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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는 무엇이 손에 잡힐 듯 안 잡히는 것에 지쳐서, 결국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심정이 되어, 늘 하던 대로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뭔가 덜컥 얻어걸리는 경험.

 

이런 경험을 하면 어딘가 기쁘긴 한데 얼떨떨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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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나온 41평 땅이 평당 3,500만 원이었다. 땅값만 14억 3천 5백. 돈이 부족했다.

 

땅에 직접 가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다가구 몇 개가 리모델링한 뒤 사무실과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도로가 좁고 주로 주거가 많아 공사가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주변이 변할 것 같았고, 지하철역 두 곳이 제법 가까워 접근성도 좋았다.

 

이틀 동안 설계 확인과 대출 가능 금액을 은행에 알아보고 수익성을 조사했다. 가설계가 예측에 가깝게 잘 나왔다. 빠듯하지만 보유자금과 대출금이면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은 완성된 건물의 임대수익을 계산했다. 준공업 지역이라 기존 건물은 3층이지만 주택이 아닌 사무실 용도로 신축하면 지하를 포함해서 8개의 사무실을 지을 수 있다(이 토지에 주택을 신축하면 용적율은 250%이고 사무실은 400%이었다). 다세대를 신축해서 분양할 계획이었지만 용적율이 높은 사무실을 짓기로 하고, 사무실의 임대 수요와 가격을 조사해본다. 중개사무소에서는 16평이면 1000/180까지도 가능하단다. 알고 보니 중개인의 확대전망이었다.

 

시장조사에 들어갔지만 20년도 넘은 낡은 사무실이라 예측 가능한 모델이 없어 2000/150 정도로 임대가격을 잡았다. 시장조사는 자신의 객관적인 판단이 정말 중요하다.

 

임대 수요를 파악했는데, 내가 짓고 싶은 사무실이 이 근처에 없다. 이러한 점은 성공의 요인일 수 있지만 실패의 요인일 수도 있다. 시행 전 비용은 최대한으로 계획하고 수익은 최소한으로 계획해야 하고, 꼼꼼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공사비는 저렴하게 책정했고, 가능한 자금의 범위에 끼워 맞춰서 사업을 진행했다. 결국 공사금액 10% 정도가 부족해 후반에 고생해야 했다.

 

나는 정보수집, 자료정리 등에서 완벽을 요한다기 보다 필수적인 요소만 체크한 뒤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사업의 확신이 40%만 있다면 일단 부딪혀본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느껴지는 감(感)이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걸까. 부동산은 적어도 신축 후 이익이 적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생각과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설렘이 있다면 빠르게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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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다가 10년은 늙고 병 난다는 말이 있는데 해낼 수 있을까, 공사비 말고도 추가비용(인지구입비, 시공비용, 취득세, 보존등기, 설계비 등)이 들 텐데 생활은 어떻게 하지? 공사 기간 동안 아들 등록금도 두 번은 내야 하는데. 걱정에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지만, 드디어 땅을 샀다. 갑자기 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흥분되고 에너지가 막 생겼다.

 

그러던 중이었다. 임차인 기간이 아직 1년 반은 남았는데 어떻게 명도(건물 등을 남에게 주거나 맡기는 일)해야 하나 신경 쓰이던 와중이었다. ‘매도인(팔아넘기려는 사람)이 나와 계약서를 쓰고 난 후 다른 중개업소로부터 평당 2백씩 더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명도는 매도인이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매도인이 임차인의 명도확인을 해준 후 계약금을 넣으면 계약이 성립하는 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그런 정보가 들어왔던 것이다.

 

겨우 찾은 땅을 놓칠 수 없었다. 매도인의 임차인 명도 확인 없이 곧장 계약금을 송금했다. 이로 인해 나에게 좋은 감정이 없어졌는지 중개업소에서 ‘매도인에게 계약서에 명시된 명도와 건축허가에 대한 협조 등 어떤 조건도 요청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잔금을 치르고 나서 명도와 건축허가를 진행해야 했고, 사업 기간이 석 달 연장되었다. 그 기간 만큼 이자와 시간을 손해 본다. 계획한 것과 다르게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지만 원래 계획이란 수시로 변경되고 걸림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끔, 아주 가끔 좋은 쪽으로 변경되는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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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시절 눈에 보이는 구조와 면적을 대충 봤었기 때문에 내가 도면을 좀 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와 달리 구석구석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봐야 하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공사기간 동안 숨은 공간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화장실을 사무실 내부로 넣을까 층 사이로 뺄까를 두고 몇 번이나 설계사를 괴롭혔다. 화장실을 사무실 내부로 넣으면 건물주 입장에서 청소 등 건물 관리가 편하고, 실제 사용하는 면적과 별도로 계약서에 기록하는 사무실 임대면적이 넓어진다는 이점이 있으나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층 사이에 화장실을 배치했다. 임대 후 입주자에게 관리를 맡기는 것보다는 건물주가 주기적으로 유지/관리하는 것이 건물을 오래 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둥도 문제였다. 처음 도면에는 사무실 내부에 기둥 때문에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었다. 구조설계팀과 의논하니 기둥의 힘을 벽체로 받칠 수 있다고 했고, 그렇게 변경했다. 결론적으로 무척 잘한 선택이었다. 구조계산 비용과 추가된 비싼 철근, 강도가 큰 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하기에 비용이 추가되었지만 말이다.

 

도면을 확정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의 끝자락에 잔금을 치렀다.

 

잔금을 치르던 날, 소유권이전 등기 접수확인서를 받아 설계사무실에서 바로 건축심의 접수에 들어갔다. 건축심의는 건축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건축가로 구성된 건축위원회에서 설계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받는 것이다. 접수된 도면을 보고 통과, 조건부통과, 재심을 결정한다. (각 구청 건축과 자료실에 들어가면 심의 결과를 볼 수 있다. ‘조건부통과’의 경우 제시된 도면에 추가해야 할 사항이나 변경, 확보 등에 대해 세세하게 의견을 적어놓는다)

 

규모가 큰 건물(적어도 16층 이상)에 대해서만 심의를 통해 건축허가를 받는다고 알고 있어 이 건물도 심의 대상이 된다는 게 의아했지만, 설계소에 따르면 요즘은 신축 대부분이 심의를 거친다고 한다.

 

건축심의는 한 달에 두 번 있고, 심의 10일 전에 접수해야 한다. 잔금하는 날은 심의 열흘 전이었다. 하루가 늦으면 19일이나 기다려야 하니 그 날에 접수를 끝냈다. 법무사사무실과 설계사무실만 나의 독촉 전화에 시달렸다.

 

사업을 해야 하니 사업자를 등록해야 하겠지. 세무서에 가서 건설업, 신축판매업으로 사업자를 냈다. 상호는 잎싹건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이름이 ‘잎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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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무섭다는 ‘명도’ 단계다. 잔금 후 건축허가 이외에 임차인 두 세대의 명도 협의가 진행되었다. 한 곳은 만기가 1년 정도 남은 임대차다. 계약서상으로 77세 남성 어르신이지만, 매도인의 말로는 계약자의 장모가 거주한다. 다른 세대는 이사온 지 6개월로 만기가 1년 반이 남아있었다. 임차인은 취업준비중인 청년이었다.

 

먼저 청년 임차인을 만나 사정을 말하며, 이사비용과 다른 집을 구할 중개수수료, 전세보증금이 증가되는 만큼의 이자를 계산한 비용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임차인은 시험준비를 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현재 보증금으로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을 수 없으니 이사 가기 싫다고, 생각해본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중개 사무실을 통해 이사 나갈 생각이 없으나 좀 더 많은 비용을 주면 고려해보겠다고 전해왔다. 그러면서 제시한 비용이 너무 컸다. 사업이 1년 반이나 늦어진다면 곤란한 건 나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러한 것이리라. 몇 번 더 통화를 하고 협의해보려 했지만 무척 단호했다. 아쉬운 건 이쪽이라 적당히 합의해 줄 의사가 없어 보였고, 나로서도 그쪽에서 원하는 금액을 줄 수는 없었다. 결국 협상을 중단하고 연락하지 않았다.

 

이번엔 어르신이 지낸다는 집을 찾았다. 오전에 전화를 드렸고 오후 3시에 문을 두드렸다. 아침에 전화 드린 사람이라고 했지만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ㅇㅇㅇ선생님 아시지요.”

“조카에요.”

 

아, 정보가 틀렸구나. 마침 옆집에 거주하신다는 할머니가 오셔서는 이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조카가 가까이 살면서 보살펴주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께 이사를 가라고 말씀드려야 했다. 할머니를 내쫓아야 하니 독하고 나쁜 년이어야 했다.

 

할머니 방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얼굴이 참으로 고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우리 엄마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할머니는 다른 가족은 전혀 없이 지하 작은 방에 홀로 계셨다. 어르신을 마주보고 앉은 나는, 비용 때문에 명도 협의를 중단한 취준생 임차인을 대할 때보다 더 어려움을 느꼈다. 고통에 가까웠다.

 

계약자(조카)에게 전화를 했더니 얼마 안 돼 오셨다. ‘죄송하지만 이사해주셔야 한다’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더니, 원망이나 불편을 말씀하지 않고 그저 알았다고 하셨다. 그게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금전적인 보상을 말하거나 화를 내셨으면 차라리 맘이 편했을지 모른다.

 

할머니께 인사드리고는 곧바로 부동산으로 가, 보증금 5천 짜리 방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두 개의 물건이 있었는데 계단이 적고 조카 댁과 가까운 곳을 골라 할머니께 보여드렸다. 추워지기 전에 집을 옮겼다. 짐이 많지 않아 이사는 단출했다. 죄지은 마음을 지울 수 없는 나에게 조카 분과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이제 건물은 한 세대 빼고 모두 비었다. 거의 빈 것과 같은 건물은 쉽게 낡고 더러워졌다. 답답했던 건지 취준생 임차인이 먼저 연락해왔고, 처음 제시한 비용 정도로 협의를 마쳤다. 10월 초 마지막 세대까지 명도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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