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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대공황의 미국 어딘가에서

1. 이슈, 볼륨, 코믹스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 2차대전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 냉전, SF, 민권 운동, 베트남전

4. 중간기 혹은 브론즈 에이지 : 오리엔탈리즘, 탄압에서의 탈출, 안티 히어로

5. 모던 에이지 혹은 현재 : 영상화, 시빌 워, 9.11테러, 애국법, 소수자

6. 누구보다 빠른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4)

 

준비된 2차대전용 문화산업

 

미국 사회가 대공황의 터널을 거의  통과한 1941. 연말을 향해 가던 12 7일에 일본 제국은 미국의 오아후 진주만에 있던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를 공습했다. 선전포고문이 사전에 송신되긴 했지만, 난해한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어 미국으로선 ‘해독 해야 했다. 미국이 알아먹을  없는 난문(難文) 내용이 선전포고임을 이해하기는커녕 전달받기도 전에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이는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선전포고문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얽혀있다. 5000자가 넘는 장문의 선언문 문서는  14장이었고 마지막 장은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적혀 있었는데, 선전포고의 내용은  마지막에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적혀있지 않아 굉장히 심도 깊게 읽지 않으면 선전포고문이라는 것을  수가 없었다.  문서는 암호화되어 주미일본대사관으로 보내졌고, 이를 해독해서 타자하여 대사가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던 시각은 진주만 공습 시작  20분이 지난 때였다. 당시 대사관의 타자기를 담당한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었는데, 기밀문서라는 이유로 대사관은 외국인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자국인 직원들로만 수신  출력 작업을 했다. 그나마도 전근 가는 직원의 송별 파티를 하느라 많은 직원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타자기에 익숙지 않은 1 서기관이 독수리 타법으로 토닥토닥 적어야 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태평양 전쟁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해서는   전쟁이 결의되자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진주만 공습 작전을 입안했고, 이를 성공시켰던 비운의 유능한 제독이다. 이소로쿠는 진주만 공습을 지휘할  선전포고가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작전 이후에야 간신히 미국에 전달이  상태였다.

 

하지만 예정대로 전해졌다 하더라도 전달 예정 시각은 작전 결행 20 전이었다. 당연히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고, 의미를 꼬아놓은 문장을 이해하고, 마지막 장에 숨겨둔 선전포고 내용을 이해하고, 선전포고 소식을 진주만에 전달하기까지 20분이라는 시간은 말도  되는 시간이다. 상대가 최대한 늦게 해석해 대응 또한 늦도록 애쓴 것이다. 마지막 문장만 봐도   있다.

 

제국 정부는 여기에 합중국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 금후 교섭을 계속할지라도 타결에 이를  없다고 인정치 않을  없음에 관하여 합중국 정부에 통고함을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

 

이런 엉망진창의 선전포고문이 그나마도 늦게 전달되었음을 알게  이소로쿠 제독은 격노했다고 한다. 이소로쿠의 격노는 미국의 격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주만 초토화의 보고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가 일본이 들고  상식 밖의 꼼수를 목도한 국무장관은 일본 대사를 내쫓았다. 미국 전역이 국무장관의 분노를 공유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치욕의  연설 Day of Infamy Speech를 하고 2차대전에 참전했다. 미국인들의 자진 입대율은 90% 육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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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이 맞붙는 전장은 당연히 사이에 있는 태평양. 넓고 넓어서 태평(太平) 붙은 바다다. 해군과 공군 전력이 필수인데 해군과 공군의 전력은 공장에서 나온다. 미국은 뉴딜 정책으로 인해 간신히 소생한 공장들로 배와 전투기를 생산했다.  생산력의 규모는 말도  되는 수준이었다. 2차대전 당시 영국이 생산하거나 타국에서 지원받거나 수입한 수송선을  합치면 1500만여  정도다. 미국은 혼자서 2500만여 톤의 수송선을 생산해냈다. 수송선만 이런 정도다. 이소로쿠 제독의 걱정은 옳았다. 일본은 미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태평양은 넓고 기항지로  섬도 적다. 미국이  답은 항공모함 위주의 전력 구성이었다. 항공모함은  자체도 거대하고  위에 올릴 비행기까지 고려하면 막대한 생산력이 필요하다.  생산력을 충당하기 위해 공장의 일자리가 대규모로 만들어졌다. 입대하지 않은 남성이나 가정에 있던 여성들이 공장을 돌렸다. 임금이 지급되고 가계 경제가 탄탄해졌다. 전쟁의 영향이라고 놓고 보면 이상한 현상이었다.

 

전쟁은 국가 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대재앙이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이자 납세자인 사람들을 대량으로 실어날라 전장에 던져넣고 죽도록 내버려 두는 행위다. 하지만 대공황과 뉴딜 막바지에 있었던 미국에게 2차대전, 특히 태평양 전쟁은  달랐다. 전력에서 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해군과 공군 위주의 전쟁이니 인력 공백이 많지 않았다. 또한 생산하는 장비가 배와 전투기 등의 중공업 품목이다. 공장과 연구소가 가동된다. 경제 주체들이 죽어 나가 경제를 박살 내는 전쟁보다는 경제를 강제로나마 활황으로 만드는 전쟁에 조금  가까웠다. 뉴딜과 전쟁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미국을 대공황에서 졸업하도록 만들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국가는 단결 총화해야 유리하다. 비록 진주만 공습 때문에 전국이 단합하긴 했지만,  단합의 효과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북돋아야만 한다. 이럴  문화 산업은 전쟁 프로파간다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시 40년대 초중반의 미국에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출판 만화 시장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는 수퍼히어로 시장이 있었다. 수퍼히어로가 전쟁 프로파간다에 합류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장르의 특성에서도 수퍼히어로는 전쟁 프로파간다에 쓰이기 유리했다. 주인공과 반동 인물의 대립이 기초 구도이니, 반동 인물의 자리에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이라는 악을 갖다 놓으면 되는 것이다.

 

반면 전쟁 프로파간다 참여를 수퍼히어로 장르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 국방성의 후원으로 시장의 넓이를 확장하는 기회가 된다. 문화 산업이라는 신생 산업 분야에서도 신생 분야인 출판 만화 중에서도 신생 장르인 수퍼히어로가 미국 전역의 거의 모든 계층에게 가닿을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에게,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국채를 사는 투자자들에게. 게다가  절묘하게도  장르에는 마침 전쟁용으로 쓰기  좋은 캐릭터들이  태어나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수퍼히어로가 캡틴 아메리카였다.

 

 

타임리 3 마지막 멤버, 캡틴 아메리카

 

1941 초의  사이먼은  타임리에 편집자로 입사한 상태였다. 오랜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입사한  직장이었고, 보수도 좋았으니 사기는 높았다. 그래서 친구인  커비를 불러와 작품 하나를 같이 해보자고 꼬드겼다. 사이먼은 자기가 그린 캐릭터 스케치를 보여줬다. 이름은 ‘슈 아메리칸이었다. 커비와의 의논 , 사이먼은 이름에서 ‘슈 떼냈다. 시장에 차고 넘치는 슈퍼보다는 캡틴이  나아 보였다.

 

이렇게 캡틴 아메리카가 탄생했다. 군의 실험에 참여한 스티브 로저스(Steve Rogers) 혈청을 주사 받고 슈퍼 솔저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무기는  공격적으로 보이는 방패로 결정되었고, 코스튬은 성조기를 활용해 만들었다. 배트맨의 사이드킥 로빈이 저연령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을 보고는 버키 Bucky 라는 이름의 소년 사이드킥도 만들었다. 버키의 이름은 사이먼의 고등학교 시절 농구팀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친구의 이름에서 따왔다.

 

완성된 캐릭터를  마틴 굿맨 사장은 캡틴 아메리카의 잠재력을 깨달은  같다. 기존 잡지 라인업에 넣는 대신 독자적인 셀프 타이틀을 만들기로 했다. 다른 만화를 추가하지 않고 오직 캡틴 아메리카의 이야기만 실리는 잡지였다. 당시 거의 모든 발행 이슈는 여러 편의 만화를 앤솔로지 형식으로 싣고 있는 ‘잡지였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처음부터 솔로 타이틀로 시작했다.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Captain America Comics 이슈 #1 1941 3월호로 처음 출간되었고, 판매는 1940 12월부터 시작되었다. 진주만 공습 1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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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1 표지

 

 이슈는  캐릭터가  이슈를 독차지한 시도로서는 최초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한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서도 최초로 추정된다. 캡틴 아메리카는 친나치 여론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2차대전 참전 이전 시점의 미국에서 무시할 만큼의 비중은 아니었던 친나치 여론은, 비록 참전과 동시에 나치 독일의 선전포고로 인해  들어가긴 했지만, 당시에는 반전 여론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만화 작가들의 상당수는 유대계였다.

 

당시 활동하던 유대계 작가들의 이름을 읊어보자.  사이먼,  버르고스, 스탠 ,  커비, 제리 시걸,  슈스터,  케인,  핑거, 제리 로빈슨 등등이 전부 유대계다. 지금까지 소개  언급했던 작가 중에서  에버렛을 제외한 전부다.

 

미국 이민사에서 유대계는    물결을 형성했다. 이민 초기인 17~18세기에는 이베리아반도 출신이 많았고,  번째인 1차대전 당시에는 게르만계가 많았다. 1880 이후에  번째 물결이 들어오는데 이때는 동유럽계가 많았다. 당연히  들어온 동유럽 유대계 이민자들은 정치와 경제 양쪽에서 비주류로 분류되었다. 빈민층도 많았으니 사법 행정 서비스에서도 관심의 외곽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유대계는 ‘백인 중의 흑인으로 불릴 정도로 백인 중에서 가장 천대받는 차별 인종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후발주자인 동유럽계 유대인들은 가장 자산이 없는 계층이었다.

 

심지어 유대계 내에서조차도 동유럽계는 혈통 문화상 소수인 비주류였다. 유대계는 고대의 디아스포라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전승에 의한 혈통 구분으로 분류되고 있다. 서유럽계는 아슈케나짐, 아랍과 중앙아시아의 유대인은 미즈라힘, 유럽과 아랍이 섞여 있던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은 세파르딤이라는 식이다.   가지 분류가 주류였고 여기에 이란에 근거한 페르시아계, 그리고 에티오피아에 근거한 베타 이스라엘과 같은 ‘유명한 소수 합한 것이 주류 유대계의 혈통 구분이다. 동유럽계는  주류 분류에서도 밀려나 있다. 주류의 시선에선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에 이민을  것이다.

 

사회 시스템 주류에 들어가려는 노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분야에 종사하는 선택은 인기가 높았다. 갱도  하나다. 후일 흑인 계층도 같은 수순을 밟아 마약상과 음악과 스포츠 위주로 진출할 밖에 없었다. 20세기 초의 유대계들에게 가능했던 분야  하나는 문화 산업이었다. 작가는 인기에 좌우되는 인생이어서 하이 리스크이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에 성공하면 하이 리턴인 직종이다. 20세기 유대계 이민자들의 2, 3세대   많은 수가  신생 산업 분야에서 바늘구멍을 노렸다.  사이먼과  커비 또한  하나였고, 유대계 후발주자로서 당대에   있는 이야기를 고민한 결과가 나치를 등장시키는 캡틴 아메리카였다.

 

나치 독일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북돋고 2차대전 참전 여론을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캡틴 아메리카는,  이슈부터 센세이션을 만들었다. 단숨에 높은 판매고를 올리면서 타임리가 보유한 수퍼히어로 캐릭터  인기 상위권으로 데뷔한 것이다. 친나치 여론 또한 이에 반응했다. 유대인 따위가 위대한 게르만인의 제국을 욕하다니! 작가들에 대한 테러 예고가 있었고  때문에 경찰 병력이 회사와 작가들의 집을 경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뉴욕의  구아르디아 시장은 작가들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회사에겐 아주 좋은 마케팅 기회였다.

 

캡틴 아메리카는 단숨에 기존의 메이저 캐릭터인 네이머와 휴먼 토치를 능가하게 되었다. #1 이슈는   동안 100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는 같은 기간 타임지가 올린 판매고를 넘는 수치였다. 심지어는 팬클럽도 생겨났다. 이렇게 타임리를 대표하는 3인방의 라인업, 일명 3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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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 중에서 현재도 인기와 생명력을 유지하는 캐릭터는 캡틴 아메리카뿐이다.

휴먼 토치는 생명력을 잃어 다른 캐릭터로 대체되었고, 네이머는 인기를 잃었다.

 

 캐릭터로만  이슈를 채우려니 문제도 있었다. 사이먼은 커비 혼자서 그림을 그려서는  분량을 매달 채울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을 펜슬러와 잉커로 참여시켰는데, 커비는  처사에 황당해했다고 한다. 마감에 맞춰 분량을 만들려면 어쩔  없었으니 사이먼은 보아의 노래가사 같은 말로 커비를 달랬다. “You’re still No. 1.”

 

 커비는 작가진에서 넘버 원이 맞았다. 캡틴 아메리카를 전후해서 커비가 보여준 스타일은 이후 만화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1 표지에서  스타일이  드러난다. 역동성을 느낄  있는 포즈, 이를 강조하기 위해 쓰인 동작선과 충격파의 활용이다. 소설 삽화의 유전자로 인해 정적인 느낌의 컷이 많았던 만화가 드디어 독자적인 그림 미학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었고  커비는   대표적인 경우였다.  성과를 이어받은 일본 만화는  커비 부류의 방식을 추가 발전시켜 오늘날 만화 표현 기법에 이르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의 코스튬 또한 유행을 만들었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의 작법을 요약하면 ‘국가의 의인화. 이름과 코스튬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이런 캐릭터 유형에서 최초는 아니지만, 메가 히트 상품으로서는 처음이다. 따라서 캡틴 아메리카 이후로 등장한 성조기 테마의 수퍼히어로들은 모두 캡틴 아메리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있다. 그런 아류 캐릭터 중에서 대표적인 경우가 이름에서부터 성격이 드러나는 스타 스팽글드 키드 Star-Spangeld Kid  사이드킥인 스트라입시 Stripsey . 국가의 의인화는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보기도 한다.  캐릭터인 수퍼맨의 코스튬 배색도 성조기에서 따온 빨강과 파랑의 대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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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의 창조자 제리 시걸이 DC코믹스에서 1941 10월에  발매한 스타 스팽글드 키드와 스트라입시의 콤비.

국가 의인화 캐릭터  하나이며, 캡틴 아메리카와 셀프 타이틀 시리즈를 갖고 나왔다.

캡틴 아메리카와 버키의 관계를 역전시켜, 소년 히어로와 성인 사이드킥의 구성을 하고 있다.

유사품답게 이후 사라져버렸지만,  명맥은 1999년에 스타걸이라는 캐릭터에게로 이어졌다.

 

만화는 성공했지만  사이먼은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할  있을 정도의 대히트를 쳤지만, 그에 대한 회사의 보답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높은 봉급과 업계의 관행 등을 고려해보면,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도 딱히 선택지가 되기 힘들었다. 결국  사이먼은 역마살이  유목형 작가답게 다시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때는 캡틴 아메리카의 #10 이슈가 발매된 후인 1942 1월경이었다.  커비 또한 그와 함께 타임리를 떠났고, 그래서 스탠 리와의 결합은 20 후로 미뤄졌다.

 

사이먼이 떠난  공석이  편집장 자리는 그의 보조였던 스탠 리가 승계했다. 고작 17세의 입사 1년 차였다. 마틴 굿맨은 조카를 임시 편집장으로만  생각이었지만, 아무도, 심지어는 스탠  자신도 예상치 못하게 업무에 대한 천재성이 발휘되었다. 스탠 리는 1945 징집되어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까지 편집장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