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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이 조그만 섬나라라는 건 원래 일본인들의 인식이며, 우리에게 수입된 것이다. 여기에는 작지만 (아마도 정신력 때문에) 강하다고 하는 일본인의 자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아다시피 비슷한 자의식은 우리에게도 있다(작은 고추가 맵다던가). 자의식 대결을 하자니 웃기지만 우리 쪽이 진실에 가깝다.

 

일본은 대국이다.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1.7배, 대한민국의 3.8배다. 19세기 일본의 인구는 세계 4위였다(여기엔 물론 쌀농사가 면적당 인구부양력이 가장 높은 작물이라는 이유가 포함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국력은 어떻게 계산해도 조선의 최소 2배 이상인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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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직전 조선과 일본 정부가 연간 세금으로 거둔 쌀의 양은 열 배 가까운 차이가 났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민본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유전적으로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는 한국인과 일본은 아직도 평균신장의 차이가 꽤 크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국력의 차이는 엄존했다.

 

등산을 하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한국은 산악국가, 그것도 매우 심한 산악국가라는 사실이다. 경사 없는 학교와 아파트 단지가 얼마나 있는가. 똑같이 쌀농사를 지어도 일본은 한반도보다 국토면적 대비 훨씬 더 넓은 평지를 확보할 수 있으며 기후도 우리보다 유리하다. 조선은 흉년의 비율이 일본보다 훨씬 잦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농학자들이 조선의 낫과 호미 등에 감탄하며 농업은 조선이 최고라고 한 수 접은 이유도, 궁하면 통한다고 필요가 기술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호미는 요새 서구에서 정원가꾸기의 특급 아이템으로 각광받는다. 구한말 한 서양인은 조선인의 농사를 보고 경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농사가 아니라 원예다." 전세계 쌀농사 문화권 중 가장 척박한 문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문명이다. 그야말로 악에 받친 근성과 인내로 유지한 문명이다.

 

2.

경제의 근간이 농경에서부터 시작하는 전근대에 일본의 국력이 한반도 국가를 넘어서는 건 역사에 예정된 일이었다. 따라서 임진왜란 역시 경과와 상관없이 일본의 침공 자체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결과만 보자면 충무공이 참 큰 일 하셨지만.

 

일본은 조선을 멸망 직전까지 한 번 몰아부쳤으며, 한 번은 멸망시키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일본의 경제규모는 한국의 3배가 넘는다. 한 마디로 말해 일본은 적어도 전국시대 이후로 수백년 간 우리보다 훨씬 강하지 않았던 적이 없으며, 그 중 36년 동안은 힘의 차이를 비정하게 증명해주었다. 그런 국가에서 서점마다 혐한 코너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한국과 관련한 부정적인 검색어가 (한국에서 일본 관련 검색어가 상위에 오르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정도로) 일상적으로 수위에 오르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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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일본인은 우익의 혐한론을 시대착오적으로 바라본다는 현지인의 얘기를 응당 새겨들어야 한다는 데 한치의 반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입장에서는 섬뜩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절반의 일본인도 한국인 전체보다 많다. 일본 정계에서 제 2의 정한론(한반도 정벌론)이 회자된다는 뉴스는 정상적인 세계관에서는 공포와 분노 그 자체여야 마땅하다.

 

다만 한국인의 안전불감증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체득된 진화에 가깝다. 중국의 대제국과 사나운 북방 민족을 지척에 두고 살아온 한민족에게 둔감함은 생존의 필수요소다. 어느 농경문화권보다 높은 매해 흉작의 가능성, 겨울의 가혹한 추위와 여름의 태풍 등, 한반도는 걱정이 많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땅이다. 더욱이 한국전쟁과 북한의 상시적인 위협은 현대 한국인을 선조보다 더욱 둔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해 세계 그 어디에서도, 자국을 침탈하고 식민지화하기까지 한 강대한 이웃나라가 만약 지금의 일본과 같다면 폭동이나 준전시체제까지 가지 않을 나라가 있을까? 영국 서점에 혐불(프랑스)류 코너가 유행하고 독일 여당 인사가 제 2의 폴란드 정벌을 운운하면 어떻게 될까. 연예인이 방송에서 이웃나라에 비판적인 멘트를 강요받는 분위기라면? 그야말로 난리 중의 난리가 날 것이라 감히 벌어지지도 못할 일이다.

 

국민은 무덤덤하더라도 정계는 심각할 수밖에 없고, 심각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한일관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일본을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노무현의 공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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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정희의 산업화를 통해 이루어진 물적 토대 위에서 민주화를 성취했듯, 노무현의 국방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의 조건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참여정부 이전까지 한국의 국방이란 북한의 무력도발이나 침공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미국의 강력한 힘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식이었다. 이 '모든 것'에는 동북아 정세도 포함된다. 일본도 중국도 미국의 태평양 지배권의 순종적인, 동시에 영구적인 식구로 가정하면야 문제 없다. 그러나 샌드백만 치던 복싱수련생이 링에 올라가면 두들겨맞는 이유는, 상대는 샌드백처럼 가만히 매달려 펀치를 기다리지 않아서다.

 

노무현은 미국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동시에 중국과 일본이 한국에 적대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국방력을 끌어올렸다. 참여정부 이전까지 한국에 현대적인 의미의 '함대'란 존재하지 않았다. 2차대전 직후 수준의 물 새는 전함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이지스함을 뽑아냈다.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국내에서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에 따른 국방강화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살얼음판이었다. 중국 정계를 발칵 뒤집어가며 베이징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현무 미사일을 내놨을 때 누가 주목했던가?

 

제주 강정마을을 뒤집고 건설한 해군기지는 중국과 일본,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에 비수를 꽂는 대모험이었다. 국내에서 숱한 욕을 먹었지만 노무현은 강행했고 일본이 자국의 섬과 해역, 함대를 통해 한반도를 위협할 가능성을 몹시도 어그러뜨렸다. 역으로 일본을 위협할 수도 있는 크리티컬한 위치다.

 

참여정부의 공군력 강화 역시 '박물관이 살아있다' 수준의 북한 공군력과는 상관없다. 가상 상대는 명백히 일본과 중국이다. 유사시 테이블에 놓인 칩이 아니라 테이블에 착석하는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더 나아가 주도적인 플레이어를 지향하는 것이 노무현의 의도였다. 일본의 무력 도발(독도)에 강력 대응한 일은 의지보다는 청사진을 보여줬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에 대해 전쟁억지력을 확보하는 것, 침공당하더도 최후에 점령당하지는 않으며 상대국에도 막대한 피해를 강요하는 것이 노무현의 청사진이었다. 노무현 이후 십여년 간 국방부는 그의 설계대로 진화했다. 평택, 제주, 서산의 군사기지는 현재 중국과 일본에 전에 없던 새로운 군사적 스트레스로 정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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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무현의 이상향은 당대에는 억지스러웠고 숱한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태평양의 질서보다 자국 중산층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트럼프의 시대인 지금은 어떤가. 시진핑 독재와 아베 장기집권으로 우경화된 중일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이면을 드러낸 지금은 어떤가.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군사적인 도발을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도발을 저지할 수는 있는 국가가 되었다. 문 대통령이 아베와 시진핑을 따돌리고 '트황상'과 밀담을 나눌 수 있게 된 외교국방의 토대도 결국 그리 언론에서 비난했던, 말마따나 노무현의 '순진무구한 이상향'과 '똘기'가 다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인정할 건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다. 역사란 토대를 만드는 것이며 그 토대를 이어받는 것이다. 진보는 아직도 박정희의 한일협정을 '굴욕'이라는 두 글자로 매조지하면서도 김대중이 야당 인사 중 유일하게 한일협정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경제발전의 큰 그림에 있어서는 뜻이 같았다. 이 사실은 보수도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의 자주국방 플랜 역시 진보에서는 '좌측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의 일환으로 간단히 해석되었다. 지금에 와서도 이게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얼마나 큰 힘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보수라면 노무현이 남기고 간 외교국방의 토대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역사를 도덕론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결과가 호오를 떠나 우리의 조건이 되었듯, 이제 노무현도 좌우를 떠나 거기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되기 시작했다. 누가 남긴 조건이든 하나같이 우리의 짐이고 우리의 자산이다.

 

요사이 노무현이 남겨준 자산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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