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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8.수요일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1. 키무라 카에라


 




 



일본에 키무라 카에라라는 가수겸 모델 아가씨가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매우 좋아하는 누님이다만, 오늘은 짧게 설명하겠다. 일단, 가수가 본업이다.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일본의 여중고생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는 '세븐틴'이라는 잡지의 모델을 하게 되면서(그리고 결정적으로 카나가와 지역방송의 아침 프로그램 'sakusaku'를 통해 압도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 방송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지)이지만, 본인은 어렸을 적 부터 가수를 꿈꿔왔고 지금도 노래 부르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버뜨, 워낙 외모가 받쳐주시는 분이라(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 아가씨는, 카토 로사 등과 함께 일본 연예계의 '이쁘장한 혼혈 아가씨' 카테고리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잡지모델이나 의상모델 일은 요즘도 하고 있다. 또,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세븐틴 전속모델 당시 이 아가씨의 영향력은 꽤나 막대했다. 사실, 일본처럼 특히 패션에 관한한 '개성'이 살 길인 나라에서 한 두 명의 모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일은 꽤나 드물다. 그냥 그 분야의 그 스타일에서 어느정도 먹어주는 모델이 되면 매우매우 성공한 거다. 그리고 키무라 카에라는 10대 후반에 바로 이 반열에 올랐다. 여고생을 중심으로 귀엽고 튀는 룩을 선호하는 아가씨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델이 된 거다. 사실, 가수로 데뷔할 때 '모델 일 전념하면 성공은 보장된 건데 왜 모험을 하나'는 말이 흘러나왔을 정도다. 라이브 한 번 보여주고 난 다음부턴 음반 관계자도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만.


 


근데 말이다, 이 이쁘장한 누님의 키는 과연 얼마일까?



프로필 상으로 확인된 그녀의 신장은 정확히 152cm이다. 오타낸거 아니다.


 





유투브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WzGuEsn6deI


 


영상 하나 보고 들어가자. 이건 그녀의 솔로가 아니라, 일본 록 밴드의 전설로 알려진 '새디스틱 미카 밴드'가 카에라를 프로젝트 보컬로 받아들여 잠시잠깐 활동한 '새디스틱 미카에라 밴드'의 타이틀곡 화면이다. 활동기간이 한정된 프로젝트 그룹이었다만,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키무라 카에라가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할 만한 새디스틱 미카 밴드와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면 알겠지만, 그럭저럭 중간키 정도 되는 미카 밴드 멤버들 사이에 세워두면 꼭 조숙한 초등생이 방방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까 말했지만 그녀는 모델로 연예계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키가 그녀의 발목을 잡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패션쇼에 등장해서 런웨이를 주름잡는 모델은 아니고, 주로 사진을 통해 잡지에서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 모델이긴 하지만, 일본인 가운데서도 작은 축에 드는 이 키로 그녀는 '인기있는 패션 모델'자리를 당당히 꿰어 찬 거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는 나의 오랜 의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난 늘 키 크고 늘씬한 패션 모델들을 보면서 한 가지 매우매우 궁금한 점이 있었다.


 


'도대체 키 작은 사람들한테 어울리는 옷은 누가 입고 광고해 주나?'


 


2. 미(美)의 승자독식 사회


 


내가 20여년을 살아온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금 내 기준에선 '미의 승자독식 사회'다. 간단하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예쁘다, 아름답다, 잘 생겼다, 미남이다 등등, 외모에 관한 칭찬은 '정말 그런 칭찬을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문제는 그 '정말 외모가 빼어난 사람'의 기준인데, 이 기준치가 정말이지 비정상적으로 높다. 즉, 연예인(가운데서도 외모가 매우 받쳐주는 사람)이나, 흔히 말하는 킹카니 퀸카니 소리를 듣는 아름답거나 멋진 얼굴과, 늘씬하고 균형잡힌 몸매와,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와 개성적이고 멋진 헤어스타일과 옷 잘 입는 센스 기타등등 여러가지 기준을 만족시켜 국민 대부분이 그 사람의 준수한 외모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외모에 대한 칭찬'을 차지할 권리를 누린다.


 



선택받은 자들


 


(2) 그 외 나머지는 기분과 장소에 따라 남을 칭찬하거나 헐뜯거나 돈을 모아 성형수술할 권리 및 의무를 진다.


 



그 외의 인류


 



요런 상황이라는 거지.


 


혹여 이것이 나의 참으로 암담한 외모와(난 중학교때 부터 거울 보는 걸 싫어했다) 그에 따른 컴플렉스 때문에 생긴 오해라면 댓글을 통해 반박해 주길 바라지만, 내 눈에 비친 한국사회는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칭찬에 인색한 사회였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없고, 잘생기지 않은 남자도 마찬가지다(특히나 독자제위의 여친 혹은 남친이 아이돌 그룹에 빠져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게다가 그 이쁘고 잘 생겼다는 기준이 매우 암담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좀 과격한 표현을 쓰자면, 그냥 '영화배우 같은 외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그게 우리네 삶에 득이 되면 얼마나 될 텐가.



3. 덤핑을 아시나요


 


또 일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텐가. 내가 한국 말고 살아본 나라가 이 나라 뿐인데. 불만 있으면 나 여행자금 하게 돈이나 부쳐 주시라. 유럽 한 바퀴 돌아보고 글 써 드릴테니(그냥 다른 딴지 필진의 글을 읽으시는 게 훠얼씬 경제적이겠지만).


 


내가 처음 일본에서 생활하며 제일 먼저 적응해야 했던건 '아름답다'라는 표현의 비과세 덤핑 현상이었다. 이 나라 아해들은 정말이지 남의 외모를 참 열심히도(그리고 잘) 칭찬했다. 언젠가 학교 아해들과 술자리를 갖고 며칠이 지나서 내 일본인 친구가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야, 저번에 술 같이 먹은 애들 중에서, 니 맞은편에 앉았던 그 이쁘장한 애 있잖아'


 


'... 누구?'


 


'어? 까먹었어? 걔 있잖아, 뽀얗고 이쁘장한 애. 니 맞은편에 앉았던'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맘속으로) 문제삼은 것은 그가 사용한 '이쁘장한'이라는 형용사였다.



당시 일본에 건너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한국식' 미의 기준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내 기준에서 '예쁘다, 아름답다, 미인이다'라는 식의 표현은 외모 총점 85.00 점을 넘기는 여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언어자원이었다. 그런데 내 친구와 내가 참석(해야)했던 술자리는 안타깝게도 평균총점 62.475점의 여성들로 구성된 아주 안주 맛 올라가는(술맛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자리였으며, 특히 내 맞은편의 그 아가씨는 내 기준에선 48.92점이었던 거다.





참고로 좌측 두번째는 약 57.21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당연히 나의 이 감성을 그 친구도 공유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고, 따라서 그가 그 날 술자리에 참석했던 여성들을 형용하면서 저런식의 귀중한 언어자원을 낭비하는 비경제적이고 몰상식한 망발을 보이리라곤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문제의 '맞은편 아가씨'의 인상착의(주로 그날 입었던 옷)을 조심스럽게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걔 말야. 너도 기억하네'



아, 그러세요.    
 


진짜 상당한 컬쳐쇼크였다.


 



 4. 나와 다른 너, 너와 다른 나.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이다. 일본 생활이 조금 길어지면서, 나도 이 '아름답다'라는 말의 저가 매도(싸게 판다는 뜻이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묘한 반발심도 있었고, 내 나름대로 분석도 해 보려 했다. ①한국과 일본은 미의 기준이 달라서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건가? ②백번 양보해서 그렇다쳐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쁘지 않은 애를 보고 굳이 이쁘다고 칭찬해야 할 이유가 있나? ③혹은 이게 저 유명한 일본식 혼네-다테마에로 저들은 사실 다 집에가서 뒷담화를 깔 요량으로 앞에서만 저렇게 칭찬질을 해 대는 걸까?


 


우선, 한국과 일본의 미적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식의 설명은 솔직히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한국 여자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오, 일본 여자라고 다 싫은 것도 아니니. 개인의 외모란 결국 개인의 취향이며, 국적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테이스트에 맞아 떨어지는가 아닌가가 문제인거다. 게다가, 외모의 최종적인 보완수단인 '성형수술'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천편일률적인 '이런 얼굴이 아름답다'라는 기준에 억지로 성형수술 대상자의 얼굴을 맞춰나가는 요즘을 세태를 보면, 그 잘난 미적 기준이라는 것도 솔직히 의심스럽긴 했다. 문제는 두번째와 세번째 의문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저 너무 오래되서 곰팡내가 나는 떡밥, '혼네-다테마에'논쟁 말이다.


 


이걸 한국에 소개한건(혹은 퍼뜨린건)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시리즈로 기억하는데, 난 이 논쟁이 참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것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직장생활 하면서 상사한테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하고 사는 사람 있나? 이등병때 동기끼리 선임병 험담 안해본 예비역 있나? 뒷담화라는 말이 왜 태어난 건데?


 


천 번 양보해서 일본인은 약삽하게 혼네 다테마에가 있고 한국인은 솔직담백해서 그런 거 없다고 쳐 보자. 그게 누구한테 득이 되나?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있는 루저 논란. 이건 저 논쟁의 잣대로 이야기하면 '약삽한 일본놈들 처럼 뒷담화 까지 않고, 솔직담백한 한국인답게 스스로 생각한 바를 당당하게 표현한 것'이 된다. 저 당찬 발언으로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보았나? 난 애시당초 일본의 국민성에 뒷담화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는 말 자체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남 앞에서 막말하는 것 보다야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정리하면, 혼네-다테마에라는 건 그냥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속성일 뿐이고, 경우에 따라선 그게 서로 상처받지 않는 예의바른 사회생활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괜히 일본인만 그런 것 처럼 도매금으로 넘기는건 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본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가 왜 예쁘다는 생각도 안 드는 아해를 예쁘다고 칭찬해야 하나. 내 의문점은 여기서 출발했다.


 


이 즈음에서, 난 그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말의 기준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미의 기준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단순했다. 연예인. 그것도 내 취향에 맞는 매우 아름다운 연예인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그것을 양궁 과녁의 카메라렌즈로 삼아서 그 기준에 가까울 수록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이, 85.00점을 넘기지 않으면 이쁘지 않은 거였다.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하고, 피부 깨끗하고, 눈 크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노란 부분만 미인이다


 


그게 진짜 예쁘다는건 나도 인정한다. 근데, '그래야 예쁜건가?'


 


하루는 친구넘과 술을 마시는데, 내 기준으로 63점 되는 아가씨의 칭찬을 정말이지 죽어라고 주워 섬기는 거였다.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넘이었으니 뭐 참아줄 수 밖에 없었다만, 계속 듣다 보니(그리고 대충 맞장구를 치다 보니) 다음 날 그 아가씨를 교실에서 만났을때 정말 좀 예뻐 보였다. 가만히 보니 웃는 얼굴도 좀 귀여워 보이고, 자그마한 키도 은근히 매력포인트 같고, 왼쪽 뺨에 점이 세 개 정도 있어서 평소에 신경이 쓰였는데, 그것도 그냥 그 아가씨의 개성이자 그녀다운 아름다움의 일부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뇌가 되어 간 게지.


 


이런 경험을 몇 번 거치고 나서, 난 드디어 내 마음속의 점수판을 걷어치워 버리게 된다.


 


내 멋대로 기준을 세워 세상 여자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그 총점에 따라 '예쁜 여자, 안 예쁜 여자'로 구분짓던 내가 얼마나 찌질하고 얼빠진 병신이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 거다. 내 눈에 23점인 여자도 그 여자 좋아서 죽겠다는 남자한텐 김태희씨 보다 아름다운 여자다. 그걸 내가 '걔? 안 예뻐 새꺄' 그런들 도대체 누가 행복해지나. 내 양심이 만족되어 내가 행복해지나? 준 거없이 나한테 추녀 소리 들은 그 아가씨가 행복해지나? 아님 그 아가씨 한테 목 메다는 그 남자가 행복해지나?
 
'아, 걔? 진짜 미인이지' 이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행복해 질 수 있었다. 남을 칭찬한 나는 그 날 그 친구와 즐겁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비록 직접 듣지는 못했겠지만 미인 소리 들은 그 아가씨도 행복해 질 테고, 누구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 대한 칭찬을 들은 내 친구도 행복해 진 것이다. 세상이 조금 밝아지는 순간이지. 내 개인적인 심미안이나 취향따위 개나 줘 버리라지. 내가 그 아가씨 데리고 살 것도 아닌데 왜 그딴 걸 여기서 목숨걸고 지키고 표현해야 하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 왜 이걸 여태껏 모르고 살았던가 하고 오히려 억울해질 지경이었다. 남 여친이 김태희씨 만큼 이쁘면 어쩔텐가. 또, CG필요없이 괴수영화에 나올만한 아가씨면 또 뭐 어쩌라고. 나랑 잘 것도 아니고 나하고 결혼하자는 것도 아닌데. 저 정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여자라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쁘다고 칭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이지 세상은 조금 행복해졌다. 나도 행복하고, 칭찬 들은 아가씨도 행복하고, 그 아가씨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행복하고. 그 마법의 한 마디는 정말 간단했다. '아, 걔? 진짜 이쁘지'.


 


처음엔 좀 '어거지'였다. 이건 솔직히 고백한다. 독자제위는 일본 여성의 외모에 대한 험담을 참 많이들 들어 보셨을 거다.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이 나라 아해들이 성형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아가씨들도 많다. 버뜨, 이 한마디는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여자가 설령 뛰는 것 보다 구르는 것이 빠를 것 같아 보이는 아가씨라 해도 집에 가면 예쁘고 소중한 딸이고, 얼굴에 잡티가 많아 평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애도 친오빠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동생이다. 내가 무슨 견성득도한 종교인은 아니지만, 까짓거 큰 맘 먹고 칭찬하려고 들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칭찬할 구석 한 두 군데 찾는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신만의 매력이란 걸 가지고 있고, 그걸 찾아내서 칭찬하면 되는 거다.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보다, 그냥 그 사람 자체로 예쁘고 아름다운 거다. 뚱뚱해? 글레머러스한거다. 키가 작아? 니 얼굴 니 성격에 니 키는 진짜 딱이야. 짱 귀여워. 난 쌍꺼풀 보다 홑꺼풀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 200명 정도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리 모두 행복해졌다.


 



5. 하늘은 남을 돕는 자도 돕는다


 


일본이라고 외모 폄하하는 사람이 없는 거 아니다. 2ch가면 차고 넘친다. 여자 개그맨 중엔 그걸로 먹고사는 분들도 계시고. 한국이라고 다 외모 지상주의인 것도 아닐거고. 이건 솔직히 한일간의 차이라기 보단 내가 살면서 겪은 집단의 인식차이일 거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내가 한국에서 다닌 중고등학교와 대학은 이 글의 전반부에 표현한 '미의 승자독식'이 좀 지나치게 강하게 지켜지는 커뮤니티였고, 그 뒤 내가 유학생활을 통해 경험한 일본의 대학은 일본 가운데서도 좀 유별나게 서로의 외모를 칭찬하는 좋은 문화가 정착된 곳이었다. 양국을 통해 정 반대의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적을 떠나 '외모를 폄하하는 사회'와 '외모를 칭찬하는 사회'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문화는 충분히 정착될 수 있고 또 정착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취지에서 이 글을 쓴 거다.


 


마무리로 내 '칭찬하기'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를 소개하고 싶다. 그건 바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내가 아직 마음속의 외모 점수판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던 시절, 난 스스로에게 100점 만점에 16점 정도를 주고 있었다. 난 가족을 제외하곤 남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는 일 없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이건 진짜다. 흔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는데, 난 초등학교때 부터 '차라리 웃지 마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냥 무표정하면 그나마 쿨 해 보이기라도 하지, 웃으면 드라큘라를 연상시킨다나 뭐라나. 나더러 어쩌라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내 컴플렉스는 정말이지 절정에 달했다. '과 남자들 중에서 잘생인 애들'을 이야기하는 동기들이 내가 버젓이 옆에서 맥주를 까고 있는데도 마치 투명인간 인듯 취급하는 시츄에이션이나, 굳이 외모에 대한 대화를 할때 나를 거론하지 않는 주변의 분위기는 그때그때 표현은 안 했지만 좀 참담했다. 덤으로 스물 다섯을 넘기도록 여친 한 번 안 생기는 인생이다 보니 정말 외모에 관해선 즐거울 게 없었다.


 


포기가 빠르면, 노력도 없어지는 법이다. 난 항상 후줄근한 옷을 입고 다녔고, 패션이라는 건 옆 집 고양이 이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 대충 자르면 되지. 옷이야 잘 빨아서 냄새 안나면 되는거고. 어차피 내가 노력해 봐야 무관심이나 조롱 밖에 더 받겠어.


 


남의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하고 부터, 내 삶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주는게 있으면 오는것도 있는 법이다. 주변사람들도 나를 (참 어거지로)칭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별 칭찬할 건덕지가 없으니 한 두 군데 장점으로 집중되기는 했다(그 증거로, 아직껏 내 헤어스타일을 칭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핫핫핫). 대부분이 내 몇 안되는 장점을 집요하게 추켜세웠다. 내가 키에 비에 좀 마르긴 했다. 그리고 이건 유전(?)인데, 걸음걸이가 빨라서 길에 나서면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편이다. 아, 피부는 트러블 자국 투성이인데 기본적인 색깔은 하얀 편이고. 이걸 '훤칠해 보인다' '걸음걸이가 자신감이 있어보인다'는 식으로 칭찬을 받으면, 솔직히 기분 나쁠거 하나 없다.


 


 나 스스로도 놀란 거지만, 칭찬을 받기 시작한 다음부터 옷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에 어울린다는 셔츠 색깔을 고민하고, 기럭지가 좀 더 길어보일 만한 재킷과 바지를 찾게되고, 그 재킷에 맞는 구두도 좀 골라보고. 새 옷을 입고 학교를 가면 다시 덕담(?)을 들었다. 솔직히, 생전 첨 그런 칭찬을 들으니 참 기분 좋았다. 몇 주 뒤 다시 옷을 사러 갔다.



6. 외모는 정녕 '경쟁력'인가


 



명 연설 : <억울하면 다시 태어나라>


 


난 아직까지도 장동건씨를 100점으로 잡으면 17점 정도의 인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 삶의 문제점이거나 나를 괴롭히고 자포자기 상태로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막말로, 어쩌라고. 세상엔 잘 생긴 사람이 있다. 그것은 크나큰 재능이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혹은 발판삼아 부와 명예를 획득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좋은 현상이다(개인적으로 장동건씨 참 좋아한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난 얼굴 뜯어먹고 살 인간도 아니오, 그걸로 여러사람을 감동시켜서 사회를 밝게 만들만한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 가운데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잘 생긴 사람이 가진 재능이 있다면 난 내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밥 벌어 먹고 살만한 다른 재능 비슷한 걸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외모를 굳이 따지자면 난 세상 여러 여자 다 만족시켜줄 재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나 좋다는 여자 눈에 내가 마주앉아 밥먹다 식욕 상실할 만한 얼굴이 아니면 되는거다. 그런 여자가 끝까지 안 나타나면 결혼 안하면 되는 거고(... 이 경우엔 못하는 거지만). 난 150도 안되는 키(성인이다)에 만인이 추켜세울만한 미모도 없는 아가씨와도 밥 잘 먹고 술 잘 마셔봤다. 남의 집 귀한 딸이 시간 내서 나랑 밥 먹는다는데 고마워해야지 거기다 대고 니 키가 어떻고 얼굴이 어떻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루저 파동(?)의 '루저' 발언 부분은, 솔직히 난 별로 신경이 안 쓰였다. 지금껏 내 긴 글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이해가 되시겠지만, 그 아가씨가(혹은 작가분이) 내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 사진을 보고 구토감을 느끼든 말든 나랑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난 그냥 나와 얼굴 마주대고 사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고 있는 지금 현실에 매우매우 만족하고 있고, 생활에 지장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외모에 관한 컴플렉스도 없다. 내가 진짜 신경이 쓰인 부분은, 저 발언 가운데 당연한 전제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키(외모)는 경쟁력이다'라는 부분이다.


 


 



  요즘 많이 본다


 


매우매우 제한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저 말은 사실이다. 준수한 외모가 인기의 원인인 연예인이나, 영업사원이나, 프레젠테이션 많이 하는 부서 직원이나... 그런데 말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 정확한 비율은 제시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98%이상의 사람들에게, 외모는 정녕 '경쟁력'일까. 프레젠 때린 사원 외모가 준수해서 그 프로젝트 채택한 회사가 과연 잘 굴러갈까?


 


좋다. 백오십번 정도 양보해 드리지. 경쟁력이라 치자. 그게 '전 국민 누구나 다 만족할 만한 그림같은 외모'여야할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키가 작은 사람에겐 키가 작은 사람의 매력이 있는 거다. 키 작은 사람도 옷 입고 다닌다(180 이하는 벗어야 하나?). 그럼 그 사람들 입는 옷을 예쁘게 멋지게 차려입고 사진찍어서 광고할 키 작은 모델도 필요하겠네. 댁들은 다 키 크고 예쁘고 잘 생겼나?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세일즈도 세상엔 필요하지 않나.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하자면 이건 진짜 코미디가 된다. 내가 일본에 있는 사이 한국의 민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직 일부일처제일게다. 한 명의 성인남성/여성은 한 명의 성인여성/남성과 결혼한다. 외모? 그 한 명의 마음에 들면 되는거다. 이건 무슨 수능의 병폐인지 왜 외모도 줄 세워서 예쁘고 잘 생긴 순서대로 좋은 결혼이 가능하다고 '믿는' 건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우선, 외모는 그렇게 결정적인 경쟁력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첫인상이란 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사회생활이 잘 풀리리라 생각하는 허황된 망상은 마치 '스나이퍼 수준으로 사격을 잘 하면 군생활 편해져' 같은 얼빠진 일반화에 불과하다. 사격 잘 해서 군생활 핀 사병이 건군 이래 몇 백 명 정도 있을진 모르지만, 누구도 총 잘 쏘면 2년간 군생활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준수한 외모로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생이 성공할 가능성은 스코프 단 K2로 600m 전방의 목표물 저격했다고 조기전역을 할 가능성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외모로 득을 본다고 해도, 그 외의 부분에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 인생은 그냥 거기서 끝인거다. 외모 좀 딸려도 잘 먹고 잘 살 가능성은 충분히 많고.


 


게다가, 외모라는 건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로 지극히 상대적인 거다. 왜 모든 한국인은 모든 한국인을 만족시킬 외모를 추구하기 위해 제 살을 자르고 뼈를 깍아야 하나(이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는게 참 끔찍하다만). 난 내 눈에 이뻐보이는 여자 찾아내면 죽어라 청혼해서 결혼 할 생각이다. 그 여자가 독자제위 가운데 99.98%의 눈에 추녀로 보여도 상관없다.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내 여자 이쁘다는데 댁들이 왜. 


 


7. 기나긴 글의 마무리


 


진짜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긴 글을 써 버렸다. 혹여 여기까지 다 읽어주신 분 계시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오늘의 내 결론.


 


외모 지상주의, 미의 승자독식이라는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탈피할 때가 되었다. '준수한 외모'라는 끔찍하게 상대적인 문제를 가지고 마치 온 국민이 동의하는 기준이 있다는 듯 쓸데없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미디어나, 그에 현혹된 우리들이나, 다 헛 고생들 하고 있는 거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다 아름답다. 인간은 누구나 남과는 다르고, 그 차이 만으로도, 우주에 단 하나뿐이라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다. 이걸 왜 자로 재고 무게를 달아야 하나.


 




그대와 나는 아름답다. 처음엔 그냥 그렇게 믿어보라. 그리고, 주변을 칭찬해 보라. 그러면 어느샌가 깨닫게 될거다. 우리는 그냥 우리 자체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당장 지금부터 칭찬해 보자. 주변 사람들을, 가까운 친구들을. 너 그 옷 참 잘 어울린다고. 오늘은 어제보다 예뻐보인다고.


 


 그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