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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격차라는 말에 욱해서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덧 기술에 대한 현업 실무자의 고민과 대안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기업 기술연구소에서 기술경영(MOT, management of Technology)에 대한 이야기, 정부주도의 기술개발사업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해당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기업 연구소의 연구문화, 연구원들을 대하는 회사의 관점, 연구원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점들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과 무역전쟁이 발발한 지금 좀 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종족특성에 따른 테크트리(tech tree)

 

스타크래프트라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알고 계실겁니다. 종족의 특성에 기반한 테크트리(포인트를 투자해 기술 등을 배우는 것을 나무 형태로 나타낸 것)를 바탕으로 싸우는 게임이지요상대방의 테크트리에 맞춰 나의 테크트리를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정보싸움이 커다란 재미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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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 국가, 한국인이란 종족특성의 테크트리를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울대 명예교수를 사칭한 이영훈씨가 생각나 종족이란 말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환경에 따른 한국인의 특성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의 산업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성장을 했습니다. 어릴 때 느끼던 산업현장의 모습과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산업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습니다(70년대, 80년대 산업 성장기에 학창생활을 보낸 연식입니다).

 

산업 발전에 연구소가 빠질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와 기업에서 연구소가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건 기껏해야 15년입니다. 15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심지어 30년 전에도 연구소는 운영되었(겠)지만, 지금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게 고작 15년 정도라는 말입니다(더 이전의 연구소들은 연구원 개인적 노력과 열정에 의지한 곳이었습니다).

 

전편에서 언급했듯 연구소와 연구원은 노력과 열정을 원천기술이나 응용기술 영역이 아닌, 양산기술에 쏟았습니다. 원천기술은 돈이 되지 않고, 응용기술 영역은 제품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음에도 기업들이 이 부분을 외부 구매(Sourcing)를 통해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기업 행태와 맞물려 있습니다. 특정 제품의 핵심부품은 외부에서 사오고 해당 제품을 조립해서 시장에 내놓는 과정을 통해 단기간에 자금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일본이 한국에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역할이었다는 것이 한일간의 기술격차 50운운하는 이야기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민족정론지 딴지일보에서 ‘A.I. 가 탑재된 고기 굽는 기계를 개발하겠다’, , 제조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총수의 고기사랑이 언론사를 제조업으로 변모하게 만든 상황이죠. 우리가 잘 아는 이 모 회장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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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7년 전인데 여전히...)

 

편집장은 적임자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강호에서 나와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Yoda를 찾았습니다. 

 

"우린 제조업을 잘 모르는데, 총수가 고기 굽는 기계를 개발하라고 하니 당신이 맡아서 추진해달라"

 

편집장의 말에 딴지일보에 간 Yoda는 정말 딴지일보에는 제조업을 할 역량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래도 일은 추진해야 하니 아는 회사 사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죠. 그럴듯한 불판을 하나 만들고 불판의 온도를 조절할 모듈을 제작합니다. A.I.를 추가해야 하니 모 연구소에서 가서 A.I. 소프트웨어를 주문제작합니다.

 

이후 산 넘고 물 건너 A.I. 모듈이 탑재된 고기 불판이 출시되었고, “다스뵈이더PPL로 이 불판은 국민불판이란 칭호를 받습니다Yoda 시장물량을 대기 위해 외주 제작사를 늘리고, 빠른 시간 내에 많이 생산하는 공정혁신이라던가, 수익을 극대화하는 원가절감 등을 추진해 시장에 대응합니다.

 

이 제품으로 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이 제조업을 향한 꿈을 안고 딴지일보에 입사합니다. 새 직원들 중 A는 서양식 고기 굽는 온도를 알고 있고, B는 한국식 불고기에 맞는 온도를 알고 있었고, 딴지일보는 온도 조절 모듈을 자체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지금 한국의 기술개발 상황입니다핵심부품들을 내재화 혹은 외주화를 하지만 '자체 기술력이 배어있는 외주화' 정도란 거죠. 불판의 핵심인 A.I.와 관련된 기술, 예를 들어, 고기의 중량과 지방 함량 간의 관계, 적정온도에 대한 자동인식, 고기 숙성에 따른 익힘의 정도, /서양 고기 익힘에 대한 관능평가 등 핵심기술에 대해 아직 개발할 것이 많이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소요되는 부분이 말이죠. 수없이 고기를 구운 데이터를 A.I. 모듈이 학습도 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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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서술하였고, 과장이 섞여 있지만이게 현재 한국 대기업 연구소가 수행해온 것입니다. 한국 연구소가 집중한 기술은 대부분 양산기술에 기반한 기술이며, 응용기술에 대한 개발은 막 시작된 단계입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구는 자연과학의 학문적 성과를 통해 그리 길지 않은 시차(길어야 100짧으면 50)에 응용기술과 양산기술이 차례차례 발달했지만, 한국은 산업화 과정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야 해서 양산기술을 먼저 도입하였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이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이 부족한 국가가 시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국가 R&D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저 양산기술과 응용기술 혹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일정 정도 양산기술의 수준이 올라오면, 축적된 데이터로 인해 더 이상 같은 형태의 연구개발로는 양자도약(Quantum Jump, 혁신을 통해 단기간에 실적이 비약적으로 호전되는 것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요. 자동화와 스마트 팩토리가 떠오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러할 겁니다양산기술은 기술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개발도상국에서 충분히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응용기술이나 원천기술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0년인가, ‘한국은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과 미국이나 일본 같은 기술 선진국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약 10년 정도 지났는데 어떤가요? 한국이 기술에 있어 중국과 미국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인가요? 비록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대부분 양산기술이고, 핵심기술은 아직도 한국이 조금 앞서고 있습니다.

 

곧 중국과의 대등하게 기술경쟁을 할 시기가 오겠지만, 한국의 상황을 그다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샌드위치의 맨 위에 있는 빵을 뚫고 올라갈 기세가 최근 대한민국 국가 기술 현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국이 전세계 탑이 되더라도 한국의 위상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비논리적인 국뽕도 암적 존재지만, 비이성적 자기비하야말로 암적 존재입니다. 기술진입장벽이 낮다고 하는 양산기술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관점이며, 양산기술에 종사하는 엔지니어가 열과 성을 다해 성취한 기술 영역입니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한국 정도의 수준을 달성하기 쉬운 영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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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기술은 남한과 북한이 상호협조적 산업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매우 효율적인 기술 구도이기도 합니다.

 

개성공단의 경쟁력이 높은 것은 노동자의 임금이 싸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남한 회사의 기술력과 저렴하고 효율적인 북한 노동력이 결합되어 경쟁력이 높은 것이지요. 남한 입장에서 북의 저렴하고 효율적인 노동력 때문에 생산성이 높다고 이야기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양산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그 효과가 더욱 커졌다는 게 맞습니다. 북과의 경제협력은 오직 남한만이 할 수 있고, 그 효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다는 건 비밀이고요.

 

 

 

스타워즈 덕후, 농구 덕후, 애플 덕후.. 라고 생각만하고, 실제로는 잘 모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