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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

 

입덧 땜에 기력이 음슴으로 음슴체로 가겠음

 

 

 

 

 

결혼한 지 1년 정도 되자, 슬슬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내 직업은 개인사업인데 일단 아이를 가지면 임신과 육아 초반엔 사업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커리어와 돈, 그리고 아이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음. 

 

나름 이 바닥에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손님이 많았고 대기 손님도 많았음. 돈을 더 벌고 커리어를 쌓고 싶었지만,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라 더 늦으면 건강과 체력 염려도 되고, 아이에게도 많이 미안할 것 같았음. 그래서 일단 남편을 덮쳤음(어?)

 

그 무렵에 남편과 칠렐레 팔렐레 가을 여행 다니고 맛집 다니다 보니 체중이 좀 늘어서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고

스피닝 자전거를 사서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있었음. 나름 건강 챙기다 보면 건강한 임신과 분만을 할 수 있겠지... 하는 내 멋대로의 생각이었음.

 

어느덧 생리를 할 때가 되었는데 생리증후군만 있고 (가슴이 단단하게 커지고, 아프고, 아랫배가 묵직해지고 통증 있음) 시작을 안 하는 거임. 혹시나 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해봄. 두 줄이 쫙 뜸! 너무 놀라고 감동해서 막 눈물이 났음.

다음날 남편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줬음.

 

남편이 꼭 끌어안아 줬는데 남편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거임. 울고 있었음. 그렇게 우리 부부는 '남들 다 하는 임신' 과정을 거치고 애 낳고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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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상도임

 

우리가 그냥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대충 보고 듣고, 성교육 시간에 알게 되는 임신 과정은 이런거임.

  •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을 하고 수정란이 착상해서 자궁에서 자라다가 열달되면 태어난다
  • 임신 초반에 입덧을 하는데, 가만히 잘 있다가 갑자기 우욱하고 우아하게 변기 잡고 웩웩 몇 번 한다. 보통 입덧으로 임신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 만삭쯤에 아이가 뱃속에서 태동하면 발로 배를 콕콕 차는 게 느껴지고 남편과 같이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하게 하하호호 웃는다
  • 분만 시에 진통이 어마어마하게 아프다. 골반뼈를 부수고 똥꼬를 찢으며 수박이 나오는 느낌.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임신의 전부였음. 

그냥 임신하면 대충 몸조심하고 날 거 먹지 말고 그러면 될 줄 알았음.

 

일단 임신 확인했던 시기엔 병원 가도 아기집(자궁에 배아가 자리 잡은 방)이 안 보인다길래 일주일을 기다렸음. 그사이에 남편과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몸조심하고 맛있는 거 실컷 먹었음. 일주일 뒤에 병원에 갔음. 초음파기계로 검사를 했음.

 

아기집이 없었음...

심장이 덜컥함.

 

이 경우엔 평소 알던 지식수준으로 두 가지를 예상할 수 있음.

아직 극초기여서 아기집이 안 생겼다거나, 아니면 자궁 외 임신임.

 

아기집이 안 생긴 거라면 며칠 후에 와서 볼 수 있지만 자궁외임신이라면 수정란이 나팔관에 착상을 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함.

 

최근 의술로는 초반엔 항암제 주사를 맞고 착상된 배아를 말려서 배출되게 할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는 경우엔 수술을 통해 나팔관을 절단해야 함. 여성에게 나팔관이 두개이기에 하나가 절단되어도 다른 쪽에서 배란이 일어나 임신은 가능함.

난 딱 그것까지만 예상했음.

 

아직 극초반인가보다... 배란이 며칠 늦어졌다거나 착상이 늦어져서 그럴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임신 호르몬 확인차 피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옴. 마음이 편치 않아 누워있었음.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랫배와 회음부에 극심한 통증과 함께 피를 쏟기 시작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으로 심하게 얼굴이 일그러지며 소리를 지름. 너무 아팠고 칼에라도 찔린 것마냥 쏟아지는 피에 패닉이 왔음.

 

남편과 얼른 병원으로 달려감.

병원에서 '화학적 유산'이라는 설명을 해줬음.

 

임신은 맞는데, 배아의 수정과정에서 염색체 이상이 생겨서 착상에 문제가 생겨 자궁 내막이 임신을 중단시키기 위해 무너져 내리는 거라고 함.

 

검사하는 동안 굴욕 의자 밑으로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피를 흘리고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음. 펑펑 울면서 초음파실을 나오자 남편도 하얗게 질려서 덜덜 떨면서 울고 있었음. 나이가 내일모레 마흔 되는 서른 중반의 다 큰 성인들이지만... 임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던 우리 부부였음...

 

그렇게 첫아이를 보냈음.

 

열흘 동안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고, 통증도 평소 생리통의 몇 배가 되어서 입에 수건을 물고 있어야 했음.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고 같이 힘들어해 줬던 것이 참 많은 힘이 되었음. (임신 관련 카페에서는 화학적 유산을 생리가 늦어진 거다~ 계류유산보다 안전하고 금방 임신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자며 서로를 위로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음)

 

나이를 먹은 만큼, 내 몸은 20대와 같지 않고 필요한 영양소도 다를 텐데 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음.

그때부터 종합영양제, 엽산, 철분제(빈혈이 있어서), 비타민D 등을 챙겨 먹고 남편도 함께 영양제와 엽산을 먹기 시작함(건강한 정자 생성을 위해 엽산이 매우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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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초음파사진과 함께 임신을 밝히려고 했던 거라서... 다행히 알리기 전이었으니 유산 소식 또한 말씀드리지 않았음.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임신했다고 자랑했었고... 다들 기뻐하며 아이 배냇저고리까지 보내준 친구들도 있어서... 유산 소식 알리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음.

 

그렇게 우리 부부는 한걸음 어른이 된 기분으로 서로 잘 다독이며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함.

그리고 새해를 시작하는 날... 나는 남편을 덮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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