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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너뷰] 독립영화감독 지민호


2004.8.25.수요일
딴지편집국


일단 영화 한 편 먼저 감상하시라. 요금 결제도 없다. 울나라에서 오로지 제대로 된 SF함 만들어 보겠다고 만사 제끼고 오늘도 씨쥐와 미니어쳐에 미쳐있는 사람의 작품 되겠다. 일단 영화 함 감상해 보시고 이너뷰 따라 오시라.


혹시 <고철을 위하여>, <지리멸렬>, <2001 이매진> 등의 영화제목을 들어보신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허진호, 봉준호, 장준환이란 이름은? 이마저 모르겠다면 <봄날은 간다>,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등의 영화제목은 어떤가?


글타. 독자덜이 눈치까셨듯 젤 처음 언급한 세 영화들은 각기 울나라에서 영화깨나 만든다는 감독들이 상업영화 데뷔 전 만들었던 독립영화의 제목들이다.(단편영화니 독립영화니 하는 개념 갖고 말이 많지만 본 기사에서는 편의상 충무로 제도권영화계 밖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통칭하여 독립영화로 지칭하겠다.)


평소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일부 관객들을 제외하고 보통의 일반관객들이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감독들의 경우도 충무로 데뷔 전 만들었던 독립영화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고 본격적인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반 관객들이 그 영화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는 독립영화에 있어서 적절한 홍보와 배급의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각종 독립, 단편 영화제들을 찾아다니며 다리품을 팔거나 1주일에 한번 KBS에서 하는 독립영화관이란 프로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 외에 일반관객들이 극장에서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독립영화의 존재의의가 위에서 언급한 재능있는 인재의 제도권으로의 수혈이란 측면 외에도 제도권내에서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실험과 주제의식이란 점을 감안할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엄따. 글쟁이는 글로 독자들에게 평가받고 영화감독은 영화로 관객들의 평가를 받는다. 독립영화감독들이 처한 가장 큰 곤경중의 하나는 이같은 관객들의 평가를 받을 기회가 원천봉쇄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법적, 제도적 지원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긴 하다. 허나, 논의는 논의대로 가는거고...


급한 대로 본지에서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창작의 의욕을 북돋고 관객과의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일반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첫 빠따가 본 이너뷰의 주인공인 지민호 감독의 <편대단편> 이다.(가급적 영화를 먼저 본 후 본 기사를 읽길 권한다.)


지민호 감독의 <편대단편>은 영화의 제작방식이나 기간, 주제의식 모든 측면에서 독립영화란 명칭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우선 제작방식과 기간. 놀라지 마시라. 실사쵤영과 컴퓨터그래픽의 합성으로 완성된 이 영화에서 지민호 감독은 물리적으로 개인작업이 불가능한 실사촬영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작업하고 완성시켰다. 그 이유? 이 작품의 초기구상부터 완성까지 총 제작기간이 장장 10년에 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장르(?)는 일반적인 상업영화에서도 엄두를 못내는 밀리터리SF에 해당한다.


사실 이너뷰를 보면 알겠지만 감독 자신은 자신의 작품이 작품외적인 측면에서 화제가 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감독 자신의 말을 빌면 그가 10년이란 청춘을 바쳐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스무살 초엽 가졌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가 보통사람들과 다른 기인이기 때문이 아니란다. 물론 이 점 하나만 가지고도 본 기자가 생각할 때는 좋은 의미에서 기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편대단편>은 감독 스스로 쓴 창세기(특정 종교와 상관없는 상상 속의 또다른 세계의 역사를 의미한다)란 이야기의 일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이야기의 완전한 영화화는 지민호 감독의 필생의 꿈이다. 이제 작은 조각 하나를 겨우 완성했으니 모두덜 격려의 말이든 비판의 말이든 한마디씩 해주시라.


 





노말한 독립영화가 아니다보니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아 지민호 감독과 직접 이너뷰를 가졌다. 본 이너뷰는 너부리 편집장, 신짱 기자가 담당했으며,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 독자들 입장에서 일단 가장 궁금한 게 이 영화를 과연 혼자서 작업 했는가, 이 부분일 것 같거든요. CG라던가 그런 걸 모두 혼자하신건지...


실사촬영의 경우는 어쩔 수없이 스탭들이 있었구요. 프리(Pre - Production)랑 포스트(Post - Production)랑 나뉘는 전후반 작업은 다 혼자 했다고 봐야죠


-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10년 정도라고 하던데요


시작은 94년도니까 10년이 되는데 군대 2년이 빠지고, 그 앞쪽은 주로 프리프로덕션이고요. 이게 딴 영화랑 다르게 독립영화고 제 개인적으로 만드는거다 보니까 맨땅에 헤딩하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 습득이나 프리프로덕션이라 불리는 기획단계에서 시간이 오래 걸린거죠.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린 거는 역시 기술에 대한 습득이었어요. 기술에 대한 개념을 알더라도 제 여건에서 어떻게 조율이 되는가 알아야 했죠. 구체적인 실험을 하지 않고 테스트클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한 상상만으로 본 작업까지 밀고 들어갈수는 없으니까요.


- 만드시면서 제일 어려웠던거는요


지금이야 다 지났으니까 작업 자체를 하면서 어려웠던 기억은 그리 오래 남아있지 않아요. 시간이 오래 걸렸다든가 괴로웠단 거 정도. 제일 저로 하여금 내거티브하게 만들었던건 처음 시작할 때 사람에 관한 부분이었어요.


- 구체적으로


대개 스무살 무렵에는 다들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그런 자신만의 계획들이 있자나요. 근데 대부분 그게 꺽이는게 사람들 때문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서 처음 제가 시작할 때 계속 들었던 얘기가, 제가 SF영화를 찍겠다고 시높시스를 쓰고 모형을 만들고 했을때부터, 사람들은 SF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모형을 만들고 있다는 그 얘기를, 일부러 그러는지 대중의 속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대화를 통해서 저는 어린 마음에 지지를 받거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그런 얘기를 한건데 대부분이 그런 거는 다 거두절미하고 저 아이는 모형을 만들고 있다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는 거죠. 제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을때 남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지는거예요. 스물살짜리 어린 애가 언젠가는 SF영화르 만들기 위해 시높시스를 쓰고 모형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는거죠. 사실은 그 상황에서부터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면 작업진행이 더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어요.


- 도움이라면 어떤 도움을 예를 들면 금전적인...


그런건 아니죠. 적어도 같이 가줄 사람이 있거나 누가 믿어주거나 그 자체가 큰 도움이 되는거죠. 물론 극소수의 한두명정도 제 친구들은  믿어주고 지지를 해주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특이한 행동에 대해 주변에서 보이는 반등들, 평가 그런게 힘들었죠. 결국엔 스물한두살 무렵에 그런 반응을 접한 이후 외부에 대해서 얘기를 끊었어요.


근데 어쩌면 저도 그런 어설픈 계획을 가진 젊은 친구 보면 마찬가지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어요. 그게 되겠냐란 말이 아주 쉽게 나온다는 거죠. 다들 자기 수준이나 자기 노력 자기 능력의 한도 내에서만 결론을 내기 때문에 그게 젤 어려웠죠. 처음에는 그냥 모형을 만든다는 그런 식의 반응이 기분 나쁠뿐이었지만 이게 점점 진행이 되가면서, 예를 들어 컴퓨터그래픽을 접목시키겠다는 결론을 내고서 99년에 처음 들어갔던 실험이 합성이었어요. 이게 제가 당시 학생이었기 때문에 이건 이거대로 진행하고 학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제를 전부 합성을 해갔어요. 이거는 그쪽에서 보기에 웃기는거죠. 얘가 왜 이러고 있나. 물론 학점을 받기 위해서, 독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애는 썼지만 거기에 대한 비난이 많다는 거예요. 너 왜 그러고 있냐. 그렇다고 그러 해명하기 위해 제가 언젠가 지금 6미리에 적용시키고 있는 이 기술로 SF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하면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 또 한두명이에요. 나머지는 되려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니가 어쩌구 저쩌고 온갖 비하하는 말이 나오죠. 결국 제가 조직 속에서 발전하고 공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또 무슨 실험을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왜 쟤는 이거했다 저거했다 그러냐 그러고. 그걸 절대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지금까지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로 이런 영화를, 애초에 시높시스를 썼던 영화를 만들겠다 하는걸 절대로 안믿어요. 그게 젤 힘들었어요. 결국 그런 반응속에서 제가 네가티브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어디서든 똑같은 질문이 나와요 이게 되겠느냐.


제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건 제 영화 보시면 알겠지만 아주 헐리웃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적 SF라고 특수효과 다 제거하고 말로만 외계인 나오고 그런 것도 아니에요. 스킬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어디 그 중간쯤 정도에서 좀 열악하게 퀄리티 평균을 맞추더라도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걸 보여주는... 그 틈새를 만들겠단 건데 사람들은 이런 틈새가 상상속에 들어있지 않은거죠.


사람들은 이제 와서 이런 도움도 받아보고, 어차피 그렇게 시간을 들일거면 3,4분짜리 데모도 만들어서 몇천만원정도 투자도 받아보고 그런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전 그건 아니라고 봐요. 저로서는 검증 받는 과정이고... 지금이야 이런 식의 틈새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도 나온 상태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냐 하는데, 그 전에는 99.9프로 그게 되겠느냐는 반응이었어요. 전례가 없다는 게 대단히 어렵더라구요.


- 작업 자체나 작업 내용도 그렇구요. 매니악한 측면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게 관심 없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만 또 좋아하는 분들은 또 아주 좋아하자나요. 지민호 감독님 경우 주변에 그런 분들은 없었나요?


친구중에 그걸 이해하는 친구가 두명 있었구요.


- 같이 작업을 하시지는 않았나요?


그렇지는 않죠. 그 친구들은 또 나름대로 하는게 있으니까. 지금이야 어느정도 어설프나마 완성된 결과물이 있는 감독이라고 저를 보고 계시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평범한 대학교 2,3학년이었어요. 이게 언제 전체의 모습을 보이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야 그럼 너 내 친구니까 나랑 같이 8년간 같이 해보자 이럴순 없는 거거든요. 이건 일반적인 제작기간 2년, 3년하는 시스템 하에서 만들어지는 영화가 아니었어요. 저로서는 굉장한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 작업이었고 지구전이었는데, 제가 생각할 때 한국적 SF다 해서 스케일을 양보하고 잔머리를 굴리면서 하는게 아니라 스케일까지 보이면서 SF영화를 만드려면 시간을 들이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 한국적 SF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거에 대한 본인의 정의는 뭐죠


그건 그냥 제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얘기한건데요. 흔히 특수효과 들어가고 그런건 헐리웃에서 하는 거고 다른 방법이 있을거다 하는데 그 말도 틀린 얘긴 아닌데 그거 갖고 한국적 SF다 이런 말 안붙였으면 좋겠어요


- 그런걸 표방한 영화가 있었나요


그런걸 표방한 영화가 많았어요. 한국적 SF다 한국적 SF는 이런거다. 근데 헐리웃이 지금 보이는 기술이 대단해 보이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CG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3D 하나라도 보신적 있으세요? 대단해요. 각 분야의 세계 최고의 인력들이 흩어져 있어요. 기술력에 있어서 각각의 퀄리티는 최고로 올라가 있는데 문제는 이걸 규합하고 편재할 사람이 없고 그것을 다 이해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짜줄 사람이 없는게 문제죠. 각종 기술에 대한 라이브러리가 생기기 전에는 연출자 자체가 자기가 받고 있는 기술지원 한도 내에서 프로젝트를 세워야 해요. 시나리오까지도 거기 영향을 받아야 하구요. 그게 당연한건데 보통 영화에서 CG가 망쳐지면 다 CG탓을 하는거예요. 울나라 CG는 안돼. 근데 우리나라 CG 됩니다. 100가지는 안되더라도 라이브러리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80이나 90, 5년전 헐리웃에서 했던것까지는 할 수 있어요. 단지 그건 편재의 문제고 이 프로젝트를 세운 사람이 이걸 얼마나 잘 이해했는가의 문젠데 거기에 대해서 다들 계획부터 말도 안되는 걸 세워놓고 실패하면 다 기술탓을 한다는거죠.


시간도 충분히 안주고 예를 들어서. 내가 시나리오를 썼을 때 여기서 구현가능한 장면과, 불가능한 장면 그 판단을 해야 되는데 일단 내민다는 거죠. 자기를 지원하는 팀이 어떤 팀인지 어떤 성격과 어떤 인력이 있는지 알고 그걸 제대로 편재하거나 재구성하고서 자기가 거기 맞는 장면들을 유도하거나 어디까지 가능한지 판단이 선 상태에서 실험을 유도해야 되는데, 그런거 없다는 거죠. 난 연출자니까 이렇게 해봐. 어 안되네 저렇게 해봐. 근데 CG라는건 어차피 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어게인이라는 것 자체가 제작비의 누수예요. 처음에 어떡해서든 기본적인 설계가 끝난 상황에서 넘어가야 되는데 그게 안된다는거죠. 우리 CG의 기술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단지 체계를 이해하거나 새로 구축하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그게 안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은 고예산으로 시작해야 되는 부분이란 측면이 큰데요. 최근에 (한국영화) 붐이 있기 전까지 돈이 안들어가는 장면, 드라마와 연기 타이즈로만 끝낼 수 있는 장르의 집중이 있었어요.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벤허>나 <십계> 시기 이후 <스타워즈>가 나올때까지 마찬가지 시기가 있었어요. 소위 작품성이나 웰메이드만을 추구하는... 우리주변에도 마틴 스콜세지랑 조지 루카스 비교하는 사람은 없자나요. 마찬가지예요. 조지 루카스 타입의 감독이 나오는 거에 대해서 아직까지 뚜렷한 길이 없어요. 특히 기존의 연출자와 충무로 시스템 하에서 답을 찾으려 하면 더 어려워지죠.


- 그런 얘기에 대해서 현재 한국 영화의 파이가 SF영화나 그런데 투자하기에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그런 주장도 있을법 한데요


최근 왠만한 한국영화의 제작비로 들어가고 있는 70억이나 100억 갖고도 충분히 좋은 작품 만들 수 있다고 봐요. 그 대신에 70억 100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문제죠. 예를 들어 350만원짜리 세트를 지어놓고 뭐 형편없긴 하지만 그런 작품(편대단편을 말함)을 뽑아낼수 있는것처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죠. 누수를 막고 적은 비용으로 어떻게 효과를 극대화할것인가를 처음 기획한 연출자부터 알고 있다면 70억 100억 갖고 충분히 좋은 작품 나올수 있다고 봐요.


- 작년 울나라 애니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원더풀 데이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작비도 들일 만큼 들인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 지민호 감독은 극구 OFF THE RECORD를 요구하였다. 개인적(!) 입장의 난처함과 더불어 자신이 일단 검증 받을만한 위치에 있어야 정당한 비판이 가능하단 요지였다. 일견 수긍이 가는 주장이기도 했지만, 감정 섞인 비판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본지 컨셉이 아무리 지조때로라고 해도 인터뷰어의 요구까지 생깔 수는 없는 일, 독자제위들의 양해를 바란다. 정 궁금하면 감독에게 직접 멜질 해서 물어보시던지)


- 지감독님은 <편대단편> 이후 또 다른 단편작업을 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작년 9월에 작업을 끝내고 지금은 허공에 뜬 상태에요. 제가 직접 배급을 하다보니 그런건데요. 독립영화란게 손을 놓아버리면 영화가 사라지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계속 할 경우에는 제가 갖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한 상태에서, 그니까 일단 딴 직업을 가져야겠죠. 그래서 몇 년간, 한 5,6년 돈 모은 다음 다음 작품을 하던가...



- 가장 바라시는 거라면 역시 이번 작업으로 가능성을 인정 받아서 상업영화계에서 안정적으로 작업하시는 거겠죠


크게 봤을 때는 독립영화계에 계속 남는게 저한테는 나을 수도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어떤 대중적 타협 없이 좀 지루할 수도 있고, 대중적이지 못할 수도 있고, 좀 매니악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계속 밀고 나가려면 독립영화계에 남아있는 게 더 유리할 수 있어요.


지금 제 영화를 봤을 때 관객들이 아쉬워 하는 부분을 제가 알거든요. 근데 그런 건 여건의 문제랄까. 가령 첫 장면에서 자막으로 설명하는 부분을 비주얼로 좌악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건 제 머릿속에 상상으로 다 들어있는거거든요. 근데 그런걸 다 생략하고 대중들에게 내놨을때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스스로도 아쉬워요. 그럴때 제대로 지원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은 들죠.


결국은 바람직한 방향이란게 지금 이 작품만 가지고는 충무로에서도 저한테 연출자 자리를 줄 정도로 인정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CG쪽으로 가도 저한테 연출자나 고급실무자의 자리를 줄 정도로 인정받을 작품은 아니에요. 어차피 그쪽도 부분 실무자가 있기 때문에 이펙트가 됐든, 모델링이 됐든, 애니메이션이 됐든, 어떤 한 분야를 잘 하는 사람들... 저같은 경우는 SF영화를 만든다는 전체목적 때문에 영화연출이라던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웰메이드적 요소들 그런 부분들도 상당히 많이 빼먹었고, 특수효과에 있어서도 전문가들 보기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 그런 부분들을 많이 포기했어요. 전체 영화를 조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오히려 어떤 측면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가치가 없어지죠. 저는 이 퀄리티가 40이든 50이든 거기 평균을 맞추고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제가 다음 진로를 정할수 없는 거예요. 이런게 어렵죠.


 - 아 그럼, 어떤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어떤 특정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  


그렇죠. 그게 동기죠. 절대적인. 굉장히 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하기 시작한 일이고 그래서 10년이란 시간에 제게 감당이 됐던 거예요.


- 그럼 작품 자체로 들어가서요. 보통 감독들이 주제의식이나 기타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 기존 작품들의 영향 이런걸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그런쪽의 접근이 용이하니까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드리겠습니다. 거대한 이야기고 하나의 거대한 밀리터리 SF서사시라 할 수 있는데, 가령 <파이브 스타 스토리>나 <건담> 같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진 않으셨나요.  


영향보다 반감을 가지고 있죠. <파이브 스타 스토리> 주인공 이름이 뭔지 아세요. 아마테라스라고요. 우리나라에 예전에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전이 있었어요. 남산에 일제시대에. 일본의 국조에요. <파이브 스타 스토리>라는 게 결국 일본의 다섯 개의 섬을 별의 이름으로 옮겨놓은거예요. 자기들 개국신화죠. 거기에 제가 영향을 받는다는게 말이 안되죠.


- 아 꼭 그 내용이나 주제가 아니라요. 하나의 독자적 세계라는 측면에서 구성이나 이런...


그런 식의 구성은 훨씬 오래전에 그리스신화때부터 있어왔구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다른 세계로 확장한 것이기 때문에 단지 어떤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거나 그런건 아니에요. 저는 저희가 겪어오거나 지켜봤던 전쟁에 대해서, 미래사회에 옮겨놨을때 훨씬 이야기하기가 수월하다는 측면. 이런게 중요했죠. 난 우리가 겪은 일들을 이런 식으로 옮겨놓겠다.


- 그럼 기술적으로 각종 메카닉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디자인들이나 그런 거에 대해서 특별히 참고하신 게 있으십니까


(순간 얼굴 굳어짐) 그런거는 제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이 돼있는데요...


(일순침묵. 이 부분에 대한 지민호 감독의 반응은 의외로 민감했다. 짧은 시간동안 나름대로 짱구를 굴려본 결과, 이 질문을 타 작품에 대한 모방이나 표절에 관한 질문으로 받아들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너뷰 후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대충 본 기자의 예상과 비슷했다. 지감독에게 식사중 들은 얘기로는 전에도 이런 비슷한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게 기사화, 문서화 되면서 많이 와전되어 불쾌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한다. 창작자로서 당연한 거겠지만 자신의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보호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로 자연물에 대한 디자인을 메카닉으로 응용을 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좋게 봤는데요. 제 작품의 전투기들을 보시면 갈매기 있자나요. 인천항 갔다 갈매기 보는데 새우깡 주면 좌악 나와서 받아먹고 그러는 게 좋아보이더라구요. 그런 식으로 일부 메카닉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연물에 대한 개념들. 형태를 따온다거나 뭔가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그런 자연물을 따온다는 개념에서 아니면 자연물이 가지는 역동성, 갈매기들이 새우깡 물고 빠질때 전 참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식으로 개념을 받아온것도 있고요.


우주선 같은 경우는 충분히 그 구조를 못보이고 있는데, 좀 복잡했죠. 처음에 디자인 할때는 단지 거대한 느낌이 중요하고 거기서 시작했는데, 그걸 직접 모형으로 만들어 보니 균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더라구요. 그냥 제가 그림을 그릴때 멋진거랑 그걸 입체물로 만들때의 그 느낌이랑 굉장히 달라지더라구요. 거기서 조율을 하다가 마지막에 영화 속에 나오는 상징들의 느낌들과 더해서 정해진거죠. 근데 아마 전체적으로는 옛날 헐리웃 아날로그 특수효과 시대의 느낌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은 분명히 영향을 받았어요. 그런 거대 우주선들. 제가 영향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 영화감독이란 직업이 장르별로 특화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지감독님 같은 경우는 SF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구요. 다른 장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SF와 비슷한 제작방식의 영화가 있는데요 역사물이요.


- 뭐 고증하고 그런거요?


SF의 경우는 과학적 근거를 따르거나 새로이 설정한 세계관에 따르게 되는데, 역사물은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사료에 근거를 두죠. 근데 둘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지않은 시대의 정서와 그런 분위기로 데려가는건 공통적이고. 이 두가지는 소스가 다를뿐 정서를 새로 구축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하지만 역사물은 훨씬 더 리얼해야 하는만큼 SF보다 더 기술이 필요하겠죠. 하고 싶은건 SF를 하다가 역사 판타지를 만들어 보는거에요.


- 코메디나 로맨스 그런 영화들은 관심이 없으신가 보네요


예. 관심 없어요.


- 그만큼 SF에 관심이 있으신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때부터 박혀왔어요. 인터뷰나 그런 거 할때마다 매번 그 대답이 바뀌어왔는데 저도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누가 왜 SF를 좋아하냐고 묻는데 왜 제대로 대답할수 없을까 왜 그럴까. 근데 그거는 어쩔수 없는 영향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부흥기였던 70년후반부터 8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 제가 기억하는건 다 SF였어요. 무지개극장 어린이회관이나 세종문화회관 별관 같은데서 방학때마다 줄서서 봤는데 그때 받았던 느낌들.... 티비에서 해줬던 시리즈들도 <별들의 전쟁> 이런 거 봤고, 어렸을때부터 이미 우주에 나가 있었던 거죠. 자라면서는 <V>라던가 <우주대모험 1999> 그런거...


제가 시대상을 관통하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철학을 갖고 있진 못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현실에 대해 그린건 별루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현실을 그릴수 있는게 제한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나온 컨텐츠 자체가 제한이 있었고... 당연히 그 시대에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서 부조리에 대해 언급하는게 만화나 애니메이션밖에 없었자나요. 부조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애들한테 보여줄수 있는게 주로 다른 세계 이야기였고 그러다보니 거기에 익숙해졌고... 80년대 후반들어 비디오시대가 시작되면서 몰려들어왔던 영화들, 당시 중고교시절이니까 당연히 관심 있었던건 액션이나 SF영화들이었고요.


- 전 개인적으로 SF영화만 좋아한다기보다 SF적 가치관을 좋아하거든요.


세계를 보여주는 부분.


- 무슨 메카닉 디자인이니 뭐니 그런거엔 둔해요. 그런건 잘 모르는데. 현실속에서 이루어질수 없는. 어떤 관습적인 가치관을 깨는 그런걸 좋아하는데, 지감독님도 그러신 것 같군요.


저도 이번 작품의 세계관과 관련해서 아쉬운 점이 있어요.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드러난 세계관에 대해서 어떤 부분을 봐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라구요. 앞에 나온 텍스트나 이런거는 다 까먹고... 결국은 전체(창세기 전체 이야기를 말함)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기 전에는 세계관 이야기가 안될 것 같아요.


- 간단하게나마 직접 말씀해 보시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환타지라는 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문화생산물 이런건데... 2차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피아의 식별이 있었어요.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전쟁을 한다면 영국놈 나쁜놈, 프랑스놈 나쁜놈 이런 게 있었고 그게 어떤 종교적 의미까지 가지게 되더라도 이교도에 대한 무시정도만 있었죠. 글구 그 이교도의 개념에도 인간이란 개념은 있었고. 그런데 2차대전 이후 거의 절대악이랄수 있는 히틀러를 이기고 나서 연합군측의 승리자축에 의해서 생겨난 환타지가 나와요. 톨킨이 대표적인데 <반지의 제왕>같은 경우 종교의 개념에서 빌려온 악의 개념을 환타지에 집어넣어요. 절대선과 절대악이 싸워요. 종교적 이분법이죠. 그것도 기독교적 이분법. 여기선 타협의 여지가 없어요. 절대악은 죽여서 없애야 할 대상이죠. 그게 승전국의 환타지였어요. 근데 이게 우려가 되는 것이 이런 식의 환타지로서의 전쟁을 받아들였을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가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을 했어요. 그게 결국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 실행이 되버렸는데(이라크 전쟁을 의미하는듯), 이런 타협없는 종교적 선악구분이 만일 다른 전쟁에 적용이 되었을때, 부시가 한마디 하자나요. 악의 축. 그건 종교적 이분법에서의 악이거든요. 그걸 사용했을때 사람들은 환타지에 빠져들어요. 없애야 하는, 인간이 아닌 것. 종교적 이분법으로 인간을 나눈다는건 굉장히 나쁜거에요. 인간이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정치적 타협을 해서라도 타협점을 찾아야 하고 끝까지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절대적 선악개념하에선 불가능하죠. 그 절대적 선악구분의 개념이 2차대전이후 승전국들 사이에 있어고 그 승전국들이 강대국이 되었고, 강대국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그 경제력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가 SF영화였어요 아님 환타지거나.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들어왔죠. 사실 <똘이장군>이나 <반지의 제왕>이나 비슷해요. 거기서 늑대들이 기관총을 들고 나와요. 또 다른데선 오크들이 나오고. 생김새가 달라요. 그런 인종주의적 편견. 그런 것들이 작품 속에 반영됐어요. 타협하지 않아요. 죽여서 없애버려야 할 것들이지. 그런것들이 냉전시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됐어요. 그 교육을 우리가 받아왔고. 전 그게 부조리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패전국으로서 강대국이 된 일본같은 경우, 2차대전의 영향인진 모르겠지만 전쟁에 대한 도덕성을 미디어에서 없애버렸어요. 전체사회조직에서 봤을때 사회가 가져야 할 도덕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고, 순전히 개인 대 개인으로서 아님 장비와 힘의 차이로서 어떤 토너먼트를 벌이고 있어요. 전쟁은 상황으로 놓고 그 안에 개인들만 들어가 있는거죠. 그리고 그 개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처지에 대한 고민만 있을뿐 전쟁이란 상황 자체에 대해서 고민한 작품은 드물어요. 물론 <에이리어 88> 같은 작품이 있긴 하지만. 이게 소위 말하는 패전국의 환타지인 것 같아요.


결국 앞서 설명한 더 광범위한 승전국의 판타지가 있고 패전국의 판타지가 있는 가운데 그 사이에서 훨씬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까지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고 줄곧 이용만 당하고 피해만 입었던 사람들은 어떤 환타지를 가져야 하는가. 물론 절대선이 절대악을 이기면 통쾌하고 재미있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전 제일 싫어하는게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얘기예요. 저도 그랬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은 반드시 영향을 받습니다. 행동이나 자신의 사상이나. 특히 전쟁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일을 바라볼땐 영화에서 주입된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티비에서 이라크를 점령하는 모습을 보며 미국인들이 생각하는게 영화 속의 전쟁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어요. 절대악을 부수러 갔다. 포로로 잡힌 사람 대우해 줄 필요가 없어요. 오크니까.






 


이번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원래 월남전까지의 과거형만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실사촬영을 끝내놓고 일주일 있다가 통닭 먹고 있는데 9.11이 터졌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절대악이란 선언이 나오는거 보면서 생각을 굳힌 게 저건 정말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제가 보여주고 싶은건, 약간 지루하고 짜증이 나더라도 입체적인 역사속에서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피해를 받거나 조직적인 억압을 받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미래로 옮겨놓은 작품은 뭐가 있냐는 거에요. 물론 이 작품 하나에서 충분히 보여지지 못하긴 하지만 전 이게 다 우리적인 세계관이라고 보거든요. 결국 시리즈가 더 나와야 하겠지만. 우리가 계속 안고 가는 문제, 월남전에 대한 문제, 그 책임을 누가 질것인가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문제, 아님 일제시대 생겨난 문제들, 그 원점에 근원적인 잘못이 누구한테 있는가 생각할 기회를 이 시리즈들을 통해 주고 싶은 거죠.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고 비행기도 있고 미사일도 있는데 마지막에 왜 그걸 반전시키거나 도망가거나 대항하거나 하지 않냐는 얘기를 하는데, 실제 다수의 억압된 사람들은 모르는 채거나 너무나 철저하게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그런 세상이었거든요. 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너희가 억압이나 강제적 구속을 받았을 때 얼마나 힘이 없는지 봐라. 이게 우리들 역사다. 물론 그러다가 전체 시리즈의 클라이막스에서는 좀더 영웅적인 사람이 나올수도 있겠죠. 중요한건 대다수는 저런식으로 살았단 거예요.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대다수가 저런식으로 살았다고 했을때 그 잘못이 누구한테 있느냐고 봤을때 그 전체주의, 문제를 만들어낸 그 전체주의로 화살을 돌리고 싶거든요.


-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이 영화에 깔려있었던 거군요


국가주의 같은 경우 아직까지 효용이 있을지 몰라요. 여전히 억압받는 민족과 국가가 있고, 그런 사람들이 억압에서 벗어나는 길이 당분간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일수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난 유럽사람들이야 거리를 둘 수 있다고 얘기할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누군가에 휘둘릴수 있는 사람은 그게 일종의 수단일수 있으니까요. 국가주의란게 여러 가지 개념이 있을수 있고, 국가주의란 개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확실히 반감을 가지고 있죠. 제 세대는 다 공통적인거 같아요. 초등학교때까지 싸이렌 울리면 책상밑에 기어들어가고, 앞에선 반공이 어쩌고... 전 좀 늦게 깨친게 스물여섯살때까지 국가에서 하는 말을 다 믿었어요.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바보같았다고 할까.


- 대부분이 그렇죠.


근데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인생이에요. 20년 넘게 배워왔고 축적해왔던 것을 어느 순간 교정해야 하는 인생. 월남전 갔다 오신 분들은 자기 청춘을 바친게 월남이라 그에 대한 기억밖에 없고 그래서 그걸 부정하는걸 참지 못하는 거고, 우린 그나마 청춘이라 다시 교정할 수있는건데, 이게 비극이란 거죠.


- 이제 화제를 좀 바꿔서요. 아까 돌려서 질문드렸는데 상업영화를 만드실 준비가 되셨나요?


옴니버스로 들어가는 에피소드중에서 <편대단편>은 좀더 매니악하고 제 취향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있고요. 어떤 부분을 조율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도 할 수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서있는 것 같아요. 그런 포인트도 있고 에피소드도 있어요. 문제는...


- 투자사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아니 그 문제는 아니구요. 검증의 문제예요. 영화사 가서 상 타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그냥 심사위원들의 취향일뿐이에요. 물론 감사하고 영광이긴 하지만. 중요한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검증을 받는거죠.


- 근데 다른 사람들이 검증을 한다는게 어찌보면 공정한것도 같지만 꼭 그런것만도 아닐 수 있거든요. 본인 판단은 어떠신지. 준비가 얼만큼 되있는지 그게 저희 질문의 요지였는데요.


어떤 취향과 어떤 선의 사람들과 제 생각을 즐길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알고 싶어요. 제가 실수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행위자체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 할수도 있고 그렇게 말할수도 있지만은 이야기를 한번 던졌다는 입장에서 어떻게 돌아올까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이 안서는거예요. 그 판단이 서야 장편을 가든 구라를 치든 하겠죠.


- 그럼 부족한 것이라는게 대중의 취향, 그거에 대한 판단이 지금 안되있다?


아니요.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어떻게 고치는가는 간단한데 문제는 아주 원칙적으로 돌아가서 제가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 그건 영화를 완성했다 상을 받았다 그 문제가 아니라 과연 내가 나중에 만나야 하는 아주 일반적인 관객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 그건 모든 작가와 감독들이 고민하는 문제 아닌가요?


근데 저같은 경우 제 영화에 대해서 만나본 사람들이라고 해야 영화제에서 만난 분들인데, 그 분들은 각종 영화제나 독립영화들을 일부러 찾아보시는 분들이거든요. 일반적인 관객들과 심도면에서 차이가 있거나, 특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 그럼 정리해서요. 본인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능력에 대한 판단의 유보입니까 아니면 내가 말하는 방식과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대중적으로 선택될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유보입니까


후자는 검증될수 없자나요. 백만이 들든 이백만이 들든 그걸로 검증되는건 아니니까. 단지 제가 느낄수 있을 것 같아요. 게시판의 리액션을 보면 걔중에 알바도 있고 다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자나요 분위기를. 저도 한번 느껴보고 싶어요.


- 느끼는건 느끼는 건데요.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의 제작여건을 갖추면 난 이런이런 그림의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다 뭐 이런 얘기냔 거죠.


자신있죠.


- 그 얘기예요. 그렇게 얘기해야 우리 독자들도 아 이 친구가 자신이 있구나 어디 함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이러죠.


(웃음) 하하 자신 있다고 얘기해서 어디가서 무슨 얘기를 들을지...


- 아 그래도 당돌함이라고 할까요. 그런 자신감이 필요하죠. 그래야 독자분들도 많이 응원해주시는 거고...


그런 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시스템을 구축하는거.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 SF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잘 만들 수 있다?


그렇죠. 예를 들어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새로운 시대를 연 조지 루카스가 ILM을 만들었을때 제일 먼저 한게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었어요. 자기 영화에 필요한게 어떤건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도 정확히 알았죠. 마찬가지로 제임스 카메룬이 <터미네이터2>를 만들때 이건 디지털의 신기원인데 어떤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죠. 조지 루카스가 ILM을 가지고 있었고, 제임스 카메룬은 디지털 도메인을 가지고 있었고 피터잭슨은 웨타디지털을 가지고 있었죠. 결국 그런 특수효과 시스템의 초안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으로서 초기의 시동을 걸어줄수 있는 감독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제 작품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 하든 적어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이든 뭐든 그런 시도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식의 SF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안됐던 이유가 뭘까요


애니메이션쪽은 <마리 이야기>나 <오세암> 같은 작품은 좋은 작품입니다만... 그 이전까지 스펙터클을 요하는 SF쪽 이쪽은 연출력의 부재가 컸구요.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을 보자면 주로 하청작업을 오래했기 때문에 이게 무슨 회사시스템이에요. 감독 하면 무슨 회사의 대리, 과장 이런 분위기고. 연출자나 기획에 대한 부재가 문제였구요. 실사영화의 경우 연출에 대한 존중이 있었던 반면 기술에 대한 몰이해가 컸구요. 요즘들어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감독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웰메이드라고 하는 연출에 대한 공부는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기술에 대한 부분은 사농공상의 논리가 있어요.


- 본인은 기술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제일 중요한건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인가예요. 내가 생각하는대로 막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원규모와 기술적 가능성 이런 걸 다 고려해야 하는거에요. 전체 시나리오가 내가 지금 구현가능한 거에 맞춰지는거죠. 상상한대로 구현하는건 헐리우드처럼 라이브러리가 구축돼 있는 곳에선 가능하겠지만, 젤 처음엔 일단 구현 가능한 것 중심으로 상상해야죠


- 흔히 하는 말로 예산이 미학을 결정한다는?


처음에만요. 대신 그런 작품들이 두세작품 생기고 라이브러리가 생기면 그때부턴 더 많은 가능성이 있겠죠.


- 그런 의미에서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지감독님이 10년간 혼자서 작업해 오셨는데, 일본에서도 <별의 목소리>라고 비슷한 형태의 1인작업이 있었잖습니까. 어떻게 보셨는지, 작업스타일에 대한 생각도 좋구요.


좋아합니다. 100프로 좋아해요. 후반작업 거의 끝내고 지쳐서 그때 한창 월드컵 때였는데 이제 좀 저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할 때였고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보통 사람정도의 능력은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는데 그 소식을 들었어요. 일본에서 어느 넘이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DVD로 제작되서 다음 작품 제작비를 건졌을뿐만 아니라 작품이 재밌다. 일본어 잘하는 선배 작업실 쫓아가서 봤는데, 누구는 동화의 어떤 부분이 어떻구 얘기할수 있겠지만 제가 볼때는 그 사람도 일차적인 목표는 저처럼 완성시키는 것이었다고 봐요.


-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한?


그렇죠. 단점을 얘기하자면 많이 얘기할수 있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시켰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던 거죠. 그리고 차기작도 데모를 봤는데 퀄리티가 대단하더라구요. 저는 너무 부러운게 이 사람 작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이, 저도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이런 정도의 열의를 가진 사람이면 우리가 다음을 위한 길을 열어줘야한다 이랬다고 해요. 그게 부럽죠. 독립적이고, 부분부분 퀄리티가 떨어질지언정, 온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 한편으로 자신감도 붙으셨겠네요. 사실 그런 식의 1인 작업이 유례가 없는 것이다보니...


전 그때까지 작업을 90프로 이상 진행시켰기 때문에 자신감은 필요없었구요. 질투심이 생겼죠. 지금은 졌다는 생각을 하는게 제껀 좀 암울하고 어두운 느낌인데 반해 그 사람껀 영롱하고 뭔가 단편다운 맛이 있단 생각이에요. 이야기하는 재미에 있어서 저보다 훨씬 간결하고 앞서 나가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근데 그건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게요. 일본은 OVA시장이란게 있자나요. 독립적인 저작물에 대한 제작비의 회수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게 DVD시장으로 넘어왔고 다음 제작을 할 여지가 생겼지만, 울 나라의 경우 독립영화는 모두 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돈을 내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구요. 관객들이 어쩔 수 없이 지불할만한 좋은 작품이 나올때까진 천천히 풀어야 겠죠. 일본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언젠간 그런 좋은 작품이 나오겠죠.



- 독립영화감독으로서 정책적인 지원이라던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책으로 지원받는다고 해도 그게 결국 세금이라면 국민들에게서 나오는건데요.


- 그런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신가요?


아니 그건 같이 병행해 가야 되는 건데요. 본질적으로는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독립영화계에선 반상업주의에 대한 기치가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어하는 영화들에 대해서 그걸 상업적이라고 판단해요. 그냥 무료로 보여주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런 영화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영화가 나왔을 경우에 평론이나 독립영화계에서 그걸 상업적이라 판단하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죠. 어떤 지원을 정부에만 바랄수 없는게 병행되어야 하는 노력이에요. 독립영화는 큰 틀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데요. 상업적으로 소외받는 아방가르드도 살려줘야 하고 그런 부분들은 정책적으로 반드시 지원이 필요해요. 반면 자활적으로 관객들과 만나려 하는 그런 독립영화들도 반드시 존재해야 해요. 관객이 좋아서 관객이 선택하는 그런 독립영화. 근데 정책에만 의존한다면 보호받아야 하는 영화면 보호받을 것이고 거기 들어가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거기 소외되죠. 상업적인 스타일로 독립영화를 만들면 영화제 예선에서 거의 떨어지고 배급도 안됩니다. 그 영화는 그냥 사라지는거죠. 제가 먼저 사라질 뻔했어요. 저 같은 경우 영화 완성후 생계가 급해서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었는데, 영화제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앗 이 영화 그냥 사라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운 좋게 두군데서 상을 탔지만 떨어진데가 더 많아요. 만약 제가 손을 놔버렸으면 그래서 지금도 생계에 쫓기고 있긴 하지만 영화 사라졌을거예요.


- 그럼 조금 민감한 질문인데 최근의 각종 독립영화제 시상기준이라던가 이런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건 제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죠. 영화제 낼때 그 영화제가 어떤 취향이고 심사위원들이 어떤 성향인지는 다 알고 있어요.


-딱히 어쩔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죠. 목적이 같다면 한가지 영화제만 있으면 되겠죠. 목적이 다 다르니까 영화제가 여러개가 있는거라고 생각하고요. 떨어지고 그런거 개인적으로 섭섭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사랑할수 있는 영화를 만들수는 없는 것니까. 단지 상업적인 스타일로 만들었을때 그 전제는 많은 관객과 만나야한다는 것인데, 단편영화는 극장개봉이 안되니까 영화제에 못나갈때는 영화가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제 영화의 국내배급에서 최종점은 인터넷매체를 이용해서 굳이 독립영화 단편영화 관객이 아니더라도 일반 관객분들께 공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이게 마지막 과정에 와있는 상태에요. 일반적인 독립영화제에서는 보호받아야 할 의미있는 영화를 상을 주기 때문에 그런 영화들이 관객접근성은 낮을수 있어요. 근데 처음부터 관객을 만나는게 제일의 목적이고 취향을 드러내는게 목적인 영화들은 영화제 스타가 되면 안되죠. 저같은 경우에 제작과정 자체가 무슨 기행처럼 소개되다 보니 거품같은게 있었는데 그것과 제가 하고 싶은 얘기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 (웃음) 본인 얘기를 굉장히 냉정하게 얘기하시네요.


지금 그 판단을 제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못넘어가니까요.


- 근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냉정하면, 뭐랄까 결벽증적인...


(웃음) 아니 은근히 자만하고 있어요.


- 주위에 SF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텐데요. 우리나라에서 SF감독이 되고자 하는데 있어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있는 편인가요?


저는 어떤 인프라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인프라를 신뢰하면 더 길을 잃게 될 것 같아요. 지금 나와있는 상업적 인프라들은 부분적 퀄리티를 중시하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는 방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체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겟지요. 근데 그런 전체를 조율한 능력을 적용할만한게 우리나라에 있는가 하는게 문제겠죠.


- 단적으로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주위에 SF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조언이랄까 충고랄까 하신다면요.


하나가 있어요. 편견을 갖지 말란 거예요. 제 홈피에 찾아온 스무살 짜리 친구의 홈피를 저도 찾아가봤는데, 그 친구 하는 얘기가 요새 헐리웃 영화들에서 보이는 기술, 스킬 이런게 너무 부럽다. 근데 나중에 내가 감독되면 시키면 되지 이렇게 마무리 해요. 그거는 지금의 연출자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전 그게 틀렸다고 봐요. 아까도 얘기했듯 연출자들은 스스로 부정하긴 하지만 사농공상의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연출자는 사에 해당하는 인문학적 CEO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제 생각은 상이 됐든 공이 됐든 장사치가 됐든 자기가 손을 빌릴 수 없고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다 덤비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모든 부분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심지어 배급 자체도 제가 하고 있거든요. SF를 하든 특수효과를 조금이라도 쓴다면 그 편견을 가지지 말고,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 본인도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감독이 되려고 하면 빨리 감독이 되려는 길만을 찾겠지요. 하지만 자기 영화,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심을 끝까지 잃지 않으면 제가 아까 얘기한 편견들을 버리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거예요.


- 기술적인 부분을 보자면 CG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애니메이션 기법이라던가 다양한 걸 알아야 할텐데요. 우리나라에 그런 기관들이 있나요. 본인은 어떤식으로 배우셨는지요


교육기관에서 가르쳐주는건 툴에 관한 부분들이에요. 마야니 맥스니 그런것들은 아주 복잡한 형태를 띄고 있지만 결국 툴이죠. 붓이냐 샤프냐의 차이만 있을뿐이지 그걸 어떻게 이용해서 자기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저같은 경우는 지금도 각각의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필요한 부분만 알아요. 만일 기술적 실무자로 가야 한다면 모든 과정을 이해해야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면 다르죠. 맨 처음에는 막막하고 그러겠지만 결국 자기가 계획성이 있고 목적이 있다면 그것들은 단순한 툴이예요.


- SF영화 감독이 되기 위해서 가장 걸리는 부분이 그런 부분들인 것 같아요. 일반 영화들의 경우 시나리오를 쓴다거나 카메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그런 정도일텐데 이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것 같아서 막막할 것 같은데요.


어려운 부분인 동시에 가장 즐기는 부분이죠.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게 재밌어요. 어떤 장면을 상상했을때 다른 사람은 그게 막연한 상상이지만 저는 그게 바로 손으로 옮겨지거든요 그림으로. 그거 그려놓고 생각하면서 이 부분의 구현을 위해서 무얼 어떻게 배치하고 누가 필요하고 이런 생각들이 반드시 들어요. 그게 답이 나올때만 그게 시나리오에 첨부가 되요. 일반적인 시나리오 작법과는 틀리죠. 그게 골치 아픈 부분이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재밌는데 이게 방대해지니까 골치가 아프고 그러지만... 시작은 충분히 충동적이고 재밌기 때문에 하는거죠.


- 단편적 질문인데요. 차기작을 생각하신다면 상업영화로 제작비 얼마정도면 찍을수 있을 것 같습니까.


다르죠. 누가 10억을 갖다 준다면 10억짜리 영화를 만들것이고


그것도 역시 구현가능성에 맞춰지는 건가요. 그냥 이 정도면 만들 수 있겠다 싶은 금액이라면...


(한참고민) 결국 관객들이 좋아해야 한다는 전제인데요. 현재의 충무로적인 시스템에서는 제가 연출력이 떨어진다고 봐요. 아까 얘기한 그런 식의 시스템이 아니라 웰메이드나 작가적 연출력을 의미하는거라면.


-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하시죠?


(웃음)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지금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어딘가 들어가서 감독이란 것에 대해서 더 파고들어서 감독으로 가야 되는가... 질문을 바꿔주시죠. 언젠가 하게 된다면..


- 예 그러시죠


그게 근시일내라면 80억에서 100억사이 정도.


- 본인의 80억에서 100억이란 판단은 이걸 제대로 만들어서 히트를 친다면 제작사측이 손해를 보지 않을 그런 정도의 액수인가요?


SF스펙타클영화라는 건 제대로 된 구조안에 들어갔을 경우에 절대 우리나라에서 5만이 되든 10만이 되든 내수로 생각할 수 없구요. 취향의 시장이란게 세계로 분할된 점을 감안해서 해외로, 아주 제대로 배급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 첫시작은 분명 SF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평범한 라이브액션영화의 제작비도 갈때까지 같고 국내시장의 파이도 감당이 안되는 상태라고 봐요. 어차피 외국에 예측가능한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SF겠죠.


- 근데 헐리우드SF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도 있자나요. 돈지랄이다 뭐다 하는. 본인의 관점은 어떠세요


남들이 고기 먹으면 냄새나지만 자기가 먹으면 좋죠


- 부럽다?


솔직히 돈지랄이란 생각이 들고요, <진주만> 같은 영화 보면 단순히 돈으로 다 되는 것 같진 않아요. <터미네이터3>만 해도 돈지랄이 분명한데 재미가 없죠. 말 그대로 이상적인건 재밌으면서 돈지랄도 하는거죠. 요즘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상도 받고 뭐 분위기가 좋습니다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측면에서 문화 특히 영화는 이미 80년대에 이미 헐리우드가 주류이고 나머지 모든 영화는 다 독립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거시적으로 상대할 적을 헐리우드로 봤을때 월남전을 예로 든다면 현재 우리는 적을 정글 속으로 끌어들여서 작은 승리들을 거두고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의 주력은 치고 있지 못해요. 호치민이 대단한 게 그 장기전을 이끌면서 게릴라전을 했지만 결국 마무리를 지은건 구정대공세 전면전이었거든요. 우리 영화도 언젠가 전면전을 해야겠죠. 이건 비단 한국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 3세계 영화와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겠지만요. 가장 큰 목적은 헐리우드가 지나치게 점유하고 있는 걸 각나라에 맞게 고루 분포를 시키는 거겠죠.


- 그럼 스크린쿼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크린쿼터에 대해서 자꾸 숫자 들먹이고 경제 얘기하는데 그건 상징적 저항선이에요. 그런건 한번 자리를 내주면 자꾸 밀리거든요. 삥 뜯는거랑 똑같죠. 첨에 좀 맞더라도 개기면 나중에 안줘도 되죠. 이 넘이 줄 넘인지 안줄 넘인지 확인시켜줘야 되는 거예요.


- 문화소비자 입장에서는 헐리우드에서 만들든 우리나라에서 만들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선택권이 좁아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헐리우드 영화는 지금 충분히 들어오고 있고요. 오히려 마이너한 영화들이 사라지고 있죠. 헐리우드 영화와 잘되는 한국영화 두 공룡사이에서. 병행해야죠. 스크린쿼터를 지키면서 좋은 영화를 양산하는. 전 국민들을 믿어요. 충분히 지켜줄만한 영화는 지켜줄거라는.


-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요. <편대단편> 보고서 느낀 점이 좀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인데, 뭐 아까 말씀하신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 이런거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 같기도 하지만 SF영화가 너무 우울해지면 상업적으로 장애가 되지 않을까요?


스펙타클에 대한 배치로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단편의 경우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긴데, 어느정도 해소 가능한 역사적 전환점에 있는 인물에 관한 얘기도 있어요. 결국 하나의 큰 이야기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있기 때문에 그중에는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상업영화로 만들 수도 있고 너무 마이너한 부분들은 나중에 독립영화로 만들 수도 있는 거고 병행해야 되는 거겠죠.


- 처음부터 실사영화를 구상하셨나요? 혹시 애니매이션은 고려 안하셨는지...


지 : 애초부터 실사를 생각했어요. 애니메이션도 멋있겠지만... 제가 어렸을때 우주대백과란 책을 무지 좋아했는데요. 그 책을 보고서 아 이런 세계가 어딘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려서부터 이미 속아서 상상했기 때문에(웃음). 애니메이션을 보고서 아 이건 허구다 하고 보는것하곤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 실제 우리가 보는 것 같은 걸 구현하고 싶다는...


지금 제 영화는 특수효과를 사용했다는게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죠. 하지만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어딘가 저런 세계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최종적이죠.


딴 : 마지막으로로요. 예상되는 독자의 반응은요.


극단적일거라고 봐요.


- 예상을 이미 하고 계시는거네요.


제가 생각할 때 대중은 예상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대개 실패하는 영화들의 경우 자신들이 대중을 예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실패하는 것 같아요. 단지 그것을 예상하지 말고 자신이 최선을 다하거나 잘 하는 짓을 하고서 반응을 기다려야죠.


- 반응이 안좋으면요


겸허히 수용해야죠.


- (웃음) 영화 안하실거예요?


영화는 계속 해야죠.


- 안좋은 반응을 거울 삼아서 더 좋은 반응을 얻을수 있는 영화를 만드시겠다는...


더 어렵겠지만 좀더 돌아가겠죠. 반응이 좋으면 그냥 반응이 좋다로 끝날 수 있어요.


- 근데 반응이 안좋다에도 두가지 경우가 있을수 있자나요. 내가 납득할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그런 경우는 없다고 봐요. 딴지정도라면 독립영화 입장에서 봤을때 전체대중에게 공개된 거거든요. 전체 공개의 기회가 있어서 공개를 했는데 그 반응이 안좋다고 삐져서 제가 돌아서면 그건 제가 영화를 만들면 안되죠. 만들더라고 네다섯명이서 보면 되는거구요. 제가 볼때 매니악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평균적인 정서로서 내가 즐길만했다라고 반응해주시는 분도 있으실텐데 후자에 대한 반응을 제가 확인해보고 싶은겁니다. 대중이 틀려서 그런경우는 없을거라고 봅니다. 대중은 우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론몰이에 몰려가는 수는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본질이 왜곡된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 정보가 왜곡되서 그런 경우가 많았죠.


더구나 저같은 경우는 정보왜곡에 대한 걱정 없이 정보를 처음 노출시키는 경우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반응이 부정적이라고 해서 크게 상처받을 것 같진 않아요. 내가 설마설마했던 부분이 역시 안좋게 먹히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겠죠. 대신 그것을 극복할 자신은 있어요. 사람은 발전하니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이야 인터뷰를 통해서 꽤 긴 이야기를 했지만 단편적으로 제작기간 10년에 모형도 만들고 혼자 다했다 이런 부분만 노출됐을 경우에 기행으로 보일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이게 굉장히 평범한 상황에서 일상을 살면서 심지어 과제까지 해가면서 행했던 일이고 단지 그 차이는 내가 가진 큰 계획을 잊는냐 잊지 않느냐 그 차이였던 것 같거든요. 스무살에 계획을 세운 분이라면 그 계획을 절대 잊지 말고 언제 인정 받을진 모르지만 끝까지 하는것. 그리고 그게 자신의 인생을 크게 낭비한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는것. 저같은 경우 후반작업 2,3년에 집중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망가진 부분도 있고 하지만 그것 자체도 나이 서른하나에 설사 모든게 안좋게 돼서 내가 어딘가에서 밑바닥부터 한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성실히 하면 할 수있겠다 그런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도 있겠지만요.


- 나중에 상업영화로 진출하거나 유명해지면 꼭 딴지와 첫 인터뷰를 해주십시요.


(웃음) 그럼요. 제일 먼저 딴지에서 해주십시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고, 같이 저녁식사를 하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 후 지민호 감독과 헤어졌다.


지금 이 지면에서 필요한건 인터뷰이에 대한 평가가 아닌 것 같다. 그는 말로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영화로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사림이고, 그 영화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를(호평이든, 혹평이든) 아직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이너뷰는 그를 이해하는 하나의 참고자료에 불과하며, 그의 본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영화를 보는 게 순서일 듯 싶다. 영화 <편대단편>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편대단편>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으며,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v.pe.kr


이너뷰 말미에 언급했듯, 언젠가 본지와 다시 이너뷰를 할 때는 세계적인 SF감독의 위치에서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민호 감독의 건투를 빈다.



 


딴지 편집국
신짱(redpia@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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