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1.

안중근 의사의 사격을 재현하기 위한 사격 시퀀스를 짜고, 재현용 소품을 준비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의 신문기록과 공판기록을 샅샅이 확인했다.

 

①

질문 : 직업이 뭐냐?

안중근 : 사냥꾼이다.

 

(중략)

 

질문 : 그대는 사냥꾼이라 하나 앞서부터의 응답에 의하면 사냥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점이 있는데, 이번 거사는 그대의 말하는 것으로 세계사상에 이름을 남길 작정으로 본명(本名)을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어떤가?

 

안중근 : 나는 결심하고 대사를 행한 것으로,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인정신문(人定訊問)에서 안중근은 사냥꾼으로 보기엔 너무 논리정연하고, 신문 과정에서 보여준 침착함 덕분에 일본 검찰을 당황시켰다. 아니,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때부터 일본은 당황했다. 인정신문에서 직업을 물었을 때 ‘사냥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 일본인들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②

질문 : 그대는 이토공작의 얼굴을 평소 자세히 본 일이 있는가.

 

안중근 : 본 일이 없다. 사진을 보았을 뿐이다.

 

질문 : 사진으로 무엇인가 특징이라도 기억하고 있었는가.

 

안중근 : 윗수염 등의 모양으로 알았다.

 

질문 : 사진과 비교하여 이토공작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안중근 : 이토의 타고 있는 기차가 도착하자 즉시 병대의 뒤로 가서 서 있었으므로 기차를 내려 환영단 앞을 통과 후 돌아서려 할 때에 나는 이토의 자태를 인정하고 2열로 늘어선 후열의 병사와 병사 사이에서 남모르게 단총을 꺼내 쏘았다.

 

질문 : 그대가 저격 하였을 때 이토일행은 어떤 모양으로 보행하고 있었는가.

 

안중근 : 일행보다 이토는 조금 앞서 걷고 있었다.

 

질문 : 이토공이 그대의 앞을 통과 할 때 쏘았는가, 또 그 거리는 어느 정도였는가.

 

안중근 : 내 앞을 조금 지날 때 두 칸 반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서 손의 상박부를 겨누고 3, 4발을 쏘았다.

 

질문 : 발사할 때 그대는 어떤 자세였는가.

 

안중근 : 서 있었다.

 

질문 : 단총으로 사람을 쏠 때 머리를 겨누지 않고 상박을 겨눠 쏘면 흉부에 명중한다는 것을 그대는 연구하였는가.

 

안중근 : 나는 평소 사냥꾼으로 총을 쏘니까 경험상 상박을 겨누면 명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로부터 배워서가 아니다.

 

질문 : 사람을 쏘는데 정면에서 겨누면 발각되므로 약간 지나간 때에 조금 후방에서 발사하면 형편이 좋은 것은 평소부터 생각하고 있었는가.

 

안중근 : 특별히 습득한 바는 아니나 약간 통과하였을 때 발사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질문 : 그대의 발사한 단총의 탄환이 이토공에게 명중하였는가.

 

안중근 : 나는 모른다.

 

질문 : 그러나 이토공이 쓰러진다든지 또는 얼싸안는다든지 하는 현장을 못보았는가.

 

안중근 : 못 보았다. 그 즉시 영국 장교에게 총을 갖고 있는 손을 붙잡혀 깔아 눕혀졌다.

 

질문 : 깔아 눕혀질 때 그대는 또 발사하였는가.

 

안중근 : 체포될 때 총은 땅 위에 던져 버렸다.

 

질문 :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발사하는 것이므로 이토공 이외의 사람에게도 위험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예기(豫期 : 앞으로 닥칠 일을 미리 생각함)하고 있었던가.

 

안중근 : 이토 부근에 있는 사람을 희생시킬 것은 예기(豫期)하고 있었다.

 

질문 : 그대가 사진으로 보고 예상했던 이토공과 실제로 본 이토공이 동일하였던가.

 

안중근 : 약간 다른 곳이 있었다. 특히 생각하였던 것보다 왜소한 사람이었다.

 

질문 : 그런데 그대는 이토공이라는 것을 알고 저격하고 그대가 깔아 눕혀질 때까지에 탄환은 다 발사하였는가.

 

안중근 : 내가 사용한 단총은 방아쇠를 한 번 당기고 그대로 있으면 다 발사되는 장치로 되어 있다.

 

질문 : 그대가 발사한 결과 이토공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안중근 : 전혀 모른다. 또 그 결과는 아무에게서도 듣지 못하였다.

 

질문 : 그대는 이토공의 생명을 잃게 하였으니 그대의 신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안중근 : 나는 내 몸에 대하여는 원래 생각한 일이 없다. 이토의 생명을 빼앗으면 나는 법정에 끌려 나가서 이토의 죄악을 일일이 진술하고 자신은 일(日)측에게 일임할 생각이었다.

 

질문 : 그대가 발사한 단총은 친구 누구라는 자로부터 샀는가.

 

안중근 : 윤치종이라는 동지가 일본 제일은행권 40원 내외로 사서 주었다. 그러나 산 고장은 모른다.

 

 

 

2.

하얼빈 의거의 구체적인 상황묘사가 이어졌다. 프로젝트 팀이 주목했던 건 당시 사격자세와 상황이었다. 여기서 안중근 의사가 사냥꾼으로서 얻은 경험이 거사에 도움이 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단총으로 사람을 쏠 때 머리를 겨누지 않고 상박을 겨눠 쏘면 흉부에 명중한다는 것을 그대는 연구하였는가.’

 

라는 질문에 안중근 의사는

 

‘나는 평소 사냥꾼으로 총을 쏘니까 경험상 상박을 겨누면 명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로부터 배워서가 아니다.’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격위치나 표적의 위치나, 노출면적 등에 대해서 안중근 의사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기회가 생겨서(사각이 생겨서) 방아쇠를 당긴 거였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런 식의 ‘저격상황’은 노출 면적이 많은 정면이나 배면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측면을 노렸다. 일반적인 저격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 그러나 안중근은 대수롭지 않게 ‘발사할 기회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당시 조건들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표적의 노출 면적은 상당히 적었고, 러시아군 덕분에 시야도 제한됐다. 결정적으로 표적이 이동했다. 이동하는 이토히로부미의 측면(오른쪽 상박)을 노리는 것. 그것도 러시아 병사들 때문에 시야도 제한되는 상황에서 7발을 발사해 4개의 표적에 6발을 맞췄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이다.

 

‘그런데 그대는 이토공이라는 것을 알고 저격하고 그대가 깔아 눕혀질 때까지에 탄환은 다 발사하였는가.’

 

라는 질문도 주목해 봐야 한다.

 

안중근 : 내가 사용한 단총은 방아쇠를 한 번 당기고 그대로 있으면 다 발사되는 장치로 되어 있다.

 

이 당시는 M1900과 같은 자동권총이 흔한 시절이 아니다. 일본 조사관들은 리볼버의 상식으로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생각했다. 안중근 의사가 제압당할 때까지 방아쇠를 당긴 거라 의심했다. 그러나 M1900은 자동권총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간다. 일반적인 권총처럼 ‘해머’가 달려있는 게 아니라 스트라이커 방식이다. 리볼버보다 연사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안중근 의사가 ‘방아쇠를 한 번 당기고 그대로 있으면 다 발사되는’이라고 표현한 건 자동권총의 연사속도를 설명한 거라 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신문 조서에서 계속 이어진다.

 

‘그대는 이토공의 생명을 잃게 하였으니 그대의 신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나는 내 몸에 대하여는 원래 생각한 일이 없다. 이토의 생명을 빼앗으면 나는 법정에 끌려 나가서 이토의 죄악을 일일이 진술하고 자신은 일(日)측에게 일임할 생각이었다.’

 

1909년 11월 5일 일본 도쿄, 이토 히로부미 장례식

 

3.

안중근 의사는 재판장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처분을 일본 측에게 일임하겠다는 것. 이건 죽음을 각오한 모습이다. 죽음을 각오한 상황에서는 의거의 성공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퇴로(退路)에 대한 확보나 탈출에 대한 조건을 상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목표만 생각하면 된다. 선택지가 하나로 집중되면, 성공확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만약, ‘퇴로’를 생각했다면, M1900 같은 호신용 권총으로는(파괴력이 덜한 32구경 탄으로는) 의거를 성공시키기 어려웠을 거다. M1900을 들고 의거를 결행했다는 건 이토 히로부미의 바로 옆에까지 가서 총을 쏘겠다는 거다. 아니면, 아예 라이플류 같은 원거리 저격무기를 확보했어야 한다.

 

당시 안중근이 얼마나 대담하고, 침착했는지를 보여줬는지는 이어지는 신문 조서에도 잘 나와 있다.

 

③

#.1

안중근 : (중략) 내가 러시아 병대의 열 중간쯤의 곳으로 갔을 때 이토는 그 앞에 정렬해 있던 영사단 앞에서 되돌아 왔다. 그래서 나는 병대의 열 사이에서 안으로 들어가 손을 내밀고 맨 앞에서 행진하고 있는 이토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향하여 10보 남짓의 거리에서 그 자의 오른쪽 상박을 노리고 3발 가량 발사했다. 그런데 거기서 후방에도 또 사복을 입은 자가 있었으므로 혹시 그것이 이토가 아닐까 생각하고 그쪽을 향하여 2발을 발사했을 때 나는 러시아 헌병에 의해 잡혔다.

 

질문 : 그대는 군대 후방에 있었는데 어떻게 그 전면을 통과하는 것을 저격했는가.

 

안중근 : 정렬하고 있는 병과 병과의 간격은 2, 3보 가량 떨어져 있었으므로 나는 그 후열의 병 뒤로부터 병과 병 사이에 있다가 나의 앞을 2, 3보쯤 지나갔다고 생각할 때 발사하였다.

 

#.2

안중근 : 러시아 병사 사이의 간격은 한 칸 남 짓 있었으므로 나는 후열의 병과 병과의 사이에 끼어 선 채로 피스톨을 노인이 행진하고 있는 곳을 향해 겨냥하고 발포했다. 그때 병대는 다 받들어 총의 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대가 서 있는 곳보다 이토가 걷고 있는 곳은 비스듬한 사면으로 낮아 있었으므로 피스톨을 잡은 손은 수평으로 하지 않고 조금 아래쪽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4.

하얼빈 의거의 구체적인 상황이 묘사돼 있다. 러시아 병사들이 ‘받들어 총’ 자세로 사열을 받는 순간. 러시아 병사 뒤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거다. 시야가 제한된 건 둘째 문제고, 발사 직후 러시아 병사들에게 제압당할 걸 각오한 의거였다.

 

달리 표현하자면,

 

“하늘이 도왔다.”

 

란 생각도 할 수 있다. 러시아 병사들이 사열을 받느라 부동자세를 취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은 거다. 총을 쏘고 난 뒤의 운명은 러시아 병사들의 숫자를 보면, 짐작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안중근에게 러시아 병사들은 단순히 ‘시야를 가리는 존재’ 정도로만 생각하고, 러시아 병사를 배경 삼아 이토 히로부미를 쏜 거다.

 

당시 하얼빈역 플랫폼

 

④

질문 : 그대가 가지고 있는 브라우닝식 단총은 7연발인가 8연발인가

 

안중근 : 8연발이다.

 

질문 : 단총을 조사해보니 약협이 7개 있고 발하지 않은 것이 1발 있는데 어떠한 까닭인가

 

안중근 : 나는 목적하는 사람을 쏘았으니까 그 후는 발사할 필요가 없으므로 멈췄다.

 

FN 社의 M1900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발사한 탄환의 숫자를 확인하고 있다. 7연발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7+1이다. 탄창에 7발이 장전되고, 1발은 약실에 넣는다. 처음 8발을 장전했는데, 안중근은 마지막 1발을 쏘지 않고 총을 땅에 던졌다. 이 1발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있었다. 일본 측은 ‘자살’을 염두에 뒀다가 실패한 게 아니었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안중근은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목표로 했던 이를 다 쐈으니, 총을 더 쏠 이유가 없다라는 간단한 답변. 테러가 아니라 의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다. 무차별적인 살육이 아니라 목표로 했던 이토 히로부미만을 제거하고 총을 버린 거다.

 

(수행인원들에 대한 총격에 관해서 안중근은 계속 유감을 표현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알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희생이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