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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빨이든 실력이든 될 놈은 된다. 이게 나의 결론이다. 필자는 2점에 질 줄 알았다.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바둑계 사람들은 2점에 지고, 4점에는 이길 것이라 봤다. 3점이 승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2점에 이겼다(2점에 역덤 7집 반이다. 역덤은 하수가 상수에게 도로 덤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세돌 은퇴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돌 은퇴기다. 국산AI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예전 이벤트로 OG-GO와 신진서 9단의 대국에서도 축버그로 83수 만에 끝났다. 한돌 개발자도 프로 최정상급과 대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당황스럽다고 했다. 국산AI는 이상하게 평소에는 문제가 없다가 멍석만 깔아주면 사고가 난다. 

 

이번에도 78수에서 승부가 갈렸다. 다만 알파고 때 78수가 신의 한 수였다면, 이번엔 그렇지 않다. 이세돌조차 대국 후 인터뷰에서 "프로면 누구나 그렇게 둘 것"이라 했다. 이건 버그도 아니고, '한돌 자체가 실력이 약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이세돌의 한돌 측은 준비를 더 하셔야 할 거 같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대국에 대한 느낌을 총평하면 ‘똥을 싸다가 만 느낌’ 이다. 한창 재밌어지려는데 어이없게 바둑이 한순간에 끝났다. 12월 19일 대국은 호선대국이다. 필자는 인공지능인 한돌이 이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불안하다. 중앙 전투가 벌어지면 어떠한 버그가 일어날지 모른다. 만약 이 바둑을 진다면 한돌은 은퇴할 것이다. 2국은 이기고, 3국까지 이겨야 본전이다.

 

이번 대국을 통해 느낀 것이 있다. AI는 인간이 하지 않는 실수를 한다는 것. 그 점은 불안 요소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인간이라면 전혀 하지 않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섣부른 결론이지만, 그렇기에 인간이 할 일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AI가 대부분 일을 하더라도 최종결정은 인간이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오늘 대국의 최대 피해자는 한돌 NHN이 아니라 어쩌면 이세돌일 수도 있다. 도둑맞은 은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세돌 은퇴인 줄 알았는데 한돌 은퇴가 될 수도 있다. 일생에 한 번뿐인 은퇴기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다. 

 

 

은퇴기의 의미

 

81년 만이다. 그리고 두 번째다. 은퇴기가 두어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은퇴기란 한 개인의 은퇴뿐만 아니라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1938년 6월 26일부터 같은 해 12월 4일 혼인보 슈사이와 기타니 미노루의 은퇴기가 열렸다. 제한시간 각 40시간, 신문연재 64회,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대국을 주제로 명인이라는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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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의 끝이며, 바둑가문의 세습에서 현대바둑의 탄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바둑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신문사 주최의 기전이 생기고, 세계대회가 생기며, 바둑전문방송이 생기게 이르렀다. 알파고에 이르러 만개하였다. 화룡점정의 순간이다. 

 

역사에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 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그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혼인보 슈사이의 은퇴기는 봉건사회의 종말을 고했다. 이세돌의 은퇴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은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이세돌은 바둑인으로서 2가지 큰 획을 그었다. 첫째는 인공지능과의 정면승부와 1승. 둘째는 인공지능과 최초로 접바둑을 두는 것. 그야말로 도전이다. 한 집에는 자신을 책망하고, 반집에는 하늘을 원망한다는 프로들. 이창호의 등장으로 반집조차 자신을 꾸짖던 프로들이 접바둑을 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이제 인공지능에게 이 정도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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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후 기계에게 마사지 받는 이세돌

은 아니고, 이번 대회 후원사가 바디프랜드라 이런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2국은 호선대국이다. 아마도 한돌이 이길 것이다. 설마 또 그런 버그가 일어나겠는가. 3국이 승부처다. 3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는 알 수 없다. 확률로 보면 한돌이 이길 것 같으나 이세돌 앞에서 확률은 무의미하다. 다만 1국처럼 어이없는 결과만 안 나오기를 바란다.

 

1국이 너무 어이없게 끝나서 쓰고 싶어도 쓸 게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세돌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기사로서의 업적. 한국기원과의 갈등, 알파고와 대결, 기사회 탈퇴 등등. 그러나 이런 샛길로 빠지는 건 떠나는 이세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앞으로 남은 대국을 집중해 보겠다. 어떻게 되든, 오늘처럼 끝나지만 않길 바란다. 그렇게 보내기엔 이세돌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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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3200만원 때문에 바둑계 떠났다?'

출처 - <조선일보>

 

끝으로 이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제목부터 참 좃선스럽다. 이세돌이 그동안 기부한 금액만 해도 억대다. 중국 갑조리그에서 팀성적이 안 좋으니 억대의 상금도 거절했다. 이런 사람은 3,200만원 때문에 은퇴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저 물음표는 가증스럽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를 보면 기가 막힌다.

 

박승철 9단(동료) - 이 분은 한국기원 직원이다. 몇백 명이나 되는 프로기사를 놔두고 왜 한국기원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프로기사를 동료라고 인터뷰했는가. 

 

조한승 9단 (한국프로기사회 부회장) - 기사회장은 어디 가고 왜 부회장이 이런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걸까. 

 

권갑룡9단 (스승) - 그나마 균형을 맞추려고 보인다. 다만 기사회 문제점을 제대로 얘기 못 한 거 같아 아쉽다.

 

조범근 (한국기원 홍보팀) - 이 분 인터뷰가 가장 미스테리다. 한국기원 총재나 총장, 하다못해 홍보팀 팀장이 나와서 인터뷰를 해야지 왜 평직원이 한국기원을 대변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뷰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왜 조선일보는 이런 사람들을 인터뷰했을까? 

 

기자도 이상하다. 조선일보에는 수 십 년간 이 분야에 종사한 바둑전문 기자가 있다. 이 분은 입을 꾹 다물고, 단독으로 쓰는 기사는 이제 두 번째인 기자가 왜 이런 걸 썼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불현듯 기시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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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제목이 프로기사 “이세돌 탈퇴 지지하는 사람 못 봐” 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자. 담배 한 대 피고 오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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