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물과 기름을 한 통에?

 

1.jpg

 

해체팀과 정리팀은 일종의 세트 메뉴다. 그날그날 작업장도 다르고, 반장도 각각 있다. 그럼에도 일의 특성상 서로 엮일 수밖에 없다 보니, 대체로 하도급 업체는 같다. 해체팀 인부나 정리팀 인부나 한 사람한테서 월급 받는다는 얘기다. 하도급 업체가 같아, 보통 출퇴근도 같이하고, 점심도 같은 식당에서 먹는다. 심지어는 TBM(tool box meeting, 공정별 반장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그날 할 일과 위험요소 등을 점검하는 조회)도 같이 한다. 서로 간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TBM 할 때 보면 해체팀 열댓 명, 정리팀 열댓 명, 대략 서른 명이 둥글게 모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난 가끔 웃음이 났다. 뭐랄까. 물과 기름이 한 통에 담겨있는 걸 목격한 기분이랄까.

 

앞서 설명한 여러 이유로, 현장에서도 통상 해체·정리팀이라고 묶어 부른다. 하지만 하는 일만 놓고 보면 해체팀과 정리팀의 작업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니, 양극단의 작업을 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려면, 건축 공정 얘기를 또 살짝 안 할 수 없다.

 

다른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얼음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 얼음 트레이에 물을 붓고 기다리면 얼음이 되는 것처럼, 목수가 거푸집(=얼음 트레이)을 제작하고, 거기에 콘크리트(=물)를 붓고, 굳으면 거푸집을 해체한다. 그러면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짠’ 하고 나온다.

 

참고로, 거푸집은 천 조각을 한 장 한 장 누벼 옷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 가로 세로 1m 안팎의 직사각형 나무합판(정식 명칭은 유로폼이다)을 핀(정식 명칭은 웨지핀, 또는 외지핀으로 손가락만 한 쇳조각이다)으로 고정해가면서 한 장 한 장 짜 맞춘다. 마치 실과 바늘로 천 조각을 한 장 한 장 누비듯이. 그게 거푸집이다.

 

해체·정리팀 일은 한마디로 그 거푸집을 해체하고 정리하는 거다. 거푸집을 해체해야 비로소 건물이 되는 거니까 해체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그걸 왜 정리하냐. 쉽게 생각해, 거푸집 제작에 활용하는 자재는 ‘재료(material)’ 개념이 아니라, 도구(tool)' 개념이다. 이것도 얼음 트레이를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얼음 트레이로 얼음 한 번 얼렸다고 버리지 않듯, 거푸집 제작에 활용하는 자재 대부분도 다시 쓴다. 해서, 거푸집을 해체한 후에는 다음 작업장에서 쓸 수 있게, 말하자면 지게차나 타워 크레인이 떠갈 수 있게 잘 정리해놔야 하는 거다.

 

20170512 - 지하2층 거푸집 해체 및 지하1층 거푸집설치 01.jpg

이미지 출처 - 링크

 

 

부시맨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타설 후, 콘크리트가 굳으면 해체팀이 투입된다. 바닥 거푸집이냐, 벽체 거푸집이냐, 또 여름이냐, 겨울이냐에 따라 다른데 보통 3~7일쯤 지나면 해체하는 것 같다.

 

해체팀은 무식해 보일 정도로 크고 튼튼해 보이는 빠루(생긴 게 노루발처럼 생긴 연장이다. 지렛대 원리로 못을 뽑거나 무언가를 뜯어낼 때 쓴다. 일본어 バール[빠아르]에서 파생)와 대가리가 작은 망치를 들고 다닌다. 우선, 한 사람이 작은 망치로 유로폼과 유로폼 사이에 고정해 놓은 핀을 톡톡 치면서 빼내고 다닌다. 망치 대가리가 작아야 핀을 빼기 쉽단다. 선두가 핀을 빼고 나면 나머지 인부들이 빠루로 유로폼을 뜯어낸다. 콘크리트가 엉겨 붙어 있어, 대체로 잘 안 뜯어진다. 그런 경우, 각도를 달리해 이렇게 저렇게 뜯어내는데, 그래도 안 떨어질 때는 발로 걷어차기도 하고, 빠루로 후려치기도 한다. 그렇게 사정없이 거푸집을 해체한다.

 

얼핏 봐도 느껴지듯, 해체팀 작업은 늘 위험하다. 어두컴컴한 데다가, 여기저기서 유로폼을 뜯어내기 때문에 언제 어디로 유로폼이 떨어질지 모른다. 더욱이 그렇게 털어낸 유로폼, 못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각재와 합판, 그밖에 각종 자재가 사방팔방 널브러져 있다. 걸려 넘어지거나 못에 찔리기 십상이다. 그런 까닭에, 해체팀 작업장은 안전띠를 둘러 출입을 통제한다. 그렇게 위험한데도 해체팀 인부들은 절대 안 다친단다. 언젠가 해체팀 반장한테 물으니 별거 아니라는 듯 이렇게 답했다.

 

“내가 해체하는 거니까. 해체하는 사람은 저 유로폼이 어디서 어디로 떨어질지 알아. 그리고 바닥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그 나름의 질서가 있거든. 해체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그 질서를 인지하는 거지. 그러니까 다칠 일이 없어.”

 

이게 웬 인생의 아이러니. 해체팀 반장과 이야기를 나눈 며칠 뒤, 해체꾼이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었다. 들어보니, 갑자기 떨어진 유로폼에 손등이 찍혀 뼈가 으스러졌다고 한다. 이 세상에 절대란 없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해체팀 작업의 또 다른 어려움은 열기다. 참고로 말하자면, 콘크리트는 뜨겁다. 뜨거운 건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으니 잘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빠른 양생(養生)을 위해 뜨거운 물로 콘크리트를 섞는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매우 뜨겁다. 여름에 콘크리트 부은 거푸집 주변에 가면 찜질방이 따로 없다. 그 열기는 2~3일이 지나도 잘 안 식는다. 해서, 해체팀 인부들은 여름에 팬티만 입고 작업할 때도 있단다.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같이 상상해보자. 팬티만 입고, 무식하게 크고 튼튼해 보이는 빠루를 들고 선 해체꾼 모습을 말이다. 부시맨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M0050043_PDVD_001[H800-].jpg

 

 

척척, 착착, 싹싹 효과음이 귓가에 맴돈다

 

해체팀이 휩쓸고 간 작업장은 한마디로 폐허다. 사방팔방 널브러진 자재, 고철, 콘크리트 부스러기까지. 그 폐허로 입장하는 건 정리팀이다. 정리팀의 주된 연장은 가따(철사 자를 때 쓰는 연장. 영어 Cutter에서 파생)와 시노(30cm 정도 쇠막대로 끝이 가늘고 약간 구부러져 있다. 철사 조일 때 쓰는 연장)다.

 

정리팀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방팔방 널브러진 자재를 양옆으로 치우면서 길을 트는 거다. 손수레나 밀바(세로로 기다랗게 생겨 작은 바퀴가 두 개 달린 손수레. 동네슈퍼에 가면 꼭 있다)를 끌고 다니면서 자재를 나르든, 인부들이 일렬로 쭉 서서 받아치기를 하든, 우선 길을 터야 작업이 편하다.

 

길을 트고 나면 각종 자재를 작업장 밖으로 쭉쭉 빼낸다. 빼내서 바로 쌓는 게 아니라, 우선은 밖으로 빼내 종류별로 세워 놓는다. 그와 동시에 두어 사람은 자재 종류에 맞게, 각재로 다이(받침이라는 뜻으로, 일본어 だい[다이]에서 파생)를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빼낸 자재를 종류별로 다이에 쌓는다.

 

유로폼만 해도 사이즈가 다양하고, 각파이프, 원형파이프, 각재 등도 길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걸 일일이 분류해 쌓는 거다. 그렇게 한 다이를 다 쌓으면 굵은 철사로 꽉 조인다. 지게차나 타워 크레인이 뜰 때 쉽게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재를 어느 정도 빼내면 몇 사람이 플라스틱 삽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를 싹싹 긁어모은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이른바 ‘핀 아줌마’다. 정리팀 홍일점이다. 핀 아줌마는 그 잡동사니에서 고철, 부속 자재, 핀 등 돈 될 것들을 골라내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핀 줍는 게 핵심 역할이다. 그래서 핀 아줌마라 부른다.

 

거푸집 하나 털고 나면 바닥에 흩어진 핀이 상당하다. 유로폼 핀 한 자루에 25,000원가량이다. 종일 줍고 다니면 열 자루는 거뜬히 줍는다. 밥값은 충분히 하는 거다. 그렇게 바닥까지 싹 긁어내면 정리팀 작업도 끝이다.

 

37786570.jpg

 

해체팀도 해체팀 나름의 작업 질서가 있겠지만, 정리팀은 그 어느 팀보다도 질서정연하다. 정리팀 작업을 보고 있으면 “척척”, “착착”, “싹싹” 하는 효과음이 귓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이처럼 해체팀과 정리팀은 그 모든 것이 극과 극이다. 직업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직업이냐에 따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가. TBM 할 때 아무리 많은 해체·정리팀 인부가 섞여 있어도, 나는 어쩐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해체꾼인지, 누가 정리꾼인지 말이다. 장수처럼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해체꾼, 선비처럼 얌전하고 꼼꼼하게 생겼으면 정리꾼!

 

그게 재밌었다. 한 팀이라고 능청스럽게(?) 모여 있긴 한데, 누가 봐도 두 팀이 한 데 모여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