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부터 지난 4년간 영국은 3번의 총선을 치러야 했습니다. 유럽연합 잔류/탈퇴 문제를 놓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12월 12일부로 종지부가 찍혔습니다. 12.12 조기총선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358석을 얻은 보수당은 1987년 이후 최고의 성공을 거둔 반면, 1935년 이후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거둔 영국의 노동당은 203석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317(42.4%) vs 262(40.0%)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던 리더십이 한 쪽으로 크게 기울게 된 것입니다. 특별이 이렇다 할 사건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보수당은 지난 4년간 브렉시트라는 난제를 해결하지 못해 중간에 총리가 사퇴까지 했었죠. 그런데 어떻게 보수당이 압승하게 되었을까요? 

 

IE002582589_STD.jpg

 영국 총선 결과

출처 - BBC

 

 

독일은 No. 유럽연합에서 나가자!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려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유는 독일에 대한 영국인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 논란이 될 수 있기에 언론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진 않았습니다.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통계나 자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겪어보면 영국인의 독일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973년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했을 당시에는 말 그대로 경제 공동체였는데요. 쉽게 말해 전쟁 후유증으로 사는 게 어렵고 힘드니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내자는 취지가 강했습니다. 때문에 1975년에 실시된 유럽연합 잔류/탈퇴 국민투표에선 잔류가 67.2%로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나의 유럽’을 표명해 왔던 독일의 뜻이 관철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유럽 경제 공동체는 경제만이 아닌 정치와 행정, 문화 등 다양한 방면으로의 연합을 이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유럽연합(Euperean Union)으로까지 확대가 된 것입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독일이 대표가 되어 유럽을 이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습니다. 2차 대전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그렇지만, 그 이전까지 ‘대영제국’으로서 세계 최대 강국으로 명성을 떨치던 영국이 패권을 잃게 된 것은 독일 때문이었죠. 게다가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고, 전국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과부와 고아가 늘어나고 수없이 많은 사회 문제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아무리 사과를 한들, 분이 쉽게 풀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유럽 연합은 회원국 수를 점차 늘려나가면서 확대되기 시작했고, 각 회원국의 발언권은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와 함께 유럽 연합을 이끄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연간 약 £70억(11조원)의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유럽 연합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입장에선 더더욱 그렇겠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유럽연합의 덩치가 커지면서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일례로, 1973년 당시 유럽의회의 20% 투표권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죠.

 

7b.jpg

 

이러한 결정 권한을 독일이 쥐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영국인들의 특성상 이를 공론화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 대한 영국인의 반감은 여전히 높습니다. 게다가 독일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으면서, 유대인 학살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있고 유럽 주변 국들에는 간, 쓸개를 다 내어줄 것처럼 하니 이들의 이중성에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영국이 독일을 다시 신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심리가 기저에 있다 보니, 유럽연합은 좋지만 독일이 리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독일 없이는 유럽연합이 운영될 수가 없게 되어버렸으니 영국은 지속적인 부담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게다가, 과거처럼 경제 공동체로서의 역할만 해 왔다면 크게 부딪힐 일이 없었겠지만, 유럽 연합이 시작되면서 각종 법안을 공유하고, 동시에 규정으로부터 제재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유럽 연합을 이끄는 독일의 통제를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테죠. 실제로 2010년 이후부터 유럽 연합은 각 회원국에 약 3천여 개의 법안을 적용하고 있는데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 이러한 제재를 받지 않아도 되니, 영국의 입장에서 브렉시트는 자주성을 회복하는 문제였습니다.

 

 

 

리더십

 

tonyblair.jpg

토니 블레어

출처 - BBC

 

토니 블레어라는 입지적인 인물의 등장으로 1990~2000년대 노동당은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계급사회였던 모순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블레어는 최고의 노동당 대표로, 영국의 총리로 명성을 높였죠. 그가 실시했던 최저임금제 같은 정책들은 여전히 영국인들이 선정하는 최고의 정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을 최우선으로 한다던 블레어의 노동당은 이라크 전쟁에 동의하고, 이율배반적 정치를 이어나가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국민들 등에 칼을 꽂듯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몰아넣었던 노동당은 결국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아주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수당 집권 초기, 데이비트 카메룬이 ‘헝 의회’(hung parliament, 절대 다수당이 없는 형태)의 구도로 총리직을 시작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인권’에 민감했던 영국에게 노동당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이민자 정책이 복잡하고 어렵게 바뀌고, 대학생들의 등록금이 200%씩 인상이 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기업 우선 정책을 만들어왔던 보수당이었던 만큼 국민들의 신뢰가 그리 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죠.

 

 

brexit_big_ban_zastava.jpg

 

이러한 배경 때문에 데이비드 카메룬의 첫 총선 승리부터 브렉시트 국민 투표 이후의 테레사 메이까지, 영국 의회는 줄곧 헝 의회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때에 노동당에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이번같은 결과는 없었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현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jeremycorbyn.jpg

제레미 코빈

출처 - BBC

 

사실, 제레미 코빈은 최초 브렉시트 찬성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당 대표를 위해 입장을 바꾼 것이나 다름이 없었죠. 처음 노동당 대표가 되었을 때는, 이 시대의 마지막 사회주의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자녀를 사립학교를 보내지 않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던 것을 비롯하여 영국의 엘리트주의와 빈부격차를 위해 노력했던 과거 그의 의정활동에 찬사가 이어지기도 했었죠.

 

실제로 코빈은 브렉시트보다는 다른 사안에 더 중점을 두고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이후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기초생활비(교통, 가스, 전기 등)를 잡기 위해 재국유화 사업을 실시하고자 했고, 의료보험 개혁을 포함하여 각종 차별(인종, 성별 등)에 대하여 보다 체계적인 법을 만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을 비롯하여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결단을 내리지 못해, 결국 2번의 조기총선이 실시되었음에도, 보수당에게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사실, 처음부터 약 4년여간 브렉시트 문제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던 이유에는 잔류를 지지했던 노동당의 방향전환이 한 몫 했습니다. 정치권의 오랜 기간 시간 끌기에 지친 국민들은 마침 독일도 마음에 안 들겠다, 우린 과거 대영제국으로 잘 살았으니 각자도생으로 가보자는 심리를 가지고 선거에 임했던 것이죠.

 

 

 

 

커먼웰스(Commonwealth, 영연방)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곧 망할 거라는 보도가 많습니다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영국은 전 세계에 53개의 커먼웰스(Commonwealth, 영연방)가 있습니다. 이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연방 국가의 국민들은 영국에 거주하는 동안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나이지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영국에 유학을 왔다고 가정했을 때, 국민투표나 총선 등에 유권자로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 국민’으로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1년에 한 번씩 각 국의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여왕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호주나 캐나다 같은 대표적인 영연방 국가들은 여전히 군주의 상징으로 영국 여왕을 모시기도 합니다. 53개국이 모여서 하는 커먼웰스 올림픽도 있죠.

 

이렇듯 이들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실제로, 현재 영국의 공급관리망이 크게 바뀌고 있는데요. 생필품을 시작으로 각종 유럽으로부터 왔던 수입품들이 영연방 국가의 것들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오던 야채나 과일들이 뉴질랜드와 아프리카 등에서 공급을 채우기 시작했고, 이 외에도 각종 FTA를 체결해 수입품목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 경제 공동체, 유럽 연합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지난 4-50년간 무늬만 영연방인 국가들이 많았습니다. 실제적인 교류가 상당 수 감소했었죠.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영국이 커먼웰스를 재가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조 원의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유럽연합 외의 다른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영국 입장에서 유럽연합은 득보단 실이 많은 곳이라는 계산이 있었겠죠. 

 

general-election-uk-polls-latest-data-suggests-another-hung-parliament-possible.jpeg

 

 

보리스 존슨?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의 압도적인 승리를 이끈 것은 단순히 보리스 존슨 때문 만은 아닙니다. 그가 이슈 메이커이긴 합니다만, 방송으로 인지도를 쌓았고, 각종 노이즈 마케팅에 능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물론, 보리스 존슨이 유럽연합과 재협상을 이뤄냈고, 애초부터 ‘탈퇴’를 강력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당을 단결시키고 국민들의 가장 큰 고민에 중점을 두었던 안목은 인정받을만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주변환경의 영향이 컸죠. 독일에 대한 반감과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오랜 기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일련의 과정들이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한쪽을 지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간헐적으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답하는 이들이 다수입니다. 그만큼 변수가 많기 때문이겠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우린 검찰개혁이 중요하고 선거법에 공수처 설치가 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뭔 상관이냐 할 수 있지만, 의회민주주의가 꽃피운 곳이기에 이들이 어떻게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여성 참정권 운동과 각종 노동운동으로 명망이 높은 나라였던 영국이기에, 앞으로의 걸어가는 길을 주목해 보는 것도 우리의 앞날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