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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권신 이인임은 착복한 재산이 너무 많아 노비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고, 소유한 땅은 산맥과 강을 경계로 삼아야 구분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 사람이 저지른 악행도 일일이 열거하다가는 셈을 포기해야 한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주인공 일당(?)의 아치 에너미(최대의 적)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도 한때는 훗날 조선을 세운 신진 사대부의 선배쯤 되는, 정의감 넘치는 젊은 관료였다. 비록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지만 전민변정도감에서 맹활약을 하며 주목받았다. 전민변정도감이란 권문세족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신체의 자유(즉 노비가 되는 것)와 땅을 농민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신설된 특별기구이자 수사본부, 내지는 국선변호인단이다.

 

이인임은 전민변정도감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힘없는 고려의 농사꾼들 편에 서서 닥치는대로 소송을 대리하며 권문세족의 기득권에 저항했다. 자기 가문에서도 집안을 망칠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정했다. 무용과 지략도 대단해서 쌍성총관부 함락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왕명을 받아 요동을 치러 가는 길에도 앞장섰다.

 

물론 젊었을 때 얘기다. 이인임은 어느 순간 타락했고, 고려를 썩어 문드러진 기득권 국가로 돌려놓았으며 스스로가 기득권 세력의 수장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정도전도 정몽주도 그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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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 초상

 

이인임은 패기 넘치는 젊은 신진 사대부들을 문자 그대로 가지고 놀았다. 더 이상 농민의 피눈물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대부들의 절규가 아무리 진정성 있었다 한들 실력 차이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인임의 수준이 그저 그랬다면 신진 사대부들은 씨가 말랐을 것이고 조선왕조도 개창되지 못했을 것이다. 무신정권 시절처럼 철퇴로 때려죽이면 간단히 진압된다. 그러나 이인임은 그들에게 굴욕과 고통을 주었을지언정 견딜만한 수준만 강요했다. 물론 죽은 사람도 있다. 정도전의 경우도 한때는 죽이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바꿔 목숨만은 남겨놓았다.

 

결국은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국정을 운영할 인재들이며, 자신이 죽은 후 고려를 책임질 이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악당에도 클라스가 있다면 이것이 이인임의 클라스다.

 

이인임은 나라 안에서는 기득권이자 수탈자였지만 적어도 조국에 대한 마음은 진짜였다. 그는 스스로가 고려인임을 자랑스러워한 인물이다. 자기가 집어삼킨 나라라서 사랑했을지라도 사랑만은 진심이었다.

 

신돈과 신진사대부들이 일본의 사신 접대를 거부하고 접대 비용 결재를 불인한 적이 있다. 고려인들 납치해가는 해적의 나라였으니 화는 날 법 하다. 하지만 이인임은 자비로 사신을 접대해 예우를 갖춰 돌려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유지한 외교라인으로 납치된 고려인들을 송환받는다.

 

이 일에 정몽주를 일본으로 보낸 것도 대단하다. 자신을 싫어하지만 고통받는 조국의 백성을 구하는데는 목숨을 아끼지 않을 정몽주는 적임자였다. 이번 기회에 국가적인 임무를 맡겨보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더욱이 국가가 국가로서 기능하려면, 자국민을 살리고 데려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은가.

 

이인임은 명과 북원 사이에서 실리적인 양동외교를 펼치며 나라를 보존하려고 했다. 또한 최영을 암살하려는 수하 염흥방과 임견미를 말리기도 했으며, 본인 역시 그를 암살하거나 숙청할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최영이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인임은 결국 최영의 마음이 돌아서면서 권력을 잃고 좌절 속에 죽는다. 비록 최영을 믿은 것을 후회하긴 했어도, 그가 최영에게 전한 마지막 말은 원망과 저주 대신 '이성계를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이인임에게는 자기 자신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존속도 그 이상 중요했다. 오염된 사랑일지언정 그는 조국을 사랑했다.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밖에서는 고려가 빛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창작물에서나 사학계에서나 종이캐릭터로 간단히 소비될 수 없는 매력적인 악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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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무역제재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단순한 편가르기로 정리되기에는 조금 복잡하다. 아베의 시도는 멍청하고 폭력적이다. 아베의 과오가 크지만 문재인 정권의 준비도 미흡했다. 아베 정권은 무역보복을 암시한 정도가 아니라 몇 편의 예고편을 연달아서 내보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건 비판받을만 한다.

 

문제는 우리를 비판하면 아베의 편이 되고, 아베를 비난하면 반대가 되는 듯한 단순한 피아구분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일제 불매운동에 별다른 지지나 감흥이 없는 동시에, 이왕 벌어진 일이라면 일본에 대한 우리 산업의 기술독립이 성취되고 이번 사태가 국익 증진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금처럼 어느 한 쪽으로 전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는, 그 자체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현상은 진실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다. 애초에 어느 편에 정의가 있느냐가 아니라, 국익이라는 실리의 문제인 것이다.

 

일본에게 당해봐야 (우리나라가) 정신을 차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문재인이 싫은 나머지 정신줄이 별세계로 떠났다. 모든 사안을 도덕적인 옳고 그름과 그에 따른 응징으로 해석하니, 급기야는 자신이 애국자라고 믿는 동시에 조국이 외국, 그것도 한때 우리를 식민지로 거느렸던 나라에 혼나길 원한다. 그런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치자. 하지만 대한민국 일등신문 조선일보는 뭔가.

 

조선일보를 악의 축으로 분류하는 사람일지라도, 적어도 조선일보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런 집단이 일본어판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가며 한국 대통령, 한국 정부 심지어 한국인의 국민성까지 폄하하는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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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혐한 독자들과 우익 언론의 입맛에 맞는 땔감을 제공해온 조선일보를 이해해보려고 하자면, 아무래도 우리 신문시장의 급속한 몰락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종편 채널을 소유하고 있지만 조선일보가 가져온 부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신문의 천국이며 아직도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많은 수의 독자가 유료로 기사를 읽는다. 미디어 환경 변화속도가 느린 일본에서는 종이로든 웹으로든 많은 텍스트가 소비된다. 조선일보에게 일본은 좋은 대체시장이다. 소비자 친화적인 제스쳐로 시장의 문을 두들기는 것이라고 하면, 글쎄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이걸 이해하면 되는 건가.

 

조선일보는 언론이다. 국내에서 거대한 아우라가 있는 집단이다. 얼마나 사랑받는 혹은 미움받는 아우라이든, 실체가 눈에 뵈는 만큼이 아니라고 할 지언정 아우라만큼은 사실이다.

 

보수라 해도 좋고 수구라 해도 좋다. 이 땅에서 한자리 해먹는 데 성공한 이 땅의 세력 아닌가. 정통 보수지이든 밤의 대통령이든 대한민국에서 얻어낸 지위다.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착하게 살자는 얘기가 아니다. 멋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일등이 일본어판에서 구걸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한국인인 게 창피할 정도다.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 방송을 여럿 해온 사람으로서 자료조사를 하다보면 <주간조선>과 <월간조선>의 클라스는 인정 가능하다. 기사의 질과 깊이, 게이트키핑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실력은 진짜다. 사짜면 말도 안한다. 얼마나 더 벌겠다고 모양새를 포기하나.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세력을 '저들'이라는 표현으로 묶는 어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를 악역으로 놓고 비교해보자. 이인임이 나라 밖에서 자신이 제멋대로 휘두른 우왕과 창왕을 폄하했을까. 그는 해 먹어도 안에서 해 먹었지 밖에서 국익과 국격을 팔지는 않았다. 악역에도 '수준 차이'가 있다.

 

이인임이라면 정적을 물어뜯을지언정, 국제무대에 놓인 국익 앞에서는 정적에게 '아베를 조심하라'고 언질했을 것이다. 나라 안에서 정치세력의 절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됐으면 밖에서 두려워할 맛이라도 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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