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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으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 기타반을 운영하던 김보성 (<대결> <시다의 꿈> 등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이 역시 메아리 출신의 문승현에게 특이한 제안을 하나 한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공연을 해 봅시다.”

 

당시 대학가에는 마당극이니 노래극이니 하는 공연들이 활발히 열리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뭘 한다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문승현 역시 마음이 움직였고 절친한 선배 표신중 (이틀 전에 작고하신 분이다. 이즈음 문승현과 함께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래분과 새벽 멤버였다.)과 머리를 맞댄다.

 

형식은 노래와 멘트 등으로 구성되는 노래극으로 정해졌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바탕으로 표신중이 대본을 썼고 문승현이 노래 부분을 맡았다. 극중 전태일이 휘발유를 온몸에 붓고 역사의 불꽃이 되기 직전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일설에 따르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가 잡혀가기 직전 부르는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노래라고 한다.

 

전태일은 격정에 사로잡혀 몸에 불을 당긴 것이 아니었고 사력을 다해 세상과 부딪친 뒤, 자신의 모든 것을 짜낸 뒤 자신의 몸을 장작 삼아 세상을 향해 항거한 것이었으니 십자가행을 알고 있던 예수의 심경에 비한들 아무런 황공함도 손색도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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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현은 이 노래를 짓는데 일곱 밤을 새웠다고 토로한다. ('그날이 오면'은 전태일 추모가였다 - 오마이뉴스 2005년 9월 6일)

 

“나는 책이 뿜어내는 향취와 이미지를 음악으로 고스란히 옮겨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많은 내용을 그 짧은 가사로? 음악으로? 과연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전태일은, 그 '어느 청년 노동자'는, 그의 '삶과 죽음'은 너무 크고 무겁고 눈부셨으니까.”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그 시간이 지난 뒤 한 노래가 탄생했다. 바로 우리 귀에 익은 <그날이 오면>이다.

 

원작자가 지은 가사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것과 두어 마디가 다르다. “한 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빛나는 눈물들 /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짧은 추억도 /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즉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빛나는 눈물들’이 ‘뜨거운 눈물들’로 바뀌었고,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짧은 추억도’가 ‘그 아픈 추억도’로 교체됐다.

 

누가 바꿨는지도 모르고 어차피 대중들에게 수용되면서 변한 것이니 원작자로서도 어쩔 수 없지만 문승현은 무척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노래 이미지가 약간 망가졌으니까. 무게+넓이+눈부심의 이미지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원래 가사를 곱씹으면 원작자의 의도가 어스푸레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바뀌지 않는 것은 <그날이 오면>이 80년대를 넘어 시대의 명곡으로 남은 것이고, 이 노래가 전태일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노래라는 것이다. 즉 이 노래의 주인공은 전태일이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봉제공장 시다로 일한 몇 년 뒤 재단사가 된다. 시다들을 부리며 자기 기술을 팔아 웬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위치.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예민한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한 것처럼.

 

어느 날 한 미싱사가 작업 도중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결핵 3기.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열 몇 시간씩 재봉틀을 돌리다 얻은 직업병이었지만 그녀가 해고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됐다. 전태일은 도무지 그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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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그 후 그가 보여준 행적은 실로 예수 이상이라고 감히 말한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퀭한 눈으로 무기력하게 재봉틀을 돌리던 시다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던 노동자들의 어깨를 들쑤셔 일으켰다. 예루살렘 성벽보다도 훨씬 높고 강력한 성벽을 향하여 자신의 몸을 공성추 삼아 돌진했고 끝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지언정 휘발유를 뒤집어 쓴 그는 이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걸 다 해 보았다. 남은 건 이 길 뿐이다.” 그리고 그는 불꽃이 됐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문승현이 일곱 밤을 새워 만든 <그날이 오면> 노래는 전태일의 ‘창조된’ 그러나 ‘진실된’ 유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휘발유를 사고 근로기준법 책을 준비하면서 정든 시다들의 인사를 지나면서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한 밤의 꿈은 아닐 것이라’고 중얼거렸을 것이고 자신 눈 앞에서 피 토하며 쓰러진 시다, 그날로 해고당해 버린 시다의 빛나는 두 눈과 두 물줄기가 언젠가는 정의의 물결로 넘치는 날이 오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나는 그날을 못보겠지만, 나에게는 오늘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날이 오면 자신의 스물 셋 젊음도,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를 그날까지 있어야 할 피맺힌 기다림도 ‘헛된 꿈’은 아닐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았을까.

 

그가 간 해 내가 태어났고 내 나이가 마흔아홉이니 근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영전에 그날이 왔음을 고할 도리가 없다. 재단사로 자신의 앞가림을 넉넉히 하고도 남았을 전태일이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올인한 것이 49년 전인데 자본과 노동 사이는 물론 노동과 노동 사이에도 온갖 산맥과 성벽이 굽이굽이 둘러쳐져 있고 저마다의 성채는 양보와 희생을 용납하지 않으며 손에 쥔 것은 죽을지언정 놓지 않으려 들고 있다. 전태일이 이렇게 물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그의 일기 중에서)

 

솔직히 나도 민망하다. 무안하다. 전태일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조차 위선일 수도 있다 싶다. 그러나 자격 없고 미안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들먹이는 것조차 까먹는다면, 불편해진다면, 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위악도 아니고 시나브로 사악해지는 길인 것 같기에 다시금 그의 이름과 그의 노래를 불러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ZLgAKlvU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아아 피맺힌 그 오랜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래도 오늘은 전태일이다. 그날은 비록 멀리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