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모처의 경찰서 바로 앞 건물에 ‘안마방’ 간판을 단 업소가 있었다. 한창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 업소 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유흥업소의 상당수가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의심되었다.
그들은 밤만 되면 4m짜리 에어간판으로 보행로를 막았다. 아무런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었다.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에어간판’에서 시작됐다. 아니, 에어간판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밤만 되면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안마방’ 간판을 보라.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성매매 금지국가지만 이렇게 버젓이 광고와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라고 봐도 무방하다.
외국의 모 다큐멘터리 업체에서 한국의 성매매 산업에 대한 리포트를 찍은 적이 있다. 이들이 놀란 건 한국의 성매매 산업의 규모나 서비스 등이 아니었다. ‘위치’였다.
“성매매를 합법화 시켰든, 불법화 시켰든 그건 중요치 않다. 지구상 어떤 나라에도 성매매가 없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나와 5분 안에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일 것이다.”
적확한 표현이다.
내가 거처하는 곳은 나름 ‘건실한’ 주택가다. 4천 세대가 입주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초등학교 3개, 중학교 2개가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대학이 2개 있다. 학군도 좋은 편이며 국가단위 연구단지가 10분 내에 있다. 그런데 도보 10분 거리에 ‘안마방’ 밀집 지역이 2군데나 있다. 심지어 24시간 영업한다.
서울 강남을 볼까?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예약해둔 ‘오피방’에 간다. 점심을 먹지 않았으므로 사무실에 복귀하기 전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하나 사먹는다. 실제로 점심시간의 강남 오피방은 예약이 잔뜩 밀려 있다.
이게 성매매 금지국가의 현주소다.
성매매는 필요악이다?
성매매를 가치판단의 영역에서 본다면, 절대 없애야 할 인류의 악습이자 ‘절대악’이다. 성(性)을 상품화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의 도덕률과 배치된다.
문제는 성매매를 악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인류 역사에서 줄곧 주장되어온 논리다.
과연 이 시대에서도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인정해야 할까?
고백하건데,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를 보면서 진지하게 국내의 성매매 합법화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성매매 자체를 없애는 것이 어렵다면 양지로 끌어내 불법의 요소를 제거하는 게 어떨까 고민했다.
성매매 자체를 아예 없애겠다는 생각까지는 가지 못했다. 성매매는 계속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사회전반의 인식전환 혹은 법체제 정비, 정부의 단속의지가 있다면 규모는 상당히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틀렸다.
‘성매매’가 존재하는 한, 여성의 존재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성을 매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성매매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의 인권수준이 떨어진다.”
당연한 주장이며, ‘현실’이다. 돈을 주고 여자의 성을 사는 게 용인이 되는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서 여자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에서 여자의 성이 ‘거래’된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성도 거래의 대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을 비롯해 많은 성매매 합법화 국가들의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매매 특별법의 대안으로 ‘성매매 합법화’를 생각해봤던 거다.
내 개인적인 결론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성매매와 관련된 범죄는 줄어들지만, 반대로 성매매 건수는 증가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들이 보호받고 인권수준이 올라갔을 거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호주의 경우에는 주정부 차원에서 자기 방어술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다(술 취한 고객이나 시비를 거는 고객으로부터 도망치는 법 등이 나와 있다). 독일은 더 극적이다. 많은 국가에서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에 주목하고, 이들의 사례를 연구했다. 호주나 네덜란드와 같은 사례가 있었지만, 인구 규모와 경제력, 사회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자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네덜란드의 정책은 섣불리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민성 자체가 다른 선진국들과는 많이 다르다. 관용과 자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즉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전제하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주는 사회풍토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선택에 개입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한다. 경상도만한 땅 덩어리에 1700만이 옹기종기 살면서도 큰 문제가 없는 이유가 이런 풍토 덕분이다.
문제는 네덜란드와 같이 성숙한 시민의식과 자유로운 풍토 안에서 진행된 성매매 합법화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거다. 아니, 성매매 합법화 이후 ‘불법’이 더 많이 조장됐다.
결국 많은 국가들이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를 바라보게 됐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좋지 않았다.
첫째, 포주(이자 건물주. 포주가 건물주가 돼 여성들에게 세를 놓았다)가 일방적으로 노동시간을 정하고 강제로 손님을 받게 했다. 보통 14시에 영업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영업을 뛰었다.
둘째, 여전한 감시
포주가 이익을 위해 여성들을 반강제로 벗긴 상태로 대기하게 했고, 이들을 CCTV로 감시했다. 사생활 침해 요소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포주로부터 독립했다고 하지만 법적인 독립일뿐이고 경제적으로 종속된 상황)
셋째, 인신매매
이건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를 합법화 한 유럽 각국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로, 난민이나 제3국(주로 동유럽) 여성들을 인신매매한 뒤 성매매를 시킨다. 성매매 합법화 초기에만 약 3만 명의 제3국 성매매 여성들이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하는 상황이지만 구제할 방도가 마땅치 않았다.
넷째, 성매매로 돈을 버는 경우가 없다
독일에서 성매매가 합법화된 후 건설붐이 일어났다.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성매매 공간(소위 말하는 ‘라우푸하우스’)이 만들어졌다. 앞서 말했듯 포주들은 건물을 세운 뒤 이를 세 놓았는데, 여성들은 월세를 내는 것도 버거웠다. 성매매 합법화를 추진한 목적 중 하나가 성매매 여성의 인권향상과 권리보장(불법적 요소가 없다는 전제 하에)이었음에도, 권리가 증진된 건 포주뿐이었다. 여성이 ‘가격’을 정할 수 없었고, 그나마 버는 돈의 상당부분은 포주에게 내야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세금과 의료보험
성매매 합법화를 추진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성매매가 불법인 상황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불법이기에 세금을 붙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가 합법화가 된 이후에는 세금을 내야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성매매는 음지에서 이루어진다. 네덜란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성매매 합법화 이전, 2000년 1월 이전에선 네덜란드의 성매매 여성들은 밖으로 나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합법화 이후 음지로 사라졌다. 정부의 보호 밖으로 나갔다는 말이다.
여섯째, 인권이 향상되지 않았다.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의 폭력에 노출되는 건 똑같았다. 이들에게 자발적 권리, 즉, 그만두거나 이직할 권리는 상당히 제한됐다.
‘필요악’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궁극적으로 성매매 합법화는 답이 될 수 없다. ‘필요악’이란 논리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바로 ‘여성’이다.
‘성매매’ 자체에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성이 수반되어있다.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사회의 인권 감수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원론적인 주장이겠지만, 여성이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제도를 통해 성매매를 막거나 규제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의 발효 이후 우리는 쉽게 ‘안마방’과 ‘오피방’을 마주하게 됐다. 아예 업소를 찾지 않아도 되는 ‘조건만남’은 또 어떻게 할 건가?
단속과 규제로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다는 논리가 아니다.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결국 시스템을 운용하는 건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분명 성매매 특별법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온 성매매 단속에 관한 법률 중 가장 강력한 법이다. 법대로만 시행된다면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최소한 규모를 줄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여자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해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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