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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3.월

사회부 기자 태업으로 딴지총수가...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미국식으로 자랐고 사고 방식도 미국 사람이며 미국인이었기에 미스월드가 됐다. 그럼에도 광고계에서 그녀의 상품가치를 높이 산 데에는 토종들이 넘어서지 못한 어떤 벽을 우리 피가 섞인 사람이 넘어서는 것에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게다.

세분시장을 분석해 그녀의 이미지가 새상품의 소구점과 가장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한 광고 회사의 판단 자체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그쪽 전문가들이 오죽 잘 알아서 했겠는가. 다만 그녀의 이미지를 한국인으로 포장하며 언론이 보여 준 오버액션의 원인을 가만히 따져 가다보면 우리 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외국 것에 기죽음과 만나게 되는데 이르러서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녀가 진정 평소에도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여기고 살았다면 참으로 반갑고 기특한 일이긴 하겠으나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지 않았다 해도 그냥 있는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굳이 3대 위의 할아버지가 어쨌다느니 한국에 꼭 와보고 싶었다느니 하는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은 안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따윈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게까지 억지로 그녀를 한국인으로 만들어 내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런 식으로 억지 한국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한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 식으로라도 입증해 내고 싶은 의식의 저변엔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 것에 기죽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크고 잘나고 힘센 사람들 틈에서 자랑스럽게도 여전히 한국인으로 남아 있는 여자로 만들고 싶어하는 심리 속에 이미 우리 스스로를 작고 못나고 약한 사람으로 만드는 우리의 자격지심이 들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식의 자랑스런 한국인 만들어 내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그녀가 아니요 전 미국인이에요 한다면 상당히 섭섭해 할 것이다. 주현미가 난 중국인이에요 한다면 그 또한 괘심하게 여기거나 섭섭해 할 것이고. 그렇다면 영국인들이 미국인들 대하는 태도를 보자.

미국은 영국인들이 건너가 세운 나라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미국인이라해도 전혀 섭섭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인이 자기를 영국인이라 하며 미친놈이라 하겠지. 미국인들이 유럽인들에게 가지는 콤플렉스 덕택에 가끔 영국식 발음으로 치장한 미국인 사기꾼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러는 건 핏줄을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 사상 때문에 그런가...
그 보다는 미국넘들 속에서도 제발 한국인으로 남아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에 그럴게다. 그네 문화와 힘에 굴복하지 않은 걸 보고 싶은게다. 이걸 뒤집어보면 우린 속으로 그들이 더 힘세고 그래서 그렇게 동화되어 갈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기죽어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론 정말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자란 환경에선 여러 동양인의 피가 섞인 미국인으로 자라는게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미국인이란 걸 있는 그대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런 일에 자존심 상하거나 섭섭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런 일에서 우리 민족을 자부심을 찾지 말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 식으로 미리 기죽지 말았으면 정말 좋겠다.

 






IMF 이후, 이젠 언론들이 드러내 놓고 "외제를 쓰지 맙시다" 식의 캠페인은 못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다. 사실 무조건 외제를 쓰지 말자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순수한 국산이란 거의 없기도 하고, IMF이후 점점 국산과 외제의 구분 자체가 애매해질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더구나 외제 쓰지 말자, 국산품 애용하자란 구호 아래 보호된 우리 기업이 우리 국민들에게 되돌려 준 것은 무엇이 있던가. 언제나 수출품보다 못한 품질의 내수용 상품과 서비스가 그렇게 보호되었던 기업들이 우리에게 돌려준 것의 전부였다면 그래도 참을만하다.

그렇게 내수 시장에서 돈을 벌어 열심히 경쟁력있는 상품들을 개발하고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커 나갔다면 그래도 그런 내국민 박대를 참을만 하단 말이다.

그런데 조또 경쟁력을 키우기는 커녕 국민들의 돈으로 제 뱃속만 채우고 껍데기만 키우다 나라를 말아먹는 데 크게 일조한 우리네 거대 재벌들을 보고 있자면 더 이상 그런 알량한 구호에는 눈도 주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이런 건 있다.
그런 단순한 외제를 쓰지 맙시다 하는 구호에는 눈도 주고 싶지 않지만, 클라이덴 광고를 하는 입 큰 여자를 한국인으로 만들어 내고자 눈물겹게 노력하는 언론들을 보고 있자면 이런 건 느낀다.

이젠 정말 외국 것에 기죽지 않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필요하다...

 


그녀를 한국인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우리네 자존심의 크기는 사실 참으로 서글픈 것이다. 영어 잘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도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앞에서 기죽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이러한 심리와 맞닿아 있을 게다.

그리고 조금만 더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가 외제 쓰지 말자고 열심히 외치는 구호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외국 것에 기죽음을 만나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따져보기도 전에 언제나 외국 것이 우리 것보다 강하고 좋다고 지레 믿어 버리는 기죽음...

외제 선호가 오로지 외제가 질적인 면에서 우리 것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기인한 것이라면 사실 그렇게 외제 선호를 비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를 더 질책해야지.

 


그러나 그러한 외제 선호의 뿌리에는 외국 것에 기죽음이란 정서가, 뒤집으면 우리가, 우리 것이 언제나 못하다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기에 우린 통탄해야 한다. 단순히 편협한 국수주의나 알량한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고 그러한 못난 정서가 그 뒤에 자리하고 있기에 우린 이 못난 마음을 뿌리 뽑아야 한다.

언론들이여 더 이상 외제를 쓰지 말자는 구호 따윈 이제 써먹지 말라. 우리가 뿌리 뽑아야 하는 건 외제를 쓰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외제 선호다. 이젠 같은 값에 같은 품질이면 조금 덜 세련된 상호명을 달고 나와도 우리 것에 충분히 손이 갈 수 있는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말해달라.

더 이상 알량한 애국심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이젠 말해달라. 지금 당장 우리에게 없는 건 바로 그런 자신감이다.

이스트팩 선풍. 그 책임은 그만한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우리 기업에만 있지는 않다. 같은 상품도 외제 상호를 달아야만 선택하는 우리네 못난 기죽음과 자기비하가 한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IMF 덕택에 모든 것이 오픈되고 얼마후면 잘난 외제들이 마구 밀려들어 올 것이다. 같은 값에 더 좋은 품질의 외제가 들어 온다면 난 이제 기꺼이 외제를 선택할 것이다. 충분히 따져보아 외제가 좋다면 당당히 나의 소비자 권리를 주장할 것이며, 그만한 것을 만들어 내라고 열심히 우리네 기업에도 요구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어차피 살아 남지 못할 새판이 이제 짜일테니까. 또한 똑같은 마음으로 같은 값에 같은 품질의 국산도 주저없이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여 같은 값에 나쁜 품질의 국산으로 더 이상 국민들을 울겨 먹지 마라. 더 좋은 걸 만들어 우리들 앞에 자신있게 내 놓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말하고 싶다. 못난 외제 선호는 제발 사라져 다오... 클라인덴의 입 큰 여자는 그냥 미국인으로 남아 주고...

그게 진짜 자부심이다.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 




 


- 사회부 기자 태업으로 딴지총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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