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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인간관계 실전지침서로

정신분석학을 도구 삼아 깊고 어두운 인간 내면을 탐구한다.

 

나와 타인의 역동을 이해, 실전에 활용함으로써

명랑 생활에 기여코자 한다.

 

 

 

 

# 오늘의 사연

 

안녕하세요. 25살 남자 대학생입니다. 제 친구 A 때문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얘가 말이죠, 얼마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졌습니다. 사실 A가 그 여자애를 좀 막 대하긴 했어요. 가끔은 데이트 폭력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얘가 감정 조절에 좀 문제가 있거든요. 잘해줄 때는 무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인 양 여자친구를 끔찍이 여기다가도 뭐 하나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거의 맹비난을 하고… 뭐 아무튼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차라리 헤어진 게 잘 된 거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근데 며칠 전부터 A가 좀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니더라구요. 그 여자애가 자기 친구들하고 같이 자기 흉을 보고 다닌다는 거에요. 자기더러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하고 다닌다나. 그러면서 화를 내는데, 이게 저희가 봤을 때는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실제로 그 여자애들한테 물어봤는데도 전혀 그런 적이 없대요. 그럴 애들도 아니구요. A가 그런 말을 해도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은 그 정도가 좀 심해진 것 같아요. 주변 애들도 좀 피하고 싶어하구요. 대체 A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오늘의 문제

 

안타까운 사연 잘 봤다. 보통 친구 이야기의 99% 자기 이야기라고 하는 말이 있던데... 아무튼, 상황을 정리해보자. A군은 상황을 왜곡되게 인지하고 있다. A군의 무의식에서 어떤 방어기제가 작동해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자, 오늘의 문제.

 

 1. A 군이 사용하고 있는 방어기제는 무엇일까?

 

 2. 이런 A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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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워할 수 없는 너

 

우선 문제 1번을 보자. A군은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지만, 이를 용납하기 어려워한다. 그렇다. 실연이라는 놈은 우리에게 엄청난 좌절과 분노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실연 후 정신건강은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고 소화했느냐에 달려있다.

 

성숙한 이라면 공손히 두손 모아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차카고 배려있는 남친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희망차고 발기찬 미래를 염원할 것이다. 필자 또한 실연의 상처를 기회 삼아 자기 계발에 매진할 수 있었고, 보다 건설적인 삶을 영위했노라고 고백하는 바이다. 그 옛날 나를 버리고 떠난 너. 너 덕분에 공부에 매진해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지. 연락을 받기는커녕 심지어 나를 차단했던 너. 그 오욕과 설욕의 세월을 떠올리고 있자면 지금도 살이 떨리고 치욕에 눈앞이…… 하아……

 

흠흠. 아무튼 A의 사례로 돌아오자면, 그는 지금 실연의 아픔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뿐 아니라, 그런 상황을 만든 자기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노와 공격성은 의식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무의식의 수준에서 튕겨져 나가 마치 자기 안에서가 아니라 자기 밖에서 기원하는 것 ‘처럼’ 간주되는데, 이를 방어기제 중 투사(projection)이라고 부른다.

 

 

# 투사(projection)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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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주변에서 '남탓'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이들은 자신이 엎지른 물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돌린다. '남탓'은 의식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무의식적이라 함은 우리의 의식이 알아채기 이전에 미리 정신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격성'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나 생각의 내용에 관해 남탓이 발생할 때,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투사(projection)'라고 부른다. 이 projection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던지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ojectio에 그 기원을 갖고 있다.

 

투사는 나름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개념이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1894년부터 이 현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편집증적인 환자, 가령 심한 피해망상을 겪는 환자들을 보며 그들 안에서 투사라는 정신과정이 작동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후 정신분석학이 발달하게 되면서 투사는 단지 편집증적인 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 알려졌다. 따라서 투사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일종의 미숙한 방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면 투사를 사용한다.

 

책임을 외부로 돌린다는 것은 정신의 입장에선 꽤나 경제적인 전략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강렬한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보자. 내 안에 분노와 같은 나쁜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누구도 악인이 되고 싶지 않고, 선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런 경우 정신은 무의식적으로 자신 안에 있는 압도적인 분노의 감정을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돌려'버린다. 그래서 결국 한 개인은 그 분노가 자신에게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을 향해 유래한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투사는 상황을 더 잘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떤 상황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을 때 우리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외부로 투사해 자신을 희생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비교적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상황을 가공해낼 수 있다. 투사는 이런 면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 A군은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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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A군이 야수가 되는 거야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투사라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심한 경우 투사라는 방어기제는 한 개인을 심각한 망상적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가령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심한 양극성장애에서 보이는 망상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일상 생활의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망상의 경우 약물학적 개입이 중요하다. 임상가에 따라서는 정신과적 면담의 중요성을 더 크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바로 병원에 가봐야 한다.

 

그러나 심한 정도가 아니라 경미한 정도의 투사를 보이고 있다면, 성격적 측면에서 그의 무의식이 투사를 자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라면 정신과 면담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신과 면담은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다). 면담으로 그들이 느끼는 공격성과 분노가 사실은 그들 내면에서 기원하는 것이라고 통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 주변에 A군 같은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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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들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글의 서두에 제시된 2번 문제를 풀어보며 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1번의 경우 흔히 말하는 '편 들어주기' 전략인데, 잘못하면 A군의 망상을 더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2번의 경우 사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택하는 전략이다. 정도가 아주 약한 투사라면 이런 것도 먹힐 수 있겠지만, A군 정도 수준에 이른 경우에 이는 오히려 이들의 의심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A군은 어떠한 설명을 들어도 그 뒤에 여전히 거짓이 숨어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교과서에 따르면 3번 같은 방식이 정답이다(모든 시험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답이 뭔지 고르기 어려울 때는 가장 긴 문장을 찾으면 도움이 된다). 물론 3번처럼 말한다고 투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고 다소 잠재울 수 있을 뿐이다. 일단 3번처럼 말해 이들을 진정시킨 후, 병원에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