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필자 주

 

지난 7월과 최근의 홍콩 현지 취재 이후, 

 스스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해 기사가 늦어졌다.

(약간의 트라우마가 남았다)

 

독자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직접 취재한 현지 현장과 함께 

홍콩의 역사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도록 구성에

최선을 다하겠다.   

 

 

 

 

 

 

2014 vs 2019

 

restmb_allidxmake.jpeg

 

 

2014년 우산 혁명은 홍콩의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면서 시작됐지만, 시위의 양상은 온건한 시민 불복종운동형태를 띄었다. 당시 시위대는 홍콩섬의 중심가인 센트럴, 에드머럴티, 코즈웨이 베이와 카우룽 반도의 몽콕 일대를 점거했다. 시위 기간 내내 이 거점을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많은 학생들은 아예 책상을 가져와 점거한 거리에서 공부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주요 지점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그 거점을 방어하는데 치중하다보니, 당시 시위는 바리케이드 공방전으로도 기억된다.

 

1967년 반영국 폭동이후 홍콩 사회를 지배한 비폭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당시 시위대의 모든 행동을 제한했다. 한국의 촛불 집회처럼 시위 장소는 깨끗하게 유지됐고. 시위 후 쓰레기를 치우는 건 시위대의 높은 도덕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척도로 보였다.

 

하지만 2019년의 양상은 2014년과는 여러모로 확연하게 달랐다.이제는 바리케이트를 구축하고 그곳을 사수하는 양상이 아니다. 2014년 경찰은 시위대가 점거한 구역을 일정부분 인정했다. 두 세력은 각자가 구축한  영역을 인정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 현재 홍콩 경찰은 거점의 구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훨씬 공격적이고 재빠른 해산을 위해 노력한다. 시위대도 굳이 거점의 구축에 집착하지 않는다. 게릴라적으로 도시 곳곳에서 흩어졌다 빠지기를 반복한다.

 

한국인들에게는 폴리텍 대학 점거 농성 같은 기억이 더 강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본다면 폴리텍 대학 농성과 같은 공성전은 외려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2014년과 2019년은 시위대의 복장에서부터 확연하게 다르다. 최루탄을 막기 위해 우산을 휴대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2014년 우산 혁명기간 내내 발사된 최루탄의 총 수는 고작 87발이었다. 우리에게는 최루탄을 막는 우산을 든 시위대의 이미지 때문에 당시 홍콩에서 최루탄이 난사된 듯 보이지만, 사실 평균으로 따지면 하루에 채 1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사용된 최루탄의 총량에 대한 홍콩 경찰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큰 시위가 있을 때면 그날의 하루 발사량을 발표하는 경우가 있는데, 로이터는 2019년 11월 22일 5개월간 약 1만발이 발사됐다고 보도했다.

 

11월 18일 폴리텍 대학 점거로 인해 가장 치열하게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한 날의 경우 경찰이 이례적으로 최루탄 사용량을 발표했는데, 이 날 하루만 약 1458발의 최루탄을 쐈다고 하니, 로이터가 보도한 2019년 6~11월까지 약 1만발은 꽤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일상적으로 터지는 최루탄으로 인해 2019년 홍콩 시위대는 눈을 보호하는 고글과 최루탄가스를 걸러내는 3M 62926 필터가 든 마스크가 기본 아이템이다.

 

844f1921-6cd7-4307-96f0-35aa78cc089f.jpg

 

 

무더운 날씨때문에 주로 반팔 티셔츠를 입는 시위대는 최루가스에 피부가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팔뚝을 랩으로 감았다는 점도 차이라면 차이. 투석전을 위해 보도블럭을 깨야하니, 장갑이 필요하고 언제 경찰에게 얻어맞아 구를지 모르니 무릎 보호대도 기본장비가 됐다. 한마디로 2014년의 시위대가 우산만 든 일상복 차림이었다면, 2019년의 시위대는 할 수 있는 중무장을 다 한 셈.

 

시위 취재를 하면서 팔뚝 랩핑을 해봤는데, 10분도 못 버티고 뜯어냈다. 한국인에게 홍콩 날씨+랩핑은 견디기 힘들었다.

 

8월로 접어들며 이른바 전투조인 용무파가 시위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예 최전선에 있다보니 홍콩 경찰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장비를 장착했다. 일단 우산이 떨어져나갔고, 그 자리를 쇠파이프가 대체했다, 11월에 접어들며 화염병도 흔해졌다. 여기까진 1980년대 한국의 시위대와 비슷한데, 홍콩의 용무파는 방패를 장착한 사람들이 많다. 철공소에서 맞춘 금속제도 있고, 두꺼운 스티로폴을 잘라서 만든 간편 버전도 있다. 이들의 용도는 경찰이 난사하는 고무탄이나 스폰지탄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용무파는 마스크도 풀 페이스+방독 필터 버전을 선호한다.

 

2019년 11월 폴리텍 대학에서 취재중 머리 위에서 최루탄이 터진 적이 있는데, 풀페이스가 아닌 경우 최루탄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응급 구조대가 내  뺨을 때리고 있더라는… 그랬었다.

 

중국 깃발도 홍콩 경찰을 자극하기 위한 주요 소품이다. 큰 집회가 있을 때 일단 최전선의 분위기는 중국 깃발을 불태우고 시작한다.

 

2014년의 거리 청소를 하는 시위자는 2019년 후반부로 갈수록 보기 힘들다. 7월까진 종종 있었지만, 이 또한 홍콩 입법회를 점거하고 시위가 격화되며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다. 11월에 접어들면 거리는 투석전을 위해 깬 보도블럭 투성이. 시위대에 우호적이지 않은 MTR, 중국계 은행, 시위대에 온정적이지 않은 식당도 파괴 대상이 된다. 2019년 7월 2일, 홍콩을 떠나면서 했던 걱정. 폭력시위로 인해 홍콩 시민들이 이들을 외면하면 어찌할까라는 고민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시위대복장.jpg

 

 

 

 

디지털 기기는 시위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앞에서 시위 장비의 변화를 잠깐 살펴봤는데, 사실 2019년 홍콩 시위를 이끈 가장 중요한 장비는 바로 스마트 폰이다. 중국 송환법 반대시위의 초창기는 2014년과 비슷한 민권전선 주최의 행진위주였지만, 6월 12일 최루탄이 난사된 이후 시위의 양상은 한낮의 행진과 심야의 게릴라성 기습 시위로 바꼈다.

 

 

▶︎텔레그램

 

시위 지도부가 없는 이번 시위의 특성상 어떻게 상호 연락할 것이냐는 문제는 6월의 100만 행진 이후 처음부터 대두됐다. 홍콩 시위대는 텔레그램 Telegram 메신저를 통한 연락체계 구축을 생각해냈다.

 

원래 홍콩 시민들이 인스턴트 메신저로 텔레그램을 사용했던 건 아니다. 2018년 조사에 의하면 홍콩에서 인스턴트 메신저 시장 점유율 1위는 왓츠앱이었고 2위는 중국계 메신저인 위챗이었다. 텔레그램을 설치하는 사용자는 2019년 1월만 해도 월 2만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6월 송환법 사태가 발생하자 텔레그램 신규사용자는 월 9만을 돌파하더니 7월이 되자 11만을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 약 170만개의 텔레그램 계정이 홍콩에 있다.

 

왜 텔레그램인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한국의 독자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의 메신저에 대한 영장 발부가 급증하자 텔레그램으로 이주가 한때 붐이었다. 필자의 경우 현재 아예 기본 메신저가 텔레그램, 카카오톡은 업무를 위해 계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홍콩의 시위대는 이 텔레그램 단톡방을 통해 단순히 시위정보를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언제 무슨 거사를 벌일지 결정한다. 텔레그램이 제공하는 투표기능의 힘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시위가 한창 절정을 달리던 2019년 7월에는 홍콩 인구의 1%에 육박하는 70만명이 동시 참여하는 단톡방도 있었다. 이들은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어느 지점에 경찰이 있는지를 공유함은 물론 심지어 몇 월 며칠 어디를 털 것인지조차 텔레그램 투표로 결정한다.

 

현재는 단톡방이 점점 세분화돼, 시위를 하다 부상을 입었을 경우 응급처치를 담당하는 방, 연행됐을 경우 법률자문을 하는 법조인들이 운영하는 방 등 다양한 공개 단톡방이 운영중이다.

 

20190817201616594kyts.jpg

 

 

텔레그램이 쓰이는 가장 큰 이유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보안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출신의 국가에 의한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는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개발됐다. 국가가 요구하는 모든 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있으며, 모든 대화가 암호화되기 때문에 비민번호를 알아내지 않는 한 대화의 열람과 복구가 어렵다. 여기에 홍콩의 압도적인 아이폰 점유율까지 더해져 아이폰+ 텔레그램 조합이 완성됐다. 한마디로 거의 무적이다.

 

더 나아가 시위대는 자신들의 모든 디지털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지하철, 버스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사용을 거부하고 현금을 쓴다거나, 시위가 벌어지는 공간에서는 ATM사용도 자제하는, 그리고 시위에 나올 때는 평소에 쓰던 모바일 폰 심카드도 사용하지 않는다. 홍콩은 편의점에서도 심카드를 살 수 있으며 심카드를 구입할 때 어떠한 인적 사항도 적지 않는 점을 이용한 전술인 셈이다.

 

물론 시위가 벌어지며 몇몇 텔레그램 단톡방 개설자가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벌어지곤 했으나 이는 대부분 개설자 개인의 부주의 때문으로 사실 현 시점에서 시위 주도자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발각되지 않고 익명으로 존재하는게 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이에 맞서 홍콩에 큰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텔레그램 서버에 디도스 공격을 하고 있으나, 2019년 7~8월 몇 번의 공격 이후 텔레그램 측도 다양한 회피, 방어 방법을 개발, 현재는 홍콩에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국의 텔레그램도 덩달아 영향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브릿지파이

 

시위대는 당국에 의해 인터넷이 차단될 가능성에 대비한 플랜 B가 있다. 텔레그램방을 통해 해당 정보가 유통된 후 꽤 많은 시위대가 설치한 앱은 바로 브릿지파이 Bridgefy다.

 

블루투스를 통해 인터넷이 차단된 상태에서도 100m 정도 떨어진 사람에게까지 메시지를 날릴 수 있다고 알려진 이 앱은 홍콩 정부가 인터넷을 차단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있던 2019년 7~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퍼졌다. BBC의 2019년 9월자 보도에 의하면, 두 달 사이 홍콩에서만 다운로드가 약 4000% 증가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아직 홍콩에서 인터넷 차단은 발생하지 않았고, 중국의 디도스 공격 탓에 텔레그램 서버가 먹통일 때나 제한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재미있는 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인도의 이민법 반대시위에서 인도 정부는 광범위한 인터넷 차단 정책을 쓰고 있는데, BBC보도를 본 인도인들이 브릿지 파이를 퍼트리며 인도시위에 브리지파이 앱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인터넷 시대, 홍콩은 시위와 디지털 기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국제 표준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tcdisrupt_sf17-bridgify-2383.jpg

 

 

 

▶︎HK Map Live

 

텔레그램 단톡방은 홍콩 시위연계에 대한 혁신을 가져왔지만, 그에 따른 한계도 있었다. 무려 70만명이 들어간 가장 큰 단톡방에서 1000명 중 한 명만 말을 해도 700개다. 예를 들어 A라는 지점에 홍콩 경찰이 뜨면 모든 단톡방은 일제히 호떡집에 불난 상황이 되는데, 목격자도 한둘이 아니다보니 금새 중요한 내용은 위로 올라가버린다. 그렇다고 매번 공지를 바꿀수도 없는 상황이다보니 다발적으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단톡방은 대응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고안한 게 '각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 구글내 지도 기능을 이용해 지도상에 마킹하면 편하지 않을까?' 이런 기획하에 고안된 게 HK Live Map 프로젝트다.

 

이 앱이 출시된 건 2019년 8월, 홍콩판 Reddit 이라고 부르는 LIHKG의 사용자 5YH가 웹에서 돌아가게끔 만들었다. 일단 지도상에 아이콘으로 통행이 막힌 도로, 경찰 병력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다보니 편했다. 굳이 시위대가 아니더라도, 이 시기에 홍콩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도 강력 추천할 정도로 유용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조간신문 보는 기분으로 앱을 켜, 내가 가려는 곳의 여행이 가능한지를 파악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첫 날 이용자가 만 명을 돌파한 지라 앱으로 만들자는 요구가 빗발쳤다. 구글 스토어는 문제없이 올라갔다. 일단 구글은 중국 본토에서 서비스도 못하는 판국이었으니 중국시장 눈치볼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애플은 입장이 달랐다. 2019년 9월 21일 처음 애플에 제출된 iOS버전은 닷새 후 애플 스토어에 의해 거부됐다. 10월 2일 2차 심사도 거부됐다. 개발자 5YH는 인터뷰를 통해 애플이 검열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개발자는 애플쪽에 이 앱은 홍콩에서 발생하는 교통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앱이라 설명했다. 결국 여론이 나빠지자 애플은 10월 4일 HK Map Live앱을 승인했고, 10월 5일 다운로드를 개시했다.

 

문제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0월 8일 중국 관영 인민일보(人民日报)가 애플이 HK Map Live를 허용함으로  홍콩 시위의 공범(帮凶)이라고 지목하며 상황은 다시 급변한다.

 

한마디로 팀쿡은 쫄았다. 애플은 다음날 앱을 앱스토어에서 내렸다. 정말 기사가 나오고 바로 다음날 벌어진 일이다. 애플의 명분은 해당 앱이 ‘공공의 안전을 위협’했고 ‘현지 법률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개발자 5YH는 해당 앱은 그저 일반적인 도로 안내 네비게이션에 도로 공사를 하니 우회하라는 정보를 제공하는 앱과 동일하다. 다만 그 정보가 도로공사가 아니라, 경찰이나 시위대에 의해 도로가 막혔다거나 어떤 지하철역이 패쇄됐다. 혹은 어디에 경찰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1003_2.jpg

 

 

시위대도 이 앱을 보고 경찰을 피할 수 있겠으나, 걸핏하면 최루탄을 쏴대는 홍콩 경찰을 피해야하는 건 여행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홍콩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그날의 안전을 보장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앱이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인민일보의 협박성 기사 한 줄의 위력조차 발휘하지 못하지만.

 

단지 사흘간 앱스토어에 있던 HK Map LIve는 그 며칠간 홍콩 앱스토어 여행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했다.

 

팀쿡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언론이 관심을 표명하자 "경찰관을 공격하고, 개인과 재산에 손실을 끼치게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홍콩의 시위대는 경찰이 있으면 회피하거나 우회한다. 이 앱은 충돌방지의 역할을 더 많이 수행했다.

 

 

▶︎What’s Gap

 

사연이 좀 긴 앱이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갈등상황의 국가나 지역일수록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크다. 홍콩도 크게 다르진 않다. 시위대는 친중 매체와 중립적인 매체, 그리고 시위대에 온정적인 매체를 구분한다. 사실 7월 1일 입법원 점거 사태때만 해도 중국 언론들은 시위대가 홍콩 의회를 파괴하는 장면을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사건 채증하듯 찍었다. 아무도 중국 언론이 벌이는 일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았다. 마치 홍위병을 연상시키는, 간제차로 기자(记者)라고 적힌 붉은 완장을 두른 중국기자들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PRESS라고 적힌 완장을 차지 않았다.

 

사건은 7월부터 시작된다. 7월 1일 입법원 점거사태 이후 홍콩 언론은 정확하게 반으로 갈렸다. 그전까지는 어찌어찌 양비론적 기조를 이어가던 친중 언론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시위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TV 채널 중 TVB란 데가 있다. 홍콩의 대표적인 상업채널로 홍콩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연 쇼 브라더스사의 런런쇼(邵逸夫)가 창립자다. 현재 홍콩에 약 5개의 지상파 채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TVB i NEWS가 광둥어 뉴스채널이다.

 

원래도 시위대에 비판적이었던 이 방송사는(홍콩에서는 일찌감치 친중성향이 강하다며 CCTVB라고도 부른다.)  7월 1일 이후 완전 돌변, 시위대의 폭력장면만 반복해서 틀어주기만 했다. 뉴스 시간마다. 일방적으로 시위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발끈했고, 2008년 광우병 집회 당시 한국의 시위대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 그건 TVB 채널에 광고하는 업체를 불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홍콩은 광고의 나라다. 독립적인 여행매체조차 드문 이 나라에서 ‘자비 취재와 독립적인 평가’를 하겠다고 공문을 띄우는 나는 무척 도발적인 사람이다. 어떤 호텔은 취재에 나선 나에게 너의 책과 우리가 집행하는 광고(Advertising)랑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저 털보는 원래 그러겠거니 하지만 처음엔 충돌이 많았다. 그만큼 홍콩은 광고가 지배한다.

 

태풍도 잦은 지역이건만 카우롱 지역의 위태로운 입간판은 언제나 건재하다. 홍콩에서 광고는 일종의 절규이기도 하다. 이 좁은 지역에서 사는 내가 하는 일을 제발 봐달라는.

 

8735.jpg_wh860.jpg

 

 

홍콩 정부도 이 위험한 입간판으로 인해 태풍이 올때마다 아슬아슬한 일이 만발한다는 걸 알지만 차마 규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 광고를, 그 중에서도 광고의 꽃이랄 수 있는 티비 광고를 시위대가 불매하겠다고 선언했다. 뜻밖의 공격에 광고주들은 순순히 TVB에서 광고를 뺀다고 선언했다. 이미 100-200만은 우습게 모이는 홍콩 시민사회의 의지를 확인한 터였다.

 

미국의 핏자 헛, 보험회사 Cigna Hong Kong, 콘돔 제조업체 Wonder Life, 그리고 일본의 음료회사인 포카리 스웨트가 광고를 빼거나, 이후 TVB와 광고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위대로서는 다시 한 번 큰 성과를 올렸지만,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민일보 산하 국제뉴스 전문 매체인 환구시보(环球时报)가 포카리 스웨트를 지목해 기사를 냈다. 포카리도 자극을 한 게 슬그머니 광고를 빼거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약간의 언질을 한 수준이 아니라, SNS에 공개적으로 "포카리 스웨트가 TVB광고 취소를 결정했다."고 써버렸다. 즉, 공개적으로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을 하니, 중국이 격분해 대응한 셈이다.

 

환구시보의 기사가 나간 후 중국의 애국적인 네티즌들은 '포카리 = 홍콩독립 지지음료 = 반역 음료'라며 그들의 죽창을 들었다. 중국의 트위터격인 웨이보는 난리가 났다. 온통 '폭도들을 지지하는 포카리 스웨트 중국내 퇴출'이 도배됐다. 결국 본토에서 포카리 스웨트 광고 모델인 걸그룹 GNZ48이 "조국의 평화와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반대한다."며 포카리 스웨트 광고에서 하차하겠다고 선언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yEaTCuKCKE

 

당사자인 TVB도 이런 불매 선동은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응수했다. 시위대는 포카리 스웨트를 시위 공식 음료로 만들었다. 실제로 이 시기 시위가 벌어진 홍콩의 거리는 꽤 많은 포카리스웨트 병으로 뒤덮혔다. 누구도 게토레이는 마시지 않았다. 한동안 홍콩 편의점에서 포카리 스웨트는 품귀음료였다.

 

반대로 중국은 포카리스웨트 불매에 휩싸였다. 같은 시기 한국도 반일 열풍이 절정을 달릴 때니 일본의 오츠카에게는 꽤 힘든 나날이었을 테다. 필자는 이 시기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포카리 스웨트 병을 들고 모 팟캐 방송에 출연했다 불매에 삐딱하다며 구박을 받아야만 했다.(실제 삐딱하기도 하다.)

 

불매는 일본계 소고기 덮밥 체인인 요시노야로 옮겨붙었다. 이 회사의 SNS 홍보 담당자가 홍콩 경찰을 조롱하는 듯한 게시물을 올렸고. 이를 홍콩의 친중 언론인 문회보가 꼰질... 아니 보도했다. 이 또한 중국의 애국적 네티즌들이 술렁거렸고, 재빠르게 홍콩 요시노야의 사업 당사자인 마빈 흥이 경찰에 사과하고 홍콩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시위대는 들끓었다. 후일 홍콩 경찰을 조롱하는 게시물을 올린 홍보 담당 직원이 여전히 요시노야에서 근무하고 있음이 밝혀졌지만, 이 당시에는 그가 해고됐다는 소문이 홍콩의 온 인터넷을 뒤덮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검색 잘하는 시위대 일부가 마빈 흥이 사실은 중국 정치협상회의 위원이자 공산당원임을 폭로했다. 요시노야는 이제 그저 홍콩의 경찰 입장에 굴복했을 뿐인 비겁한 기업 정도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원이 운영하는 타도의 대상이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저렴한 한국음식 대체제로 요시노야를 이용하던 나에게도 가장 괜찮은 밥집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이후 홍콩을 갈 때마다 요시노야 앞을 가보지만 유독 시위가 확대됐을 때만 방문해서 그런지 영업하는 요시노야를 보진 못했다.

 

참고로, 2019년 12월 12일 요시노야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중 하나인 스키야(すき家)가 몽콕 지역에 분점을 냈다. 요시노야 불매로 인해 규동 결핍에 시달리던 홍콩 사람들은 반겼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홍콩 의회 전 의원인 아그네스 초우는 이날 “오늘 스키야 홍콩점이 개업했습니다. 어제 밤부터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친중파가 경영하는 요시노야를 보이콧하는 상황이라 스키야는 대박을 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라고 트윗을 올렸고, 해당 트윗은 7800개의 알티와 2.4만개의 하트가 찍혔고 실제로 스키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홍콩인들에게 규동은 가장 인기있는 점심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하다.

 

https://twitter.com/chowtingagnes/status/1205000172008132608?s=20

 

홍콩의 이같은 열기에 중국에도 이미 진출해 있는 스키야는 초긴장. 홍콩의 열기가 중국의 불매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재 홍콩에서 불매 대상이 된 기업들은 넘쳐난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스의 홍콩 지점 사업을 하는 요식업 재벌 맥심 그룹의 장녀가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에서 "폭도가 홍콩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 이후 스타벅스는 물론, 맥심 그룹의 모든 매장이 불매 대상이다.

 

반면 시위대는 그들에게 우호적인 매장에는 집중 구매를 선택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애정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홍콩내 5개의 체인을 가지고 있는 롱문카페(Lung Mun Cafe, 龍門氷室)다. 이 집은 아예 시위가 본격화 되면서 점심 장사를 마친 오후 4시부터는 학생 시위대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봐야 고기 몇 점 들어간 탕면을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중고등학생 시위대들에게 이건 꽤 크다.

 

현재 많은 중고등학생 시위대는 부모세대와 갈등을 겪는다. 입장을 바꿔봐도 아이들이 학교도 안가고 시위하러 다닌다고 했을 때 이를 방치할 부모는 없다. 부모들은 아이의 용돈을 끊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와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배를 곯고 다닌다.

 

롱문카페는 이 점을 딱하게 여겼다.

 

롱문카페는 8월부터 학생 시위대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했다. 폴리텍 대학과 가까운 롱문카페 홍함점은 이런 정책에 불만을 느낀 친중 시위대에 의해 2019년 10월 24일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친중 시위대는 새벽 롱문카페를 기습, 점내 유리창과 가게 내에 있는 계산용 컴퓨터를 부쉈다.

 

나는 11월 19일 새벽 롱문카페 침사추이점의 주인장과 짧은 인터뷰를 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홍함점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요즘 시위대에 우호적인 홍콩 사람답게 사진 촬영에 대해 질색 팔색한 그와는 짧은 인터뷰를 겸한 대화 밖에 할 수 없었다. 그사이 나눴던 몇 마디 중 제일 궁금했던 건 이런 정책이 가게를 운영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점장은 무척 쿨했다. "이 동네서 장사되는 집은 우리집 뿐이잖냐?"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 일대에서 시위가 시작되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일진 일퇴의 상황에서도 셔터문을 내리지 않는다는 건 그들의 용기로 쟁취한 특권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위대는 저 멀리 도망쳤다 해도 다시 길을 되돌아와 굳이 이 집에서 밥을 먹는다. 무료 밥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많아 보이면 얼마간의 돈을 스스로 더 내고 있었다.

 

롱문카페는 11월 17~19일 폴리텍 대학 공방전의 와중에서는 무료 생수병과 물티슈를 가게 밖에 비치해 모두가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이 날은 롱문 카페가 있는 그래드빌 로드까지 최루탄이 날아들던 날이기도 했다. 최루탄 연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도 롱문카페는 문을 닫지 않고 대형 팬을 틀어 최루가스가 점내로 들어오는 걸 막으려고 애썼다. 도망가던 일부 학생들은 롱문 카페에 앉아 몸을 쉬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다음날 귀국해야 할 상황이었고, 취재비가 남아있던 나도, 남은 돈을 이 집에 기부할 수밖에 없었다. 기꺼이.

 

AT_46c7d417-6_Image_In_Body.png

 

 

시위대라면 누구나 불매대상과 구매대상을 구분해야 하는 몇 달이 지나고 있다. 때로는 헷갈려서 엉뚱한 가게를 부수기도 한다. 이렇게 피해를 본 기업 중엔 홍콩 기업이지만 상호가 대륙느낌인 상하이 상업은행(上海商業銀行 Shanghai Commercial Bank Limited)이 있었고, 타이완에 본점을 둔 차 음료 기업 一芳도 시위대에게 가게 몇 곳이 파괴됐다. 물론 이 또한 단톡방에 "거기 여기 저긴 아니야!"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정됐고, 시위대 일부는 그곳으로 찾아가 사과하고 형편 닿는 대로 변상하고, 사죄의 구매(?)를 하는 식으로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나온 앱이 바로 왓츠갭(What’s Gap)이다. 이 앱은 시위대가 기피하는 업소는 남색업소, 시위대가 집중 구매해야하는 업소를 황색업소로 나눈다. 즉 색으로 스마트폰 지도 안에 업소들이 구분된다.

 

쫄보 애플로서도 딱히 막을 수 없는 게 이건 기본적으로 맛집 정보 앱이다.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도 이 앱을 이용해 남색 업소에 가면 될 일이다. 최근 왓츠갭은 전통적인 홍콩 미식앱 오픈 라이스의 다운로드수를 제치고 있다. 역시 여행자들도 홍콩 여행시 참고할 만한 앱이기도 하다.

 

역시, 또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연재가 시작됐다.

 

 

 

 

 

가이드북 깎는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