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인제 와서 왜 이걸 하니?”

 

“이게 소용이 있니?”

 

크고 작고, 더 작은 회사까지 가능한 모든 취준생활을 했다. 지금은 대학 전공을 살려 공부를 더 한 뒤 석사 자격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이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다. 석사를 준비하는 흔한 백수이자 여전히 (궁극적) 취준생인 내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일상을 깊은 곳에서부터 깨버리는 그 말이 두려웠다. 독서실에서는 공부를, 집에서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게 내 일상의 유일한 스케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방에서 공부하면서도 밖에 있는 부모님을 신경 쓰게 되었다. 그 말조차 걱정인 줄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기 미취업자인 나에겐 주어진 선택이 거의 없었다. 마음도 버거웠지만, 무엇보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울에 올라온 것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상경을 준비하며 큰 욕심은 없었다. 그저 내가 지낼 곳이면 충분했다. 자연스럽게 고시원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 지내본 적이 있어 어느 정도 각오도 되어 있었다. 가서 방을 확인하고 계약을 해야 하지만,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설명만 듣고 바로 들어갔다. 어차피 고시원의 특색을 판단하는 것은 포기했다. 한 달에 15만 원이었는데 특색이라는 게 있을까.

 

짐을 들고 고시원으로 들어간 첫날, 막상 방안을 들어가니 착잡했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매트리스 하나 그리고 서랍장 한 개.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우울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래도 이게 집에서 취업 준비나 공부를 할 때 보다 나았다. 적어도 눈치 볼 필요 없이 이 방 한 칸에서 내가 처한 상황으로만 힘들어하면 되는 거였다.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처음엔 그래도 방에 난 창문 하나가 큰 위안이었지만, ‘있는 게 낫긴 한데…’로 생각을 바꾸기까지는 사나흘 정도가 걸렸다. 창문은 하필 책상 정면에 위치해서 햇빛 때문에 공부가 힘들었고, 맞은편 건물에서 내 방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결국 신문지를 붙여 창문의 4/5 정도를 가리고 아래쪽으로만 살짝 빛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방은 어두컴컴한 직사각형 공간에 창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검은 관(棺)으로 변했다.

 

얼마 되지 않아 종로 고시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에 이슈가 되어 사람들이 고시원 생활의 열악함과 안전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졌지만, 내가 있는 곳-화재가 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에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화재가 났다고 해도 다른 고시원의 일이지 여기 문제라 생각한 건 아니었을 테니까. 

 

고시원1.jpg

출처 - 한겨레

 

아, 하나 있다. 소화기가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었다. 통로 가운데에 애매한 위치긴 하지만. 다만 유사시에 소화기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여기서 몇이나 될지, 저 소화기가 잘 작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고시원의 겨울

 

고시원에서 맞는 첫 겨울은 생각보다 곤란한 일이 많았다. 여름이었으면 이해할 만 했을 텐데 겨울에 천정 틈에서 벌레가 떨어졌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벌레를 확인한 다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 이틀 정도 고민했는데, 결국 비용 문제로 약을 좀 치는 것으로 타협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이치는 것은 참을 만했는데, 본격적으로 추워져 잠을 잘 수 없는 날, 난방을 하면 공기가 건조해져 귀나 뺨의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 종일 얼굴이 따가웠다. 이것만큼은 크림을 바르거나 물에 젖은 수건을 걸어놓아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겨우내 고민이었다.

 

벌레가 떨어지는 현실에서 방음은 사치라 비록 옆방 소리가 신경 쓰일 정도의 크기로 들리고 물소리도 여과 없이 들렸지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고시원 사람들

 

의외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산다. 나처럼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도 있고, 독서실 대용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다만 누가 누군지에 대해서 시시콜콜 알고 있지는 않다.

 

개인적인 느낌을 이야기해보자면 고시원이란 친하게 지내기엔 뭔가 걸리고, 모르는 척하기엔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의 집합체인 것 같다. 아마 서로 마찬가지일 텐데, 사실 같은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서로 불편해한다. 통로에서 마주치면 서로가 굳은 표정, 어색한 말투로 ‘안녕하세요.’ 한마디로 끝이 난다. 몇 달이 지나도 똑같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인간적인 친밀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언제 나갈지 몰라서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나처럼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사람과 마주치면 반갑지 않다. 그 사람에게서 내 모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연령, 생활패턴, 복장의 사람을 마주치면, 혼자만 이렇게 지내는 것 아니라고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위안하는 내가 싫어진다.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들어오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나이 먹는 것이 무섭다. 저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내 현재와 미래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 여기서 늘어만 가는 내 나이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런 생각이 문제가 된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여기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내 처지가 달라져 소속이 생기면 해결될 문제겠지만, 그전까지는 깊어질수록 피해망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을 치료할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용 부담이 없었다면 애초에 가장 싼 고시원에 들어오진 않았을 테니.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고시원 생활은 ‘적과의 동침’ 혹은 ‘불편한 동거’란 느낌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잠들 수 없는 밤

 

위에서 이야기한 일들은 요즘 고민하는 것에 비해서는 사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간신히 해결했는데 요즘에 다시 잠들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청하면 문득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지, 이렇게 지내다가 돌연사라도 하지 않을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묻고 잠을 설친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저녁 11시에 들어와 잠자리에 드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지만, 몸이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도 약을 먹어야만 잠들 수 있는 날이 있다. 어쩌면 지금 방 구조가 너무 관처럼 느껴져서 그런 걸까.

 

IE002418420_STD.jpg

출처-오마이뉴스

 

잠들 수 없는 밤에는 자연스레 내가 사는 고시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에선 이 방만 ‘온전한 내 것’이다. 세면실, 냉장고, 세탁기 등 눕고 앉는 것을 제외한 모든 생활은 공용 공간에서 해야 하고, 방도 좁아서 개인 짐을 늘릴 수가 없다. 최대한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웬만하면 사지 않고, 옷도 트레이닝복 같은 세탁과 사용이 편한 것 하나만을 입게 된다. 이렇게 하루, 한 주, 한 달이 지나가면서 점점 단순화되는 방 구성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기 시작했다.

 

‘죽을 준비를 하고 삶을 정리하는 것 같다.’

 

삶의 정리라는 게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하고,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물건도 처분하는 것일 텐데 그런 삶의 방식이 지금의 내 방식과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곳에 살지만 서로 모르는 고시원에서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상황, 아직은 젊은 축에 드는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먼저 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면 조금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IE002418419_STD.jpg

출처-오마이뉴스

 

이런 생각은 주말에 더욱 엄습해온다. 매주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진 사람들이 어디론가 간다. 집에 가는지, 여행을 가는지, 일을 가는지는 모른다. 다만 평일에 시끄럽던 소리들이 모두 사라지고 고시원이 적막해진다. 고요한 이때가 가장 괴롭다. 나에게는 갈 곳이 없어 이 적막함마저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오롯이 느껴야 하기 때문에.

 

사회에서의 출발을 준비하면서도 삶을 정리하는 모습으로 살아야만 하는 고시원의 삶이라는 게 때로는 정말로 죽을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방탈출 게임에 영영 실패하면 이곳은 정말 나에게 삶의 종착점이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긴 나에겐 너무 큰 공동묘지다.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