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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때 김자점이라는 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은 비상했고 재주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조선 양반들의 출세 필수 코스라 할 과거 급제는 은근슬쩍 음서로 대신했다. 야사에 따르면 두드러기(담마진)가 나서 공부를 못했을 뿐 충분히 과거 급제할 능력은 됐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하는데 사실은 파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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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 뉴스룸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만)

 

음서 치고는 꽤 빨리 출세한 걸로 보아 머리는 좋았던 것 같지만, 그는 머리보다도 시류를 타고 눈치를 보는데 더 능숙한 사람이었다. 인조반정 때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1등공신을 차고 앉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한 일이 있긴 하다. 광해군의 총애를 받던 무수리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어 반정 소문을 차단했다고 하니까. 역시 권력의 ‘포인트’를 잘 아는 사람이랄까. 

 

이런 자가 1등 공신이니 반정의 실질적인 행동 대장이라 할 이괄이 열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이괄은 난을 일으켰고 (깨알 웹툰 홍보 : <칼부림>을 보시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야 했다. 그런데 그 직전에 김자점은 상당히 잔인한 일을 벌인다 . 바로 기자헌 등 감옥에 갇혀 있던 북인들 수십 명을 죽여 버리자는 건의를 한 것이다. 

 

기자헌은 당파상 대북에 속했으나 인목대비 폐위 당시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서인과 연대했던 사람이었고 그 외에도 비슷한 류가 많았다. 하지만 한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김자점은 그들을 죽이는 데에도 가차가 없었다. 

 

병자호란 당시 김자점은 도원수였다. 그러나 수도 한양을 노린 청의 전격전 앞에 김자점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쟁 난지 1주일이 지났을까 말까 한 시간에 청의 군대가 서울 인근에 출몰했고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각지의 근왕군이 올라왔지만 그를 묶어 세우고 조직화할 책임은 도원수에게 있었다. 

 

그런데 김자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청도 병력이 전멸하고 경상도 병력이 순식간에 궤멸됐지만 도원수는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혼자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니었다. 조선군 최정예 병력이라 할 함경도 군을 포함한 2만여명의 군대가 김자점과 함께 아무것도 격렬하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말로는 “죽음을 각오하고”를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전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인조는 청 태종 앞에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박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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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역사학자 전우용 트위터 캡쳐

(이 사진 역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만)

 

조선을 넘어 우리 민족사에서 보기 드문 수치의 책임자이자 국방농단의 주범이었으나 그는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잠깐 귀양을 갔다 오긴 했으나 인조는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고 오히려 한 수 더 뜨는 김자점을 총애했고 김자점은 인조의 맘에 흡족할 일들을 꾸미고 기획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심기원 옥사 사건일 것이다. 인조반정의 1등공신이자 영의정 심기원이 또 한번 반정을 꾀한다는 소문이 돌고 심기원은 능지처참을 당했는데 이 옥사의 기획자가 바로 김자점이었다. 

그의 ‘역적 만들기’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소현세자가 석연치않은 죽음을 당한 뒤 인조의 증오심을 부추겨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과 그 가족들을 몰살시킨 것 역시 김자점이었다 서인들까지도 이건 너무하다고 반발했으나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 중에서도 크고 탐스러웠던 김자점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서 영의정 자리에 올랐고 그 이후로는 청나라에 굴신하는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다. 

 

자신과 사돈까지 맺은 김자점을 인조는 지극히 신뢰했고 “나를 대하듯 대해라.”는 유언까지 남긴다. 그러나 뒤를 이은 효종은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귀양 정도로 끝나나 했는데 권력을 잃은 김자점은 금단 현상에 시달린 나머지 청나라를 끌어들여 효종을 치려는 음모를 꾸민다. 당시 청의 실권을 잡고 있던 예친왕 도르곤이 군대를 출동시켜 압록강변에 배치할 정도의 일촉즉발 상황이 이어졌지만 이경석 등 신하들의 필사적인 변명으로 일단 넘어간다. 하지만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린 김자점은 아들과 함께 역모를 꾸미다가 능지처참을 당하고 만다.

 

그 죽음을 맞아 뭇 선비들은 저잣거리에 내걸린 김자점과 그 일족의 목을 손가락질하며 참으로 ‘황교안’(獚狡顔 : 큰개처럼 교활한 얼굴)이라 조소해 마지않았으며 한때 그의 죄상을 규탄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도원수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죄, 기자헌 등 공이 큰 신하들을 죽여없애버린 죄, 국방농단의 책임자이면서도 책임은 커녕 영의정에 올라 역모 사건을 기획하여 정적들을 싹쓸이하고 권력을 누린 죄 등 선비들이 주워섬기는 그의 죄상만 해도 하루 밤을 샜다고 전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남긴 시다. 작자는 역시 미상이다.

 

群對面啼獚狡顔 :군대면제황교안 

동료 무리들 마주보고 울부짖네 저 개같이 교활한 얼굴들이라니

 

泥倫啖魔眞已爛 이윤담마진이란

윤리 더럽히고 사악한 것들 탐하니 진실은 이미 문드러졌도다

 

某罵難豈兒痍枯 모매난개아이고 

어떤 이 규탄하여 꾸짖기를 어찌 저 애새끼들은 상처 주고 말라 죽게만 했던가.

 

惱續哀生緊居斷 뇌속애생긴거단 

고민은 슬픔으로 이어져 삶은 오그라들고 터전은 절단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