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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내가 기자일 때 이런저런 요청으로 왕왕 학생들 앞에 섰다. 주로는 중·고등학생이었고, 때로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을 앞에 두고 말할 때도 있었다. 언론과 기자에 관한 어쭙잖은 얘기나 글쓰기와 논술에 관한 되지도 않는 요령 같은 걸 떠들었던 거 같다. 결론은 언제나, “지금 당장 나의 생활 범위 밖으로 떠나라.”는 거였다. 하다못해 근교라도, 다만 하루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경험했으면 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책이라도 읽으라고 말해줬다. 만화책이어도 좋고, 판타지 소설이어도 좋다고 덧붙였다. 교과서만 아니면 된다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얘기다. 내 자리는 창가였다. 저녁 먹고 야자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으면 창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곤 했다. 나는 그 순간이 늘 미치도록 슬펐다. 이 꽃다운 나이에, 저 아름다운 석양을, 겨우 책상에 앉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감수성 넘쳤던 시절이었으니, 이해해주길.)

 

그 시절, 나를 견디게 해준 건 습작 노트였다. 야자가 시작되면 공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나는 한쪽 귀에 몰래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었다. 그 시절은, 라디오 듣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에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글을 써 내려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글자를 나열해놓은 수준이었지만, 그때는 제법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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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무 집중했던 탓인지 야자 감독 선생님이 온 지도 몰랐다. 덜컥 걸려버렸다. 내 습작 노트는 담임선생님에게 전달됐고, ‘아~ 난 죽었구나.’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꿈이 작가라고 했지? 이런 걸 요즘은 뭐라고 부르나? 우리 때는 하이틴 소설이라고 했었는데, 하하하. 재밌게 잘 읽었어. 어쨌든 지금은 고3이고, 수능을 준비해야 할 시기니까……. 너무 대놓고 쓰진 말어! 선생님 체면도 좀만 생각해주라. 알았지?”

 

담임선생님이 돌려준 습작 노트엔 빨간 펜으로 맞춤법이 고쳐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간단한 감상평과 함께.

 

가끔 그때를 기억한다. 담임선생님이 내 습작 노트를 벅벅 찢으면서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나무랐더라면, 나는 지금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어쩌면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갔을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졸업해서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했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돈을 벌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적어도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에, “어! 나랑 똑같네. 하하.” 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될 순 없었겠지. 노가다판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아~ 오늘 컨디션 좋은데? 힘이 넘치는데?” 하면서 농담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겠지. 친구들 만나서 “야! 나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 사람이야. 라임 죽이지 않냐?”라면서 낄낄거리는 놈이 될 순 없었겠지.

 

분명한 건, 난 지금 매우 행복하다. 공부는 좀(많이) 못했지만,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갈 순 없었지만, 또 그래서 돈 많이 주는 회사에 취업할 순 없었지만, 또또 그래서 지금은 손목이 부서져라 망치질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 꼭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응원해준 사람을 일찍 만났으니까. 그 선생님 덕분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하는 용기를 얻었고, 그리하여 지금도, 여전히, 철부지처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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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특강 비슷한 걸 하기 위해 앞에 설 때면 깊은 탄식부터 나왔었다. 생기 넘쳐야 할 아이들 얼굴이 어째 이런가 싶어서. 모두가 피로에 찌들대로 찌든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집만 오간다고 했다. 오직 공부뿐인 거 같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우울함과 절망으로 점철되었던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잠들기 전, 내일 아침이 수능 다음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성적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지긋지긋한 수험생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던 그 시절이 말이다.

 

정작, 내가 인생을 배운 건 학교와 교과서가 아니었다. 25살에 인도와 네팔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 26살 배낭 하나 메고 떠돌며 밟았던 어느 시골의 길바닥, 98년식 코란도 벤을 끌고 전국을 누비며 취재한 다양한 공간과 사람을 통해서였다. 그 밖에 책에서 경험한 무수한 세계와 이야기를 통해 난 성장했다.

 

그런 걸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학교 밖에서 만날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가능성으로 한 걸음 내딛어볼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 말이다.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래서 더 떠나라고 말해줬던 거 같다. 그게 안 되면 책이라도 읽으라고, 그것도 싫으면 영화라도 보던가, 음악이라도 듣던가, 가까운 미술관에 가서 그림이라도 왕창 보라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어쩌면 떠나간 어딘가에서, 혹은 우연히 접한 어떤 책에서, 영화에서, 그림에서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어쩌면 그 미지의 세계에서 좀 더 멋진, 좀 더 근사한, 나를 흥분시키는 꿈 같은 걸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또 어쩌면 수학 가형 7등급을 맞아도 상관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지이이이잉~’ 하면서 불꽃을 튀기는 용접공도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소개해 줄 사람을, 학교 밖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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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탓하랴. 우리 모두,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는데, 학교 담장 밖으로 넘어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배우면서 컸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수학 가형 7등급 맞으면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한다던 어느 수학 강사 욕하는데 핏대 세우는 어른 말고, 수학 가형 7등급 맞아도 상관없다고 응원해주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노가다꾼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럼 또 어떠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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