 의원 국회 기자회견 중)

유승민의 말이 맞는 구석도 있고 틀린 구석도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도 형식은 날치기였다. 1988년 3월 8일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그 의사봉을 두드린 건 장성만 부의장(현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부친)이었다. 뭐, 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건 그냥 역사의 아이러니를 드러낸, “음. 재밌네” 정도의 이야기일 뿐. 사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전통이고 나발이고 상식적으로 게임의 룰은 플레이어들의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게 맞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유승민의 뿔따구는 일리가 있다.

헌데, 우리 함 생각해 보자. 자유한국당은 작년 12월 15일 선거제도 개혁안 협상에 나서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머지 정당이 개혁안을 제출해 달라고 그렇게 독촉했건만 당대표를 뽑는 당내 사정 등을 핑계로 미루고 있다가 결국 들이민 게 “의원 수 10% 축소, 비례대표제 폐지”안이었다. 다 같이 소풍가서 나눠먹을 도시락 싸오자고 약속해놓고 혼자 공구통을 들고 온 것이다. 이건 뭐, 애초 소풍 갈 마음이 없었던 거다.

이 판국에 유승민은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을 해제하고 자한당은 진정성 있게 선거제 개혁 협상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초선도 아닌, 집권여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중진 정치인이 자한당의 행태를 보고도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면 “나는 병신이오”라고 셀프 인증한 것이고, 자한당이 안 할 걸 뻔히 알면서도 씨부린 소리라면, 양아치인 게다.

게임의 룰은 플레이어들의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하니까 플레이어인 자한당이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그 썩어빠진 룰은 결코 손대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지만, 그 안에 소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신속처리안건 지정 절차’ 즉 패스트트랙 아닌가.

유승민이 빠져나갈 구멍이 딱 하나 있긴 하다. 저 행태들의 대전제. 즉, 현행 소선거구제는 개혁해야 마땅한가? 또한 굳이 연동형 비례제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아니오’라는 답을 얻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손 댈 필요도 없는 법안을, 집권여당이 무리수를 던져가며 어거지로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 되니까. 과연 그럴까?

자, 그럼 우리 찬찬히 함 살펴보자.

선거법 개정 문제는 우째 시작하고 우째 흘러갔나 

애초 선거법 개정 문제가 왜 나왔나. 2014년에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1이라서 투표 가치의 등가성이 훼손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믄서 2015년 연말까지 2:1로 고치라고 했다. 그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앙선관위에서 이왕지사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해야 하니 이 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 어때요?” 라고 2015년에 제안을 던진 게 이 난리법석의 직계조상이다.

결국 국회는 늘 그랬듯 당시 국회의원 선거구가 모두 법적으로 무효가 된 지 62일 만에 선거구획정을 완료했고 그 결과 국회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숫자는 종전보다 7개 늘어난 253개, 비례대표 숫자는 7석 줄어든 47개로 확정했다. 소위 밥그릇을 늘린 것이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선거제 개혁이 화두가 됐고,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안철수는 의석수 현행 유지, 정당명부제에 찬성. 유승민은 의석수 확대 반대, 권역별 비례는 공감)하며 정권 교체 후 다시 잠수를 탄다. 당연한 거다. 솔까, 정의당 빼고 다들 하기 싫었던 거다. 왜? 현직 국회의원들은 어쨌든 현행 제도 하에서 살아남은 자들이고 현행 제도를 뜯어고친다면 행여라도 ‘기득권’에 기스가 날까 싶은 거니까. 전문용어로 ‘인지상정’이라 한다.

그러다가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합당을 해 바른미래당이 생기고 그 여파로 민주평화당이 생긴다. 어? 정치지형이 바뀌었다. 무슨 수를 써도 거대양당의 구심력에 당해낼 재간이 없던 소수정당들이 선거제 개혁에서 활로를 찾기 시작한다. 2018년 7월 임시국회에서 특위 구성 결의안이 통과된 지 3개월만인 2018년 10월. 천신만고 끝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래도 시큰둥한 불씨를, 다들 알다시피 손학규와 이정미의 단식투쟁으로 또 간신히 살려낸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어쨌거나 저쨌거나 절대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선거제 개혁을 죽도록 싫어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헌데, 일이 희한하게 돌아간다. 이번 ‘동물국회’ 사태에서 보듯이, 자한당이 배째라고 누우면 알량한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현 정권은 집권 후 국회를 우회해서 대통령령으로 바꿀 수 있는 ‘시행령’ 위주로 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한계가 있고 소위 ‘개혁입법’이 필요한 상황.

그러자 민주당이 꾀를 낸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원하는 ‘선거제’와 민주당이 원하는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국정원법’, ‘공정거래법’ 등 개혁입법이란 입법은 죄다 때려넣고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다들 알다시피 ‘선거제’,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이 살아남았다. 내가 이렇게 선거제 개혁의 역사를 길게 씨부리는 이유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간접적으로나마 좀 느껴보라는 의미에서다. 와 씨바... 이 정도 정성이믄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된 웅녀 따위는 감히 겸양하며 상석을 양보할만 하지 않은가.

아무튼 역사는 일타. 글타면 이제부턴 선거제 개혁의 당위를 살펴보자.

선거제 개혁의 마땅성 

20대 총선 동작을에서 나경원이 43%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럼 나경원을 찍지 않은 유권자 57%의 총의는 뭘까. 과연 무시되어도 좋은가. 그거야말로 나경원이 목놓아 외친, 국민주권에 반하고 국민주권이 침탈되는 거 아니냐? 결선투표제라도 만들든가.

말 나온 김에, 나경원은 24일 자한당 긴급의총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좌파세력이 200석을 넘기는 순간 문재인정권과 여당의 개헌독재가 시작될 것이며, 제일 먼저 국가보안법을 없애고 상법·공정거래법 등을 뜯어고쳐 본격적으로 기업을 통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그랬냐.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하믄 좌파한테 표가 막 하늘에서 떨어지냐? 땅에서 솟아나냐? 소수당에게 유리할 거라고?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유권자 하나 하나의 표심이 무시당하지 않아야 하고, 그 유권자들이 소수당에 표를 던지겠다는데, 대체 이 지점 어디에 문제가 있더냐?

혹자는, “비례후보 공천을 정당에서 하니, 줄 세우는 거 아니냐. 못 믿겠다”고 하던데, 그럼 지역구 후보는 니가 직접 정하냐? 지역구든 비례든 어차피 후보로 세우는 건 정당이잖냐. 하물며 개정안에는 비례 후보를 민주적으로 뽑았다는 절차와 회의내용까지 중앙선관위에 제출하도록 하는 등 너가 우려하는 점도 미리 알고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해놓았다. 또 어떤 이는 “국회의원을 내 손으로 직접 뽑지 못해서 싫다”고 하던데, 그건 니 손으로 뽑은 후보가 당선됐을 때의 얘기지. 떨어지면? 허허 웃으며 “그래도 내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으니 기부니는 좋으네” 하며 발 닦고 자겠지? 넌 속 편해서 좋겠다만 100표 중 60표의 표심이 아무 의미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건 어찌해도 정상이 아닌 거다.

또 어떤 아해는, “연동형 비례대표가 그리 좋으면 왜 영·미·프는 도입 안하냐?”고 하던데, 왜 안하는지 모르면 공부를 해라. 요즘은 구글링 하면 앵간한 정보는 거진 나온다. 일단 저 나라들은 인구 대비 의원수가 우리보다 많다. 그리고 양원제라 역할이 나뉘어 있다. 그리고 대표적 소선거구제 국가인 영국도 사표와 양당 과대표 현상 때문에 개혁 요구가 높다. 단순다수제는 현대의 다양한 정치이슈를 담기엔 역부족인 거다. (물론 모든 제도가 그렇듯 완전무결한 제도가 어딨겠냐만) 그래서 세계적 추세 또한 완전비례대표제를 지향하고 있다.

낡은 옷이다, 그만 입자 

나 또한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제 개혁안이 맘에 들진 않는다. 위에서 얘기했듯 일단 우리는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적다.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수구기득권이 유포한 ‘정치혐오’ 때문에 “밥값 못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찌르지만 우리같이 돈 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ex. 마사오...)들을 대변할 입법기관이 필요하다.

허나 일반 유권자의 정치혐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의원수 300석은 고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비례는 현재 47석에서 75석으로 고작 28석이 늘어났을 뿐이다. 중앙선관위는 앞서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비례대표가 최소 100석은 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패스트트랙은 법안 통과가 아니라 상정이다. 자한당은 자신들의 이익을 눈꼽만치라도 관철하기 위해 결국 협상에 나설 것이다. 여차하면 현재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개혁안이 더 후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한 발자욱이라도 떼어야 그 다음 걸음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현행 소선거구제는 87체제의 산물이다. 앞서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고 했지만 삼김의 묵인도 없지 않았다. 소선거구제는 지역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초유의 여소야대가 탄생하게 된다. 원론적으로 지역정당의 난립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역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메시아’를 추앙하는 문화가 문제 아니겠나. 이런 현실에서 과연 우린 삼김시대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리하자. 87체제 이후 30년이다. 사회 환경과 인구분포도 변했고 정치지형도 변했다. 지독히도 낡은 옷이다. 게다가 지역을 깔고 앉은 거대양당제 하에선 너 죽고 나 살자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표의 등가성 문제나 사표, 과잉대표의 문제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세상에 절대선인 제도는 없다. 결국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허나, 일단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좀 뜯어고치는 게 맞다. 뿐만 아니다. 개정안에는 현행 투표권을 만 18세에 주는 것도 포함됐다. 개인적으론 이게 제일 맘에 든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다. 더디고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 중 단연 정수라 할 수 있는 선거. 그 선거판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참교육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현행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는 개혁하는 게 맞고, 비례성을 강화하는 게 맞다. 유승민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내가 역사에서부터 당위까지 졸라 길게도 씨부렸지만 사실 이거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자한당과 조선일보가 싫어한다.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