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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19. 화요일

정체불명 ezez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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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함에 있어 특정 인물을 숭상하여 신격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학계가 있으니 바로 경제학이다. 

 

아니, 그전에 경제학은 과학으로 볼 수나 있을까?

 

아니다. 경제학은 과학 축에도 못끼는, 그야말로 사이비학문이라며 경멸했던 알프레드 노벨은 경제학 따위에게 상을 줄 맘이 없었기에 유언에 경제학 분야는 애초에 없었다(노벨 경제학상은 노벨 유언에 따라 시상되는 상이 아니며, 노벨 재단과도 관련이 없다). 


얼핏 경제학은 수학을 도구 삼아 논지를 펼치니 매우 엄밀한 학문일거라 착각하기 십상인데, 수학은 실재 세계가 아닌 '닫힌세계'에서만 유효한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거의 이론에 가까운 학문이다. "'0'과 '1'사이는 무한하다"는 명제가 받아들여지는 학문이 수학인 것이다. '0'과 '1'사이라는 제한된 영역 안에 수를 무한이 쪼갤 수 있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이해되나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역시 무리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래서 뭐? 그게 내 삶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제한된 영역 안에 무한이라니? 모순이다. 이렇듯 수학을 전면에 내세운 주류경제학은 실제 세계가 아닌 닫힌 세계에서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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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Ceteris Paribus란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란 뜻이다.


요즘은 쪼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주류경제학은 2차원 평면에 X축과 Y축을 그어놓고 딸랑 2개의 요인만을 가지고 경제를 설명하고 자신의 이론을 증명한다. 그러니깐 나머지 요인(변수)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두고 고려하질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Z축을 추가해 변수를 하나 더 고려한다지만, 그래봤자 딸랑 3개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은 여전히 실제 세계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 한계가 분명하고 조건이 항상 따라붙는 이따위 학문이 정계를 휘어잡는 바람에 99%는 늘 괴롭다.




신자유주의

 

'생산'이 전부이던 시절에 불황이 닥쳤다. 이때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 '소비'에 주목했고 1차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상은 바야흐로 소비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경제는 순항하는 듯 했다. 


그러다 1960년대 말부터 1982년 사이에 이윤율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내가 태어나고 1년 뒤, 별시덥지 않은 놈이 별시덥지 않은 상을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 


이 아자씨를 보고있노라면, 노벨 경제학상이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의심을 저절로 믿게 된다. (노벨상에서 경제학 부문은 노벨 가문에서 극구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1968년에 제정되었으며, 1974년 하이에크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어쨌든 '복지병'을 주창하던 이 아자씨에게 반한 '마가렛 대처'가 1979년 신자유주의를 선언한다. 근거는 오직 하나 '국가가 거품을 만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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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 암살 시도를 막았는데, 동료부터 상사까지 아무도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 

- 영화<킹스맨> 극 중 대사


자본주의는 효율을 중시한다. 효율이 극에 달하면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저절로 불필요한 사람들(잉여인간)이 생기기 마련, 쓸모없는 잉여인간(바이러스)을 제거하려는 세력은 실제로 존재하며, 질병과 전쟁을 일으켜 그 과업을 이룩하려 한다. 

 

뒤이어 레이건도 신자유주의를 선언하고 복지는 망국병이란 오명을 얻으며, 세상은 또 다시 쥬류경제학 손아귀로 들어간다. 




극대화


'21세기 자본'이 국내에 번역되기 전에 국내에서 먼저 출간 된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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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위치한 책은 마치 '21세기 자본'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달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해 애쓴 책이다.


세계에서 각광받는 '21세기 자본'이 대체 뭐 길래, 한국의 주류경제학자들이 발벗고 나서서 저따위 책을 쓰는 것일까? '21세기 자본'은 전형적인 이론서가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실증과학' 책에 가깝다. 납세 자료들을 오랜기간 추적하여 얻어진 실질 데이터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에 기반한 통계들을 보여주는 책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주류경제학자들은 이 책을 경계하는 것일까? 바로 '불평등'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말을 '21세기 자본' 속 데이터들이 증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생산이 이뤄지고 돈이 만들어지면 노동자와 자본가가 소득을 나눠갖는다. 이를 경제주체에 따라 '노동소득 분배율', '자본소득 분배율'로 나누는데, 조사결과, 나라가 아무리 성장을 해도 노동소득은 늘지 않았던 거다. (반면에 자본소득은 엄청 늘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성장의 과실을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나누기 때문에 노동소득 분배율은 일정하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던 것. 이렇듯 주류경제학의 오래된 편견을 깨뜨리는 책이 그들에게 달가울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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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와 하이에크를 비교하는 건, 

단지 여성지도자라는 이유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박근혜를 같은 급으로 놓고 비교하는 것 만큼이나 황당하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로 실질임금은 경제성장율 만큼 늘지 않고 있으며, 매출이 신장되었음에도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한국통신의 경우, 매출이 줄었음에도 오히려 주주배당금은 늘어났다. (주주배당금을 높이기 위해 자산을 팔아치우는 거다.) 국내 상황이 이러할진데 국내 주류경제학자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나 '21세기 자본'에 반기를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극대화'는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문제는 이 극대화가 노동자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도 아닌, 오로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주주의 이익은 회사의 이익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투자금 회수가 빨라지면, 회수된 투자금과 이익금은 바로 금융자산으로 비축되고, 이렇게 형성된 금융자산은 얼마든지 거래를 통해 기업같은 유형자산, 즉 생산수단인 자본을 다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돈이 돈을 낳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 돈을 회사를 키우는 데 쓸 이유는 사라진다. 그냥 회사를 하나 더 사면 되기 때문에.

 

경영자와 노동자는 한 기업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기를 원하지만 자본은 그렇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이윤 극대화'는 자본 증식만을 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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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 하지만 소유할 수 있지." 

- 영화 <월 스트리트> 극 중 대사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IMF 조차, 소득분배가 개선된다고 해서 경제성장이 지체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이 예전과 달라진거다.

 

주류경제학자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싶으면 곧 바로 감추려는 속성이 있는데, 이는 수학에 눈이 가려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오래된 습성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많을수록 주류경제학 이론은 더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어떻게든 실증과학이 경제학에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경제학 부문에서만 유독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2002년 다시 한번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에게 스웨덴 중앙은행상(노벨 경제학상)을 주었는데, 그 이유가 경제주체인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분석했기 때문이랜다. (씨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연구하지 않는 심리학자도 있나?) 


노벨 경제학상이 제정된 이후로 수상자 중에 학문적 업적이 엉터리로 증명되는 사례가 점차 빈번해지자 지들도 쪽팔렸는지, 실험이 가능한 과학분야인 심리학에 두 번씩이나 상을 주었다는 건, 그만큼 주류경제학 이론들이 인간사회와 동떨어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6년 뒤 세계경제는 또 한번 뒤틀리게 되고 주류경제학자들은 또 다시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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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사원 학자들이 엘리자베스 여황에게 보낸 서한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08년 11월 런던정경대(LSE)를 방문한 영국여왕은 경제위기를 왜 예측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경제학자들에게 물었고 반 년이 지나서야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금융 천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새롭고 정교한 방안들을 찾아냈고, 실제로 일련의 신종 금융기법들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시켜 사실상 리스크를 제거했다는 주장을 그대로 믿었기에, 금융시장 자체가 변했을거라 확신했다."


투자은행에 종사하는 금융 천재들은 대부분 수학에 능한 공학도들이다. 

 



실패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1994년에 설립한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 (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는 경제학과 수학에 조예가 깊은 MIT, 하버드, 런던대 등 유명 대학의 석박사 출신의 학자들을 사업 파트너라는 점을 내세워 투자자를 끌어모았고, 전성기 땐 사업 파트너 중에 두 사람이 금융리스크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콘트롤 할 수 있다는 Black-Scholes 수학적 모델로 인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파트너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지 1년 만에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는 파산한다. LTCM이 전 세계의 은행들과 거래하던 파생상품 규모는 1998년 9월 23일의 추산에 따르면 1조 2500억 달러 이상에 이르렀다. 이것이 전 세계적 대형 경제 위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연방준비제도의 주도하에 다른 대형 은행과 투자기관으로부터 대규모 구제금융을 지원해야 했다.

 

이처럼 환상에 빠져 실상을 외면하는 경제학과 수학에 조예가 깊은 자들이 활개를 치게 내버려 두면 2008년 금융위기는 어김없이 반복된다.




이기적 유전자와 보이지 않는 손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당신은 어케 정의내리는가? 


'날 위해' 정도로 정의내린다면 누구나 거부감 없이 수긍할테지만, '날 위해서 남을 괴롭힌다'가 되면 흔쾌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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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윈윈win win 전략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전략으로 우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이는 제한된 영역에서 무한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이론이다. 


지구는 유한하다. 하지만 수학의 세계는 무한하다. 제한된 자원을 어느 한 쪽이 많이 가져가면 다른 한 쪽은 조금 가져가게 마련인데, 윈윈전략은 우리 모두 많이 가져갈 수 있다고 포장한다. 


그렇다. 적게 가져가는 누군가가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 가능한 거래다. (아니면 어느 한 쪽이 손해를 입었단 사실을 몰라야 한다.) 작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손해를 보는 누군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빌딩 갖고 세입자에게 월세 받으면서 사는게 최고야."

 

세입자가 알아서 월세를 만들어오던 시절엔 저 말이 유효했겠지만, 내수시장에 기댈 수 없는 작금의 한국경제상황에서는 저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식민지에 빨대를 꽂아 빨아들일 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한국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입자가 돈을 벌어야 빌딩 주인도 돈을 벌 수 있다. 세입자가 돈을 못 만드는데 어떻게 빌딩 주인만 돈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알아서 돈을 만들어 올 세입자가 아직도 지천에 널려있다고 믿는가? 이 간단한 사실을 우린 한동안 모르고 살았다. 실은 뻔히 보이는데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정체불명 ezez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