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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 한때 동지였던 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서 온 문자 뿐 다른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한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진심을 보였고,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 해고투쟁을 하는 무리들의 곤궁함과 선을 그었고 떠나는 날까지 더는 손해를 보지 않았다. 챙겨야할 가족이라는 분명한 이유와 입장이 있는 본인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서서히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건 몇 번을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노동조합 덕분에 정규직이 되었다며 은혜를 모르는 개새끼들을 질타하며 눈물을 흘리던 데서 시나브로 뒷걸음질 치다 복직투쟁은 해고자들의 문제라며 선을 긋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제부터 대신해서 앞에 섰던 사람들에게 고맙다던 말이 그렇게 변했는지는 모른다. 조금씩 한명씩 뒷걸음질 쳤다. 그게 사람이다. 그렇게 변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웅이 되거나 배척된다. 영웅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배척되면 본인이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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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진심이었다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면서도 한결 같았다. 한때나마 진심으로 뜨거웠던 눈물이 가식이었다고 생각하긴 싫다. 그저 역량이, 에너지가 그만큼인 사람이었다. 처지가 궁핍하다보니 경조사 연락을 받아도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 궁핍은 조금 더 소중했던 사람과 조금 덜 소중한 사람을 가른다. 가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지만 이만큼이 우리 인연과 현실의 무게였다고 생각했다. 그릇의 크기가 작은 탓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잊어버렸다. 한때 동지였고 지금도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남지 않았다. 그중에 한 명에게 전화가 왔다. 장례식에 갔었는지 물어온다. 커피를 먹으러 온다고 한다.


끝까지 옆자리를 지키던 사람이다. 해고투쟁이 무산되고, 남은 사람들이 떠나고,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상부지침과 내부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에 염증을 느끼고 작년 여름 사직서를 쓰고 나갔다. 에어콘 설치 일을 배운다고 했다. 1년쯤 가족을 위해 땀을 흘리고 버는 돈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돈이 적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도 실외기를 설치하다 떨어졌다.


어깨 통증으로 몇 달간 고생했단다. 환갑이 넘어 군복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한민국이 만 나이 마흔이 되면 군역에서 풀어주는 이유가 있다. 육체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은 그즈음에서 근 골격계가 고장 나고, 정신노동으로 밥 벌어먹은 사람은 내분비계가 고장 나기 시작한다. 군역으로 관리하는 이점보다 유지비가 더 나간다. 충성은 거룩한 의무이지만 유지보수는 자율에 맡긴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돈이었다. 다세대 주택의 투룸에서 4,500만 원짜리 전세를 산다. 예전에는 주인세대가 관리했지만 지금은 관리업체가 따로 있다. 관리업체에서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했다. 십 여 년 전에 2,000만 원으로 시작한 전세금은 계약 때마다 올려주어서 4,500만 원이 되었다. 이번엔 올려 달라고 한 금액이 컸다. 관리업체가 9,000만 원을 불렀다. 관리업체가 부동산 업자를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아 수익창출을 위해 밀어내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여름 스치듯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남의 집 전세를 떠돌 바에야 차라리 조금 보태서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라고 했다. 시외곽이라 길옆에 벼가 자라고 하우스가 있다. 소똥이 두엄으로 썩어가지만 집값은 싸다. 편의시설과 인프라가 부족한 만큼 더 싸다. 애들 학교 다니는 게 조금 힘들어지겠지만 시험공부로 인생승부 볼 것 아니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나마도 요즘은 서울대 나온 애들도 힘들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한 달 후면 집을 비워줄 상황이었다. 집을 구할 수 있는지 가격이 얼마정도인지 물었다. 4호선 전철 깔릴 때 만들어졌다는 연립주택이 방 세 개짜리가 7,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수리를 하고 좀 꾸며서 더 받는 경우도 있지만 거래가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방 두 개짜리는 좀 더 싸게 거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방 셋짜리로 하기로 했다.


촉박했지만 판다는 집이 있었다. 계약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후에 상황이 바뀌었다. 집을 팔고 전세를 얻어 차액으로 노후생활을 꾸리려고 하던 노인부부가 계약을 깼다. 그 돈으로 이사갈만한 곳이 없었다. 계약금과 중도금과 잔금을 정한 일자에 넣어주기로 부동산 업자를 통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업자가 계약금 보상도 없으니 중도금을 넣기로 한 날에 입금시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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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쓰는 사람들은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 내가 살고 난 다음에 남을 공격한다는 바둑 용어)’라고 하지만, 나는 나 살자고 남을 죽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약을 해지하고 원래 살던 곳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방 두 개짜리 전세를 6,000만 원에 얻었다. 빚은 500만 원을 졌다. 하던 일에 미래도 없고, 소득에 비해 위험부담이 과했다. 이사할 생각으로 이쪽 동네의 밀가루 빵 만드는 작은 공장에 취직했다. 교통비만 아끼고 이동시간만 줄여도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잔업 특근을 하면 180만 원 정도 손에 쥔다는 말에 덜컥 결정한 일이다. 꽃빵 한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힘들고 돈 안 되기로 유명한 곳이다. 다녀보니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환자 아닌 사람이 없단다. 부자들이 부자인 이유가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하게 사는 이유도 있다. 아버지 키보다 훌쩍 커버린 큰아이와 눈이 예쁜 둘째 아이는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같은 방을 써야한다.


시골 풍경에 익숙해서인지 구수한 소똥 냄새에도 앞으로 저희들이 살게 될 곳이라며 즐거워하던 모습들을 한동안 보기 어려워졌다. 중학생인 큰아이는 휴대폰이 없다.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도 신통하게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신통한 게 아니라 일찍 철이 들었다. 밝은 얼굴을 보이지만 되지도 않을 요구는 서로가 힘들 뿐이라는 걸 일찍 알았다. 유리컵이 벼룩에게 점프 높이의 기준을 잡아주는 것처럼 가난은 아이들에게 욕구와 꿈의 한계선을 설정한다.


굽어지고 움츠러든 골격과 근육은 훗날 유리천장이 없어진대도 그 이상 뛰어오를 수 없게 만든다. 유리천장 없이 높이 뛰는 다른 아이들에게 다름을 보고 열등감을 갖기 쉽다. 열등감은 분노로 폭발할 수도 있고 체념으로 사그러질 수도 있다. 각각 안타깝고 아깝다,


협업의 즐거움에 대해서 쓴 무천님의 글을 읽고 협업을 해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백과사전에 맞먹는 지식을 품고 사는 수렵채집하는 사람들도 손을 모아 공사를 벌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생존활동을 위한 모든 일을 수행한다. 선의의 도움은 고맙지만 의무나 빚은 아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이 해야 한다.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전업’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다.


산업의 발달로 농업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생산 효율을 위해 분업을 한다. 무기를 만들고, 만든 무기로 사냥을 하고, 사냥한 동물을 요리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여럿이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게 하기 위해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탄생한다. 효율적인 생산 관리를 위해 관료제가 다듬어진다. 계급이 공고해진다. 먹을 것을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산한 교환가치를 다른 가치와 교환한다. 그 피라미드 아래 어느 언저리쯤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협업은 공동창작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일이거나 영화작업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도 위아래가 있고 부조리도 있겠지만, 기계부속품처럼 내구연한이 되면 새로운 인력으로 대체되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 산업은 모르겠지만 협업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무리한 업무지시에 순응하느라 근육에 물이차고 골격이 변형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협업은 서로의 역량을 존중함으로 자극하고 즐거움으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가는 과정일 것 같다. 전업의 시대에는 축제 때나 가능했던 일인 것 같고, 분업의 시대에는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나 허용되었던 일인 것 같다. 겪어보지 않아 모르는 일을 경험과 얕은 지식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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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는 모순이 심화되어 소멸하지 않았다.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물결들에 대응하다가 제법 탄탄하고 성공적인 사회모델이 되었다. 자본 이익추구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까지 발전했다.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다보니 생산에 필요한 인력은 점점 줄어든다.


녹조류에 고온 고압을 가해서 석유를 추출하는 기술까지 발전했다. 인간과 공존하던 자연의 치명적인 반격과 종말에 가까운 전쟁이 아니라면 위태하지만 자본을 질서로 하는 계속될 것 같다. 선민의식일 수도 있지만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자들에 대해 우월감보다 책임감이 큰 사람들이 있다.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하고 통치를 했던 권력자들의 역사와 의식의 성장과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힘을 분출하던 민중의 역사가 있다. 소에게 코뚜레를 하고 쟁기질을 시작한 건 협업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선뜻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해내고, 지혜와 힘을 모아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결과물을 그저 좋은 기억으로 남긴다. 결국 새롭고 좋은 것을 찾아 서로에게 나눔으로 인정을 받아 즐거운, 뭐 그런 걸 거라는 추론을 한다.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이에서는 지시와 이행 혹은 불복의 선택지 밖에 없다. 이행에는 그만큼의 보상이 불복에는 본보기와 같은 처벌이 따른다.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으로 겪어보지 못한 협업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았다. 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해서 아니라고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는 집의 너비와 가격으로 신분을 가른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크기가 신분이 된다. 틀을 벗어나는 사고방식으로 자라나지 않는다면,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아직 휴대폰을 갖지 못한 민석이가 ‘협업’을 경험해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을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버티는 사람들이, 백 년 천 년의 시간 개념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 체제가 주입하는 불안에 종속되고 말초적인 자극에 반응하며 살아내기에 급급해진다. DNA의 절반을 물려준 후손에게 자본과 권력을 안전하게 승계하려는 분들에게는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현상이다. 인류를 발전시킨 두 축이 ‘경쟁’과 ‘협력’이라면 분명 밑천을 까먹는 짓이지만, 냉동치료를 몇 년씩 하고 역사교과서를 입맛대로 고치려는 걸 보면 가난하지 않은 그들도 참 급급하게 산다.


계약이 엎어진 옆 건물은 투룸의 작은 연립이다. 방 두 개와 두 팔 너비의 거실을 합하면 잘빠진 원룸 크기가 나올 것 같다. 남자는 몸이 좀 불편한 것 같다. 가끔 날품팔이 일을 한다. 처음엔 2,000만 원에 전세로 들어왔다. 전세로 들어온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주인집을 찾아가서 전세금을 돌려달라고 거실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밤을 새운 남자가 아침에도 전세금을 요구하자 주인집 내외는 다시 돈이 없다고 했다. 돈이 있었으면 경매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집값이 워낙 싸서 분양 초기에 투자목적으로 산 사람들도 있고, 살려고 들어왔다가 인프라가 너무 없어 시내로 나가 살면서 세를 준 사람들도 있다. 주인집 내외가 맞벌이 출근을 하는 집에서 남자는 냉장고를 뒤져 음식을 먹고 장롱서랍을 뒤졌다.


남자는 저녁에 돌아온 주인집 내외 앞에다가 찾아낸 통장을 들이밀고 돈을 요구했다.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남자의 친척 명의로 낙찰을 받았다. 남자의 아내는 집주변 공장에서 일을 했고 업무와는 무관한 부상을 입었다. 사장의 불륜사실을 폭로하지 않는 조건으로 산재를 받았다. 꽤 오랜 시간 병원신세를 졌다. 장애진단을 받기로 했다. 신경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의사가 망치로 두드리고 발목을 비틀었다. 여자는 눈물을 참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감각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아이들은 결식아동을 위한 도시락 배달을 받는다.


빈틈이 보이는 사람에겐 자잘하게 통수를 치고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삶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기준이나 윤리는 없는 것 같다. 법의 강제와 보복의 두려움이 없다면 타인의 소중함을 욕심낼 것 같다. 동정을 구걸하는 모습이 추하고 저만 아는 욕심이 뻔뻔하다.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다르게 사는 법은 배우지 못해 알지 못하고 체득한 사회는 냉혹하다. 자신과 자식들의 생존은 절박하다. 다만 도시락 배달을 먹는 아이들이 협업의 즐거움을 경험하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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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지 않는 상대와의 협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인에게 동정이 아닌 존중을 받으려면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켜야한다. 절대적 빈곤이 아니더라도 가난은 포기와 굴종을 습관화 시킨다. 권력자들에게 포기에 찌든 가난한 사람들은 문제는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사회적 동력도 갖지 못한다. 굴종에 반발하는 에너지는 강렬하다. 다만 권력자들의 원활한 상속에는 불편함이 있다.


각종 바자회에 얼굴을 비추고 자선봉사에 열심히 참여해서 인지도를 높여 금천구 시의원에 당선되신 분이 시동생에게 가난한 집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이 있어서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분노를 터트린다. 이해하지 못하는 분노는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굳이 이해할 필요 없이 안 보고 피하고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이해가 없는 자리에 오해가 파고든다. 오해가 자라면 선의마저 곡해되고 분노는 증폭된다.





이 글이 마빡으로 납치된 후

필자가 300(필진블로그)에 A/S를 올렸다.


가난 A/S




범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