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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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샀다고 끝이 아니었다. 사실 총을 ‘완전히’ 산 게 아니었다. 개별 사이트에서 총을 낙찰 받는 건 개인의 자유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온라인상에서 산 총을 오프라인으로 들고 나오는 게 문제였다.
총을 산 '황영호'는 미국 시민권자지만 총기 소유 라이선스가 없었다. (미국은 각 주 마다 총기 소유에 대한 규칙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 19세엔 ‘장총’을 살 수 있고 21세에는 ‘권총’을 살 수 있는 나라라고 하지만, 총을 휴대하는 방법은 각 주마다 다르다)
총기 소유 라이선스도 필요하고 개별 총기에 대한 라이선스도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총기 거래를 담당할 딜러가 필요했다. 총을 만져 본 적도, 총에 대해 관심도 없었던 이에게 이 서류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소유자를 설득하는 게 일이었어.”
영호 형님의 소회였다. 서류를 준비하고, 딜러를 확보하는 동안에 총기 판매자를 설득하는 게 일이었다.
“절차를 밟는 와중에 원 소유자가 거래를 파기 할 수 있었거든... 유찰시켜 버리면 골치 아파지잖아.”
“어떻게 했어요?”
“안중근과 M1900에 대한 사연을 편지에 써서 날렸지. 우리 민족에게 이 총이 이런 의미다. 상태가 괜찮은 M1900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현재 내가 총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시간을 조금만 주면 내가 행정 절차를 다 밟고 구매하겠다...”
“뭐래요?”
“미국인, 아니, 서구권 사람들의 감정체계에서 제일 놀라운 대목이 여기야. 가끔 부럽기도 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는데... 미술품이나 유물에 대해서 사연이나 문화, 스토리 등에 감정이입을 하고 그걸 존중해준다는 거야. 우리 상황을 다 설명하니까 판매자도 납득했어. 그동안 화도 났고, 짜증도 났지만 그간의 사정을 다 이해하게 됐다. 자기가 최대 한 달 정도 시간을 줄 테니 그 사이에 행정절차를 다 밟아라. 이 총이 그런 의미로 쓰인다면, 나도 영광이라고.”
“오... 감동이네요.”
“감동이지. 아마, 아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쪽도 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대충 내가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해서 그 정도 기한을 정했으니까.”
0.
감히 말하건대, 대한민국은 총기 청정국이다.
‘민간인’이 총기를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약 30여 개다(이를 편의상 총기 합법국가라고 칭한다). 이 나라들 중 총기를 가장 손쉽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어딜까? <뉴욕타임스>의 16개국을 대상으로 한 총기현황에 대한 분석기사에 따르면 ‘예멘’이다. 전체적인 물량은 미국에 뒤지지만 인구비례로 따지면 미국을 압도적으로 제친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예멘 인구 1인당 평균 3자루의 총을 소유한 걸로 나와 있다)
총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개인의 권리, 자위권 등), 정당성을 말하는 것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사정과 환경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걸 총기 규제국가 사람인 내가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일 거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총이 있는 곳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총기 자유국가 중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나라가 어디일까? 거의 대부분 ‘미국’을 꼽을 것이다. 한 해에 총으로 인한 사망자가 35,000여 명이 넘고 잊을만 하면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는 곳이다.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CDC)가 2012년~2016년 총기에 의한 사망자 숫자를 조사했는데, 총기에 의한 살인사건 사망자는 매년 약 13,000명 정도였다. 총기에 의한 살인사건과 자살자를 더하면 약 35,000명이 매년 죽는다. 인구 10만 명 당 사망자 숫자가 10.54명인 나라다.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높아 보이지만, 다른 나라에 비한다면 미국은 양반이다.
엘살바도르의 경우는 인구 10만 명 당 43.11명이 총에 의해 사망했다. 그 뒤를 쫓아가는 베네수엘라는 10만 명 당 42.15명이 사망했다.
정치가 불안한 중남미의 경우 총기에 의한 사망 사고 비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뿐만이 아니라 과테말라, 온두라스, 콜롬비아, 브라질 등등 중남미 국가의 인구 10만 명당 총기 사망률을 보면 기본 20명이 넘는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미국의 총기 사건사고가 많은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중남미 국가의 총기 사고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렇지 미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건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아시아권에서는 총기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아니다.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독립투쟁 할 당시 선반이나 공작기계를 밀림으로 끌고 가 밀조총을 만들던 게 필리핀이다.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고, 밀조총을 만드는 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덕분에 지금도 총이 넘쳐난다. 이슬람 반군과의 전투, 총기 자유화 국가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지면서 필리핀에서는 총기 사건사고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한인들을 상대로 한 총기 범죄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필리핀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리조트 같은 곳에서는 출입 시마다 기본으로 차량을 수색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감히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총기 청정국가다. 밀수된 총기들이 어딘가에 있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사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의 총기사고라 할 수 있는 것들은 군인과 경찰의 총기사고 아니면, 수렵용 엽총을 들고 나온 경우가 고작이다. 미국과 같은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기 어렵다.
2019년 기준으로 전세계적으로 총기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유럽에선 이미 2017년부터 총기규제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반자동 총기 소유를 금지시킨 것 뿐만 아니라, 총기 핵심부품에 모두 일련번호를 부여하려고 한다.
“유럽에서도 민간인이 총을 살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인구 100명당 독일은 32자루, 오스트리아는 30.4자루가 보유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인구 850만의 작은 나라인 스위스도 인구 100명당 24.35자루가 보급돼 있다.
이들의 총기 사망자는 압도적으로 적다. 인구 10만 명 당 총기 사망자 숫자를 보면, 스위스가 3.01명, 오스트리아 2.9명, 프랑스 2.65명, 독일이 1.01명이다. 이유가 뭘까? 스위스는 총기 구매 시 총기 구매자의 정보가 당국에 등록된다. 사냥이나 스포츠용 총은 면허가 필요하지 않지만, 권총은 면허가 필요하다. 이 면허도 최대 9개월만 유효하다. 공공장소에 총을 운반하려면 시험을 봐서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총기 자유국가들의 경우 위력이 강한 소총보다는 은닉휴대가 강한 권총에 대한 규제를 더 까다롭게 한다)
1.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국내로 ‘배송’ 하는 거였다. 총을 들여오기 위해 거의 반년 가까이를 씨름했다.
그동안 타전한 배송방법만 6개였다. 방법이 하나씩 무산될 때마다 짙은 한숨과 함께 주문처럼 이 한 마디를 외웠다.
“이렇게 규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총기 안전 국가가 된 거야.”
정말 주문처럼 외웠다. 군사학을 공부한 이들이 전쟁에 반대하고, 총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총기규제를 말하는 것처럼 타이트하게 짜여 있는 ‘총기규제’ 법망을 보며 우리가 이렇게 안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맨 처음 떠올린 배송 방법은 국제 배송업체였다.
국내에 총기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경찰청장 직인이 찍혀 있는 수입 필증이 필요하다. 이걸 어떻게 받을까 생각하다가 전쟁기념관의 협조가 떠올랐다. 국내에서 총기를 가장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우리의 취지에도 가장 부합하는 곳이 전쟁기념관이었다. 어차피 전쟁기념관에 기증할 것이라면 수입필증도 넘기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론도 그렇게 났다.
전쟁기념관에 찾아갔다.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은 있었다. <안중근 기념관>의 소개와 보증이 있었다.
“M1900 1자루를 전쟁기념관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말한 우리도 내심 황당했다. 총기 청정국가에서 민간인이 미국에서 총을 구매해서 한국의 기념관에 기증을 하겠다니... 업계 관계자들에게 들은 전언에 따르면,
“전쟁기념관 역사상 처음일 거다. 전쟁기념관 전시품 대부분이 우리나라 군대나 경찰의 도태 장비를 넘겨받는 것이거나, UN 참전국들에게 넘겨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리 유물이라고 해도, 민간인이 총을 들여와서 기증한다니...”
“UN참전국들 장비나 유물은 어떤 식으로 전달 받나요?”
“소화기(小火器, 개인용 화기)?”
“그렇죠. 권총류 같은 경우에는...”
“작은 물품인 경우에는 외교행낭을 활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외교행낭?!”
약 1분간 고민한 뒤,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연락하고, 자료를 찾았다.
외교행낭, 기업행낭까지 별별 방법을 다 찾아봤지만 나온 결과는 단순했다.
“불가능하다.”
외교부와 접촉해야 하는 것은 물론 행정소요도 어마어마했다. 국가의 공적인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건 그에 부합할만한 공익성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이게 공익성이 있는가?”
“있다.”
“이걸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있을, 걸?”
“설득할 시간이 있는가?”
“아니”
총은 미국에 있고, 10월 26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필자 주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2020년 3월 공개 예정입니다. 펀딩 목표 금액 1천만원으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얼빈 의거 장면을 촬영하려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격장면 재현을 위한 물적 토대는 크게 3가지로, M1900 권총과 32ACP 탄, 그리고 발리스틱 젤라틴입니다. 총은 미국 총기 옥션에서 낙찰받아 현재 배송 프로세스를 밟는 중입니다. 펀딩은 32ACP 탄과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십자가 흠집’이 있는 탄의 위력 실험을 위한 발리스틱 젤라틴 구매 비용,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기자재 대여와 인건비로 사용 예정입니다.
총기 사격 실험에 고속촬영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고속촬영을 위한 조명 세팅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110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어떤 악조건 속에서 의거에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는지를 실물 총을 가지고 실험할 예정입니다.
현재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국내 재현 사격을 추진중이며, 만약 국내사격이 여건상 어렵다면 미국 현지에 섭외한 사격장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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