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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야 본전, 못하면 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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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판엔 시어머니 같은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사사건건 쫓아와서 잔소리하는 귀찮은 사람. 바로, 안전관리자다. 안전관리자는 원청에 속한 직원이다. 현장의 모든 안전을 책임진다. 현장마다 다르긴 할 텐데, 보통 10명 정도가 수시로 돌아다닌다. 이들이 하는 일은 대략 이런 거다. 참 먹을 때 잠시 안전모를 벗고 있으면,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삑~삑~ 반장님들 안전모 쓰시고 참 드세요.”

 

현장에는 1톤 트럭이 많이 돌아다닌다. 때에 따라 트럭 짐칸에 인부들이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면 여지없다.

 

 “삑~삑~ 반장님들 짐칸에서 내리세요. 다칩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트럭 짐칸에 타고 가는데,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결에 돌아봤고, 안전관리자와 눈을 마주쳐버렸다. 그럼에도 내려서 걸어가자면 한참 걸리니 못 들은 척, 못 본 척 그냥 가버렸다. 기어코 전화가 왔다.

 

 “A 하청 트럭인 거 다 알아요. 뒤에 타고 있던 세 분, 지금 안전교육장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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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교육장 집합은 일종의 벌칙이다. 안전교육장에서 5분간 폭풍 잔소리 듣고 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렇듯, 안전관리자들은 현장의 소소한 안전 점검부터 사고 예방 교육 등등 안전 관련 모든 일을 처리한다. 역시, 제일 중요한 업무는 잔소리지만. 하하.

       

물론, 그 잔소리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화살이 안전관리팀에 쏠린다. 잘잘못과 보상 등은 다음 문제다. 사망 사고 같이 중대 사고가 터지면 도의적 책임 정도로 안 끝난다. 듣기로는, 그런 사고가 터지면 안전관리팀 간부급이 회사에서 잘리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인 책임도 떠안아야 한단다(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언젠가 안전관리팀 간부와 얘기할 기회가 있어 물었다. 어떨 때 보람 느끼느냐고.

 

“봐서 아시겠지만, 안전관리팀 일이라는 게 잘해야 본전, 못하면 독박이에요. 반장님들은 ‘설마~’ 하면서 작업할 때도 있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정말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에요. 아무 사고 없이 퇴근할 때면, 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났구나 하고 한숨을 쉬게 된다니까요. 그게 보람이에요. 사고 없이 하루를 보내는 거. 큰 사고 없이 한 현장 끝내는 거. 저희가 잔소리한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요.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게 노가다판인 거 아시죠?(웃음)”

 

여담인데, 내가 있던 현장 안전관리팀 과장 이름이 신호였다. 성까지 밝힐 순 없으니, 그냥 김신호였다 치자. 나는 그 사람을 보며, 어쩜 저리도 직업과 이름이 잘 어울릴까 싶어 웃음이 쿡쿡 나곤 했다.

 

말하자면 축구선수 이름이 김패스라거나, 선생님 이름이 박교훈이라거나, 가수 이름이 최리듬인 격이다. 김신호 과장이 호루라기 불면서 쫓아오면 우리끼리 농담으로 “야~ 시그널 떴다.” 하면서 웃곤 했다.

 

 

이런다고 터질 사고가 안 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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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얘긴 여기까지 하고, 씁쓸한 얘길 좀 해볼까 한다.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들이 안전 관련 사항을 체크하고, 무언가 문제가 있으면 직영팀에 연락해 처리한다. 예를 들어 101동 주차장 쪽에 낙하 우려 포인트가 생겼다. 안전관리자들이 체크해서 직영팀에 연락한다.

 

“반장님, 101동 주차장 쪽 난간에 안전띠 좀 설치해주세요.”

 

그럼 후다닥 가서 안전띠를 설치해주곤 했다. 보통 그런 식인데, 이 모든 게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나는, 내가 안전띠를 설치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다고 떨어질 사람이 안 떨어질까? 말하자면 이런 식의 안전대책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거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매번 절절히 느끼곤 했다.

 

좀 건방지게 얘기하자면 노가다판 현실은 X도 모르는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내놓은 대책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노가다판 안전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다. 오야지들은 인부들을 다그쳐 빨리 공사를 끝내야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바꿔 말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는 인부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거다. 안전관리자가 백날 “뛰지 마세요.”, “하나씩 들고 가세요.” 잔소리해 봐야 아무 의미 없다.

 

빠릿빠릿 안 하면, 하나씩 들고 다니면, 오야지한테 일 못 한단 소리 들을 테고, 그러다 보면 잘릴 수도 있는데, 뛰지 말란다고 안 뛸 수 있냔 말이다. 내 가족 생계가 달린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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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를 들어보자. 최근 몇 년, 타워크레인 사고가 많이 터졌다. 현장에서도 타워크레인 작업할 때 특히 신경 쓰는 추세다. 안전관리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도 타워크레인으로 자재 뜰 때 한 묶음씩만 뜨라는 거다. 무리해서 두 묶음씩 뜨다가 꼭 사고 터지니까.

 

근데 오야지 입장에서는 안전관리자가 잔소리한다고, 한 묶음씩만 뜰 수 없다. 빨리 자재를 떠줘야 인부들이 빨리 일 할 수 있고, 그래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러니 눈치 봐가며 두 묶음씩 뜨는 거다.

 

해결책을 나한테 묻진 마시라. 어쨌거나 이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인부들은 뛰어다닐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안전사고는 언제 터지든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 말은, 현장에서 안전 점검하는 건 두 번째 문제라는 거다. 안전관리자 10명 배치할 거 20명 배치한다고 해서 터질 사고가 안 터지지 않는다고.

 

 

10년 째 줄지 않는 사망자 수

 

그 결과다. 535 / 487 / 487 / 499 / 461 / 516 / 434 / 437 / 499 / 506.

 

이게 어떤 숫자냐 하면 2008년부터 통계자료가 나온 2017년까지, 매년 노가다판에서 사망한 사람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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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게 두 가지다. 첫 번째, 10년 간 사망자 수가 줄지 않았다. 모르긴 모르건대 정부에서 매년 수많은 안전대책을 내놓을 거다. 근데 결과가 저 모양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할 세월이고, 기술이 발전했어도 한참은 발전했을 텐데 말이다. 정부에서 내놓은 안전대책이 아무 의미 없었단 얘기다.

 

두 번째로 주목할 건, 노가다판의 안전사고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나열한 숫자만 봐서는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안 올 거다. 범위를 확대해 산업별 통계자료를 살펴보자(이하 자료는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표한 <2017년도 산업재해분석> 자료다. 자료에서 밝힌 조사대상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사업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중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업무상 사고 및 질병으로 승인을 받은 사망 또는 4일 이상 요양을 요하는 재해’다).

 

<2017년도 산업재해분석>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총 노동자는 약 1,856만 명이다. 이중 건설업 노동자가 약 304만 명이다. 비율로 보면 16.4%다. 다시 말하지만, 16.4%다.

 

참고로 제일 큰 비율은 ‘기타의 사업’(통상 서비스업으로 지칭되는 도·소매업,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등이 포함되어 있음)으로 51.2%(951만 명)다. 그 다음이 제조업 22.3%(414만 명), 건설업 16.4%(304만 명) 순으로 이어진다.

 

근데 산업별 업무상 사고 사망 재해 비율을 보면 놀랍다. 2017년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총 964명이다. 이 중 506명이 노가다판에서 죽었다.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52.49%)이 노가다판에서 터졌단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52.49%다.

 

ad2.png출처 - <2017 산업재해현황분석>, 고용노동부

 

전체 산업 노동자 중 노가다판의 노동자 비율은 고작 16.5%인데, 사망자 비율이 무려 52.49%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고민할 게 아니라, 현장으로 와서 보고 듣고 느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렇게 했는데도 10년째 사망자 수가 줄지 않고 있다면 진짜 무능한 거고,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현장으로 와서 보시라고. 어깨에 힘주고 뒷짐 지고 설렁설렁 훑어보고 밥이나 얻어먹고 갈 거 같으면 아예 올 생각 말고, 와서 인부들 하나하나 붙들고 어떨 때 힘든지, 어떨 때 안전사고의 위협을 느끼는지 물어보시라고. 그래야 왜 자꾸 노가다꾼이 죽어 나가는지, 왜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좀 흥분했다. 그렇지만 가끔 난, 정말로 화가 난다. 왜? 내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첫째 아들이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 받고 입학하게 되었다며 자랑하던 김 씨 아저씨, 외동딸이 낳은 첫 손주 보러 간다며 해맑게 웃던 최 반장님, 나이 일흔 잡숫고도 주말이면 아내 손 꼭 잡고 나들이 다닌다는 박 반장님, 부모님 빚 대신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휴학하고 노가다 뛴다던 26살 청년, 그밖에 수많은 노가다꾼의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이따위 안전대책이 우리 목숨을 지켜줄 것 같지 않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우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매년 500명씩 죽어 나가는 판에 나 혼자만 천년만년 무사할 거라고, 장담 못 한다.

 

조회 마치고 작업장 갈 때, 노가다꾼들이 가끔 던지는 농담이 있다.

 

 “우리, 살아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