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 여긴 어디?
당연하지만, 나에게도 노가다 초짜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처음에는 정말 하루하루가 정신없었다. 노가다꾼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많다. 별거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무언가를 모르거나 못 하면, 한마디로 어버버 하고 있으면 쌍욕부터 날아온다. 물론, 모든 노가다꾼이 그런 건 아니지만.
“아 X발, 넌 그것도 모르냐? 도대체 아는 게 뭐여?”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모르는 게 당연한데, 모른다고 욕까지 먹게 될 줄이야. 몸은 몸대로 고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아,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못난 놈이어서 어리바리 했던 것도 아니다. 진. 짜. 다!!!
누구라도, 노가다판에 처음 오면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우선은 노가다 용어라는 것부터 그렇다. 처음 노가다판 왔을 때, 아저씨들이 바라시, 나라시, 기리바리, 야리끼리 하는데, 참나, 난 일본에 온 줄 알았다. 그런 데다가 노가다판은 아주, 아주, 아주 시끄럽다. 가까이서 말해도 들릴까 말까다. 또 그런 데다가 보통은 50~60대다 보니 발음이 조금은 부정확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작은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는데, 헤비메탈 음악이 크게 흘러나온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안방에 계신 할아버지가 거실에 있는 나에게 일본말을 섞어가며 무언가를 말한다. 대략 그런 느낌이다. 아득해지는 느낌. 난 누구, 여긴 어디?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건데, 알아듣지 못하면 쌍욕이 날아온다. 사람인지라 주눅이 들게 되고, 원래 같으면 할 수 있는 일도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럼 더 큰 욕이 날아온다. 그럼 더 주눅이 들고, 결국 패닉에 빠지는 거다. 노가다 초짜가 겪게 되는 아주 일반적인 상황이다.
노가다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첫 일주일만 버티면 쭉 간다고. 호기롭게 노가다판 왔다가 일주일 안에 돌아가는 사람, 정말 많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완전 초짜 시절 얘기다. 반장이 저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가서, 투바이 못 좀 죽여라.”
“네?”
“저~ 가서 투바이 못 좀 죽이라고.”
“아네…….”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했다간 욕먹을 게 빤한지라 우선 반장이 가리킨 쪽으로 가긴 했다만, 두바이는 알아도 투바이는 도대체 뭔 말이며, 못은 알겠는데 못 죽인다는 건 또 뭔 소린가 싶었다. 도대체 못을 어떻게 죽이냐고!!
근처에 있던 다른 아저씨한테 “반장님이 투바이 못 좀 죽이라는데요.” 하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어~ 죽여.” 뿐이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었다.
참고로, 투바이는 2인치*4인치짜리 각재다. 그래서 풀네임은 ‘투바이포’다. 현장에서는 그냥 투바이라 한다. 투바이는 때에 따라 재활용도 한다. 그러니 투바이 못 죽이라는 얘기는, 투바이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못대가리를 아예 박아버리거나 뽑아서 재활용할 수 있게 잘 정리해놓으라는 얘기였던 거다.
노가다 초짜가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게 “저~ 가서, 투바이 못 좀 죽여라.” 식이다. 무언가 시킬 때, 앞뒤 맥락 없이 툭 시켜버린다. 어느 정도 짬이 차면, 투바이 못 죽이라고만 해도 어련히 못 뽑고, 다이(받침이라는 뜻으로, 일본어 だい[다이]에서 파생)에 잘 정리해서 굵은 철사로 묶어 놓을 테지만, 초짜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럴 때마다 참 아쉬웠다.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일을 시키면 효율이 더 높아질 텐데, 왜 버럭 화부터 낼까. 왜 앞뒤 맥락 없이 일을 시킬까. 결국 난, 모든 걸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물어봤자 친절한 답변을 기대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삿보도가 Support에서 파생했다는 걸 알았을 때
이제는 제법 나에게도 노가다꾼 냄새가 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의사에겐 의사의 언어가 있고, 판사에겐 판사의 용어가 있듯, 노가다꾼에겐 노가다꾼의 언어가 있고, 노가다판엔 노가다판 나름의 룰이 있다는 걸.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기 때문에 억지로 바꿀 필요도 없고, 바꾸려 한다. 해서 쉽게 바뀌지도 않으리라는 걸 말이다.
해서,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바꿀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령, 노가다 초짜를 위한 입문서 같은 거 말이다.
내가 편집자라면 우선, 말도 안 되는 노가다 용어부터 정리할 거 같다. 인터넷에도 누군가 정리해놓은 게 있긴 있다만, 쭉 훑어보니 실제 현장에서 잘 쓰지 않는 용어도 많고, 뜻만 덜렁 풀이해놔서 그런가 영 눈에 안 들어온다. 단순하게 뜻만 풀이하는 게 아니라, 그 용어가 어디에서 파생했는지, 어떨 때 쓰는 용어인지, 어떤 공정에서 주로 쓰는 용어인지 사례까지 곁들여서 정리하면 좋을 거 같다.
말 나온 김에, 천장 지지할 때 쓰는 원형 파이프 ‘삿보도’가 영어 Support에서 파생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굵은 철사 자르는 ‘가따’가 영어 Cutter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무를 자르거나 켤 때 쓰는 ‘스킬’(휴대용 원형톱)이 실은 독일의 전동공구 브랜드 SKIL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난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고 말았다. 알고 보면 이렇듯, 별거 아닌 용어가 많다.
그다음으로는 사례별·상황별로 어떻게 일을 하면 수월한지 설명해주는 거다. 예를 들어, 큰 현장에서는 자재 정리할 때 무조건 다이에 쌓는다. 자재를 정리한다는 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지게차나 타워가 떠간다는 얘기니까. 그냥 바닥에 쌓아놨다간 쌍욕이 날아온다. 다이 놓는 방향도 생각해야 한다. 타워로 뜰 때는 상관없는데, 지게차로 뜰 때는 지게발이 들어올 수 있는 방향으로 다이를 놔야 한다. 이런 얘기? 처음부터 해주는 사람 없다. 욕 한 번 시원하게 먹어야 알게 되는 것들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그림도 첨부하면 좋겠다. 예를 들면, 반생이(현장에서 쓰는 굵은 철사. 보통 6반생[직경 4.8mm]과 10반생[직경 3.2mm]을 쓴다. 일본어 ばんせん[반쎈]에서 파생) 묶는 방법 같은 거 말이다. 상황에 따라 방법이 제각기다. 선물 꾸러미 포장하듯, 신발끈 묶듯 쉽게 맬 수 없다. 시노(30cm 정도 쇠막대로 끝이 가늘고 약간 구부러져 있다. 반생이 조일 때 쓰는 연장)를 활용해 이렇게 저렇게 틀어야 한다. 이거,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접 보여주거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밖에.
철근, 형틀, 전기, 설비, 해체, 정리, 타일 등등의 공정별 특징도 정리해놓으면 진짜 좋을 거 같다. 말하자면 ‘어떤 기술 배우는 게 좋을까요?’ 같은 고민, 할 수 있단 말이지. 나도 노가다 초짜 시절 했던 고민이다. 어떤 공정 일당이 많고, 어떤 공정 비전이 좋고, 어떤 공정이 위험하고 힘든지 정리해줘서 “아하! 그럼 난 철근을 배워야겠다.”, “내 적성에는 형틀목수가 맞을 것 같아!!” 할 수 있도록.
이왕이면 공정별 반장을 한 명씩 섭외해 인터뷰 형태로 편집하는 거다. 그 사람의 삶까지 녹여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예를 들어 내가 함께 일했던 직영 반장은 60대 중반이었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딸 바보였다. 얘길 들어보니, 결혼한 딸이 근처에 살면서 자주 놀러 오는데, 토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강아지를 맡기고 간단다. “아빠! 우리 강아지 목욕 좀 시켜줘! 남편이랑 나들이 갔다 올게!”라면서. 그래서 토요일에는 늘 강아지 목욕을 시킨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상상해보라. 노가다판에서 30년 굴러먹은 진짜 노가다꾼이, 강아지 목욕을 시키면서 투덜거리는 모습을. 난 그 얘길 듣고부터 노가다판 자체를 새롭게 보게 됐다. 거칠고 걸걸하지만, 그래서 때론 노가다꾼이라고 무시당하지만, 이 사람들도 그냥 보통 사람, 보통 아버지구나, 하면서.
어쨌거나, 그런 입문서 한 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노가다 초짜가 읽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책이 진작 있었더라면 그 시절, 그 고생 안 했을 텐데 말이다.
숙련공의_눈에_보이는_초짜
이런 상상도 해봤다. 그런 책을 만들어서 전국에 있는 수많은 인력사무소와 공사 현장에 뿌리는 거다. 노가다판 문턱이 한참은 낮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노가다판에서 늘 걱정하는 “젊은 사람 없어서 큰일이야.” 하는 문제, 반대편에서 걱정하는 청년 일자리 문제도 조금은 해결할 수 있을는지 모르는데.
그래서 실은 이런 결심도 해봤다. 내가 노가다 일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까짓 노가다 입문서 내가 한번 써보자고. 당장 쓰겠다는 건 아니고, 언~젠~가 아주 머~언 미래에, 혹시 마음이 내킨다면 말이다. 안 내키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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