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사회부 기자 추천0 비추천0






1998.8.3.월

사회부 기자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커플이다.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 대신 어린 시절 나를 거의 키우신 분들이라 내겐 더욱 각별한 분들이다.

할무이와 할부지, 도대체가 이 두 분이 싸우시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길래 언젠가 엄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 난 아직 한번도 두 분이 싸우시는 거 못 봤는데, 나 태어나기 전에 두 분이 싸우신 적 있어요? "

" 나도 못 봤다... 아무도 못 봤을껄..."

그래서 직접 할무이께 여쭤 본 적이 있다.

" 할무이 두분이 싸우신 적 없습니꺼? "
" 아무리 싸울라케도 저 영감이 실실 웃으면서 상대를 안해준다..."

참 기가 막히게 사신 분들이다. 50년 이상을 같이 사시면서 어째 단 한번도 큰소리로 싸우신 적이 없으실까... 나도 결혼해 살아보니까 알겠는데 그건 정말 기적이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들 동감하시리라.

 그런 할무이가 3년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3개월동안은 아무도 못 알아보시고 알아듣지 못할 말씀만 하시더니 한달 넘는 출장 출발 바로 전날 뵈러 갔더니 그 날만은 신기하게도 날 알아보시는 거였다.

 


" 주니 아이가... 어데 가나... "

그 말씀을 하신 5초 동안이 지난 3개월동안 의식이 돌아오신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출장 떠난 바로 다음날 돌아가셨다.

나한테 작별 인사하신 것이었다...






선산은 너무 멀어 자주 찾아 갈 수 없다고 바로 뒷산에 묻어야 한다고 부득부득 우기신 할부지 덕분에 산소는 가까웠다. 출장에서 돌아와 혼자 할무이 산소를 찾았을 때...

정말 원망스러웠다.

하루만 일찍 가시지... 아님 좀만 기다리시던지...
좀만 더 있으면 나 결혼하는데...
내가 결혼할 때 업어드린다고 내가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불렀는데...

씨발 씨발.. 그러면서 막 울었다. 누구를 향한 욕인지 원망인지...

 


근데 산소 바로 옆에 왠 철제 의자가 하나 있었다.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 이후 할부지가 갑자기 오토바이를 한대 사셨다. 참네... 팔십줄의 노인네가 왠 오토바이냐고 다들 말렸지만 워낙 똥고집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결국 사셨다. 

그리고 하루에 한두번씩 그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를 갔다 오시는 거였다.
여쭤봐도 대답도 안하시고 말이다. 팔십대 노인네가 오토바이를 끌고 어디론가 휑하니 가셨다 한시간쯤 있다 오고 그러시는 겄이였다. 경로당에 장기두러 가시나 했다...

그러다 올해 초 하던 일이 하도 잘 안되고 답답하길래 혼자 기차 타고 내려와 할무이 산소를 찾았다. 워낙 날 좋아하셨기 때문에 답답할 때 할무이 산소를 찾으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집에 안들리고 산소부터 가서 한 10분쯤 있다가 내려가려는 데 갑자기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했는데 아니 할부지인 것이다.

나무에 가려 그때까지 날 발견하지 못하신 것 같았는데,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나무 뒤로 숨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하간 나무 뒤에 숨어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와선 그 철제 의자에 털썩 앉으시는 거였다. 그러더니 후두암으로 성대 제거 수술을 해서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중얼 중얼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날 있었던 일들을 하나 하나 들려주고 계신 것이었다. 마치 할무이가 살아계신 것처럼...

" 오늘 아 글쎄 이런 일이 있었어... 내가 그래서 이렇게 했어..."

간혹 웃기도 하시면서, 그렇게 한 30분을 보고하시더니 기지개를 한번 펴시고는 오토바이를 다시 끌고 내려가셨다.

 


주저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낮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는 할부지 뒷모습을 봤다...

 


씨발...
왜 욕이 나오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할무이던, 부모님이던, 마누라던, 애인이던...
옆에 있을 때 잘하자... 




 


- 사회부 기자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