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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 절차적 엄정성이 없는 탄핵은 부당하다

2004.3.16.화요일
딴지 미국 특파원


게임이론을 보면 치킨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 자동차를 마주 보고 달려오게 하여 먼저 핸들을 꺾는 자가 겁쟁이(chicken)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전략이란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결국 최악의 상황(죽음)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상대를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핸들을 뽑아버리는 행위를 통해 상대의 양보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두가 좀 길었는데 저는 이번 탄핵정국은 야당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치킨게임구도로 몰아간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날치기로 진행된 탄핵의결은 협박을 믿지 않은 대통령에게 탄핵이라는 정치적 핵폭탄을 터뜨림으로써 자신들의 협박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야당의 국가적 자해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와 다른 점은 직접 선출된 두 정당한 권력(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견제하도록 제도적으로 장치해 놓은 점입니다. 때문에 논리적으로 볼 때 어느 한 권력이 다른 권력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 헌법은 직접 선출된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의 이익을 해하는 폭군(tyranny)으로 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경우 국회가 최고의 이성적 판단기관인 헌법재판소와의 합의 하에 그 대통령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때문에 탄핵이란 직접 선출되었지만 선출된 이후에 국민을 해하는 미치광이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상의 마지막 수단이자 일종의 “명예혁명”적 장치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남미의 몇몇 국가들은 대통령에게 의회의 탄핵권에 대항할 국회해산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여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려 하면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해서 선거를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국회해산권이 있는 대통령제가 가장 정치불안이 심하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헌법은 탄핵에 상당하는 대통령의 국회견제 권한인 “국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의 독재권력이 대부분 대통령의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함으로써 문제가 되었고 그 독재권력에 맞서는 의회내의 야당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민주화가 진행되다 보니 김대중 정권시절부터 대통령이 의회의 다수당에게 법제도적으로 너무 무력한 존재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만에 하나 의회의 다수의석을 장악한 국회의원들이 정당한 대통령을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탄핵하려고 할 때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만약 작금의 구도가 정당하지 않은 의회권력의 정당한 행정권력에 대한 권력찬탈행위라면 이를 막을 제도적인 방법이 헌법재판소의 이성적 판결을 기대하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금의 탄핵추진의 정당성 여부는 어떻게 무슨 근거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요?

 

헌법상의 탄핵요건이 재적의원 2/3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가결과 같은 절차적 엄정함을 요구하는 것은 탄핵이 자칫 다수야당에 의한 정치불안정 요소로 사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입헌의도입니다. 대통령 개인이 잘못될 가능성에 비해 의회 재적의원 2/3가 집단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탄핵을 추진할 가능성은 훨씬 낮기 때문에, 또 그런 무리한 탄핵추진을 최고의 사법판단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2/3가 승인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이런 제도적 안전장치를 두는 것입니다. 이런 안전 장치를 뚫고 의회와 헌재가 “정당한” 대통령을 탄핵할 가능성은 거의 1% 미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임무는 이제 작금의 탄핵추진이 그 1% 미만의 경우에 해당될는지 아닌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먼저 답부터 드리자면 안타깝게도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탄핵추진은 그 절차적 정당성, 실체적 정당성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로 야당의 탄핵추진 이유에 있습니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든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탄핵이 추진됬다는 것은 곧 탄핵사유가 헌법이 의도한 불가피한 마지막 수단에 전혀 해당되지 않음을 방증합니다. 만약 탄핵사유가 있다면 사과여부와 무관하게 탄핵해야지, 대통령의 구두사과와 탄핵을 연계하는 것은 야당 스스로 탄핵의 정당성에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볼 때 가장 근래의 선거를 통해 등장한 행정부 수반에 대해 교체가 임박한 입법의원들이 반성여부를 놓고 탄핵을 결정한다는 점! 자체가 대통령제도의 기본 정신을 부정하는 발상이며 스스로 헌법을 유린하는 입법권력의 남용입니다.  

 

앞서 강조했듯이 탄핵에 대한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은 탄핵이 다수당의 대통령에 대한 협박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협박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강권을 동원하여 상대를 굴복시키는 행위라면 이번 탄핵카드는 대통령의 사소한 실수와 대중적 냉소를 바탕으로 대통령을 굴복시키려는 다수야당의 협박 전략이었다고 정리됩니다. 만약 대통령이 양보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사태를 몰고 가겠다는 협박. 그리고 그 협박에 대항해 “오기를 부린다는 이유”로 정치적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른 것입니다.

 

한 저명한 헌법교수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때문에 자신도 탄핵찬성으로 돌아섰다고 일간지에 인터뷰해 놓았습니다. 기자회견 내용에 따라 법리판단이 180도 변하는 것이 과연 원로 헌법학자의 올바른 자세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닉슨이 기자회견을 잘했으면 워터게이트도 이해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사태의 본질은 노무현 대통령의 퍼스낼러티가 아닙니다. 설사 그게 문제의 본질이라 해도 그가 미치광이나 폭군이 아닌 이상 - 그게 국민에 의해 부여된 정당성을 부인할 만큼 심각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저는 사태의 본질이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대통령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인 것이며 그 게임에서 야당은 그러한 목적으로는 사용해서는 안될 수단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 뒤에는 대선자금 수사의 압박과 총선에서의 지지도 열세라는 상황적 요인이 야당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돌아보면 정권 출범 초기부터 총리인준이나 장관인선 과정에서 국회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무시하는 양상을 보인 것부터가 탄핵을 통한 행정권력 부정의 조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총리나 장관을 부인하는 것과 대통령의 탄핵은 차원이 달라도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헌법의 기본정신은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적어도 전국민의 2/3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재적의원 2/3) 우리 중 가장 현명한 자들이 제한 없는 토론을 해서 아홉 중 여섯은 그 제안에 찬성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의 여섯 재판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적 엄정성이 글자 그대로 지켜지고 난 후에만 우리는 탄핵의 정당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탄핵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부담과 헌법적 엄정함으로 인해 클린턴을 탄핵하기 위해 몸이 달아있던 미국의 공화당도 겉으로 만큼은 당론으로 투표를 강요하지 않고 소신투표(vote by conscience)에 맡긴 것입니다. 여기에 작금 한국 야당의 실태를 대비해 봅시다. 탄핵찬성을 당론으로 정하고 소신투표를 하려는 의원을 공천권을 무기로 공개압박하여 사실상 당파적 탄핵을 만천하에 노골화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 의사당을 점거한 반대당 의원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토론없는 표결로 탄핵을 결정하였습니다. 과연 이러한 모습이 헌법이 요구하는 그 엄정한 절차적 정당성에 얼마나 가까운 것이었는지 새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이 단순히 표의 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 야당은 사사오입도 과반수라는 자유당의 사고로부터 한치도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치킨게임에서 전략의 핵심은 상대에게 내 협박을 최대한 믿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상대가 정 안 믿을라치면 자신이 양보하는 것이 합리적인 (rational)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둘 다 죽는 것보다는 자신이 겁쟁이가 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야당 정치인들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 함께 죽는 것이 저 놈이 잘되는 것 보다 낫다는 사고에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정치적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른 오늘 이 비극적인 사태의 본질입니다.

 

 

 
- 미국에 있는 정치학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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