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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절간에선 부처님 오신 날을 '1년 살림 마련하는 날'이라고 불렀다. 형형색색의 법당과 마당, 길거리 가득 채원 등을 달고, 그 등에 불자 가족의 이름과 소망을 적은 꼬리표를 달아놓는다. ‘등 값’으로 일정 금액을 받는데, 절간에서는 이를 보시금 혹은 시주금이라 부른다.

 

수십 년 전까진 시주금 뿐 아니라 각종 공양물도 들어왔다. 노보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머리에 쌀이나 떡을 이고 먼 산길을 걸어 오르던 시절도 있었다. 불자는 물론 뒷마당 장독대에 청정수 떠놓고 자식의 무병장수를 비는, 소위 ‘나이롱 신자’까지 절간을 찾는 날이었으니 과연 1년 살림이 마련될 만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종교인 과세'시대. 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 역시 다각적인 수입루트를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고, 1년 살림에 있어 부처님 오신날이 갖는 비중도 차츰 줄고 있다.

 

아무리 속세를 떠났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순 없는 법이다. 수행하러 발우 하나 승복 한 벌 들고 어느 산골짜기 토굴로 들어가던 것도 이젠 옛말, 선방에 들어가는 것도 다 돈이다. 과거 어르신들은 자녀를 양육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할 때 최소한 굶어죽진 않는다며 절에 보내곤 했지만, 이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승려는 철저히 도태된다. 필자가 본 중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염불하고 밤에는 택시기사를 하는 스님도, 낮에는 공장 돌리고 밤에는 참선하는 스님도 있었다. 그에 반해 여기저기 부동산을 갖고 있어 그 수입만으로도 풍족하게 운영되는 절간도 있고 혹은 복지재단 설립이나 장례 사업 등을 통해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운영되는 절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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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아잔타 석굴 사원 역시 금수저의 펀딩으로 건립됐다.

 

 

붓다의 가르침

 

물론 가장 기본적으로 절은 신도들의 보시금과 시주금, 즉 펀딩에 의해 운영된다. 승려가 뭘 먹을 것인지, 어디서 잘 것인지, 어떤 옷을 입을 수 있는지는 신도의 기부금에 달려있다. 과거 북한에서 괜히 불교를 인민의 아편이며 경제적 기생집단이라고 박해한 것이 아니다. 조건이 맞고 의지만 있으면, 펀딩을 시원하게 땡겨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붓다는 생전부터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에 매우 엄격했다. 붓다 입멸 이후에는 이 문제로 허구한 날 쌈박질 한다. <사문과경(沙門果經)>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대왕이여,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노름이나 놀이에 빠져 지냅니다. 즉 팔목 체스장기, 십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 놀이, 자치기, 맨손으로 벽에 그리는 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 놀이, 재주 넘기, 잎사귀 접어서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글자 맞히기, 생각 맞히기, 불구자 흉내내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노름이나 놀이에 빠지는 이런 일을 멀리 떠납니다."

 

초기불교에서 '탁발'은 매우 엄격한 규칙이었다. 그 날 받은 음식은 오전 중에 다 해치워야 하고, 꼼쳐놨다간 바로 파문이었다. 탁발을 일종의 펀딩이라고 본다면 수행자는 펀딩을 받았으니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 게 원칙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나보다. 붓다는 펀딩을 받았으면서 '하라는 수행은 안 하고' 소소한 놀이를 즐기는 수행자의 풍습을 지적하고 “내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야 해”를 강조한다. (잠깐 쉴 때 ‘글자 맞히기’나 ‘생각 맞히기’ 게임 정도는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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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스리가가 얼마나 꿀잼인데...

 

붓다는 이외에도, 연극, 시, 문학, 연주를 비롯한 예체능 활동과 영웅 이야기, 시사 이야기, 국가 이야기 등 온갖 잡담을 금지했다. 놀라운 것은 종교철학 토론도 규제했다. 수행의 첫 단추는 ‘고요함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의미가 분명하고 꼭 필요한 말을 최소한으로 하고 나머지 시간엔 입을 다문 채 수행하라고 가르쳤다. (재미있는 건 고대 인도엔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문화가 있었고, ‘도를 아십니까? 토론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진지하게 벌어졌다. 다양한 사상에 속한 수행자들은 길을 걷다가도 키배를 뜨기 일쑤였고, 붓다도 그러했다) 

 

또한 붓다는 수행자가 폭신폭신하고 따스한 이불 안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냅니다. 즉 아주 큰 침상, 다리에 동물형상을 새긴 자리, 긴 술을 가진 이불,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이불, 꽃들을 수놓은 양털이불, 솜으로 채운 누비이불, 동물을 수놓은 양털 이불,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양털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수레 깔개, 사슴가죽 깔개, 영양가죽 깔개, 차양있는 양탄자, 붉은 베개와 붉은 발 한 받침이 있는 긴 의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멀리 여읩니다."

 

여러분이 종교인에게 후원하고 있다면, 그분이 그럭저럭 폭신한 이부자리에서 잠들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차디찬 바닥에 거적때기 하나 깔고 잠들며 수행에 전념하기를 바라는가? 붓다는 펀딩을 받은 수행자라면 반드시 불편한 자리에 눕고 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붓다는 아주 긴 분량을 할애해 수행자가 하지말아야 할 기복적 의식을 규제하기도 했다. 샤머니즘에 기반한 온갖 기복적 행위를 모두 하천(下踐)하다고 규정하고, 이것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을 경계했다. 아마 당시 사회에서 샤먼에게 길흉화복을 묻거나, 인간사 중요한 이벤트마다 택일을 묻는 문화가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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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복적 요소는 모든 불교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해서, 불교방송을 틀면 ‘소원이 성취되는 영험한 도량’이란 사찰 광고가 자주 뜰 정도다. 청정한 수행도량임을 강조하면서도 여기서 기도하면 분명 떡상한다고 암시하며 펀딩을 받는 것이다.

 

기복적인 요소와 여기서 비롯된 기부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불교만 그런 것도 아닐 테고). 필자에게도 이렇게 펀딩을 하면 결국 나한테 좋은 일이 있겠지’라는 식의 느슨한 기복적 태도가 있고, 상당수의 종교 시설이 기복에서 비롯된 기부가 없다면 그날로 문을 닫고 사라져야 할 수도 있다. 붓다도 마찬가지로 수행자에게 공양하고 윤리적 생활을 한다면 다음 생엔 떡상한다고 했다!

 

 

어떤 것을 깨달아야 할까

 

유물론적 사고방식이 전세계의 주류가 되면서, 불교 역시도 유물론적 사고 역시 유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교는 윤회적 세계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윤회가 디폴트값이라면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에 저것이 없다’라는 연기(緣起)는 최종목적이다. 현대의 수많은 불자가 그렇듯 ‘윤회란 게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더라도 연기를 깨달을 수 있다면 훌륭할 것이다.

 

하지만 붓다는 윤회를 사실로 판단하고 그에 맞춰 재가자(일반인)의 생활윤리를 제시했다. 불교는 아주 초기부터 고대 인도에서 난립하고 사라져간 주요 왕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동아시아사를 통틀어봐도 불교는 항상 국가 혹은 개인의 지원을 받았다. 윤회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은 수행자만이 할 수 있지만, 수행자를 지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을 닦아 더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명분이 승가, 혹은 절간을 유지한 원동력이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명분이 더욱 확장되어,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적 의미에서 매우 윤리적인 생활과 무주상보시(보상심리나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면 그 또한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다 맘 편히 기복적인 종교생활이 가능한 명분이 되어주는 것이다.

 

종교인과 일반인의 관계는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부정해야 하는 기묘한 위치에 놓여있다. 여기서 현실에서의 초월을 지향하는 불교의 몇몇 논리는 현실과 매우 영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붓다는 모든 종교가 반드시 거치는 현상, 즉 수행이나 구도보다 기복이 앞서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을 경계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뭘 깨달아야 할까? 붓다는 <사문과경>에서 수행자의 최종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붓다가 이야기한 모든 것, 이를 테면, 윤회, 전생, 업보, 지옥, 극락, 삼계, 보시, 연기, 기타 등은 하나로 귀결된다. 삶에서의 모든 고통과 고통의 가능성까지도 완전히 제거하는 것. 대승불교에선 이 의미가 확장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아이디어에서 벗어난다면 불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한국의 통불교적 전통에 따르면, 도박하는 스님도 불교일 수 있고, 친지신명께 의지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불교도 불교일 수 있다. 다만 여러분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야무지게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질 때, 그 불교가 불교로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럼 먼저들 성불하시라. 필자는 아직 오조오억 번 더 윤회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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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인용 : 디가 니까야(1-3) - 길게 설하신 경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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