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일당 10만 8,000원
인력사무소에 처음 나갔던 날이 생각난다. 주워들은 건 있어서 새벽에 나간다는 것까진 알았다. 근데, 정확히 몇 시 출근인지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그게 또 뭐라고 전날부터 긴장한 탓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말이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인력소에 간 시간은 5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5시 반쯤 되니까 사장이 왔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사장은 위아래로 훑었다.
“노가다 해봤어?”
안 해봤다. 그래도 왠지, 본능적으로,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 네, 군대 가기 전에 몇 번 해봤습니다.”
“증.”
“네?”
“주민등록증 달라고.”
근데 보자 보자 하니까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라는 말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이제는 좀 적응돼서 반말 정도는 신경도 안 쓴다. “어이~”로 시작해 “X발, X 같네.”로 끝나는 게 노가다판이니 말이다. 혹시라도 노가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쌍욕에 상처받지 마시라. 노가다판에서 쌍욕은 일종의 추임새니까.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간 사장은 으레 그렇듯, 간단한 호구 조사를 시작했다. 노가다판엔 왜 왔냐, 원래는 어떤 일 했었냐, 결혼은 했냐 등등.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닐 테니 나도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그냥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용돈이나 벌러 왔다는 식의 빤한 대답.
“체격이 좋네?”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아 예,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 좀 했습니다. 힘쓰는 일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이건 사실이다.
“근데 안전화는?”
“네? 안전화요?”
그렇다. 안전모나 안전벨트, 각반 등등은 옵션이지만, 안전화는 필수였다. 그땐 몰랐다. 노가다 밥 좀 먹으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못에 찔리는 일이 허다하다. 안전화 안 신으면 발바닥에 구멍 날 수 있다. 정말이다.
다행히 사장은 날 마음에 들어 했고,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안전화를 빌려줬다. 덕분에 첫날부터 일할 수 있었다. 줄곧 월급쟁이로만 살아봐서 그런가. 첫 일당 10만 8,000원을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이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제발 직선 좀 타지 말라고
그렇게 난 노가다꾼이 됐다. 그러면서 장돌뱅이라는 것도 알았다. 인력소 마지막 에피소드! 장돌뱅이 이야기다.
누차 얘기한 것처럼 인력소는 인맥을 사고 파는 곳이다. 우리는 그 대가로 일당의 10%를 사장에게 떼어준다. 이 바닥에서는 그걸 똥 뗀다고 표현한다. 하루 1만 남짓.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쉰다 치고 한 달 열심히 일하면 이십여 만 원을 똥으로 떼는 거다. 많다면 많은 돈이고, 적다고 생각하면 또 별거 아니다. 어쨌거나 사장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땀과 노력의 결과 값이니, 나는 합당한 돈이라고 생각하는 축이다. 문제는 이 똥 때문에 사람이 치사해진다는 거다.
현장에서는 인력소를 통해 일 나온 사람을 용역이라고 부른다. 현장 소장이든 오야지든 일손이 급해 용역을 부르긴 하는데, 특별한 기대는 안 한다. 그도 그럴 게 용역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드물다. 용역 입장에서 현장은 한 마디로, ‘남 일’이다. 이 공사 현장의 결과가 내 삶과 무관하다는 얘기다.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오후 4시 반이 되면 일당이 나온다. 더군다나 어차피 오늘 보고 말 관계이기 때문에 예의와 격식을 잘 차리지 않는다. 적당히, 설렁설렁. 이것이 용역의 모토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난 성격이 좀 지랄 맞다. 슬슬 눈치 봐가며 삐대는 게 영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리고 그러면 시간도 더 안 간다. 차라리 열심히 하는 게 속 편하다. 시간도 빨리 가고, 괜히 욕먹을 일 없으니까. 그래서 어떤 현장이든 그냥 열심히 하는 편이다.
나처럼 미련하게 일하는 용역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일이 끝날 때쯤이면 꼭 현장 소장이 연락처를 물어본다.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하는구먼! 내일부터는 괜히~ 똥 떼지 말고 바로 현장으로 나와~”
현장 소장 입장에서 이러나저러나 나가는 돈은 똑같고, 이왕이면 보장된 용역을 부리는 게 좋으니까. 당연한 이치다.
이런 과정을, 이 바닥에선 직선 탄다고 표현한다. 이 직선이 인력소 사장을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드는 상황이다. 인부가 그렇게 직선을 타버리면 현장도 잃고, 인부도 잃고, 무엇보다 돈을 잃는다. 그래서 사장은 새로운 인부가 오거나, 새로운 현장에 인부를 보낼 때 거듭 직선 좀 타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선 타는 인부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한두 번 직선 타는 거야 사장도 눈감아주지만, 그게 반복되면 퇴출이다.
이 바닥에서는 그렇게 직선 타고, 쫓겨나는 걸 반복하면서 인력소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인부가 의외로 많다. 그런 이들을 장돌뱅이라고 부른다. 만 원 남짓한 돈을 욕심내다가 장돌뱅이 신세가 되는 거다. 현대판 장돌뱅이.
노가다판이라고 해서 별 거 없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고, 괜한 것에 욕심부리면 몸이 고생한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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