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부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저거 브라우닝 하이파워인데?”

 

돌이켜보면 ‘황당한’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0.

 

총을 좋아하는 40대 남자 셋이 뭉쳤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40대 남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적, 정서적 자격들을 들이미는 시선. 그 시선에 ‘총’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총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가다가 우연찮게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 브라우닝 하이파워가 들어가있는 걸 알았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은 브라우닝 M1900임에도)

 

아아아.jpg

 

“중국 공안들은 총이라고 하면 장난감에도 도끼눈 뜨잖아.”

“자기네 영웅도 아닌데 전시품에 그렇게 신경 쓰지는 않았을 거야.”

 

호기심은 이어졌다. 한국의 안중근 기념관,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을 비롯해 독립운동 관련기관들을 찾아봤다. 놀라웠다. 어디도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사용한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물은 고사하고, 동일기종, 하다 못해 복각품도 없었다.

 

안중근 기념관에 있는 플라스틱 총 하나 있는 게 고작이었다.

 

“우리가 하나 만들어볼까?”

 

2018년 4월의 일이었다. 

 

 

1.

 

안중근 기념관에서 기증 받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안중근 기념관 쪽에서도 전시된 총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기념관.jpg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의거를 했던 날이 10월 26일이니 올해 10월 26일날 총을 건네겠습니다.”

“그것도 좋지만, 좀 더 의미있게 내년에 하죠.”

“내년이요?”

“내년이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입니다.”

“아...”

 

프로젝트는 1년이란 시간을 벌었다. 원래 브라우닝 M1900의 오리지널 설계도를 입수해 CNC(조각기)로 복각 절차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1년이란 시간이 더 생기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2.

 

처음엔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없으니 만들자는 단순한 생각에 호기심이 더해졌다.

 

“왜 지금까지 없었던 거지?”

 

05.jpg

 

브라우닝 M1900은 총기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할 수 있는 존 브라우닝의 초창기 작품이다. 오늘날 전세계에 뿌려진 수많은 자동권총의 형식미가 이 때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총을 모형화한 곳이 없다고? (총 자체가 예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참고할 자료와 총기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 쪽에 타전해봤다. 브라우닝 M1900은 없어도(개라지 형태로 소량생산된 적은 있지만), M1900의 다음 버전인 M1910은 생산하고 있었다. 참고하기 위해 일본 모형 총기 업체에게 의견을 전하다 미묘한 기류를 느꼈다. 

 

“왜 만들려는 거죠?”

 

그때서야 어렴풋이 느끼게 됐다. 일본 모형총기 업체에서 암묵적으로 브라우닝 M1900을 만들지 않은 게 아닐까? 우리에겐 영웅의 도구였지만 그들에겐 ‘흉총’이 될 수 있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그럼 무조건 만들어야지.”

 

(훗날 이 당시를 떠올려 보니 일본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는 걸 스스로 납득하게 됐다.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의 아이콘이 될 것을 두려워했던 일본은 서둘러 사형선고를 하고 황급히 사형을 집행했다. 유해 또한 상징이 될까봐 암매장했다. 그렇다면 의거에 사용했던 총은? 일본 검찰이 증거품으로 압수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분실’했다고 말하고 있다. 분실? 분실 '당한' 거거나 분실 당한 척 하는 거겠지. 일제는 당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3.

 

많은 질문을 받았다.

 

“왜 하필 총이냐?”

“똑같은 총이 아니더라고 해서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수많은 영상물과 창작물을 살펴봤다. 북한이 만든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부터 시작해 한국에서 만든 영화, 뮤지컬까지 모든 작품을 살펴봤지만, 안중근 의사의 총은 브라우닝 M1900이 아니었다. 

 

l_2018081401001516900124532.jpg

 

브라우닝 M1900과 아닌 총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광화문에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알고 있는가?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가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알면 놀랄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에도 예술가들의 이런 행동은 많았다. 아테네 학당의 센터를 차지하는 플라톤의 모델이 누굴까? 라파엘로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플라톤을 그렸다. 그래서 플라톤은 대머리가 됐다. 이순신 장군도 그러하다).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갑옷은 조선군 갑옷이 아니라 중국식이다. 그리고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칼은 일본도다(현충사에 있는 칼을 참고했다고 하지만). 이 칼이 일본도인 것 보다 중요한 건 이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오른손이라는 거다. 오른손에 칼을 들었다는 건 패장(敗將)이 항복을 의미하는 거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우리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패배의 역사를 보여주는 끔찍한 조형물일 수도 있다. 

 

브라우닝 M1900 복각에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총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유물’들은 후대에게 역사성과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해석을 남겨준다. 유물을 배제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은, 

 

“안중근이란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라는 사실의 나열만 있다. 그러나 브라우닝 M1900이 들어간다면 이 사건에 ‘의미’와 ‘개연성’을 더할 수 있다. 

 

일반적인 리볼버 권총을 사용할 경우 4초란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총탄을 다 쏟아낼 수 없다. 격발 간격이 자동권총보다 훨씬 더 길기 때문에 3발을 쏘기 전에 안중근이 체포됐을 것이다. 당시 리볼버 권총은 위력이 강하기 때문에 탄막사격(한 지점에 일제히 사격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정밀한 조준 사격을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안중근이 최신식이었던 브라우닝 M1900으로 거사를 치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04.jpg

 

현대 권총 사격법으로는 상식밖이라 할 수 있는 한 손 사격으로도 어느 정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7.65미리 탄의 위력을 한 손으로도 충분히 반동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안중근은 치밀한 계산에 의해 브라우닝 M1900을 선택했다. 

 

 

4.

 

2018년은 방법을 타전하고, 시도하고, 좌절했던 시간들이었다. 

 

설계도를 확보하겠다고 결심했던 시간이 흘렀다. 점점 ‘실총’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당시 총은 사람이 손으로 직접 깎고 붙였다. 설계도는 같아도 사람의 손을 탔기 때문에 미묘하게 다 달랐다.”

“그 때의 열처리 기법은 지금과 다르다.”

“총 설계도라는 게 정확한 치수나 수치를 적어놓은 설계 시방서 개념이 아니라 총기의 형태를 개략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일 뿐이다.”

 

이 모든 논의가 모아진 건, 

 

'실총 확보'

 

였다.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과 행정협조.

 

한국은 총기 청정국가였다. 성인남성 대부분이 돌격소총의 분해결합과 사격, 소부대 전투 전술을 체득한 상태지만, 사회에 나온 순간부턴 총을 접할 기회가 없다. 엄격한 총기 통제 덕분에 민간에서 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물론 총이 사회에 풀렸을 때 벌어질 일들과 사회적 비용 발생을 생각하면 총기는 끝까지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① 국내에 총을 들여오는 건 어렵다. 

② 상태가 괜찮은 브라우닝 M1900을 구하는 건 더 어렵다. 

 

두 가지 난점을 피해 가는 방법이 나왔다.

 

03.jpg

 

“브라우닝 M1900을 빌려서(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거래가 흔하다. 문제는 클래식 총기에 대한 주인의 까다로운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주느냐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3D 프린팅 업체에 맡긴다. 여기서 수치 값을 확보한 다음, 국내에서 총을 제작한다.”

 

비싼 렌탈비 앞에서 고민을 했지만 가장 무난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여기에 욕심이 더해졌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실제로 사격을 해보자.”

 

이렇게 해서 나온 방안이 필리핀행이다. 

 

총기 복각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 메이킹이 아니라 본편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던 우리는, '실총을 확보했다면 한 번 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의 사격실력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실제 얼마나 뛰어났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그와 함께 안중근 의사의 사격 폼에 대해서 수많은 조사와 연구를 했다. 

 

“4초 만에 4개의 목표물을 향해 급작사격 했는데 표적에 명중했다(1발은 빗나갔지만).”

 

내가 판단했던 소요시간은 4초였다. 나중에 관련 학자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보니 사격과 표적 확인에 걸린 시간은 6초 내외였다. 6초 중 사격시간은 길어봐야 2초 내외고, 4초 정도가 표적확인과 조준시간이라는 게 우리 판단이다. 실제로 이 시간을 기준으로 실사격을 준비했다.

 

“7미터 거리에서”

 

브라우닝 M1900을 확보한 뒤 필리핀에서 사격하고, 이 총을 분해해 수치값을 확보한다는 계획이 추진됐다. 

 

하지만 문제가 많았다. 빌린 총을 필리핀까지 공수해오는 것도 문제지만, 필리핀에도 행정소요가 있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02.jpg

 

"실총을 사자!"

 

 

 


 

 

 

 

필자 주

 

cf87f0fd-749c-4382-b016-ccb345043232.jpg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2020년 3월 공개 예정입니다. 펀딩 목표 금액 1천만원으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얼빈 의거 장면을 촬영하려 합니다.  

 

프로젝트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펀딩(링크) 

 

안중근 의사의 사격장면 재현을 위한 물적 토대는 크게 3가지로, M1900 권총과 32ACP 탄, 그리고 발리스틱 젤라틴입니다. 총은 미국 총기 옥션에서 낙찰받아 현재 배송 프로세스를 밟는 중입니다. 펀딩은 32ACP 탄과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십자가 흠집’이 있는 탄의 위력 실험을 위한 발리스틱 젤라틴 구매 비용,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기자재 대여와 인건비로 사용 예정입니다.

 

총기 사격 실험에 고속촬영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고속촬영을 위한 조명 세팅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110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어떤 악조건 속에서 의거에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는지를 실물 총을 가지고 실험할 예정입니다.

 

현재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국내 재현 사격을 추진중이며, 만약 국내사격이 여건상 어렵다면 미국 현지에 섭외한 사격장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