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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된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시장에 계속 싼 이자로 돈을 공급해오던 연준의 제로금리 정책이 10년 만에 바뀌었기 때문에 미국금리 인상은 전 세계 시장의 유동성(앞으로는 크레딧이라고 표현하겠다)을 줄일 것이다. 수문이 닫히듯 은행에서 풀어져 나오는 돈이 줄어들어 앞으로는 좀 더 비싼 이자를 내고, 좀 더 힘들게 대출을 받아야하는 세상이 온다.


근데 말이다. 까놓고 말해 지난 10년이 그렇게 좋은 시절이었나? 기간을 2008년 이후로 한정해도, 호경기라고 부를 수 있는 고성장이나 버블이라고 부를 만큼의 부의 증가가 있었나? 심지어 중국은 몇 경을 풀었고, 일본과 유럽 역시 공개적으로 시장에 적극개입하여 자산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미친 듯 채권을 사재꼈다. 그런데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가 좀 나아졌나?


결론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 글에서 적었다시피 하강기에 접어들었고, 일본은 경제 침체 (recession)에 해당되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유럽 역시 그리스 및 남부유럽발 위기 속에 신음했다. 유로화의 가치도 하락했다.


지난번 글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오늘 내가 하려는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부조리한 경제 환경’에 대한 글이다. 돈을 풀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기존 이론이 통용되지 않고, 저성장에 빠지고, 혹자는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표현하는 그 시기에 관한 글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것인가, 전 세계가 IS발 세계 3차대전에 빠져들 것인가, 우리는 어떤 경제환경 속에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건가.


이런 문제를 지난 30년간 예측을 가장 잘해왔고, 그 예측을 이용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사람의 말을 빌려 오늘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오늘의 주인공은 전 세계 최대, 그리고 최고의 매크로 헤지펀드(주로 이런 거시적인 경제예측을 가지고 돈을 버는 애들이다)인 ‘브릿지 워터’사의 창립자이자 경영자인 ‘레이 달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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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달리오는 지금의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3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유튜브에 올린 바 있다. 영어나 외국어가 되시면 함 보시라. 명확하되 내공이 느껴지는 졸라 유익한 영상이다.



빌 게이츠, 헨리 폴슨, 폴 볼커 같은 명사가 직접 이 동영상의 링크를 걸며 극찬하였으며,

전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총장 래리 서머스는 레이 달리오를 하버드로 초청하기도 했다.

(1시간짜리 대담을 팟캐스트에 올렸다)


그는 이 영상에서 경제가 기계처럼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는데, 그의 설명은 한 가지 가정에서 비롯된다. 그는 ‘Bottom Up’이라는 방식으로 경제현상을 바라보았다(각 개인단위에서의 거래가 더해져서 전체 경제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 모든 거래에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있고,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대가를 지불한다. 이 구매자가 지불한 대가는 판매자에겐 소득이 되고, 이 소득을 가지고 판매자는 다시 소비를 한다. 만약 모든 구매자가 현금으로만 거래를 한다면 경제라는 기계는 이런 식으로 천천히 돌아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되기 전까진 손 빨며 있을 거고, 이 사람들이 술을 안 먹으면 술집사장들의 소득이 감소할 거고, 여기에 납품을 하는 주류업체 역시 술집주인이 그날 들고있는 현금만큼만 소주를 팔 수 있을 거다. 주류업체의 소득이 감소하면 주류업체 직장인들의 월급도 줄 거고, 이는 다시 누군가의 소득감소와 소비감소로 이어진다.


이럴 때 크레딧(부채라고 생각해도 되고, 유동성이라고 생각해도 좋다)이 경제라는 기계에 기름칠을 해주어 좀 더 잘 돌아가게 도와준다. 꼭 현금을 들고 있지 않더라도 카드를 긁으면 되기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소득을 땡겨서 소비를 하고, 술집사장의 매출이 늘고, 대금 역시 월말에 결제한다. 크레딧이란 건,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걸 구할 수 있게 도와주고, 경제가 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레이 달리오는 ‘인간에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는 대체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돈을 빌린다’고 예측했다.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각종 카드값으로 다 빠져나가는 나 같은 소시민의 주머니 사정을 어찌 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레이 달리오는 이런 인간의 본성은 각 개개인, 기업 그리고 경제 전체에 적용되어 사이클(경기)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극단적으로 각 개인의 생산성 혹은 소득이 늘어나지 않아도, 크레딧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는 것만으로도 경제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레딧의 뽕을 맞고 성장하는 경제를 우리는 ‘버블’이라고 말한다. 크레딧에 의한 경제성장은 사이클이 하강기에 접어들 때 쯤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레이 달리오는 이 경제라는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세 가지 그래프를 통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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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경제 전체의 성장성 그래프다. 일찍선으로 쭉 뻗은 선은 사이클과 무관하게 꾸준히, 천천히 올라간다.


두 번째 그래프는 장기 신용사이클(커다란 곡선)로, 보통 80~100년에 걸쳐 발생한다. 생산성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빚이 더 빠르게 늘어날 때 기존의 경제 시스템은 일시적으로 붕괴한다. 빚을 잔뜩 내서 아파트도 짓고 공장도 지었는데 실수요가 따라오질 못해 어느 순간 자산의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에 따르면,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이 현상을 목격한 것은 대공황이었고,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되었을 때다.


세 번째 그래프는 단기 신용사이클(높낮이가 자잘한 선)로 7~8년에 걸쳐서 지속된다. 이 그래프는 시장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고 다시 과열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이 경우 각국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자산을 공개 매입하는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다. 무수히 많은 단기 그래프는 장기그래프 안에서 움직인다.


우상향하는 직선의 생산성 그래프와 그래프를 상회 혹은 우회하는 장기 크레딧 사이클, 그리고 장기 사이클 안에서 요동치는 단기 사이클. 레이 달리오에 따르면 이 세 가지 그래프를 사용해 현재의 경제 흐름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2008년 천장을 치고 하강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정말 세계경제가 그에 그래프와 유사하다면, 우리는 왜 각국의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세계경제가 크게 좋아지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인상과 같은 통화정책은 단기사이클 내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장기 그래프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금리인상등과는 무관하게 머지않아 거대한 하강을 경험할 것이다.


이 거대한 하강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즉, 크레딧의 감소다. 시장에 엄청나게 풀려있는 유동성이 순식간에 말라버려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지고, 이는 자칫 대공황과 같은 패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폭락론자들의 해묵은 논리처럼, 빚을 내서 가격상승을 바라고 산 아파트 대출금을 갚지 못해 개인들이 시장에 아파트를 싼값에 던지고, 이는 부동산의 가격하락으로 이어지고,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채무가 자산을 능가해 더 많은 파산과 추가적인 가격폭락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도 있단 말이다.


물론 레이 달리오가 이런 종말론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원리를 이해하고 균형을 잡아보자고 주장한다. 빚을 줄이는 데에는 총 4가지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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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소비를 줄이고, 둘째, 빚을 최대한 줄이고, 셋째,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며, 넷째 더 많은 돈을 정부가 찍어내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핵심은 이중 어느 하나도 그 자체로써는 충분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경기를 후퇴시키고, 빚의 감축 역시 소비감소로 이어져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부의 재분배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회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국가 내에 빈곤층과 부유층 간에 갈등이 생겨 히틀러와 같은 이가 탄생할 수도 있고, 세계적으로 기존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갈등이 심해져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마치 대공황 직후처럼 말이다. 마지막인 돈 찍어 내기 역시 하이퍼 인프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레이 달리오의 결론은 “이 4가지 정책을 위정자들이 조화롭게 사용할 때 ‘아름다운 디레버리징’이 이루어 질 수 있다”다. 4가지 정책을 균형 있게 추구하여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막자는 말이다. 그는 경기가 하강기에 돌입하면 첫 1~2년 정도는 엄청난 혼란이 찾아오겠지만, 세계경제가 늘 그래왔듯 7년 정도 지나면 서서히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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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분석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읽는 이 본인이 판단하시라. 다만, 그의 30분짜리 동영상은 세계에서 가장 큰돈을 움직인다는 헤지펀드 매니저가 아주 플레인한 영어로 현 상황을 진단하고, 대중과 소통하려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도 대폭락, 부의 재분배, 정치적 갈등과 같은 주제들을 건들면서 말이다. (사실 그의 대중과의 소통노력은 역시 매크로 트레이드로 레전드가 된 헤지펀드 매니져 ‘조지 소로스’를 연상시킨다. 차이가 있다면 레이 달리오는 아직 현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저성장 뒤에 찾아온 대폭락의 시대를 살아갈까? 만약 대폭락이 실현된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그리고 우리 세대는, 폭력과 혼란의 시기를 이겨내고 아름다운 디레버리징을 통해 연착륙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레이 달리오는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 우리가 이런 물음을 계속 떠올려보고, 생각과 고민을 통해 옳은 선택을 하길 바랐다. 함께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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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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