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①

『어려서부터 사냥이 좋아 언제나 사냥꾼을 따라다녔다. 장성해서는 총을 메고 산에 올라 짐승들을 사냥하느라고 학문에 힘쓰지 않아 부모와 교사들이 크게 꾸짖기도 했으나 끝내 따르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이 타이르기를,

 

“너의 아버지는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는데 너는 어째서 무식한 하등인이 되려고 자처하는 것이냐?”

 

“너희들 말도 옳다. 그러나 내 말도 좀 들어보아라. 옛날 초패왕 항우가 말하기를 ‘글은 이름자나 적을 줄 알면 그만이다.’라고 했는데, 만고 영웅 초패왕의 명예가 오히려 천추에 남아 전한다. 나도 학문으로 이름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너희들도 장부요. 나도 장부다. 너희들은 다시는 나를 설득하지 마라.”』

 

②

『그때 내 나이 17, 8세의 젊은 나이로 기골이 장대하여 무슨 일이든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특성으로 평생 즐겨 하는 일이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친구와 의(義)를 맺는 것이요.

둘째는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요

셋째는 총으로 사냥하는 것이요

넷째는 날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

 

③

『하루는 동지 6, 7인과 노루 사냥을 하는데 탄환이 총구멍에 걸려 빼낼 수도 없고 들이밀 수도 없어 쇠꼬챙이로 마구 쑤셨더니 “쾅”하는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살았는지 죽었는지 정신을 잃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탄환이 폭발하여 쇠꼬챙이는 탄환과 함께 내 오른손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갔고 나는 곧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 안중근 의사 옥중 자서전 中 발췌

 

 

안중근 의사의 청년 시절의 모습이다. 남자다움이 넘쳐나는, 무협지에 나오는 협객 혹은 대장부의 모습이랄까?

 

이 기록들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총'

 

총을 메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것이 안중근 의사의 일상이었다. 주변에서 안중근을 말리던 이들은 하나 같이 이런 말을 했다.

 

“총을 버리고, 학문에 힘써라.”

 

그러나 안중근은 이 충고를 거절했다. 자신의 성정(性情)을 이미 알아버린 거였다. 그는 말을 타고, 총을 쏘며, 뜻 맞는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원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았다. 안중근의 삶에서 총을 뺀다면, 그의 인생은 상당히 심심했을 거다.

 

그는 총과 친했고, 총을 사랑했으며, 총을 잘 쐈다. 그러나 증언만 있을 뿐 실제로 그가 얼마나 총을 잘 쐈는지를 알 수는 없다.

 

 

 

0.

총을 구했을 때 미국 쪽 딜러에게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시사(試射 : 시험사격)를 해야 한다.”

 

“물론이다. 내가 안전을 보증했지만, 시사는 필요하다. 곧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할 거다.”

 

“장약을 덜어낸 약장탄으로 사격했으면 좋겠다.”

 

“여러 탄종을 다 써보겠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핫로드(Hot load : 장약을 더 넣어 위력을 강하게 만든 탄)탄을 써도 될 거 같다. 시험해 보고 말하겠다.”

 

“오케이 고맙다. 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부탁하겠다.”

 

“뭔가?”

 

“한 번도 권총을 쏴보지 못한 아마추어에게 총을 쏘게 해줄 수 있나?”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아마추어가 반동을 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실총을 찾아 헤매던 상황에서 우리는 인터넷에 떠도는 설계도를 기반으로 M1900을 3D 프린터로 뽑아냈다.

 

“말 그대로 포켓 피스톨(Pocket Pistol)이네.”

 

“이거 한 손 사격밖에 되지 않겠는데?”

 

“32구경이니까 반동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거야.”

 

3D 프린터로 뽑은 M1900 모형총을 들고 전직 권총 사격선수를 찾아갔다. 학창 시절 엘리트 사격선수 코스를 밟았고, 특수부대 지원자들의 사격 코치를 했던 인물이다. 그에게 M1900과 안중근의 사격자세에 대해 사전질의를 했었다.

 

 

 

“이게 M1900과 같은 크기의 모형이다. 어떤가? 그립이 나오겠는가?”

 

“한 손 밖에 나오지 않을 거 같다. 억지로 양손을 잡는 게 더 이상할 거 같다.”

 

“원래 사격 자세의 핵심은 반동을 어떻게 받느냐의 승부 아닌가?”

 

“많이 중요하긴 하다. 반동을 몸으로 어떻게 받냐에 따라 정확도가 달라진다. 사격 선수들도 반동을 몸으로 받는 훈련을 중점적으로 한다.”

 

“한 손으로 반동을 받는다면,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웃음) 요즘 영상매체들 덕분에 권총은 양손으로 파지하고 쏘는 걸로 아는데, 양손으로 잡고 쏘는 건 2차대전 이후 전술사격이 보편화되면서 부터다.”

 

“무슨 소리인가?”

 

“슬라이드가 장착된 자동권총에 대형탄창이 결합되면서 사격법도 바뀌게 됐다. 근접 전투를 벌일 때 빠르게 쏘는 속사가 기본 전술이 됐다.”

 

“미국 경찰들이 범인 제압할 때 탄창이 빌 때까지 쏘는 걸 봤다.”

 

“그렇다. 정확성 보다는 조준점을 빨리 움직이고, 빨리 쏘는 게 중요하게 됐다. 이러다 보니 총의 반동을 효과적으로 받아내는 게 중요하게 됐다. 위버스탠스 같은 자세가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보자가 보기엔 총을 양손으로 잡고 쏘는 게, 한 손으로 잡고 쏘는 것 보다 훨씬 더 정확할 거 같다.”

 

“서부시대 총잡이들은 한 손으로 총을 쐈다.”

 

“그렇다. 한 손으로 쏴도 정확하다는 건가?”

 

“안중근 의사가 한 손으로 사격을 해서 사격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손으로 쏴서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사격 선수들이 대회에 나갈 때 한 손으로 쏘는 걸 봤나?”

 

“올림픽 대회를 중계하는 걸 봤다.”

 

“기억을 떠올려 보라. 한 손을 최대한 뻗어서 쏜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총을 표적지랑 최대한 가까이 붙이기 위해서?”

 

“......”

 

“농담이다.”

 

“한 손 사격이 양손 사격에 비해서 반동을 받아내기 힘들다는 건 인정한다. 현대 전술환경처럼 조준점을 빨리 바꿔가며 총을 난사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러나 한손 사격만의 장점이 있다. 당신이 건네준 안중근 의사의 사격절차와 사격연습에 관한 글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중근 의사는 최적의 사격자세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거다.”

 

“한 손 사격이 가장 적합한 자세란 건가? 총의 반동을 어떻게 받아내는가?”

 

“32구경 탄은 사격선수들도 쓴다. 44구경처럼 반동이 크지 않다. 체구가 작은 여성들도 충분히 반동을 받아낼 수 있을 거다. 다 떠나서 한 손 사격 자세는 정확한 조준을 위해서는 최고의 선택이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일치시켜 조준선 정렬을 한다. 조준선이 몸에서 떨어질수록 더 작게 보일 거다. 조준선은 작게 보이겠지만, 표적은 그대로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더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다.”

 

“당신 말을 종합해 보면, 안중근 의사의 사격법이 가장 정확한 사격법이란 건가?”

 

“내가 안중근 의사의 상황이었다면, 한 손으로 쐈을 거다.”

 

 

인터뷰 결과를 확인 한 후 미국에 있는 딜러에게 연락을 했다.

 

“시사(試射 : 시험사격)할 때 반동이 어떤지 좀 알려주세요.”

 

며칠 뒤 시사의 결과가 나왔다.

 

“이거 반동이 거의 없던데? 다른 권총은 튀는 느낌이 드는데, 이건 (반동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어.”

 

안중근 의사의 한 손 사격에 관한 의문이 풀렸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느낀 게 아니라, 몰라서 의문 자체를 가지지 못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하나둘 꺼내놓고 퍼즐을 맞춰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안중근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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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2020년 3월 공개 예정입니다. 펀딩 목표 금액 1천만원으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얼빈 의거 장면을 촬영하려 합니다. 

 

프로젝트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펀딩(링크) 

 

안중근 의사의 사격장면 재현을 위한 물적 토대는 크게 3가지로, M1900 권총과 32ACP 탄, 그리고 발리스틱 젤라틴입니다. 총은 미국 총기 옥션에서 낙찰받아 현재 배송 프로세스를 밟는 중입니다. 펀딩은 32ACP 탄과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십자가 흠집’이 있는 탄의 위력 실험을 위한 발리스틱 젤라틴 구매 비용,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기자재 대여와 인건비로 사용 예정입니다.

 

총기 사격 실험에 고속촬영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고속촬영을 위한 조명 세팅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110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어떤 악조건 속에서 의거에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는지를 실물 총을 가지고 실험할 예정입니다.

 

현재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국내 재현 사격을 추진중이며, 만약 국내사격이 여건상 어렵다면 미국 현지에 섭외한 사격장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