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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신의 아버지는 나가오 다메카게(長尾為景)다. 그는 전국시대의 ‘상식’에 따라 모반을 일으켰다. 본래 에치고를 다스리던 우에스기 일족에 반기를 들었고, 위험한 상황을 어찌어찌 극복한 후 권력을 얻게 된다.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다메카게의 후계는 그의 장남인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晴景)가 이어받았을 거다. 물론, 이어받았다. 문제는 하루카게의 자질이었다. 영주로서의 자질이 의심됐다. 성격의 문제라고 할까? 아니,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봤을 수도 있다. 

 

하루카게는 온건정책으로 일관했고,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반짝 효과를 보는 듯 했지만, 역시나 전국시대가 아닌가?). 결국 가문이 흔들리는 와중에 가신들은 하루카게의 동생인 우에스기 겐신(겐신의 본명은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였다)을 옹립하게 된다. 겐신은 쿠로다 히데타다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일약 2인자의 자리까지 치고 올라간다. 

 

나가오 가문에 목숨을 건 가신들은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쪽에 줄을 서고 싶어 했다. 어떤 확률? 살아남을 확률이다. 자고 일어나면, 전쟁이고 나라 하나가 쓰러지고, 빼앗기는 게 일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영민한 군주를 모시고 싶은 게 일반적인 신하들의 상식이었다. 전국시대는 누가뭐래도 ‘실력지상주의’가 아닌가? 

 

결국 하루카게는 자신의 동생을(겐신) 양자로 들이는 형태로 가독을 물려주게 된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루카게의 친아들은 요절했다). 이렇게 쫓기듯 자리를 물려준 하루카게는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그렇다면,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가 우에스기 겐신(上杉 謙信)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우에스기 家에게 넘겨받은 거다. 간단히 설명하자면...관동관령(関東管領)이었던 우에스기 노리마사(上杉憲政)가 이때쯤이면 거의 빈사상태에 몰리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우에스기 노리마사와 싸운 ‘상대’들이 너무 나빴다. 다케다 가문과 호조 가문과 싸웠다가 판판히 깨졌던 거다.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노리마사는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를 양자로 받아들인 다음 관동관령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우에스기家 를 잇게 된 거다. 

 

 

그리고 전쟁

 

우에스기 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천재”

 

라고 할 수 있다. 평생의 숙적 다케다 신겐과는 다른 결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다케다 신겐의 전쟁을 평가하자면, 

 

“수재(秀才)가 심사숙고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찾아가는 과정”

 

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다케다 신겐은 전쟁을 해야 할 때와 외교를 해야 할 때, 그리고 계략을 써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손자병법의 영향을 받았던 이 답게(풍림화산이란 깃발을 보면 다 설명이 되지 않는가?) 전쟁보다 더 낫은 수단이 있을 때에는 미련 없이 그 수단을 사용했다.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데 어떤 주저함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다케다신겐.jpg

NHK 드라마 풍림화산(2007)

 

카이(甲斐)의 ‘늙은’ 호랑이답게 정보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았고(이 덕분에 고아가 된 여자아이들을 모아 ‘미쓰모노三ツ者’란 비밀조직을 만들었다. 신겐의 가신들은 이 미쓰모노 때문에 신겐에게 거짓말을 못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보 획득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사용했다. 

 

그리고 이런 정보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전략을 다듬어 갔다. 겉으로 나온 결과만 보면, 신겐은 전쟁을 좋아하고, 주변 모두에게 싸움을 건 것처럼 보이지만 신겐에게 전쟁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었고, 그 나마 신겐의 ‘전략’이 결정된 후로 전투로 이어졌다.

 

(신겐이 아무 생각없이 전쟁을 한 것 같지만, 치밀한 계산과 전략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신겐은 신중했다. 그러나 결단을 내릴 때에는 과감했다. 그의 지휘나 통치방식을 보면, 그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신겐은 어떤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 가신들을 모아놓고 충분히 이야기를 듣는다. 가신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충분히 고민을 한 다음...혼자 결단을 내린다. 

 

이건 한 번 눈여겨봐야 한다. 참모들과 가신들의 의견은 참고하지만, 최후의 순간 결단은 스스로 내린다. 참모들과 가신들의 의견은 참고의 의미, 정보 수집, 다른 시각으로의 접근 등등 자신이 결단을 내릴 때의 판단근거로 활용한 거다. 이건 참모나 가신을 무시한 게 아니라 그들의 존재의의를 명확히 규정한 거다. 이 덕분에 신겐의 가신들은 훗날에도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케다 4천왕, 다케다 4장, 다케다 24장(武田 二十四將)이란 말들이 나온 근거다. 

 

(다케다 24장의 경우는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케다 신겐 시절에 활동했다곤 하나 활동 시기가 제각각 달랐다. 그러나 다케다 4장 같은 경우에는 동시기에 활동했고, 신겐을 보좌했었다. 이쪽이 진짜 참모라 할 수 있다)

 

신겐은 참모들과 가신들이 뛰어 놀 ‘공간’을 만들어 줬다. 더 대단한 건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다는 거다. 참모들과 가신들의 역할은 존중하되 결정권은 신겐이 쥐고 있었고,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풍림화산(風林火山)다운 의사결정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조직’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의사결정방법, 합리적인 조직구조라고 해야 할까? 

 

(어찌보면, 다케다 신겐은 전국시대의 전투방식을 바꾼 혁명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이전까지의 전투란 게 장수 대 장수가 최전선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식으로 전쟁이 이어졌다. 전투의 규모도 전국시대 초창기에는 ‘소소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다케다 신겐이 등장하면서 현대적인 형태의 지휘가 나오게 된다. 신겐은 최전선이 아니라 본진에서 부대를 지휘하는 형태의 전쟁을 시도했다. 말 그대로 ‘지휘관’이 나온 거다) 

 

그렇다면, 우에스기 겐신은 어떨까? 다시 말하지만, 겐신은 ‘천재형’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전략이나 전술의 기본을 무시했거나 하는 건 아니다. 겐신도 신겐처럼 정보의 중요성을 알기에 전쟁시에는 노키자루(軒猿)란 닌자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우에스기 겐신의 휘하에 있던 가신들 중 기억에 남는 가신이 있을까? 신겐의 라이벌답게(그를 의식해서) 우에스기 사천왕이니, 우에스기 25장(신겐보다 1명이 많다! 아마 후대의 사람들이 신겐을 의식한 듯 하다)같은 걸 만들어 냈지만, 겐신과 함께 활동하던 당시에 눈에 띄는 특출난 가신이 보이는가?(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누가 배신했다거나 모반을 일으켰단 이야기, 그 때문에 우에스기 겐신이 출가소동을 일으켰다는 이야길 더 많이 들었을 거다. 

 

일반인의 기억 속에 각인 된 우에스기의 가신이라고 한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쌍욕’을 날린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 정도일 것이다. 

 

(나오에 카네츠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보낸 ‘나오에 장’은...좋게 말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쌍욕’이다)

 

(나오에 카네츠구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를 빼 설명하겠다)

 

‘우에스기는 천재다.’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 전쟁에 있어서 그는 순간적인 판단과 찰나를 집어내는 ‘눈’이 있었다. 그의 전투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임기응변(臨機應變)과 속도가 만들어 낸 하모니.”

 

였다. 전쟁은 언제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인생도 마찬가지지만). 전쟁 직전 준비한 계획의 50%만 실현해도 그 장수는 ‘천재’라 불릴 만 하다. 전쟁은 사람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물건’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운명은 언제나 잔인하다. 

 

겐신은 운명의 신의 멱살을 붙잡고, 끌고 갔다고 해야 할까? 천재만이 보이는 길이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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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드라마 풍림화산(2007)

 

전쟁에서 그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적의 급소를 노렸고, 급소를 노리고 들어갈 때는 언제나 빨랐다. 순간적인 판단과 빠른 행동. 이게 그의 승리의 비결이었다.

 

(우에스기 겐신이 주로 사용했다는 ‘차륜진’이 임기응변과 속도에 특화된 전술이라면, 신겐이 채용했다는 ‘딱다구리 전법’은 신겐다운 전술이었다. 쉴새 없이 병력을 몰아치는 차륜진은 겐신이 추구했던 속도와 임기응변에 최적화된 방식이었고, 신겐이 카와나카지마 전투 때 사용했다는 ‘딱다구리 전법’은 손자병법으로 대표되는 ‘군략軍略’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우에스기 겐신의 전쟁에는 참모가 끼어들 여지가 신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