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공황의 미국 어딘가에서
1. 이슈, 볼륨, 코믹스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 2차대전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 냉전, SF, 민권 운동, 베트남전
4. 중간기 혹은 브론즈 에이지 : 오리엔탈리즘, 탄압에서의 탈출, 안티 히어로
5. 모던 에이지 혹은 현재 : 영상화, 시빌 워, 9.11테러, 애국법, 소수자
6. 누구보다 빠른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6)
어린이용 수퍼히어로, 캡틴 마블
40년대 당시에는 포셋 퍼블리케이션즈 Fawcett Publications 라는 회사가 있었다. 스페인 전쟁 참전 군인 출신의 윌리엄 포셋 William Fawcett 이 설립한 잡지 출판사였다. 이들은 수퍼맨과 배트맨의 성공을 보자마자 곧바로 만화부서로 포셋 코믹스를 설립했다. 포셋은 유머, 호러, 범죄, 판타지 등등의 장르도 출판했지만, 수퍼히어로도 하나쯤은 있어야 만화 출판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셋은 계약한 작가들 중에서 아이디어 있는 사람을 찾았다. 회사가 원하는 컨셉을 당시 유통 담당자였던 로스코 켄트 포셋 Roscoe Kent Fawcett 이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수퍼맨을 주세요. 성인이 아닌 10~12살 이상의 소년으로 바꿔서.”
포셋에서 필진 겸 편집으로 일하던 빌 파커 Bill Parker 는 번개를 특징으로 하는 캡틴 썬더 Captain Thunder 라는 수퍼히어로를 구상했다. 그림작가인 찰스 클라렌스 벡 Charles Clarence Beck, 통칭 C. C. 벡이 흰 망토에 황금색과 붉은색을 섞은 코스튬과 번개 모양의로고를 디자인했다. 캐릭터의 본명은 회사 설립자의 별명이었던 캡틴 빌리를 따서 빌리 뱃슨 Billy Batson 이 되었다. 캡틴 썬더라는 이름은 출시 직전에 캡틴 마블 Captain Marvel 로 바뀌었다.
이 이름은 마블 코믹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타임리 코믹스가 현재의 사명으로 바꾼 것은 먼 훗날인 1961년이다. 4, 50년대의 '마블 코믹스'는 타임리 코믹스가 발행하는 만화 잡지의 제목일 뿐이었다. 당시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우연이 후일 문제의 씨앗이 된다.
캡틴 마블의 컨셉은 어린이가 특정 키워드를 외우면 어른 몸의 수퍼히어로로 변신하는 설정이다. 변신 마법 소년소녀 캐릭터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그 키워드, 주문은 샤잠 SHAZAM 인데 이는 신으로 추앙받은 고대 영웅 6명의 이니셜이며 보유한 능력의 분류명이기도 하다.
1. 솔로몬의 지혜 : 기억력과 지적 능력이 강화된다지만, 전개상 묘사가 잘 안 되는 능력이다.
2. 헤라클레스의 힘 : 왠만해선 초인 수준의 완력이 빠지지 않는다.
3. 아틀라스의 체력 : 스테미너와 인내력 외에도 강한 내구도가 여기에 들어간다.
4. 제우스의 권능 : strength가 아닌 power라서 권능/권위로도 해석된다. 변신 상태의 수명이 불멸이며, 제우스의 능력답게 전자기의 조작이 가능해져 전기를 흡수하고 번개를 만들 수 있다.
5. 아킬레스의 용기 : 용기와 정신력이 충만하단다.
6. 머큐리의 속도 : 원한다면 음속 혹은 광속에 가깝게 이동할 수 있다. 비행 능력도 여기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7번째 잃어버린 능력 설정도 있었지만 초기에나 쓰였고 현재는 거의 사장된 설정이다.
빌리 뱃슨은 고아 소년이다. 회사명에서 지명을 가져온 포셋 시티에 살며,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가 대마법사에게 소환되었다. 대마법사는 선한 심성의 소유자인 빌리를 자기 후계자로 정하고는, 자신의 이름이자 초능력의 요약 주문인 ‘샤잠’을 가르쳐주며 힘을 넘겨주었다. 빌리가 샤잠을 외치면 하늘에서 번개가 쾅 떨어져 빌리에게 닿고, 그러면 어른 형태의 수퍼히어로인 캡틴 마블이 된다.
이렇게 설정이 만들어진 캡틴 마블은 1940년 2월에 발매된, 판매는 1939년 12월부터 시작된 위즈 코믹스 Whiz Comics 의 #2 이슈에서 데뷔했다. 제호인 위즈 역시 회사의 창립자인 윌리엄 포셋이 발간했던 잡지 ‘캡틴 빌리의 벼락출세’ Captain Billy’s Whiz Bang 에서 따왔다. 위즈라는 단어는 작중에서 빌리 뱃슨이 라디오 리포터로 진로를 선택할 때의 방송국 이름에도 쓰였다.
캡틴 마블의 첫 데뷔 표지. 자동차를 던지는 모습이 액션 코믹스 #1 표지의 수퍼맨과 유사한 점에 주목하라.
위즈 코믹스라는 제호는 원래 플래시 코믹스나 스릴 코믹스로 정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플래시 코믹스라는 제호의 만화를 올 아메리칸에서 1940년 1월 예정으로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포셋에 들어왔다. 다른 후보였던 스릴 코믹스 역시 어떤 회사에서 스릴링 코믹스라는 만화를 준비 중이라기에 급히 바꾼 제호가 위즈 코믹스다. 캡틴 썬더라는 이름 역시 같은 제목의 영화가 30년대에 있던 것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바꾼 것이다. 이름의 경우엔 너무 늦게 바뀌어서, 최종 출판 원고에도 이름이 캡틴 썬더로 쓰여 있었기에 급하게 식자를 덧써서 바꿔야 했다.
40년대의 최고 승자
재미있는 점은, 위즈 코믹스는 #2부터 유통 판매되었다는 점이다. #1 이슈는 판매도 유통도 생산도 되지 않고 법적으로만 존재한다. 미국 출판만화의 초기엔 애쉬캔 카피 ashcan copy 라는 수법이 있었다. 새로 만드는 잡지의 빠른 상표 등록과 그로 인한 빠른 홍보를 위해 #1 이슈를 극소량만 출판하는 것이다. 보통 다섯 부 이하, 대부분 2부 정도만 인쇄하고 채색도 하지 않아 흑백이다. 한 부는 당국에 보내 상표권을 만들고 한 부는 자기들이 가지는 용도다. 그 외의 출판본은 직원들이 기념품으로 가지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목조난로를 때던 당시 난로의 재를 담아 버리던 쓰레기통을 ash can이라 불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재는 독립출판 만화가 테스트베드, 킥스타터 용도로 출판 혹은 업로드하는 베타 버전에 이런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애쉬캔 카피에 대응되는 한국어 번역어는 없다. 홍보야 광고를 미리 내면 되는 것이고, 상표권을 빨리 등록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법무팀을 꾸리는 쪽이 더 매끄럽고 편하다. 그래서 포셋과 올 아메리칸에서 몇 번 사용한 후에 애쉬캔 카피 수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굳이 한국어로 의역이라도 해보자면 ‘파기할 예정의 출판본’이라는 의미를 현지화시켜 세절본이라는 식으로 단어를 만들 수 있고, 더 의역하면 의도는 약간 다르지만 존재하는 단어인 가제본 정도가 가능하다.
현존하는 애쉬캔 카피 대다수는 보존이 되지 않아 표지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위즈 코믹스 #2의 이전 이슈는 플래시 코믹스 제호로 한 부, 스릴 코믹스 제호로 한 부, 총 2부의 애쉬캔 카피가 남아 있다.
위즈 코믹스 #2는 첫 발매부터 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화려한 데뷔를 했다. 이후 지속적인 판매고 성장을 보였기에 캡틴 마블은 1941년에 캡틴 마블 어드벤처 Captain Marvel Adventures 라는 제목으로 솔로 타이틀을 받았다. 캡틴 마블 어드벤처는 계간 이슈 느낌으로 시작해 금방 월간 이슈로 자리잡았다. 이 프로젝트에는 당시 타임리를 막 떠나서 다시 유목 작가 생활로 돌아간 조 사이먼 - 잭 커비 콤비라는 거물들도 투입되었다.
또한 캡틴 마블은 최초로 영상화된 수퍼히어로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1941년에 12개의 옴니버스 연작 단편이 엮인 ‘캡틴 마블의 모험 Adventures of Captain Marvel’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극장 개봉을 했다. 1944년에는 캡틴 마블 어드벤처가 매월 최고 1400만 부 가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포셋 코믹스의 플래그십 상품이 된 동시에 판매량에서 수퍼맨 브랜드를 앞질러 버린 것이다.
포셋 코믹스가 노린 타겟층은 철저히 아동이었다. 이 지점이 성공의 비결이다. 수퍼맨 또한 불살 컨셉을 갖고 배트맨 또한 범죄탐정물답지 않게 분위기가 밝아지는 등 아동 독자들을 노린 측면이 있지만, SF 설정보다는 동화적인 마법 설정이 아동들에게는 훨씬 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입에 착 붙는 주문 하나로 단번에 어른이, 그것도 수퍼히어로가 된다는 설정은 아동들에게 큰 어필 요소가 되었다. 또한 그림작가 벡의 스타일은 묘사와 전개에 있어 사실적 방향 대신 동화적인, 요즘식으로 해석하면 ‘만화적’인 방향을 선호했다. 이것이캡틴 마블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냈다.
특히 2차대전이라는 붐업 기회는 캡틴 마블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였다. 전쟁이라는 것이 원래 전쟁 범죄를 어느 정도 포함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추축국이 저지르고 있는 전쟁 범죄는 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인종 청소에서 생체 실험까지 하여 미증유의 전쟁범죄를 가능하게 한 이념인 파시즘은, 악이라고 가치판단을 내려도 무리가 없었다. 이권 위주로 충돌하는 전쟁은 선악 구도의 가치판단이 어렵지만, 2차대전은 그렇게 이해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캡틴 마블은, 당대의 수퍼히어로 장르가 대부분 그랬지만, 동화 특유의 선악 구도로 짜여져 있다. 아동 독자들이 2차대전을 당시의 나이로 이해하기 쉬운 미디어 프레임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성인 독자들이 읽기에도 편한 구도다.
그리하여 빌리 뱃슨, 캡틴 마블의 브랜드는 마블 패밀리라는 형태로 확장을 시작했다. 이는 원작자인 빌 파커의 의도이기도 했다. 파커는 원탁의 기사를 모델로 삼아, 캡틴 마블을 원탁이 리더격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담당 작가들은 빌리 뱃슨이 가진 샤잠의 힘을 공유하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마블 패밀리로의 확장
1941년 위즈 코믹스 #21에서는 부관 마블 Lieutenant Marvel 이라고 불리는 3인이 등장했다. 이들은 빌리 뱃슨과 동명이인인 세 사람이었는데, 빌리가 샤잠의 힘을 얻게 되면서 이름이 같은 탓에 덩달아 능력을 얻었다는 설정이었다. #25에서는 빌리의 친구 중 하나인 프레디 프리먼 Freddie Freeman 이 같은 능력을 얻어 캡틴 마블 주니어 Captain Marvel Jr. 라는 이름으로 수퍼히어로가 되었다. 1943년 캡틴 마블 어드벤처 #18에서는 빌리의 자매인 매리가 같은 능력과 함께 매리 마블 Mary Marvel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확장을 위해 발전된 설정은 이렇다. 캡틴 마블 이전에 힘을 받았던 후계자는 블랙 아담 Black Adam 이라는 사람이었다. 초기 설정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왕자, 후기 설정으로는 칸다크라는 중동의 가상국가 출신의 전직 수퍼히어로다. 블랙 아담은 계승받은 힘을 독차지했다. 사이드킥이 있는 경우라 해도 아내와 처남 정도였고, 후기에는 그나마도 없다. 블랙 아담의 타락에 좌절하고 타격을 입은 대마법사는 현대가 되어서야 빌리 뱃슨을 새 후계자로 고른 것이다. 그 선택에 부응하듯 캡틴 마블은 블랙 아담과 달리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 및 친구와 힘을 나누었다. 이 가족이 혈연 기준이 아니라는 점은 이민자 국가인 미국의 속성과 비교해보면 해석할 부분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수퍼히어로 패밀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가족을 마블 패밀리라고 부른다.
매리는 빌리 뱃슨과 쌍둥이 남매 혹은 수양자매다. 이름도 매리 뱃슨 Mary Batson 과 매리 브롬필드 Mary Bromfield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보통은 어려서 헤어진 이란성 쌍둥이에 입양 후 성이 브롬필드가 된 설정이 메인이다. 프레디 프리먼은 빌리의 친구이자 신문팔이로 처음 등장했는데, 캡틴 마블의 적 중 하나인 캡틴 나치 Captain Nazi 에게 공격 받아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프레디의 팬이었는데, 그래서 엘비스가 프레디의 헤어스타일과 망토, 로고 디자인을 따라했다는 것은 증명된 얘기다. 그리고 프레디는 빨간색을 쓰는 쌍둥이와 달리 코스튬의 색이 파란색이고, 성인의 형태로 변신하는 빌리와 달리 매리와 프레디는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다. 보통 빌리는 CM1, 매리는 CM2, 프레디는 CM3로 지칭하기도 한다.
전대물이나 합체로봇물의 1호기, 2호기 같은 느낌이 든다면 기분탓이 아니다. 원탁의 기사 류의 팀업 영웅서사가 전대물의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 어딘가에 마블 패밀리가 있다. 어쩌면 전대물의 1호기 캐릭터를 상징하는 색이 붉은색인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 엉클 마블 Uncle Marvel 이라는 당황스러운 아저씨 수퍼히어로도 마블 패밀리에 합류했고, 호랑이인 토키 토니 Tawky Tawny 와 토끼인 호피 더 마블 버니 Hoppy the Marvel Bunny 까지 데뷔했다. 엉클 마블은 동화의 구도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어린이들을 잘 이해하고 같은 편이 되어주는 좋은 어른의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만든 버전이고, 토키 토니와 호피는 동화에 등장하는 ‘말하는 동물’ 캐릭터를 수퍼히어로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모든 면에서, 아동을 주타겟층으로 공략하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CM1~3에 엉클 마블, 부관 마블 3인, 토키 토니까지 합한 최초의 마블 패밀리 멤버들.
호피를 제외하면 완전체로, 40년대 당시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현대식으로 그려냈다.
당시 디자인과 다른 점은 매리 마블의 코스튬이 후일 리뉴얼된 버전인 흰색이라는 점과 캡틴 마블 주니어의 헤어스타일이다.
엘비스는 캡틴 마블 주니어 - CM3 - 프레디 프리먼의 팬이었다.
수퍼맨과의 법정 공방
캡틴 마블 브랜드의 이런 대성공을 지켜보는 DC, 그러니까 후일의 DC 코믹스가 되는 세 회사 - 내셔널 얼라이드, DC 코믹스 INC., 올 아메리칸은 기분이 딱히 좋지 않았다. 특히나 이들이 보기엔 캡틴 마블은 수퍼맨의 표절 캐릭터였다. 사실 캡틴 마블만이 아니었다. 수퍼맨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캐릭터는 폭스 피처 조합이 내놓은 원더맨 Wonder Man , 역시 포셋 출판사가 내놓은 마스터맨 Master Man 등이 있었다. (이 캐릭터들과 이름이 같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와 수퍼빌런 캐릭터가 있지만, 무관하다.)
당시 내셔널 얼라이드 밑에는 수퍼맨의 저작권과 판권을 종합 관리하고 있는 자회사 수퍼맨 INC.가 있었는데, 이 법인을 중심으로 두 캐릭터에 대한 소송이 들어갔다. 이 경우엔 폭스와 포셋이 쉽게 캐릭터를 접고 판매를 중지했다.
그리고 기나긴 싸움이 시작 되는 1941년 6월, 캡틴 마블의 만화와 영화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이 접수 되었다. 마스터맨에 대해서는 접어주었던 포셋이지만 최대 히트 상품인 캡틴 마블에 대해서는 양보를 해줄 수가 없었다. 결국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은 실패했다. 그러자 수퍼맨 측은 바로 직후인 9월에 정식 소송에 들어간다.
이 소송의 1심은 1948년까지 7년을 끌었다. 소송의 주된 쟁점은 “캡틴 마블은 수퍼맨의 표절작이다.”였다. 수퍼맨 측의 주장은 이러했다.
"설정된 초능력이 같다. 데뷔 이슈 표지의 액션 장면도 같은 테마다. 코스튬의 디자인도 비슷하다."
캡틴 마블 측, 즉 포셋의 입장은 이러했다.
"설정상 SF와 판타지라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건 같은 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니 아류작이나 모방작이라고 봐야 한다."
양측의 작가들과 편집자들이 증인으로 나왔고, 포셋의 직원들도 증인으로서 법정을 출석해야 했다. 현재 정리되어 있는 증언록이 150페이지가 넘는다. 수퍼맨 측은 캐릭터의 설정과 디자인 외에도 수퍼맨의 액션 장면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비교점들을 증거로 제출했고, 포셋은 그 이전의 다른 영웅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에도 유사한 장면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방어했다.
해를 더해갈 수록 소송은 점점 복잡해졌다. 수퍼맨 측은 캡틴 마블과 함께 위즈 코믹스 #2에서 데뷔한 빌런, 닥터 시바나 Doctor Sivana 가 렉스 루터와 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인 것을 보니 표절이 맞다고 공격했다. 캡틴 마블 측은 수퍼맨의 저작권 자체에도 복잡한 스토리가 얽혀있는 점을 발견했다.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가 여러 신문 조합에 원고를 제출했던 역사, 제리 시걸이 다른 그림작가와 협업하여 비록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슈를 제작한 적이 있는 역사가 발굴되었다. 포셋 쪽 변호사는 ‘따라서 내셔널 얼라이드와 수퍼맨 INC.가 수퍼맨의 저작권을 독점적으로 대표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는 공격으로까지 나아갔다.
1심은 캡틴 마블의 승리였다. 포셋 변호사들이 파헤친 수퍼맨의 출판 스토리에 기반한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수퍼맨 측은 항소했다. 이 때는 더 이상 세 회사가 아니었다. 1946년,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즈와 DC 코믹스 INC.와 올 아메리칸 코믹스의 세 회사는 하나가 되었다. 먼저 내셔널 얼라이드와 DC 코믹스 INC.가 통합하여 내셔널 코믹스 퍼블리케이션즈 INC. National Comics Publications INC. 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고, 그 다음에 올 아메리칸을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내셔널 코믹스는 이후 1961년에 내셔널 피리어디컬 퍼블리케이션즈 INC. National Periodical Publications INC. 로 사명을 변경하고, 1977년에는다시 DC 코믹스 INC.로 변경하게 된다. 이 합병이 있은 후인 50년대 초반부터 이 회사는 수퍼맨과 디텍티브 코믹스를 내세워 ‘수퍼맨-DC’라는 홍보 라인을 내세웠기 때문에 편의상 1946년부터를 DC 코믹스로 친다.
아무튼 세 회사를 하나로 합친 DC 코믹스의 항소를 담당한 2심 법원은 제2연방항소법원이었고 담당 판사는 러니드 핸드 Learned Hand 였다. 주요 쟁점에 대한 공방 논리는 1심에서 거의 다 나왔기에 2심은 3년만에 마무리되어 1951년에 판결이 나왔다.
포셋의 부분패소였다. 핸드 판사는 캐릭터의 유사성에서는 표절을 판단할 수 없지만, 스토리 전개와 연출에 있어서는 표절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남은 것은 3심. 하지만 포셋은 3심 상고를 포기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시장 환경이 변했다. 1950년대가 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가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40년대처럼 기를 쓰고 이 상품을 지켜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둘째, 소송 비용이 부담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DC는 전신인 세 개 회사에서 만들어낸 많은 히트 캐릭터가 있었지만, 포셋은 아무리 그 인기가 컸다 한들 히트 캐릭터가 캡틴 마블 하나, 확장해봐야 마블 패밀리의 세 명 정도였다. 더 이상은 만화의 수익이 소송비용을 만들어내주지 않았다. 결국 포셋은 수퍼히어로 만화 사업을 더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손해배상금 40만 달러를 지불하고 캡틴 마블 브랜드의 발행을 순차적으로 중단해 나갔다.
캡틴 마블의 몰락, 골든 에이지의 황혼
포셋이 발간하던 수퍼히어로 출판 만화 중에서 마스터 코믹스가 제일 먼저인 1953년 3월에 폐간되었다. 주력이었던 위즈 코믹스는 6월에, 캡틴 마블 어드벤처는 9월에 폐간되었다. 매리 마블이 메인이었던 와우 코믹스는 이와는 별개로 1948년에 이미 끝나 있었고, 마블 패밀리가 1954년 1월에 폐간되면서 포셋 출판사의 캡틴 마블 브랜드는 완전한 캔슬로 결론났다. 이 과정에서 호피 더 마블 버니는 찰튼 코믹스 Charlton Comics 라는 회사에 판매되었다. 찰튼은 구매해온 호피를 캡틴 마블이나 수퍼히어로와는 무관한 캐릭터로 발전시켰다.
호피 더 마블 버니.
다행히 마블 패밀리의 모든 멤버는 DC 코믹스 산하에서 재회하지만, 그건 아직 미래의 일이다.
40년대의 수퍼히어로 탄생과 호황의 황금기, 그 과실을 가장 많이 누린 승자는 캡틴 마블을 대히트시킨 포셋 코믹스였다. 이 시기, 즉 수퍼맨이 데뷔한 1939년부터 2차대전의 전후 처리와 사회적 극복이 끝나간 1950년까지의 시기를 골든 에이지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연도를 학자들이 정의하긴 했지만, 골든 에이지를 최초로 명명한 문헌은 1963년 11월에 마블 코믹스에서 발간된 스트레인지 테일즈 Strang Tales 의 #114 이슈 표지였다.
캡틴 아메리카와 휴먼 토치의 대결을 황금기의 귀환으로 규정한 이 표지에서 골든 에이지라는 시대 구분명이 시작되었다.
이 황금기는 2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 점차 하락세로 들어섰다. 모든 만화의 판매량이 조금씩 줄어들어갔고 수퍼히어로도 다르지 않았다. 2차대전으로 인해 대공황도 완전히 졸업했고 2차대전 자체의 비극도 극복해나갔다. 수퍼맨이, 캡틴 아메리카가, 원더우먼이, 네이머가, 휴먼 토치가 추축국에 대항해 정의의 전쟁에 참여하는 이야기는 이제 재미가 없었다. 미국은 이제 분노나 좌절을 위로하며 어느 방향이 선한 것인지 가리켜 보일 영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수퍼히어로를 필두로 하여 만화 산업 전체가, 매우 많은 만화 출판사와 만화를 다루는 조합들이, 2차대전 이후에 사라지거나 사업 영역이 크게 좁아졌다. 50년대 초중반은 미국 출판 만화의 거품이 걷힌 암흑기였다.
이 암흑기를 제대로 버텨낸 출판사는 DC와 아틀라스, 둘이 대표적이다. DC는 세 회사를 합쳐 내셔널 피리어디컬인 상태였고 아틀라스는 타임리 코믹스가 사명을 처음 변경한 1951년부터의 이름이다. 현재의 양대 산맥은 이 암흑기를 견뎌내고 제2의 부흥기인 실버 에이지를연 회사들이다.
두 회사가 수퍼히어로의 암흑기를 지나 실버 에이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각자 다르다. DC는 빅3인 트리니티의 막강한 존재와 이들을 뒷받침하는 2군급 히트 캐릭터들이 많았다. 마블은 빅3조차도 암흑기에서 맥을 못 췄지만 스탠 리라는 작가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스탠 리는 젊은 편집자 겸 작가에 불과하다. 그의 재능이 꽃을 피워 거장으로 성장하는 시기는 60년대부터다. 그리하여 40년대 골든 에이지의 마지막 이야기는 DC의 나머지 토대가 되어줬고 지금도 살아있는 캐릭터들로 이어진다.
참고 문헌)
백란이, “그래픽노블”, 2018,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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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Sergi, “The Law for Comic Book Creators: Essential Concepts and Applications.”, McFarland & Co,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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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eum of Comic Book Advertising
National Comics Pulications v. Fawcett Publications, 뉴욕남부지방법원, 93 F. Supp. 349., 1950
National Comics Publications INC. v. Fawcett Publications INC. et al., 미국연방제2항소법원 판결문, 191 F.2d 594, 1952
P.C. Hammerlinck, Marc Swayze, “Fawcett Companion: The Best of FCA (Fawcett Collectors of America)”, TwoMorrows Publishing, 2001
Robby Reed, ‘Elvis and Captain Marvel, Jr.: How the World’s Mightest Boy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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