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 주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61fo2Bbdp6L._SY606_.jpg

 

 

중간이 없다

 

카일로 렌도 결국 아버지와의 동일시에 성공하지만,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그는 위에서 말한 두 인물에 비해 정서적으로 훨씬 불안정해 보인다. 누가 다스베이더 손자 아니랄까 봐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바로 목을 졸라버리거나 광선검으로 난자하기 일쑤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경우를 신경증보다는 한 단계 아래 수준의 경계성 수준이라고 본다(그림). 멜라니 클라인은 이런 경우 오이디푸스 기(약 3~6세의 시기)보다 한참 이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부모를 향한 복잡한 충동 이전의 더 원시적인 충동의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크린샷 2020-01-20 오후 12.45.38.png

다양한 성격장애들이 속한 수준을 보여주는 모식도.

가장 위에 신경증의 수준이 있고 그 아래에 경계성의 수준이, 그리고 가장 아래에 정신병적 수준이 있다.

 

 

클라인은 젖을 먹고 있는 아기의 사례를 설명한다. 아기의 세계에서는 우유를 주는 젖이 있고 우유를 주지 않는 젖이 있다. 좋은 젖과 나쁜 젖이 있는 것이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좋은 젖에는 시기심을 느끼고, 나쁜 젖에는 공격성을 느끼게 된다. 발달이 진행되다 보면 아이는 이 두 가지 젖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엄마’라는 개념을 만든다. 그래서 엄마는 좋기도 하면서 나쁘기도 한 통합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애착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이 통합이 어려워지고 소위 말하는 분열(splitting)이 일어난다고 본다.

 

분열이 심해지면 아이는 세상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보지, 균형 있게 보지 못한다. 이들의 무의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섞어버리면 좋은 것이 오염될까 두려워 두 가지를 최대한 분열시킨 상태로 놔둔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극적으로 갈리고, 같은 사람 안에서도 두 가지 상태가 교대로 왔다 갔다 한다. 잘해줄 때는 잘해주다가 화를 낼 때는 갑자기 화를 내는 경계성 성격 장애의 특성은 이런 것에서 유발된다. 이런 것을 신경증에서의 ‘양가적’인 것과 구별해서 ‘양자택일적’인 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좋음과 나쁨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자기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원초적 감정, 즉 어릴 때 엄마의 젖에 대해 가졌을 시기심이나 공격성을 제대로 처리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쁜 자기 이미지’를 제대로 처리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자신이 악하다고 느껴질 때면 그 감정을 외부로 투사해서 미숙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그 결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악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피해망상과 비슷한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양자택일적 사고와 피해적 사고는 아나킨이 아내인 파드메를 대하는 장면에서도 정확히 묘사되고 있다. <시스의 복수>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다크사이드로 돌아선 아나킨의 소식을 알리고, 이를 전해 들은 파드메는 쉽게 믿지 못한다. 파드메는 즉시 비행선을 타고 아나킨을 만나러 가지만, 아나킨의 위치를 추적하던 오비완이 몰래 우주선에 숨어들어 간다. 아나킨은 처음에 자신을 찾아온 파드메를 보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반긴다. 아나킨은 “우리 함께 은하계를 지배하자”라며 흥분한 모습을 보이고, 이를 본 파드메는 “자기 변했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원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아나킨은 급정색하더니 설상가상으로 우주선 안에 숨어있던 오비완을 발견하고는 “배신자!”라고 소리치며 파드메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분노 조절이 안 되면 목부터 조르고 보는 게 이 집안 가풍).

 

스크린샷 2020-01-20 오후 2.54.34.png

이 둘의 피해 사고가 얼마나 닮았는지 사람들이 이런 비교짤을 만들었을 정도다.

 

아나킨은 전 시리즈에 걸쳐 반복적으로 “다들 나를 과소평가한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는데 제다이 평의회에서 계속 가두려 든다는 것이다. ‘가두려 든다’라는 표현 속에는 크게 두 가지 무의식적 생각이 전제돼 있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시기한다’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계성 성격 환자들이 그렇듯이, 아나킨이 보는 세상은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로 점철돼 있다. 물론 정신분석학적으로 이 시기심은 본인의 안에 있던 것이 투사되어 나타난 것이다. 스승인 오비완은 중용과 절제를 가르치기 위해 그에게 분노를 조절하라고 하지만 아나킨은 오비완이 그저 자신의 능력을 시샘하기 때문에 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동일한 운명을 밟는 카일로는 어린 시절 자신의 텐트 안에 다가온 오비완을 보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던 그 상황을) 그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전적으로 믿는다.  

 

둘째는 ‘남들은 내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른다’라는 생각이다. 극 중 카일로와 아나킨의 대사 중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과소평가underestimate'일 것이다. 단어는 그 사람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법. 이들에게 세상은 기본적으로 '위대한 나와 그런 나를 시샘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앞서 세상이 나쁘다고 믿는 경계성 성격의 특성을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이 ‘위대함’에 대한 인식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기애성 성격이라는 것을 참조해볼 필요가 있다. 신화 속의 오만 방자한 아들들이 모두 그렇듯이, 아나킨과 카일로는 분명 이런 자기애의 문제를 갖고 있다.

 

 

내가 최고야 늘 짜릿해 새로워

 

멜라니 클라인의 전통을 따르는 오토 컨버그는 자기애의 문제를 경계성 수준의 한 측면으로 본다. 이들은 여타 경계성 수준의 성격들처럼 발달상 자신의 감정들이나 자기 이미지를 통합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특유의 오만 방자함을 보이면서 타인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특이하게도 강한 힘을 가진 대상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모습을 보인다. 컨버그는 이런 것이 ‘취약한 자기에 대한 방어로서 나타나는 병리적 거대자기’의 문제라고 본다.

 

자기애성 성격에서의 방어는 경계성 성격에서의 투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들은 실망스럽고 좌절스러운 양육 환경 안에서 한없이 초라하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자신 안에서 의존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열등한 자신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아이는 이를 피하기 위해 ‘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아. 나는 홀로 지낼 수 있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면서 타인을 깎아내림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게 되는데, 이런 것이 ‘병리적 거대자기’를 형성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적 욕구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이 자기애적 욕구는 꼭 ‘자기’라는 차원만 포함하지 않는다. 자기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자기를 보듬어줌과 동시에 모범과 지침을 보여줄 대상, 즉 양육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헛은 양육자가 제공하는 이런 측면을 자기애의 발달에 필수적인 것으로 본다. 이런 것들이 적절하게 제공되지 않을 때 ‘자기’는 발달이 정체되고, 취약한 상태에 빠지면서 자기애적 분노와 공격성을 보이게 된다. 한없이 초라하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과 그런 것을 만든 환경 자체에 대한 분노 말이다. 

 

아나킨은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이다. 카일로 렌의 경우 아버지가 있었지만, 이 아버지는 망나니(영화에서는 한 솔로를 종종 밀수꾼 따위smuggler라고 표현한다)인데다가 툭하면 집안을 비운다. 이상화하면서 따를 만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아나킨은 콰이곤 진에 의해 노예 신분으로부터 해방된 뒤 고향을 떠나며 어머니에게 약속한다. 꼭 구하러 돌아오겠다고. 그러나 그녀는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 한 채 샌드피플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아나킨은 참을 수 없는 격노를 느끼며 이들을 집단 살육한다. 요다는 분명 아나킨이 어릴 때부터 이런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 안에 두려움과 분노가 너무 많다”며 염려를 표하는데, 이는 정확히 자기애성 성격에서 나타나는 분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안 그래도 오만하기 그지없던 아나킨으로서는 유일한 피붙이였던 어머니마저 잃게 되면서 자신을 점점 더 거대한 존재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자기애성 성격의 또 다른 특징은 ‘강한 자에 대한 이상화’라고 볼 수 있다. 코헛이나 컨버그는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강한 대상에게 끌린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타인에 대한 시기심이 어릴 때 제대로 완화되지 않다 보니 힘을 가진 것 같은 이상적인 인물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임상 사례를 관찰하다 보면 자기애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사이비 교주에 잘 빠지는 사람 중에 자기애적 문제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나킨이나 카일로가 항상 다크사이드를 찬양하는 것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할 때가 있을 것이다. 유아용 교육 만화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대놓고 자기 자신을 ‘악’이라고 칭한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아나킨과 카일로가 왜 ‘다크사이드’에 빠졌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갈망하는 것은 다크사이드가 가진 ‘힘’에 있지 그것의 ‘다크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시스의 복수>에서 “Unlimited Power!!!”를 외치던 팰퍼틴의 대사를 듣고 손발이 오글거렸다면 그건 당신이 건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신경증의 축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대상들에 무의식적으로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의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그 말에 혹하고 넘어간다. 힘의 절제와 중용을 강조하는 라이트사이드보다 힘의 무제한적 방출을 독려하는 다크사이드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스크린샷 2020-01-20 오후 3.35.05.png

오글토글

 

이는 카일로 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강력한 존재였던 다스베이더, 즉 자신의 할아버지와 동일해지기를 갈망한다. 망나니 아버지보다는 차라리 전설적 인물이었던 할아버지를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자기애적 욕구에는 이상화할 만한 대상이 필수적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이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실망스러운 실제 아버지보다 이상적인 가짜 아버지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프로이트는 <가족 로맨스>라는 짧은 글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진짜 자기 부모라고 상상하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코헛도 비슷하게 아버지에 대한 이상화를 유지해야 하는 압력 때문에 거짓으로 위대한 아버지를 만들어내는 자기애성 성격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병리적인 자기애의 문제에서 야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