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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매 맞는 아이

 

옛날 옛적, 많은 왕국에서는 왕자를 때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왕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땐? 어쩔 수 없이 왕자를 대신해 매 맞는 아이를 데려왔다. 자기 대신 매 맞는 아이를 보면서 잘못을 뉘우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대신 매 맞는 아이를 영어로는 ‘whipping boy’, 한자로는 태동(笞童)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매 맞는 아이를 일컫는 용어가 여러 나라의 언어에도 있고, 성서까지도 등장하는 걸 보면 꽤 오래전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매 맞는 아이를 소재로 한 소설도 있는데, 영어로는 The Whipping Boy, 우리말로는 ‘왕자와 매 맞는 아이’라고 번역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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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은 그냥 ‘매 맞는 아이’인데 우리말 제목에 왜 ‘왕자’가 들어갔는지, 혹시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과 굳이 제목을 비슷하게 맞춘 건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내용을 잠깐 얘기하면,

 

어느 왕국에 버르장머리 없는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매 맞는 아이가 대신 맞았기 때문에 평생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매 맞는 아이가 대신 맞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그 아이에게 맞을 때 왜 울지 않냐며 따지기도 하는 정도로 개망나니였다. 그래서인지, 공부라는 것을 전혀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왕자는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셈도 할 줄 몰랐다.

 

매 맞는 아이는 원래 하수구에서 쥐를 잡아 팔던 아이였다. 매 맞는 아이는 궁에서 좋은 옷을 입고 생활을 하지만, 왕자를 대신하여 매 맞는 일을 하는 지금보다는 도시의 시궁창에서 쥐를 잡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궁에서 빠져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매 맞는 아이는 개망나니 왕자가 수업을 받을 때도 매맞을 때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글쓰기와 셈도 익혔다.

 

어느 날, 왕궁 생활이 지겨워진 왕자는 매 맞는 아이를 데리고 함께 궁에서 도망친다. 궁에서 빠져나온 왕자와 매 맞는 아이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게 되면서 결국에는 서로 친구가 되고 고생 끝에 궁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두가 해피하게...

 

라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이 소설은 얘기하고 있다.

 

 

2. 매품팔이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는 ‘형벌은 사대부에 미치지 못하고, 예는 서인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고 이에 따라 양반은 죄를 지어도 벌금 수준에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부패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관직에 오른 부패한 관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양반들에게, 특히 돈으로 신분을 산 양반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태형을 선고했다. 신체와 체면이 손상될 것을 두려워한 양반들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매를 맞아 줄 ‘매품팔이’가 필요했고, 당연히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해서 매를 맞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므로 이것을 허락하면서 부패한 관료들은 이득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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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관료들은 양반들로부터만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매질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세게 때릴 것인가도 때리는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매를 맞다 죽는 일도 자주 있었으니 매질하는 사람은 때리는 세기를 조절하여 매품팔이로부터도 돈을 뜯어냈다. 모두가 서로를 착취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착취당한 쪽은 늘 가장 힘없고 가난한 쪽이었다.

 

이것은 돈을 내고서라도 벌을 피하려는 부자, 돈을 받고 매를 맞을 정도의 가난뱅이,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고 눈감아주는 관료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즉, 경제적 양극화와 부패가 만연한 사회구조가 ‘매품팔이’라는 비상식적인 직업을 만들고 유지하는 원인이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도 흥부가 매품팔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산업화 시절, 천민자본주의적인 해석이 만연하던 시절에는 흥부를 능력도 없으면서 자식만 많이 낳은 게으름뱅이의 전형적인 인물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과연 흥부와 놀부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배분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흥부는 가족을 위해 날품팔이를 했는데 그것으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어려운 처지라 목숨을 걸고 매품팔이를 하기도 했던 점을 미뤄볼 때, 흥부는 범죄를 빼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목숨 걸고 가족을 위해 매까지 맞아야 했던 흥부에게 무능하다는 비판은 가능할지언정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다는 평가는 맞지 않는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서 결국 흥부의 삶을 바꿔 놓은 것은, 그가 날품팔이와 매품팔이를 하여 차곡차곡 모은 재산이 아닌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였다. 만약 흥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어떤 행운이 있지 않고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자신의 가족을 적절히 부양하기는커녕 하루하루를 근근이 생존해 나가야만 한다면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다. 가진 자는 죄를 지어도 자신의 부를 이용해 벌을 쉽게 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매를 대신 맞는 것이 직업으로 삼을 정도의 극심한 양극화, 그리고 그 사회구조를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부패한 관료집단의 문제인 것이다.

 

 

3. 아는 형

 

사학재단 동서학원의 설립자이며 민정당 국회의원 출신인 장성만의 아들이자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19세)은, 9월 7일 새벽 2시 40분에 자신의 시가 3억짜리 벤츠(AMG GT)를 몰고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오토바이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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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자의 손에 맡겨진 자동차는 더 이상 이동수단이 아닌 일종의 살인도구나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했던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은 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피해자에게 1천만 원을 주겠다며 합의를 시도했고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후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은 사고 발생 1~2시간 후 경찰에 출석해 자신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인정했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9103595Y)

 

보도에 따르면 음주운전 사고를 낸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은 ‘아는 형(27세)’에게 연락해 본인 대신 운전한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아는 형’은 자신이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며 허위진술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 ‘아는 형’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과 ‘친해서 도와주러 갔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고,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으로부터 허위진술에 대한 대가를 받기로 했는지,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과 통화를 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910_0000767385)

 

이후 보도에서는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의 변호인에 따르면 사건은 9월 10일 3,500만 원을 주고받는 것으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911/97376268/1)

 

나는 이 사건에서 그 ‘아는 형’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 27살의 ‘아는 형’은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 장용준(19세)과 도대체 얼마나 친하길래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각오하고 허위진술을 하려고 했던 걸까? 만약, 그가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 장용준 측으로부터 허위진술에 대한 대가를 받기로 했다면, 그는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해 벌을 받기로 한 것이므로 그의 행위는 분명 현대판 ‘매품팔이’인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장제원의 아들 장용준은 사고 발생 1~2시간 후에 나타나 자신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아는 형’은 사고가 발생한 그 새벽에 연락을 받았고 사고 발생 1~2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하여 경찰에게 자신이 사고를 냈다는 허위진술을 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장제원의 아들 장용준이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낼지 예측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사고 발생 후 1~2시간 이내에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게다가 만약 자유한국당 장제원의 아들 장용준 측으로부터 허위진술의 대가를 받기로 했다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해주겠다거나 얼마를 주겠다는 등의 협상을 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 보인다.

 

따라서, 나는 적어도 그 ‘아는 형’은 이런 사건이 벌어질 것에 대해 미리 ‘매품팔이’를 하기로 누군가와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았을지 의심스럽다. 또한, 그 새벽에 사고 현장에 나타나려면 현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했어야 하는데, 혹시 사고가 부산에서 났어도 그 ‘아는 형’이 나타났을까? 혹시 이러한 매품팔이 조직이 전국적인 체인이 있고 최상류층만을 고객으로 하여 미리 계약해 두고 필요할 때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닐까?

 

그 ‘아는 형’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27살 나이에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쓰고 전과자가 될 위험을 감수하려고 한 것일까? 그는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자신을 바친 예수인가?

 

그 ‘아는 형’이 진짜로 ‘아는 동생’을 위해 자신의 인생에 빨간 줄 하나 정도 생기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로 대범하고 의리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대가를 받고 처벌을 대신 받기로 했다면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어떻게 해서도 삶이 나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품팔이까지 해야 할 정도로 자포자기한 27살 청년일지도 모르겠다.

 

 

4. 기계에 대한 분노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에 관해 지난 한 달여 간 자유한국당-언론-검찰 동맹으로부터 제기된 여러 의혹이 있었고 이에 대해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항의 집회가 있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명문대학을 입학한 많은 학생이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만 같은 스펙에 대해 '박탈감'을 느꼈다는 것이 집회의 이유였다.

 

이후 검찰이 조국 장관의 부인을 ‘표창장 위조’ 혐의로 조사 없이 기소한 후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을 임명하자, 연세대 학생들도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16일에 집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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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대한민국 명문대학의 상징인 SKY, 즉 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은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자유한국당-언론-검찰 동맹의 의혹 제기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입시 제도를 보면, 정규교과목 이외에도 다른 많은 활동을 해야 하고 그것들을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제도를 통과하는 지금의 20대는 아마도 사교육을 포함해 가장 많은 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는 세대일 것이다. 대학 입시에 필요한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부모의 청탁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권력자의 자식만 할 수 있었고 청탁을 들어준 사람이 이득을 얻었다면 그것은 특혜가 분명하고 그에 대해서는 박탈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 학교에 다녔다면 다른 학생도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을 남이 했으니 그것을 죄다 특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박탈감을 느낀다면 할 수 없는 거고.

 

누군가는 사회가 발전하려면, 20대는 분노하고 3~40대는 지지해주고 5~60대는 물러서서 지켜봐줘야 한다고 했다. 사회에 대한 20대의 불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고, 어느 시기든 20대는 개새끼 취급을 당했는데, 모두가 그렇게 20대 개새끼 시절을 거치며 나이 먹고 꼰대가 되는 거다.

 

그런데, 지금의 20대가 같은 20대인 ‘아는 형’이 매품팔이를 해야만 하는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분노하는 대신 자신들이 겪어 온 그 좁은 세상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인 장용준(19세)이 음주운전 사고를 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자신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며 대신 벌 받을 사람을 부르는 현실에는 분노하지 않고, 조국 장관의 딸이 실제로 했던 봉사활동에 대해 표창장 받은 것에 대해서만 박탈감을 느낀다면, 이 시스템의 현실적인 지배계층에는 분노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쟁자에게만 분노한다면, 지금의 20대는 역대 20대 개새끼 중에 가장 생각없는 개새끼로, 가장 빠르게 꼰대가 된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게 옳든 그르든 자신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시위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앞으로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가질 자리에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은 대한민국 명문대의 20대 학생들이 자신들만의 박탈감에만 몰두한 나머지, ‘매 맞는 아이’ 또는 ‘매품팔이’가 나타날 정도로 양극화되고 부패한 이 사회의 구조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 20대 학생들이 이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겠다고 분노한다면 찬성하고 지지하겠다. 이 고장 난 기계를, 이렇게 고장 나게 만드는데 한 삽씩 거들었던 꼰대들이 수리하진 않을 테니까.

 

 

P.S.

 

이 글은 이 범죄사건의 죄질이나 규모에 비해 경찰이나 언론이 너무 조용히 지나가서 쓴 글이다.

 

<경찰 "장제원 아들, 중대사고 아니어서 체포 안해"(종합)> https://news.v.daum.net/v/20190909134755333

 

<장제원 부인, 아들 장용준 음주운전 후 "큰 일난다..덮어달라" 요구> https://news.v.daum.net/v/20190909214609805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떠오르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의 명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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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사람들이 그것이 있다고 믿는 곳에 있다

 

지금 이 나라의 법적인 행정권력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야당은 야당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다들 권력이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는 나라의 권력이 법에서 정한 곳에 실제로 존재하고, 법에 따라 행사될 때 법치주의 국가가 되는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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