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 대공황의 미국 어딘가에서

 

1. 이슈, 볼륨, 코믹스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 2차대전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 냉전, SF, 민권 운동, 베트남전

 

4. 중간기 혹은 브론즈 에이지 : 오리엔탈리즘, 탄압에서의 탈출, 안티 히어로

 

5. 모던 에이지 혹은 현재 : 영상화, 시빌 워, 9.11테러, 애국법, 소수자

 

6. 누구보다 빠른

 

 

 

 

냉전의 한 면, 내부 단속

 

한국 전쟁은 남북의 전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국과 소련을 위시한 세계 양대 세력의 전쟁이기도 했다. 2차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 패권국으로 떠오르면서 국제 질서가 둘을 중심으로 잡혀갔다. 그런 질서 재편의 정점에서 부딪힌 선긋기가 한국 전쟁이다. 그 다음 수순은 서로의 역량을 알았으니 노려보긴 하되 직접 충돌은 자제하면서 힘을 길렀던 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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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에게는 소련이라는 매우 큰 적이 생겼다. 2차대전의 추축국과는 좀 달랐다. 추축국들은 워낙 인간 같지 않은 짓들을 했고, 그걸 가능케 했던 전체주의 사상 또한 쉽게 욕할 수 있었다. 내부 단속용 프로파간다가 쉬웠던 것이다. 그런 프로파간다가 보편적 진실과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소련은 좀 달랐다. 노동자의 세상을 만든다잖나. 게다가 2차대전의 전우다. 큰 분류에서는 같은 유럽 계열 문명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경제 체제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절대악으로 만들어야 했다. 중국에서 성공한 공산주의 혁명을 한반도에서 일단은 막아내긴 했지만, 공산주의의 팽창을 잠시 멈춘 것뿐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악마화 프로파간다는 40년대 말부터 관찰된다. 프로파간다를 효과 있게 하려면, 공포가 필요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1950,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이 폭탄 발언을 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는 발언이었다.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다. 이 발언에서 시작한 광풍은 후일 매카시즘으로 불린다. 미국 사회 내에 있는 공산주의자들과, 암약하고 있는 소련 스파이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몇 년 동안 정치권을 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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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맥카시 상원의원, 위스콘신 퍼블릭 라디오, 1950.

 

특히 할리우드는 매카시즘의 직접적인 폭격을 맞았다. 반공 프로파간다 측에서는 구체적으로 텔레비전, 라디오, 그리고 할리우드를 빨갱이 소굴로 꼽았다. 영화계의 감독, 작가, 배우 중에 공산주의자 내지는 소련 스파이가 많다는 식이었다. 대표적으로 꼽힌 사람이 배우 스털링 헤이든이다.

 

헤이든은 2차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첩보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후일 공산 혁명의 주인공이 되는 티토 장군과도 친분을 쌓았다. 티토는 비소련계 공산주의자로서 미국에게 좋은 자산이 될 수 있었지만, 헤이든이 매카시 의원에게 공산주의자로 공격당하면서 그 연줄은 끊겼다. 매카시 의원의 논리는 이랬다. 공산주의자는 소련편 = 티토는 공산주의자 = 헤이든은 티토 친구 = 헤이든은 미국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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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헤이든, 토론토 시 기록보관소, 1942.

 

결국 매카시 의원 자신은 한국전쟁이 휴전이 된 다음 해인 1954년이 되면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매카시즘의 방향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을 둔 상태에서 내부 단속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검열, 사상 검증, 색깔론이 즐겨 사용되었다. CCA를 낳은 심판의 날청문회 역시 이런 조류 안에 있었다.

 

 

냉전의 다른 면, 기술 경쟁

 

냉전이라는 동전에는 다른 면도 있다. 외부적으로는 대등한 경쟁 상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은 양측의 수준을 급격하게 끌어올린다.

 

2차대전 이전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적 있다. 해군이 강한 해양제국 영국과 육군이 강한 육상제국 러시아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경쟁이었다. 이 국면에서 영국은 해군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고 거함거포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러시아는 영국의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해 발틱 함대로 대표되는 해군력 증강을 시도하는 한편, 자기들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 공사를 시작했다. 거함거포와 대륙 횡단철도라는 군사기술, 토목공학의 대약진은 그레이트 게임으로 인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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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홉커크의 저서, “그레이트 게임

영국과 러시아 두 패권국은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 전세계 스케일에서 상호 견제했다.

이 스케일 속에 거문도 점령 사건과 러일전쟁도 들어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도 마찬가지였다. 큰 영토와 인재, 물자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군비 경쟁에 쓰였다.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연구가 제격이었다. 미국과 소련 둘 다 2차대전을 승리하는 과정에서 신기술의 맛을 제대로 보았다. 소련은 나치 독일과의 전차 개발 경쟁에서 결국 승리한 경험이 있고,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를 직접 사용해본 유일한 국가였다. 이들에게 과학은, 그리고 그 결과물인 기술은, 전투력이기도 했다.

 

사회 분위기는 과학도와 공학도를 대접하는 쪽으로 흘렀다. 미국엔 이미 그런 토양이 갖춰져 있었다. 영웅적 발명가들, 해안을 따라 늘어선 공장들. 여기에 기술입국의 분위기가 끼얹어지면서 미국 사회의 기술 친화적인 성격이 완성되었다. 과학에 대한 두터운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이 전통이 매년 미국의 물량 규모만큼 쌓여가자, 연구실에서는 신기술이 계속 등장했다. 이런 기술 중에는 군사력에 쓰이는 종류도 분명히 있다. 미국은 기술입국의 테크트리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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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거리 타격과 운송을 위해서인지 항공우주공학이 크게 발전했다.

정보 처리를 위해 컴퓨터가 발명된 것도 냉전 시기다.

그리고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한 분야들에 대한 대우 역시 계속 좋아져 갔다.

 

사회를 반영해 콘텐츠에서 SF 장르가 많아졌다. 독자가 경이를 느끼게 하는 소재로 마법 대신 신기술이 사용되었다. 공포/판타지 만화가 주류 장르에서 내려오는 건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 슈퍼히어로는 장르는, SF와의 관계가 가깝다. 최초의 슈퍼히어로인 슈퍼맨의 초능력을 설명하는 설정을 떠올려 보면 된다.

 

기술입국의 분위기를 타고 출판 만화 시장의 주류로 되돌아온 슈퍼히어로 역시 초자연적 요소 대신 과학 요소와 기술 요소를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암흑기 이후, SF에 치중한 경향을 가진 슈퍼히어로 장르의 중흥기를 실버 에이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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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에이지

 

실버 에이지는 보통 1956년에 시작한 것으로 간주하며, 1955년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소수파도 있다. 공통된 의견은, 실버 에이지의 시작은 이번에도 또 DC 코믹스였다는 점이다. 골든 에이지와 실버 에이지, 두 번의 부흥기를 시작한 회사라는 점에서 DC 코믹스와 그 주축 캐릭터들은 어쩔 수 없이 문화사적 무게감을 지닌다.

 

당시 DC 코믹스의 최고 상품인 트리니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은 슈퍼히어로 시장에서 독자 타이틀을 갖고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슈퍼히어로 붐이 돌아올 조짐이 보이자 DC는 공격적인 장르 확장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리고 확장은 현재의 보루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우면 시장에는 낯설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슈퍼맨의 편집자 겸 스토리 작가로 유명한 줄리어스 슈워츠가 1956년 상반기의 어느날, 로버트 캐니거를 불렀다. 캐니거는 전쟁 만화와 마스턴 사후의 원더우먼을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종의 회의를 했고, 여기에 캐니거와 함께 블랙 카나리를 만들었던 카마인 인판티노가 끼어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슈워츠 편집, 캐니거 스토리, 인판티노 그림의 팀은 195610월호인 쇼케이스(Showcase) #4 이슈에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새로 등장시켰다. 이 슈퍼히어로의 이름은 플래시. 하지만 본명은 제이 개릭이 아니었다.

 

이 플래시의 본명은 배리 앨런(Barry Allen)이었다. 그리고 실버 에이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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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지에서 실버 에이지가 시작되었다.

 

빛처럼 빠른 속도, 그에 맞는 순발력과 감각이라는 초능력은 그대로였다. 대신 다른 모든 게 달라졌다. 배리 앨런은 경찰 소속의 과학자, 후에는 감식반 요원으로 설정되었다. 화학 약품들을 잔뜩 늘어놓고 실험하면서 야근하던 어느 날, 번개가 방 안에 들이쳤다. 번개에 맞는 동시에 약품들을 잔뜩 뒤집어 쓴 배리 앨런은 기절했다가 깨어난 후 플래시의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코스튬도 제이 개릭과는 달랐다. 붉은 전신 스판덱스에 노란 허리띠와 부츠였다. 제이 개릭이 철모에 달아놨던 날개 모양 장식은 배리 앨런의 가면 양 옆에 달린 번개 모양 장식으로 바뀌었다. 새 플래시가 흉부 가운데에 부착한 로고 역시 번개인데, 캡틴 마블의 번개 로고를 연상시킨다. 활동 도시는 센트럴 시티라는 가상 도시로 정해졌다.

 

능력을 제외한 모든 것을 리뉴얼한 이 시도는 시장에서 정착에 성공했다. 새 플래시에 독자들이 익숙해지자 슈워츠와 편집부는 쾌재를 부르며 같은 패턴을 다른 캐릭터에도 적용시켰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하긴 했다. 1959년에 슈워츠 자신이 만들었고, 제이 개릭 플래시, 호크맨, JSA의 창조자인 가드너 폭스가 스토리를 거든 아담 스트레인지(Adam Strange)가 그 중 하나다. 그와 함께 골든 에이지 시절의 슈퍼히어로들이 상당수 설정이 바뀌어서 돌아왔다.

 

아쿠아맨과 그린 애로우는 원작자 모트 와이징어의 입김 덕분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드벤처 코믹스(Adventure Comics)라는 잡지에서 조연으로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둘은 리뉴얼까지 가지는 않고, 적당히 설정을 재정립하는 수준의 리빌딩을 받고 전면에 다시 나섰다. 그린 애로우는 크게 바뀐 점이 없었지만, 아쿠아맨의 설정은 새롭게 짜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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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머가 캔슬되는 와중에도 아류작인 아쿠아맨은 가늘게 살아남았다.

첫 독립 타이틀은 1962년이다.

 

 

슈워츠 리뉴얼

 

(여기서 과거 회차의 오류를 정정해야겠다. 아쿠아맨의 첫 등장을 서술하며 썼던 내용은 죄다 오류다. 당시의 내용은 실버 에이지의 설정이다. 모든 오류는 게으름에서 나온다. 게으른 인간이라 죄송하다.)

 

골든 에이지의 아쿠아맨은 수중 도시 아틀란티스를 발견한 탐험가의 아들이었다. 실버 에이지의 아쿠아맨은 수중 문명 아틀란티스와 지상 문명 간의 혼혈이다. 이제 아서 커리의 아버지는 탐험가가 아닌 등대지기가 되었다. 지상에서 자라난 아서 커리에겐 해저에 있는 이부동생의 존재도 생겼다. 영화화된 아쿠아맨의 설정 대부분이 실버 에이지의 버전이다. 이런 아쿠아맨의 리빌딩 버전은 19595월호인 어드벤처 코믹스 #260에서 처음 선보였다.

 

같은 해인 1959, 9~10월 합본호인 쇼케이스 #22에는 그린 랜턴이 리뉴얼되었다. 줄리어스 슈워츠가 편집을 맡아 플래시와 같은 방법을 적용했다. 스토리 작가는 플래시의 초기 스토리를 맡았던 존 브룸(John Broome)이었고, 그림은 길 케인(Gil Kane)이 맡았다. 플래시 성공에 크게 기여한 브룸을 기용한 것도 그렇고, 잉커로 참여한 시드 그린(Sid Greene)은 슈워츠 산하 작가 중에서 가장 다작을 하던 작가이니, 슈워츠가 나름 힘을 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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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 할 조던의 데뷔 이슈 표지.

쇼케이스는 이런 식으로 새 캐릭터의 데뷔 무대로 자주 쓰인 타이틀이다.

 

새 그린 랜턴의 본명은 할 조던(Hal Jordan)이고 코스트 시티라는 가상 도시에 산다. 그의 직업은 공군 파일럿이다. 이제 반지와 랜턴은 마법의 물건이 아니라 외계 기원의 스토리가 생겼다. 캐릭터의 성격 역시 마법사에서 우주 경찰로 바뀌었다. 지구가 속한 우주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던 우주 경찰이 지구에서 사망하고, 그 후임자를 할 조던으로 골랐다는 스토리였다. 반지의 주된 기능이 의지력을 잠시 물리적 형체로 만드는 기능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게 바뀌었다. 이제 그린 랜턴은 SF 장르, 그것도 후일에 크게 꽃피우게 될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하위 장르에 속하게 되었다. 그린 랜턴이 활동하는 가상 도시는 코스트 시티이다.

 

한편, 그린 랜턴의 원작자인 가드너 폭스가 자신의 설정을 묻어버린 것에 반발했다는 증언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폭스는 슈워츠 리뉴얼을 자신의 호크맨/호크걸에 적용시켰다.

 

1951년에 캔슬되었던 호크맨은 10년이 지난 1961, 2~3월호 합본으로 나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The Brave and the Bold)#34 이슈에서 재등장했다. 이제 카터 홀과 쉬이라 샌더스 홀은 카타르 홀과 샤이에라 홀이 되었다. 기원 스토리 역시 미국인으로 환생한 이집트인이 아니라, 사나가르(Thanagar)라는 행성에서 왔다가 지구에 남은 경찰 부부가 되었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능력은 그대로지만, 그 기전은 이집트 마법이 아니라 사나가르의 ‘N번째 금속(Nth metal)’의 기능이라고 설명되었다. 이들은 미드웨이 시티라는 가상 도시를 활동 영역으로 하게 되었다.

 

호크맨과 호크걸이 원작자의 손에 리뉴얼되던 196110월에, 아톰(Atom)이라는 군소 히어로도 쇼케이스 #34에서 리뉴얼 되었다. 알 프랫(Al Pratt)이라는 본명의 비초능력자 히어로였던 아톰은, 줄리어스 슈워츠와 가드너 폭스와 길 케인의 손에서 레이 팔머(Ray Palmer)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아톰의 경우엔 히어로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아톰은 이제 원자의 크기만큼 작아지는 기술을 보유한 과학자 히어로다. 훗날 등장할 앤트맨(Antman)의 선배다.

 

가드너 폭스는 계속 일했다. 호크맨과 아톰을 리뉴얼하기 직전인 1960년에는, 자신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아이디어도 리뉴얼했다. DC 슈퍼히어로들의 모임인 저스티스 리그의 출범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플래시, 그린 랜턴, 아쿠아맨 등이 모두 등장했다. JSA에서 JLA가 된 이 팀은 19602~3월호 합본인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28 이슈에서 처음 등장해 스타로(Starro)라고 하는 우주 불가사리 괴물에 대항해 싸웠다. 이 팀업 프로젝트 역시 성공하여 10월에는 독자 타이틀,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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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리그의 데뷔 이슈의 표지.

플래시, 그린 랜턴, 아쿠아맨이 원더우먼과 함께 보인다.

이 셋이 원더우먼과 나란히 설 정도의 위상이 되었다는 의미 혹은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최하단의 캐릭터는 잠시 후에 설명할 마샨 맨헌터다.

 

실버 에이지라는 용어의 첫 용례는 이 시리즈, 약칭 JLA#42 이슈에 있다. 19662월호인 #42 이슈의 독자 편지란에는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에 사는 스콧 테일러라는 독자가 보낸 편지의 문구가 실려 있다. “여러분이 이렇게 계속해서 [30-40년대] 황금기 시절 히어로들을 되살려낸다면, 20년 후의 사람들은 지금 시대를 은의 60년대(Silver Sixties)라고 부를 거에요!” 이는 영화 제작자로서 배트맨 영화들을 제작해온 영화 제작자 마이클 우슬란이 발굴한 자료다. 스콧 테일러의 발상이 업계에서 보기엔 적당해 보였고, 이후 실제로 시간이 흐른 후에 정식 시대 구분명으로 사용된 것이다.

 

한편 저스티스 리그에는 아예 새로운 얼굴도 있었다. 심지어는 지구인의 외모도 아니었다. 마샨 맨헌터(Martian Manhunter)라는 슈퍼히어로였다. 조셉 사막슨(Joseph Samachson)이 스토리를 쓰고 조 세르타(Joe Certa)가 그림을 그려서 창조해냈다. 사막슨은 생화학자에서 SF 작가로 전업한 사람이었다. 마샨 맨헌터 외의, 과학자와 작가로서의 업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마샨 맨헌터는 초록 피부의 화성인이며, 슈퍼맨 스토리의 화성 버전이다. 따라서 화성 문명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설정이다. 능력 또한 정신 계열 능력에 치중한 슈퍼맨 계열 능력에 외모 변신 능력이 있다. 화성에서는 존 존즈(J’onn J’onzz)라고 불리웠고 지구에서는 존 존스(John Jones)라는 가명을 쓴다. 지구에서 탐정 일을 하고 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데뷔는 195512월호인 디텍티브 코믹스 #225였으니 배트맨 계열이기도 하다. 슈퍼맨과 배트맨의 교배 결과처럼 보이는 마샨 맨헌터가 배리 앨런 플래시보다 길게는 1, 짧게는 반년 이르게 나왔다는 점에서 마샨 맨헌터를 실버 에이지의 시작점으로 보는 소수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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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및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화성인, 마샨 맨헌터의 첫 등장 컷.

현재에도 조연 캐릭터 중에선 가장 위상이 높다.

CW 채널의 슈퍼걸 드라마에서 캐릭터가 고정 출연 중이다.

 

이 중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는 플래시와 그린 랜턴이었고, 그 다음이 아쿠아맨이었다. 호크맨과 아톰은 인기가 크게 높지 못해 독립 타이틀이 사라지고 조연 캐릭터로 바뀌었다. 가드너 폭스의 속은 좀 안 좋았을 수 있다. 마샨 맨헌터 역시 조연으로 사용되었으나 사유는 좀 다르다. 능력의 성격상 슈퍼맨의 캐릭터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어쨌든 이런 캐릭터들을 모아서 만든 저스티스 리그가 높은 인기와 판매고를 올렸으니 가드너 폭스의 속은 안 좋다가도 좋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인기를 본 다른 어떤 사람의 속은 확실히 안 좋았다. 그 사람은 오랜만에 다시 언급되는 마틴 굿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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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잊었나? 퍼니즈를 집어삼켜 타임리 코믹스를 만든, 마블의 아버지다!

 

 

마블 비기닝

 

1951, 타임리 코믹스는 아틀라스 코믹스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러면서 순차적으로 슈퍼히어로 타이틀을 없애 나갔다. 심판의 날이 왔을 때는 발간 중인 슈퍼히어로 만화가 없던 상태였다. 상황은 어려워졌는데 대체품을 조달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그렇다고 다시 슈퍼히어로를 시작하기엔 두려웠다. 1953년에 아틀라스는 왕년의 빅3’인 캡틴 아메리카, 네이머, 휴먼 토치를 다시 발간해봤지만 결과는 처참했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슈워츠나 가드너 폭스와는 달리, 마틴 굿맨에게는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안목이 모자랐던 것 같다. 대신 굿맨에게는 버티는 능력이 있었는지, 회사 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도 망하지 않고 꿋꿋이 중견 만화 출판사의 위상을 지키고 있었다. 마틴 굿맨에 대한 평가에는 늘 트렌드를 따라가는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한 골프 경기에서 그 면모가 잘 드러났다.

 

1961년의 어느 날, 마틴 굿맨은 골프를 치러 갔고, 골프 상대는 DC의 오너 2명 중 하나인 잭 리보위츠였다. 공동 경영 체제이긴 했지만, 동업자인 해리 도넨펠드는 이제 나이도 들었겠다, 돈도 엄청 벌었겠다, 대부분의 경영 업무를 리보위츠에게 맡긴 상태였다. 따라서 굿맨과 리보위츠가 만난 골프 자리는 후일 양대 산맥이 되는 두 회사의 최고직이 만난 자리였다.

 

리보위츠는 굿맨에게 저스티스 리그 자랑을 늘어놓았다. 앞서 언급했듯 굿맨의 경영 철학은 '대세를 따르자'였다. 골프에서 돌아온 굿맨은 속이 매우 안 좋은 한편, 회사를 회생시켜 급성장시킬 돌파구를 찾았다고 믿게 되었다. 자신이 구상한 프로젝트를 맡기기 위해 굿맨이 부른 사람은, 처조카이자 이제 40대가 된 스탠 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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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의 스탠 리.

모험물을 비롯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편집자와 스토리 작가 일을 하고 있었다.

 

스탠 리는 제대 후 회사로 돌아와 계속 만화 스토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막 마흔을 넘긴 스탠 리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쓰고 싶고, 독자에게 현실감을 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팔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니 장르도 한정되고 패턴도 한정된다. 의욕이 사라진 권태기의 스탠 리에게 마틴 굿맨은 강변했다.

 

미래는 슈퍼히어로에 있어! ? 알아? 저스티스 리그! 너 그거 봤지? 팀이야! 팀이라고! 슈퍼히어로 팀이야! 히어로 팀을 만들어봐! 팀이어야 한다?”

 

또 일방적 지시였다. 지시의 본질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팔리는 것을 만들어 와라.’ 스탠 리는 어기적어기적 퇴근하여 아내 조안에게 툴툴댔다. 삼촌이 상사긴 한데 오히려 이빨도 안 들어간다, 오히려 종노릇과 다름없다, 맨날 팔리는 거 만들라는 지시다, 사장이라는 사람이 비전이 없다,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다른 직업 알아볼까 등등. 조안은 남편의 궁시렁을 다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힘들면, 이번 프로젝트는 당신 마음대로 해봐. 다 신경 끄고 당신 하고 싶은 그대로만. 그래놓고 마틴이 난리치면 퇴사해버려. 최소한 여한은 없을 거 아냐?”

 

아내의 말에 남편이 눈을 빛냈다. 1961, 작가 스탠 리의 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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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아포칼립스 영화에 카메오 출연한 리 부부. 이젠 둘 다 고인이다.

조안 부콕 리는 청년기에 모자 모델로 활동했고,

중년에는 성우로서 남편이 원작자인 애니메이션들에 출연했다.

 

 

 

 

참고문헌)

Jeff McLaughlin, “Stan Lee: Conversations”, University of Mississippi Press, 2007

Mark Alexander, “Lee & Kirby: The Wonder Years”, TwoMorrows Publishing, 2012

Paul Levitz, ‘The Silver Age 1956-1970’, “75 Years of DC Comics The Art of Modern Mythmaking”, Taschen, 2010

Paul Sassiene, “The Comic Book: The One Essentiial Guide for Comic Book Fans Everywhere”, Chartwell Books, 1994

P.C. Hamerlinck, ‘Hollywoodchuck Part 1’, “Alter Ego” Vol. 3 #54, TwoMorrows Publishing, 2005

Phil Jimenez, ‘The Flash’, “The DC Comics Encyclopedia”, DK, 2008

Will Jacobs, Gerard Jones, “The Comic Book Heroes: From the Silver Age to thee Present”, Crown Publishing Group,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