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filmz.ru_f_168670.jpg

 

1995,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한다. 감독은 '아빠는 출장 ' '집시의 시간'으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유고 출신의 에밀 쿠스트리차.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당대에 천재라 평가받던 감독이다.

 

영화 '언더그라운드' 발칸 반도가 배경이다. 2차 대전부터 유고 내전까지 발칸의 역사를 소재로 인물들은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훔치고, 싸우고속이며 왁자지껄하다가 결국 죽고 죽인다. 그리고 '마술적 리얼리즘'답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살아나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다시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런데 영화 개봉 서구 학계에서 영화에 대한 비판이 잇따른다. 영화 '언더그라운드'  발칸의 역사성을 제거하고 서구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발칸의 모습만 나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칸에서의 전쟁이란 일상적인 일이자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당시 비판의 골자였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비판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의 주요 사건은 나찌 치하에서 주인공 마르코가 사람들을 속여 지하실에 감금한 유고 독립 전쟁에 사용한다며 그들에게 무기를 만들게 착복한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사건은 2차 대전, 티토 정부, 유고 내전으로 이어지는 발칸의 역사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다. 그저 주인공 마르코가 남의 여자를 뺏을 만큼 부도덕한 데다가 돈이라면 환장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인 탓에 생기는 일일 뿐이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역사 속에서 죽어간 인물들이 모두 살아나 서로 용서하고 화해한다. 영화가 개봉한 1995년은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 실제 발칸 반도에서는 참혹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고 있는데, 영화 발칸 반도는 자기들끼리 이미 용서하고 화해하며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이다. 그로써 영화 '언더그라운드' 발칸의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발칸의 역사를 이야기 하지 않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비판의 대열에는 키노 편집장이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도 함께했다.

 

"만일 영화적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영화는 완성도에서 쿠스투리차의 작품 의심할 없는 최고 걸작이다. 그러나 영화는 역사를 다루는 척하면서 사실은 역사의 지하실에 숨어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기 있는 것이라곤 세상에 대한 우화적인 웃음과 슬픔과 구경뿐이다. 전쟁은 진행 중이고, 형제가 죽어가고, 나라가 사라졌지만 쿠스투리차의 무모한 유토피아적 갈망은 놀랄 만큼 안일하고 낙관적인 무드로 가득 있다. 이런 경우 도대체 예술은 무엇을 기준으로 도덕에 관해서, 역사에 대해서, 휴머니즘을 옹호할 있을까? 나아가 상상력에 맞서는 현실 앞에서 예술의 의무는 무엇일까?"

 

에밀 쿠스트리차는 평단의 비판에 영화계를 은퇴한다(물론 복귀하지만). 그리고 영화제는 1995 영화 '언더그라운드' 황금종려상을 수여한다.

 

 

 

2.

 

339864_253420_512.jpg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 닮았다. 양극화와 빈부 격차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놀랄 만큼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주인공 기택의 가족은 양극화 사회의 밑바닥에 살고 있지만 그리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노력만으로는 바꿀 없는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하지도 않고, 끊어진 사다리를 오르지 못해 절망하는 모습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나태하고, 무능하며, 거짓말과 사기에 능하고, 남의 것을 훔쳐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들의 가난은 심지어 당연하게까지 보인다. 기택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기택보다 먼저 기생충 생활을 하고 있는 문광의 가족 역시 기괴할 정도로 나태하고 뻔뻔하며 부도덕하다(이처럼 과장된 캐릭터가 나온다는 또한 '언더그라운드' 닮았다.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면 스토리를 수가 없는 것인지 유고 연방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역시 영화 '언더그라운드' 보고 '내가 최악의 영화. 대체 어떤 유고 사람들이 그처럼 시종일관 간통하고, 마시고, 싸우며, 술판을 벌인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언뜻 빈부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 '기생충' 중요한 사건은 사실 인물들의 이런 성격 때문에 발생한다. 기택의  가족이 박사장네에 달라붙어 빨대를 꽂는 것은 당장의 절박한 경제적 사정 때문이라기보다 마침 뜯어먹을 있는 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처럼 기택네 가족의 성격은 뻔뻔하고, 죄의식 없고, 부도덕하다기택이 결국 부잣집 기생충이 되는 또한 마찬가지다. 양극화와 빈부 격차라는 사회 문제에 내몰려 기생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타고난 성격이 그렇게 생겨 먹어서 기생충이 되는 것이다그러니 영화에는 빈부 격차가 나는 인물들이 있을 빈부 격차의 '문제' 없다. 범죄를 저질러야 생존할 있는 양극화 사회의 고통도, 범죄를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가난한 자들의 고뇌도 영화에는 없다양극화의 문제가 아닌 양극화의 현상만을 반영하는 빈자의 집과 부자의 집이 있고, 양극화에 시달리는 캐릭터가 아니라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과장된 캐릭터가 있을 뿐이다영화가 보여 주는 양극화란 그저 서스펜스를 뽑아내기 위한 재료이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로써 영화 '기생충'발칸의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발칸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처럼양극화에 고통 받는 한국 사회를 소재로 하지만 양극화의 문제에는 침묵한다정성일 식으로 말하면 '영화 '기생충' 양극화를 다루는 척하면서 사실은 반지하에 숨어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며, 영화 속에 있는 것이라곤 세상에 대한 우화적인 웃음과 서스펜스의 재미뿐' 것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현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모든 영화가 역사와 사회 문제만 이야기하는 세상도 디스토피아다. 그렇지만 단지 흥미롭다는 이유로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역사나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회 문제를 이야기의 소재로만 가져다 쓰는 창작물이 온당할까? 예를 들어 스펙타클하다는 이유로 1980 5 18 광주를 배경 삼아 액션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찍고, 미스테리하다는 이유로 장자연 사건을 소재로 골라 19 미스테리 스릴러 '원초적 본능' 찍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어쨌든 '기생충' 역시 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3.

 

101ed987d2f67384fd90878b3c38b697.gif

 

만평은 아르헨티나의 유명 카투니스트 퀴노의 작품이다. 스크린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 상영되고 있다. 알라스카 오두막에 갇힌 찰리 채플린이 먹을 것이 없어 자신의 구두를 삶아 먹는 장면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10000원짜리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요절복통 웃고, 1000원짜리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소소하게 웃고, 100원짜리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구두를 삶아 먹는 채플린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영화 '언더그라운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깐의 심사위원들은 분명 10000원짜리 좌석에 앉아 있었을 테고, 당시 인종 청소를 당한 보스니아 사람들은 100원짜리 좌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현재 극장에서는 영화 '기생충' 상영 중이다. 10000원짜리 좌석에는 깐의 저명한 심사위원들이 다시 앉아 있다 영화에 이견 없이 찬사를 보낸 많은 영화 기자나 영화 평론가들 또한 깐의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자세로 언저리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 사회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 생계에 몰려 일가족이 동반 자살하고, 사업장 사망 사고는 오로지 하청 노동자들만 당하고, 13 연속 OECD 자살률 1위이자, 10 연속 OECD 노인빈곤율 1위이며, 양극화와 빈부 격차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한국 사회는, 가난한 사람이 시덥잖은 이유로 부잣집 기생충이 된다는 영화의 상영관에서 과연 어느 좌석 어디쯤에 앉아 있을까? 많은 관객들이 영화가 보여 주는 '가난'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어느 좌석, 어디쯤에 앉아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 알고 있어서이다.

 

 

 

 

관련기사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