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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총리, 테레사 메이(Theresa May)가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로써 2016년 7월 13일에 시작된 영국의 두 번째 여성 총리는 다음달(6월) 7일을 끝으로 약 1000일간의 통치를 마무리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브렉시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했던 그녀의 모험은 아무런 소득 없이 이렇게 막을 내렸네요. 하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뻔한 결과였을 수도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어야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국면 당시, 영국은 유럽연합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리메이너’(Remainers)였습니다. 사실, 내무부 장관(Home Secretary) 시절, 6년간 최장수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이민법을 강화하고 국경청(Border Agence)을 개편, 국경통제국(Border Force)을 신설하여 출입국관리를 철저하게 시행했었는데요. 때문에 브렉시트 국민 투표가 결정되었을 당시 메이는 ‘브렉시터’(Brexiters)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죠. 하지만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은 EU’라고 표현했던 마지막 연설에서도 보여지듯, EU 탈퇴 자체를 지지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민 투표 결과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후, 이에 대한 책임으로 유력 총리 후보들이 대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난색을 표하면서 총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바꾼 인물이 테레사 메이인데요. 그렇습니다. 메이가 처음 총리가 되려고 했을 때 비난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총리가 되기 위해 소신을 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3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보면 애초부터 단추가 잘못 꿰인 것이었습니다. 사실, 국민 투표 결과가 EU와의 결별을 결정한 만큼, 유럽연합의 탈퇴를 주장하던 인물이 바통을 이어받았어야 맞는데요. 독박을 쓰게 될까 두려워 발뺌하던 브렉시터들이 총리 자리에 손사래를 치면서 결국 메이가 총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대처처럼 되고 싶었지만 대처가 되고 싶진 않았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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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총리로 재임했던 인물입니다. 인기 절정에 있었던 토니 블레어조차 그녀의 기록을 갱신하지 못했는데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리로서 영국을 좌지우지 했었던 대처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자를 괴롭힌 ‘악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선풍적인 인기에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여인임은 분명했습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영국의 두 번째 여성 총리’라고 했던 메이는 아마도 대처와 같은 영향력을 갖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보수당이기도 했고,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죠. 대처가 악언도 많이 했지만 반대로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당대 최고의 이슈가 되었으니, 어쩌면 메이는 이러한 대처의 카리스마를 닮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처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이긴 했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특권을 제한하는 공약들을 내걸어 실천하려 했는데요. 그녀가 취임 때 했던"영국을 부자와 빈민, 도시와 시골 사람, 젊은이와 노인, 남성과 여성, 흑인과 백인, 병자와 건강한 사람 등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발언은 그녀가 나름의 소신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었습니다. 퇴임을 발표하는 연설에서도 "단순히 소수의 특권계층이 아닌 모두의 나라가 되도록 노력해 왔다"고 말했듯 기존의 ‘보수당=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근로자의 편에 서기 위해 애썼음을 강조했었죠.

 

하지만 지난 3년간 그녀가 보여왔던 행보는 그녀가 했던 말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그란펠(Granfell, 고층 아파트)이 전소되었을 때 보였던 권위적인 태도와 발언 등이 문제가 되었죠.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이민자에 대한 보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던 점 등은 속내를 드러내는 태도였습니다. 대처처럼 되고 싶진 않았지만, 그녀와 같은 영향력을 갖고 싶었던 걸까요.

 

 

 

브렉시트,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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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브렉시트는 해결을 보지 못하고 끝없이 논쟁만 반복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태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렇듯 답이 없는 상황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고 하니, 당찬 각오로 덤벼든 최장수 내무부 장관 출신도 나가 떨어지게 된 것이죠.

 

지난 3년간 브렉시트라는 과제를 두고 영국 정부는 여당, 야당과 함께 밤샘 토론을 비롯해 숱한 논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3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죠. 현재 EU와의 결별은 10월로 연기되었고, 책임지겠다던 총리는 사퇴했습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2차 국민 투표에 대한 열망이 높지만, 한 번 결정된 사안을 뒤집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거대 담론이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카메론이 만들어 놓은 극한 직업

 

현재 영국에서 화재가 되고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카메론과 테레사 메이의 퇴임 발표 비교 영상인데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움을 지녔다고 하여 ‘메이봇’(메이+로봇)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메이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퇴임을 발표한 영상이 화제입니다. 그와 못지 않게 과거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며 퇴임 발표를 했던 카메론의 영상도 이목을 끌고 있는데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국가의 운명을 건 국민 투표를 제안해 논란을 산 카메론이 11년간의 보수당 대표(총리 6년)를 마무리하고 국회를 떠나는 장면입니다. 카메론은 2001년 정치에 입문하여 2005년 당대표를 역임, 2010년 총선과 2014년 재선까지, 이쯤 했으면 그만 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본 인물인데요. 지금의 브렉시트라는 재앙(?)을 이끈 카메론이 시원한 마음으로 ‘다우닝’(10 Downing Street)을 떠나는 장면은 어쩌면 3년 뒤, 눈물을 머금고 총리를 그만둬야 하는 누군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극한 직업이 되어버린 영국 총리

 

메이는 총리가 된 이후 조기 총선을 통해 리더쉽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오히려 과반을 잃게 되어 DUP와의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조기 총선이었는데요. 영국은 새로 선임된 다수당의 대표가 자신이 제시한 조기 총선에서 실패할 경우 당대표를 내려놓은 전통 아닌 전통이 있습니다. 메이는 끝까지 해결을 해 보려는 노력을 했었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갔네요.

 

끝이 없는 논란의 중심에서 과연 브렉시트라는 보따리를 풀려는 이, 누가 있을까요? 보나마다 건드리는 순간 사퇴가 보장되어 있는 영국 총리 자리는 이제 극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어찌됐든 메이는 6월 7일자로 총리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6월 10일부터는 보수당의 신임 당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이 시작될 텐데요. 먼저, 보수당 의장의 관할 아래 현재 국회에 있는 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후보자 투표를 진행합니다. 이후 득표수가 적은 후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최종 2명을 선정하여 보수당의 당원 투표로 최종 당대표를 선출합니다.

 

현재 더벅머리인 전 런던 시장이자 외무성 장관인 보리스 존슨이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고 있다지요. 가장 확고하게 브렉시트를 주장해 왔던 터라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 적임자이긴 합니다만, 괴짜 기자 출신의 보리스가 과연 이 무게를 짊어지려고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민자 문제부터 유럽단일시장, 국경, 군사, 범죄(경찰 협조) 등등 산적해 있는 사안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그가 과연 끊어주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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