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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타다의 패배?

 

지난 7월 17일, 국토교통부는 '혁신성장 및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그간 갈등을 빚어온 택시업계와 IT 기반 모빌리티 업계에 대한 중재안이 포함돼 있다. 카카오 등에서 시도한 카풀형 서비스들, 즉 '우버(Uber)'류의 서비스는 이미 한 발 물러서야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 개편방안에서 '타다'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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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투데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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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개편방안은 공개되자 수많은 언론들은 '사실상 타다의 패배', '모빌리티 혁신의 후퇴', '택시업계의 승리'와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 글은 타다나 택시업계 중 어느 하나를 옹호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저 전문성이나 상식적 수준의 독해력은 고사하고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기사를 올리는 이 시대의 언론에 대한 글이다. 그러니 결론부터 얘기하자. 이런 기사를 작성하고 제목을 올린 기자들과 그걸 승인한 데스크는 마땅히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오랜시간 이어지고 있는 IT기반 모빌리티 산업과 택시의 갈등은 관계자가 많은만큼 민감하고 복잡하다. 택시운수회사의 업주들, 그 회사에서 일하는 택시기사들, 개인택시 기사들, 그 중 모범택시 기사들, 이들에 대한 제도를 관장하는 정부부처, 그 기반이 되는 법안을 관장하는 국회, 이 모두를 이용하는 승객 등등. 여기에 카카오 같은 사실상 대기업, 쏘카 같은 덩치 큰 스타트업, 빈 틈을 노리는 신생 스타트업, 그리고 이런 기업들의 뒤에 있는 투자사들과 이들을 지원육성한 또 다른 정부기관 등등. 

 

이 복잡한 구도에서 단순히 '택시는 나쁘고, 타다가 혁신'이라든가, '택시를 지켜야한다'든가 하는 강자 대 약자 프레임이나 흑백논리는 쓸모가 없다. 등장인물 수십 수백명의 대하소설을 보면서 '주인공은 착한 놈, 나머지는 나쁜 놈'이라는 시각만큼이나 의미 없다. 각자 고수해야 할 입장을 정리하고, 그 입장이 상충되는 지점을 파악하면서 균형을 찾아보려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갈등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뜻밖의 도움을 받았다. 바로 국토교통부에 의해서.(링크)

 

'혁신성장 및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의 첫 3장에는 복잡한 갈등 배경과 구조가 깔끔하게 정리돼있다. IT 전문 미디어의 분석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편이다. 솔직히 좀 놀랐다. 특유의 고리타분한 문서양식은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나라 공무원들, 예전같지 않다.

 

그렇다면 세간의 관심사인 '타다(TADA)'와 관련된 개편방안은 과연 무엇인가. 그 내용은 보고서의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 제도화 > 중 TYPE 1에 해당한다. 즉, 플랫폼 택시 중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 등장하는 경우를 TYPE 1로 구분하고 이에 대한 안을 정리한 것이다. 숱한 언론들이 게재한 '타다의 패배', '택시의 승리', '모빌리티 혁신의 후퇴'와 같은 제목의 기사는 보고서의 TYPE1에 관한 것이다.

 

모지리 기사들의 주요 꼭지 3개는 이렇다. 

 

1. '사회적 기여금'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택시면허를 사들여야한다.

    결국 타다 차량 1000대를 운영하려면 택시면허 1000개를 사야한다는 것이다. 

2. 서비스 운영을 위해서는 차량을 구입해야 한다. 렌트카 방식이였던 기존에 비해 차량 구매를 위한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3. 택시기사 자격을 보유한 사람만이 운행을 할 수 있어, 타다 기사들이 모두 택시기사 자격을 보유해야 한다. 

 

세 꼭지를 합치면 '어마어마한 자본과 시간이 들게 만들었으므로 모빌리티 혁신을 저해하는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이제 세 꼭지가 왜 모지리스러운지 정리해보자. 

 

 

1. 사회적 기여금은 택시면허를 하나씩 사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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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토교통부

 

이미 잘 정리돼 있지만, 굳이 풀어서 써보자면 이렇다. 타다 같은 서비스가 새로 나오면, 공급과잉이 되지 않도록 정부기관에서 운행가능 차량 수를 조정하여 허가한다. 한편으로는 택시 수를 줄이는 감차사업을 해서 신규 서비스의 운행가능 수를 판단하는 기준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신규 서비스만 꿀을 빨면 안되므로 택시감차사업, 택시업계의 복지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한다. 단순하게 삥을 뜯는게 아니라, 일시불로 할지, 운행 차량 대수당 정액제로 할지, 매출액의 일정 부분으로 하여 분납할지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다. 즉, 아직 그 부과 기준이 결론 난 건 아니다. 기여금을 받고 관리하며 택시 면허를 사들이는 기관은 별도의 관리기구로 만들어 운영한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타다는 사회적 기여금을 낼 것이고, 그 기여금은 기존 택시 면허를 매입하는 것에만 쓰이지 않고 여러 목적으로 쓰인다. 

 

이 내용의 어디에 '타다에서 차량 1000대를 운행하려면 면허 1000개를 사야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있을까? 저 내용을 그렇게 독해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내려도 무방할 게다. 이 정도의 내용을 저렇게 이해해도 된다면, 우리가 낸 세금이 가로등을 만드는 데에도 쓰이는 사실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자기 돈을 주고 가로등을 산다'고 해도 된다. 

 

물론, 결과적으로 운행 차량 수는 매출과 비례하게 될테고, 차량 수가 많고 매출이 많은 회사는 기여금을 그만큼 많이 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간접적으로 그 회사의 기여금을 통해 매입된 기존 택시 면허권의 개수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반대로 붙여 '기여금을 많이 내야 차량을 많이 운행할 수 있다'는건 아니다. 보고서 상에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그런 논리라면, 소득이 높아져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아니라 세금을 많이 내면 소득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저 세상 논리가 성립돼버린다. 

 

 

2. 그럼 렌트카는 공짜라더냐. 

 

세 꼭지 중 제일 어처구니 없다. 서로 베껴쓰면서 무식함까지 베껴쓴 게 아닐까 추측한다. 

 

타다는 사실상 초단기 렌트카 사업자이기 때문에 렌트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렌트하는 경우에 한해 운전자 알선을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있었고, 바로 이 조항이 타다의 존재 기반이 됐다. 우버나 카카오 카풀은 허용되지 않은 가운데 타다는 지금 이시각에도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예외조항에 있다. 

 

이번 개편방안에서 택시업계의 반대로 TYPE 1 사업자에게 렌트카가 불허됐다는 것은, 사업자가 사업용 차량 확보를 할 때 렌트를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승합차 렌트+운전자 알선 형태의 서비스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차량을 렌트해서 장사했는데, 그걸 모두 사야한다니 떼돈이 들겠군!!'이 아니라. 

 

그 바보같은 사고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해주는 포인트가 있다. 백번 양보해서 회사가 렌트해서 쓰던 차를 어느 순간 구매해야한다고 치자. 그래서 렌트가 할부보다 엄청나게 싼가? 카니발 한 대를 36개월 동안 렌트하는게 36개월 할부로 구매하고 중고로 파는거보다 너무 싸서, 렌트로는 잘 영업하던 회사가 그걸 할부계약으로 하게 되면 휘청거린단 말인가?

 

물론, 할부로 구매를 하면 회계 상 자산취득이 되고 렌트나 리스 계약을 하면 자산으로 잡히지 않아서 법인세 절감의 효과가 있는건 맞다. 만에 하나 기자가 그런 깊은 뜻으로 그런 기사를 썼다면, 카니발 1천 대를 구매할 경우 예상되는 법인세 차액이 얼마규모가 될지 정도는 기사에.... 아니지, 그게 너무 어렵다면 법인세라는 단어라도 들어가 줬어야 한다. 다 자르고 '렌트가 허가되지 않아 차량을 구매하게되어 회사에 큰 부담이 된다'는 식으로만 쓰는 건 그냥 구라다 구라.

 

 

3. 택시 자격증 시험은 고시가 아니다

 

한겨레 이충신기자가 올해 초 연재한 기획기사가 있다. 기자는 직접 자격증을 따서 택시운전을 해보며, 업계의 특징과 문제점을 밀착취재했다. 기사 1편에 보면 그가 택시자격증을 따는데 소요된 시간이 나온다. 3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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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링크)

 

물론 운전을 잘 하는 분이었겠지만, 어쨌든 택시 자격증을 따는데 소요된 시간이 3주. 특별한 어려움도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타다 드라이버에 한해 특별한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아마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3주면 국내에 존재하는 다른 자격증에 비해 어렵거나 오래걸린다고 말할 수 없을 수준의, 비교적 간단한 자격증이다. 

 

한편, 타다 드라이버가 늘어날 수록 친절하고 신사적이라는 이미지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회사측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대응하는 편이지만, 상식적으로 차량 수가 늘어나고 드라이버들이 증가할 수록, 혹시나하는 불안감도 함께 커질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라도 강력범죄자나 성범죄자가 운전하는 차에 홀로 타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니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타다 드라이버도 택시 자격을 갖춰야 하고 성범죄/마약/음주운전 경력 조회를 거친다는 점은 승객 입장에서 찬성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예비 드라이버가 탈락되어 불편이 생기더라도, 운전을 할 줄 아는 누구나 3주 만에 따는 자격증이라면 사실상 범죄경력 조회 정도는 정부기관에 의해 추가시행되는 수준에 가까우니 말이다. 

 

이 정도인데, 타다 드라이버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을 언론은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모지리 기사를 쓴 언론은 그냥 이 정부의 어떤 부처가 뭘 하든 그저 다 싫은 게 아닐까, 하는 유추만 가능하다. 자격증을 따라 하면 그건 싫고,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고 하면 그게 왜 없어도 되냐며 싫고. 역대급 성숙한 정부의 시대 속에서 정통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가엾은 언론이라 하겠다. 

 

 

4. 우리에겐 정상적인 언론이 필요하다

 

생각해보자.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 생면부지의 운전자와 함께 앉아 십분이고 한 시간이고 함께 간다. 한밤중에도, 생전 처음가는 낯선 땅에서도. 반대로, 운전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차에 태우고 그가 가자는대로 간다. 그의 가방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른 상태로 한밤중에도, 생전 처음가는 방향으로도 말이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거래가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건 그만큼 사회가 성숙했다는 것이고, 그 나라의 법이나 행정체계, 무엇보다도 시민의식이 그 정도의 신뢰감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꽤나 고등한 사회적 규약과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택시라는 서비스는, 나라마다 도시마다 다양한 형태와 시도가 있었다. 어떤 나라는 물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고, 어떤 나라에서는 너무 위험해서 감히 탈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런 차이 역시 그 곳에서의 제도나 시민의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택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던 것은, 그 신뢰감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균열을 메우기 위해 정부나 국회에서는 대책을 세울 것이고, 외부에서는 이 틈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택시 산업 내부의 자성이나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택시 구조가 제도에 의해 사업권을 받아내는 이권사업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택시 산업 내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그 산업의 구조를 유지하는 정부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이번 국토부 택시 개혁방안은 꽤 주목할만한 내용이다. 실제 현실에 대한 꽤 객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했고, 각 주체들과의 힘겨웠을 직접 조율을 통해 어떻게든 결국 합의점을 찾아낸 결과가 드러나있다. 아직 두루뭉실한 부분이 많지만, 반대로 급하게 세부계획이 튀어나올 타이밍이 아니기도 하다. 

 

국토부에서 이 정도의 결과를 들고 나왔다면, 언론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고민을 하고 이 내용을 분석할 수 있어야한다. 이 개선안으로 인해 예상되는 변화가 실질적으로 승객들에게 어떤 차이를 가져올 지, 해외에서 비슷한 시도는 없었는지, 이 개선안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어떤 기회요소가 있을지 등을 쓸 수 있는 언론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게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같은 일반인이 이런 걸 공부해서 언론에게 가르쳐주는 게 정상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년간 있었던 언론과 대중 사이의 갈등에서, 그 원인은 일부 일간지 기자들이 펜의 권력을 방패삼아 대중들을 상대로 우월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들 중 상당수가 생각보다 무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토부 홈페이지 들어가서 PDF 파일 하나 읽어보면 알 수 있을만한 것도 모르는 무식함. 

 

시간 때문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마감에 쫓겨, 남의 기사 복붙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 국토부 보고서를 읽어 볼 시간이 없었다면, 한 명의 노동자로서 측은하게 바라봐 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모지리 기사들의 작성시간이 그렇게 빠듯했던 것같지는 않다. 파일명만 봐도 엠바고가 걸려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기자들은 훨씬 일찍부터 내용을 받아봤을거다. 그러니 나는 측은한 마음 하나 없이, 한 명의 노동자로서 정신 좀 차리라 지적하는 것이다. 

 

에라이 무식한 모지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