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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글쟁이?

 

언젠간 이 얘길 하고 싶었다. 나도 내 정체성에 혼란 올 때가 있는데, 했던 일로 보자면 지금까지 기자, 프리랜서 작가, 출판 콘텐츠 기획, 홍보 기획 정도의 일을 했다. 내내 비슷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활자 노동자. 이번 편은 그런 놈이 어쩌다 노가다꾼이 됐나에 관한 얘기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싶어. 하하.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퍽 심심했던 모양이다.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을 엄청나게 읽었단다. 그 영향 때문인가 몰라도,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참 좋아했다. 공부는 안 해도, 책은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정말 많이 읽었다. 그래서 그런가, 고등학교 때도 다른 과목은 형편없는데 언어 점수는 곧잘 나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또 아주 자연스럽게 대학 신문사를 거쳐 잡지사에 취직했다.

 

그렇게 5년쯤, 대전과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난 타고나길 인복이 타고난 사람인데, 기자 생활할 때도 고비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덕분에 기자 일하면서 후회 남을 짓은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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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글 쓰는 일에 미련 못 버렸다는 핑계 반,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 반으로 출판 기획 일을 하며 살았다. 그 중간중간 뜻이 맞는 사람들과 대안언론이라는 것도 만들어봤고, 평생 노동자와 정의를 위해 싸운 멋진 사람 제안으로 선거캠프에 들어가, 팔자에도 없는 홍보 기획도 도맡아 했다.

 

분야와 형식은 조금씩 달랐어도, 어쨌거나 글과 함께한 삶이었다. 대학 신문사가 그 시작이었으니 한 10년쯤 펜을 붙들었나 보다. 그러는 동안 맘 편히 쉬어본 기억이 없다. 나름 치열하다면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어찌해볼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게 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로 세상을 위로하고 싶어 글쟁이가 됐고, 정의로운 세상 만드는데 미약하나마 재주를 보태겠다고 다짐했었고, 누군가 물으면 그런 글쟁이가 되겠노라 대답했었는데, 그게 진짜 내 본심이었던가 하는 생각. 혹시,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글쟁이로 포장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쭈쭈’ 해주니까 더 신나서 제멋에 취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으로 했다.

 

흔들리는 명분을 틀어쥐고 정의가 이러네 저러네 하는 글들을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치듯 노가다판으로 왔다.    

 

 

육체노동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게 내가 노가다 일 시작한 첫 번째 이유다. 현실도피, 그리고 생계유지. 그럼에도, 많고 많은 직업 중 왜 하필 노가다였냐고 물으면 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소설가 김훈을 좋아한다. 한 번은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격하게 공감한 적이 있다. 육체노동에 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글 써서 먹고사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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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학고재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 또한 육체노동에 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마도, 글쟁이로 살았던 삶의 반작용 때문일 거다. 그런 감정들, 말하자면 몸 쓰고 땀 흘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부러움, 호기심 같은 감정이 늘 있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노가다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제 뭐 하면서 먹고 사나 하던 무렵, 문득 노가다꾼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 주저 없이 노가다판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있다. 교육자이자 교육운동가였던 故 이오덕 선생 저서를 읽으면서다.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이라는 저서에서 이오덕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사람 노릇을 하면서 살아가자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꼭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입고한 결과 자기 몸에서 나오는 온갖 불결한 폐기물을 자기가 처리하는 것이다. (중략) 만약 자기가 해야 할 이 일을 자기가 못하고 남에게 맡겼을 때는, 자기 대신에 그 일을 해준 사람에게 정도에 따른 값을 치러야 할 것이고, 또한 남을 위해 힘든 일을 해준 그 사람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존경해야 할 터이다.”

 

환경미화원을 천시하는 사회에 던진 쓴소리다. 환경미화원 대신, 노가다꾼으로 가정해도 백번 맞는 말이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잠잘 집을 대신 만들어주는 사람이 노가다꾼이니 말이다. 언젠가 저 책을 읽으면서, 노가다꾼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들이 많이 누그려졌었다. 해서, 막상 노가다 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큰 고민이나 망설임은 없었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정직함

 

최근에 지인을 만났다. 글 쓰던 시절 알게 된 사람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기에 노가다 뛴다고 했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 일이 노가다처럼 힘들다고요? 요즘 어떤 프로젝트 하시길래 그러세요?”

 

“아뇨. 진짜 노가다요.(웃음)”

 

“진짜 노가다? 공사장에서 일하신다는 거예요?”

 

“네네. 그 노가다요.”

 

이만저만 했노라고 한참 동안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러셨구나. 노가다 일은 할 만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대답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이 고민해봤다.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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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후회는 없다. 여전히 글 쓰는 것에 미련을 못 버려, 새벽 5시에 일어나 종일 노가다 뛰고 이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고 있지만, 글 쓰는 것만큼이나 노가다도 재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몸은 천근만근인데 기분이 참 좋다. 기자로 일하며 취재하고 글 쓸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생각해봤더니,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정직함 때문인 것 같다. 세상사, 어떤 일이든 남을 속이거나, 적어도 과장해서 말하게 된다. 글 써서 먹고사는 삶도 예외일 순 없다. 어떤 취재를 하든, 어떤 글을 쓰든 내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으니 감정에 따라 보태거나 덜어내게 된다.

 

그런데 노가다는 그렇지 않다. 내 몸을 써서 움직여야만 무거운 짐을 옮길 수가 있는 거고, 그게 확인되어야만 일당을 받을 수 있다. 단순하고, 또 명확하다. 거짓이나 꾸밈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

 

어쨌거나 그렇게 노가다꾼이 됐고, 그런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 몸 쓰고 땀 흘려야 끼니를 보장받는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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