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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지 말고 계급을 믿으라한 맑스의 말은 100% 선험적으로 얻어진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1. 조직

 

여의도 중학교에서 장충고등학교로 전학온 아이는 나뿐이었다. 서울의 달 촬영지였던 81-1번 종점 옥수동 꼭대기에서 학교로 걸어 내려오는 길은 고사리 삶는 수증기가 운무처럼 깔렸다. 등교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사람키 서너 배는 훌쩍 뛰어넘는 고관대작들의 집과 판자촌이 마주 보고 있었다. 55명쯤 되는 가난한 친구들과 두 명의 야구부, 할배 고집에 미처 강남으로 도망치지 못했던 부자집 아들 두어 명, 그리고 뜬금없이 오게 된 나 같은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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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아이들은 중학교 출신별로 모여 서열을 정리했다. 지들끼리의 서열이 정리되자 다음 타깃은 내가 되었다. (8학군은 아니지만)여의도에서 온, 장충고등학교에서는 나름 인정받을만한 연합고사 점수를 받고 들어왔기에 일주일 정도는 거리를 두던 아이들이 슬슬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고 나오면서 내 어깨를 부딪쳤다. 특히 재수생, 삼수생들의 시비가 잦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폭력을 싫어했던 나는 고작 수 십 번 정도의 다툼 끝에 괴롭힘을 받지 않아도 되는 위치를 평화롭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로웠다.

 

한달쯤 지나자 2학년 선배들이 반으로 찾아왔다. RCY, 합창부, 과학부, 미술부, 도서부 선배들이 자기들 서클로 들어오라고 쉬는 시간마다 종용했다. 나는 평소 외모에 걸맞는 문예부가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편집부 주: 본 문장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편집부의 의견과 1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1.5 대 1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문예부원이 되었다. 궁금했지만 공약이었던 계성여고, 숭의여고와의 독서토론회는 언제 열리는지 묻지 못했다. 점심시간마다 같이 밥을 먹었고 학교가 끝나면 모여 빠따를 맞았다. 그래도 외롭지 않아 좋았다.

 

15명이었던 부원들은 봄이 지나 여름이 오자 9명으로 줄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자 6명만 남았다. 문예부장이 된 형준이는 우리도 탈퇴하자고 했다. 나를 뺀 모두가 동의했다. 2학년 선배들이 줄을 세워 하나씩 물었을 때 혼자라도 남겠다고 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조직을 배신하지 않았던 첫 경험으로 남아 있다.

 

 

2. 결핍

 

군 제대를 하고 다시 학교를 갔다. 예비역들은 다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동아리방을 광광거리며 다녔다. 장수생들은 장수생들대로 따로 모였다. IMF는 세상을 바꾸어 보게 했다. 낭만은 파전에 코 박고 자살중이었고 도서관에 사람이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국문학과로 전과했다. 또 미아가 된 기분이었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꼭 학교가 아니어도 되는 세상이었다. 소속은 넷상에서 역병처럼 창궐했다. 케텔이 코텔을 거쳐 하이텔로 이미 이름을 바꾸었고, 피시서브는 천리안이 되었다. 나우누리가 생겨났고 삼성과 엘지가 유니텔과 채널아이로 넷상에 진입했다. 딴지일보가 페이퍼뷰에서 조선일보를 이겼지만 바보같은 서버 운영으로 디씨인사이드로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였다. 창피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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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굳이 소속감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다 보니 어떠한 형태로든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직을 위해서 충성을 하지 않고 나에게 충성하는 삶을 살자고 결심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물리적 조직에서 네트워크 조직으로 옮겨간 것일 뿐, 나 역시 나의 이익을 위해 어느 조직에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뭐 위인도 아니고. 

 

시간이 흘러 일을 했고 결혼을 했다. 밥은 먹을 만큼 벌었다. 외화더빙을 마치고 쫑파티를 하던 어느 날, 김준 성우가 말했다. "남의 불이익은 참아도 나의 불이익은 안 참는다." 외롭지 않아도 되었다. 이기적인 말을 남에게 내뱉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소주를 한 잔 더 청했다. 

 

 

3. 충성

 

경험적으로 볼 때 조직에 대한 충성은 결핍에서 온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갈망, 장수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보이는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과잉행동, 또는 온전한 자기애 부족, 커뮤니티에서 나타내고 싶은 존재감, 기득권을 잃지 않겠다는 집념. 누군가가 나의 충성에 응원하면 더욱 고양된다. 판단이 흐려진다. 시야가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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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수까진 해본 적이 없다. 9수를 하고 들어온 이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물론 했다해도 자신의 충성이 조직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설혹 결핍으로 나타난 잘못된 충성이 조직을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 해도 난 알 수 없을 게다.

 

당사자에겐 보이지 않으니.  

 

 

4. 서킹

 

검찰의 똥을 언론이 받아먹고, 언론이 싼 똥은 정치권이 줏어먹고, 정치권이 싼 똥은 재벌들이 홀랑 먹고, 재벌들이 싼 똥은 검찰이 냉큼 먹는 이 고리의 핵심은 검찰이다. 공수처는 그 써킹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강력한 방법이다. 모든 검찰과 언론과 야당과 재벌의 공세가 집중되고 앞으로도 집중될 이유다. 

 

 

5. 불의, 불이익

 

돌이켜 보면 사람 모두가 나의 불의는 참아도 나의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 간혹 자신의 불이익을 참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자들을 우리는 성인, 열사, 의사 등으로 인간 외 취급한다. 인간계가 아니다.

 

요컨대,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나의 불이익을 참지 못해서다. 우리는 간혹 남의 불의에 참지 못하는 것을 정의라 생각하고 나의 불이익을 감내하는 것이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혼동한다. 조국 이슈가 진보에서도 5:5로 갈리는 것, 그 지점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나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고, 남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은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조직에 충성하는 정의로운 길, 석렬이형, 아니야.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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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불이익을 참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한국이 공정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학력이 없어도 취직이 어렵지 않고 취직을 하면 1년에 해외여행을 두어 번 정도 다녀도 삶에 큰 무리가 없는 삶이었으면 한다. 어차피 돈 있는 재벌들은 나의 게스트 하우스에 묵지 않는다.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1년에 두 세 번 정도는 뉴욕에 와도 부담없는 삶을 바란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이기적이고 불이익을 참지 않는 같은 인간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조직의 수장이 여태껏 대통령과는 결이 다르다. 이뤄야 할 가치가 있다. 이뤄야 할 목적이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버텼다 생각한다. 

 

나는 불이익을 참는 사람이 아니다. 불의는 참지만 불이익을 참지 못하기에 온갖 검찰과 언론과 야당과 재벌의 총질 속에서도 조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을 뿐이다.

 

너네들끼리만 해먹는 불공정한 세상에선 난 불리하니까. 나는 손님 많아져서 돈 많이 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