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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알라딘을 보는 내내 떠오르는 우리 역사의 인물 한 명이 있었어. 그는 알라딘처럼 불우한 환경을 딛고, 백제의 무왕이 되는 서동이야. 왕이 되는 과정에는 알라딘만큼이나 드라마틱해. 램프의 요정 지니 역할을 하는 지명법사도 등장하고, 자스민보다 아름다운 선화공주와의 러브스토리도 있으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지? 그럼 역사상 가장 극적인 왕좌의 게임의 승자인 서동의 어린 시절부터 살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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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서동요'의 서동

 

서동은 먹기에는 몹시 거북스럽지만, 우리 몸에 좋은 ‘마’를 캐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어. 맞아 서동의 ‘서’는 마를 의미해.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집은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깃든 마룡지 인근이었어. 그가 마를 캐던 곳은 ‘금마저’라고 불리는 곳이야. 두 곳 모두 오늘날 전북 익산에 위치하고 있어.

 

그날도 서동은 온종일 마를 캐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째 표정이 몹시 어둡고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아. 어머니와 저녁으로 마를 먹고, 작정을 한 듯 그녀에게 물었어.

 

“어머니! 오늘은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꼭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곧 장가를 들 나이인데 최소한 생부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집 근처 연못인 마룡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을 피하고 있었어. 그렇게 모자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 입에서 나온 서동의 출생 비밀은 충격적이었어.

 

“Your father is a dragon”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을 살펴볼까?

 

서동의 어머니는 과부로 살면서 못 근처에 집을 짓고서 그 못의 용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또한 풍채가 뛰어나고 뜻과 기상이 호방하고 걸출했다.

 

너무 놀래지들 말아. 용은 상징적인 의미야. 어떤 상징일까? 바로 왕을 의미하겠지? 서동은 백제 왕의 서자였던 거야.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서동은 충격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어. 마룡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어.

 

'역시 나는 왕손이었어. 이 잘 빠진 턱선과 오똑한 콧날. 출생의 비밀을 알았으니 평생 마만 캐며 살 순 없다.'

 

며칠간 두문불출하던 서동은 봇짐을 챙겨서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왔어.

 

“어머니! 저는 신라의 수도 경주로 떠나겠습니다.”

“뭐? 거긴 뭐 하러?”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을 하러 갑니다.”

“이게 미쳤나?”

 

선화공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미염무쌍(미모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곱다). 훗날 의자왕의 아버지이자 백제 30대 왕인 무왕이 되는 서동은 과연 어떻게 천하절색 선화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 걸까?

 

서동은 먼저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머리를 밀고 경주로 길을 떠났어. 아무리 서동이 원빈 뺨치는 매력남이라지만 그의 현재 신분은 마를 캐는 사람이고 선화공주는 그야말로 공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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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링크)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서동은 노래로 만든 가짜 뉴스를 퍼트리기 시작했어. 우선 장터에서 배고픈 아이들을 모아 마를 나눠주며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알려 주었어. 아이들은 노래 내용의 음란성이나 팩트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었어. 그저 먹을 것을 주는 고마운 아저씨의 호의에 신이 났을 뿐이야.

 

이 노래가 바로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본 바로 신라 14 향가 중 하나인 ‘서동요'야. 그런데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을 아는 사람은 잘 없어. 노래 가사가 너무나 음란하여 교과서에 실릴 수 없기 때문이야.

 

“얼레리 꼴레리 선화공주는 서동이랑 매일 밤마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자극적이고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지기 마련이야. 서동은 여론과 언론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했고, 당시로는 몹시도 파격적인 노이즈 마케팅 기법을 사용했던 거야. 서동요는 신라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졌고 끝내 진평왕에게도 보고가 되었어.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노래란 말이냐? 당장 이 노래의 최초 유포자를 엄벌에 처하도록 하라. 우리 딸 선화는 그럴 아이가 아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미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라 전체가 선화공주를 음란한 여자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여론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궁의 체면과 위신을 위하여 선화공주를 유배함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한편 우리의 선화공주는,

 

“이 서동이란 인간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왜 유배를 가야 하냐고!”

 

그렇게 억울하게 유배길로 떠났고, 봇짐에는 왕후인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챙겨준 금덩어리만 있었어. 허나 이런 금이 이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냐고! 평생을 궁에서 살던 공주는 유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적의 손에 죽거나 굶어 죽을 판이야. 이때 그녀의 앞에 잘생긴 데다가 듬직하기까지 한 남자가 나타났어.

 

“누... 누구냐? 내가 지금 몰골이 이래도 신라의 공주다. 네 놈은 누구냐?”

“I am the son of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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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서동요'의 서동과 선화공주

 

선화공주는 얼굴은 잘생겼지만 어딘가 엉뚱해 보이기도 하는 이 청년이 그래도 필요했어.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던 선화공주는 유배지로 가는 도중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서동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마음을 여니 정이 쌓이는 것은 순식간이었어.

 

“저... 저기... 나를 위해 먹을 것도 챙겨 주고 편안히 쉴 곳도 마련해 줘서 참으로 고맙소.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길바닥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인데... 당신 집은 어디요?”

“쌀쌀맞게 굴더니만 이제야 내 마음을 받아 주셨구려. 허허허허. 나는 백제 사람이외다. 내 지금까지 당신에게 한 마음 평생 변치 않을 테니 우리 결혼합시다.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겠다는 약속을 당장은 못하겠지만, 나 야망있는 남자요. 나 한 번 믿어 주세요. Do you trust me?"

“알겠습니다. 그런데, 서방님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아! 나는 서동이라고 하오.”

“이런! 네 놈이 내 인생을 망친 바로 그! 하이고 내 팔자야. 이것이 정녕 나의 운명이란 말이냐.”

 

선화공주가 서동의 집에 도착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어. 다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야 할 판이야. 신혼 첫날밤 그녀는 고이 품고 있던 금덩어리를 내놓았어.

 

“서방님. 언제까지 마만 캐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엄마가 준 금을 밑천으로 사업을 하셔서 집안을 일으키세요.”

“이게 무엇입니까?”

“금을 모른단 말입니까? 참으로 난감하십니다. 이걸 모르시면.”

“아무튼 이게 몹시 귀한 거군요. 그런데 저는 이 금이 아주 많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마를 캐러 가는 곳인 ‘금마저’에는 이게 흔한 돌이요.”

“서방님. 그것이 정말입니까?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갑시다. 그리고 금을 캐 신라의 우리 아버지에게 보내면 참으로 좋아하실 겁니다. 서방님의 백제 정계 진출에 큰 도움을 주실 겁니다. 그런데 그 많은 금을 지게에 지고 갈 수도 없고 운송이 문제네요.”

“그 부분은 염려 마시오. 나에게 요술 램프의 지니 같은 지명법사님이 있습니다.”

 

부부가 캐낸 엄청난 황금은 지명법사의 도술에 의해 무려! 하루 만에 신라 진평왕에게 로켓 배송되었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서동은 이날 이후로 치열한 백제판 왕좌의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어, 우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치며 마침내 백제 30대 무왕으로 등국하게 되었어. 포켓몬을 잡으러 가는 에너지를 이용해 익산의 금마저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

 

아무리 왕족이라고 하지만 가난뱅이 서동이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제의 시스템 자체가 오늘날과 다르게 개방적이었다는 것이고, 더불어 백제의 정계가 몹시도 어지러웠기 때문이야. 무왕 즉위 이전 2명의 왕의 재위 기간이 채 2년이 안 될 정도니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짐작이 가지? 아마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마를 캐는 아이가 왕이 되기는 불가능했을지도 몰라.

 

무왕의 무자는 싸울 무자야. 왕의 시호는 사후에 추존되니 그의 재위 기간 행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 42년의 재위 기간 동안 무려 12번 신라를 침공해. 월드컵 주기로 한 번씩 부인의 나라를 침공했어. 이것이 미안했던지 무왕은 재위 말년 선화공주에게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골든벨을 울리고 행차를 나섰어. 날씨도 좋고 꽃도 아름답고 선화공주의 마음이 조금씩 풀릴 때였어. 갑자기 용화산 아래의 큰 연못가에서 굉음과 함께 미륵삼존이 솟아올랐어.

 

“왕이시여! 이것은 대단한 길조입니다. 이곳은 불교의 성지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저의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신다고 하셨지요? 이 연못 위에 큰 사찰을 지어 주십시오. 절 이름은 미륵사가 좋겠습니다.”

“아니, 연못 위에 어찌 절을 짓는단 말입니까? 지금은 백제 시대입니다. 물을 메우고 대형 사찰을 짓기에는 건축 공법이 아직...”

“왜 이러십니까? 무왕의 지니! 지명법사가 있지 않습니까?”

 

맞아. 지명법사가 수리수리 마수리 마술로 연못의 물을 세우고 백제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완공하게 되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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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전의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보다 더 유명한 우리나라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 이야기를 안 하고 갈 수 없겠지? 얼마 전 보수 공사가 끝나고 흉물이 되었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우리는 2009년 석탑의 해체 작업 현장으로 잠시 가 보자고. 대반전이 일어났어.

 

그날도 석탑의 각 층을 기계를 이용해 매우 조심스럽게 들어올리고 있었어. 마침내 맨 마지막 층을 들어낸 순간! 석탑 안에 요술 램프처럼 생긴 것이 발견되었어.

 

“교수님! 탑에 뭔가가 있습니다! 어서 와 보세요.”

“이것은 미륵사와 미륵사지 석탑의 비밀을 품고 있는 금제사리봉안기다.”

 

먼저 발견된 것은 램프처럼 생긴 스님의 사리를 이중으로 품고 있는 것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절의 내역이 적혀 있는 기록지였어. 총 4개의 문단으로 구성된 이 기록은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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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추적> 중

 

미륵사 건설에 자금을 지원한 무왕의 부인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거야! 그럼 우리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란 말이야? 서동요 드라마까지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차분히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

 

사택은 백제에서 내로라하는 8개 성씨 중에서도 으뜸이었던 가문이다. 선화공주는 미륵사 완공 당시 사망했을 수도 있고, 무왕의 정권 말기에 지방 세력들을 끌어안기 위해 사택 가문과 정략결혼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려 1400년도 더 된 일이야. 아무튼 학계에서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기록에도 불구하고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설화로만 볼 수 없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