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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 2004년 대선 전망 2탄
-하워드 딘 디비기 (2)

2004.1.6.화요일
딴지 국제부 미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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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힐러리 클린턴의 출마설은 워싱턴 정가 뿐만 아니라 2004 미 대선을 앞두고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녀의 연속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대중적 인기는 그녀를 늘 민주당 후보군에 넣고 비교하게 만들곤 했다. 최근 12월 7일 NBC-TV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A. 힐러리 클린턴을 제외한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


하워드 딘 20%
웨슬리 클락 15%
존 케리 14%
조셉 리버만 9%


B. 힐러리 클린턴이 포함될 경우


힐러리 클린턴 43%
하워드 딘 12%
웨슬리 클락 10%



제아무리 하워드 딘이 딘사모니 뭐니 하며 돌풍을 일으킨다지만, 힐러리 클린턴 앞에서는 군소후보로 전락하고 만다. 더 볼까? 아래 대화 내용, 영어공부하는 셈치고 함 읽어보자.






<원문>


MR. RUSSERT: If the Democratic Party was chaotic and disorganized at the convention and turned to Hillary Clinton, do you think she’d accept the nomination?


MR. GINGRICH: Probably not.


MR. RUSSERT: Probably not.


MR. GINGRICH: I think Senator Clinton is almost certainly going to be the Democratic nominee in 2008.


MR. RUSSERT: Why do you say that?


MR. GINGRICH: Well, ‘cause I looked at the same poll you showed her. I mean, there’s no reason to believe she’s going to grow any weaker. And she is serious. She is hard-working. She is a first rate professional.
 


<번역>


러셀: 만약 민주당이 대통령후보 선출대회에서(까지) 혼란과 분열양상을 면치 못해서 당이 힐러리 클린턴에게 후보직을 제의한다면, 힐러리가 후보직을 수락할까?


깅그리치: 아마 그렇지 않을 거다.


러셀: 그렇지 않을거라구?


깅그리치: 내 생각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거의 확실히 2008년 대통령후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러셀: 왜 그렇게 생각하나?


깅그리치: 글세... 나도 당신이 그녀(힐러리 클린턴)에게 보여줬던 여론조사 결과와 같은 결과를 봤는데... 내 말은, 그녀의 인기가 (2008년에) 사그라들 거라는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거다. 힐러리는 진지한 인물이고, 열심히 일하며, 무엇보다 그녀는 일등급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 권위의 일요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Meet the Press 방송의 진행자 팀 러셀(Tim Russert)와 전 공화당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 (Newt Gingrich)의 2003년 12월 7일 대화 내용이다. 심지어 깅그리치조차도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을 점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a. 현재의 민주당을 이루는 세력은 정치이념면에서 두 패로 나뉜다. 하나는 좌파적 경향의 구민주당, 다른 하나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새로이 자리를 잡은 중도경향의 신민주당.


b. 상승하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딘에게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은 본선에서 치명적인 상처로 작용할 수 있다.


c. 알 고어는 2004년 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하지만 2008년을 포기한것은 아니다.


d. 힐러리 클린턴은 "Living History" 자서전 발간과 동시에 전국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현재에도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며, 공화당 전 원내총무도 인정할 만큼 부동의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 주자이다.


e. 힐러리에 비해 고어의 인기와 당내 세력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f. 알 고어의 하워드 딘 지지 선언. 특히 예비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렇게 한것은 고어에게 커다란 정치적 손실이 따르는 일이었다.
 


굵직한 사항들은 대충 이렇게 정리된다. 시간이 여유가 있는 독자는 위의 잡상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짜맞추어 생각해 봐도 좋고, 시간이 없는 독자는 본 우원의 분석으로 바로 넘어가도 좋다.
 






본 우원이 생각하는 알 고어의 하워드 딘 지지 배경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워드 딘 구하기, 둘째는 민주당 세력균형 뒤집기.


위에서도 언급했듯, 2002년 12월 기명삼에 못지않은 대권병 환자인 알 고어는 2004년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불출마 선언을 했다. 수십년을 워싱턴 정계에서 활동을 해왔고 8년여의 부통령 생활을 지냈으며, 2000년 선거 패배의 충격에 고뇌의 나날을 보냈던 그인지라, 미국 언론 및 대중들은 그의 이러한 불출마 선언을 약간의 놀람과 함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2004년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정계은퇴가 아니었다. 여전히 그에게는 2008년의 대권기회가 남아있는 거다.


당시로서는 고어의 선택은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졌다. 9-11 사태를 전후하여 테러와의 전쟁이니, 테러경보니 하여 연일 긴장과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 국민들은 조지 부시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게다가 부시행정부는 유례없이 아랍권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뒤에 업고, 알카에다 조직 및 탈레반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경제는 연일 하향세에 실정의 연속이였지만, 일본의 진주만 침공에 비유할만큼, 미국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9-11 테러는 안보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정치과제로 만들었고, 때아닌 애국운동의 움직임마저 불었다. 국토 안보국(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이라는 초유의 정부기관이 생겨났으며, 듣도보도 못한 반자유법인 The Patriot Act의 입법화가 추진되었으며, 외국인에 대한 입국심사및 체제 제한 조치가 심히 강화되었음에도, 테러의 충격에 휩싸인 미국인들은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희생한다"는 논리와 함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안보문제에 있어서 늘 공화당에 뒤처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민주당은 2004년의 선거에 부담을 가질수 밖에 없는 데다가, 특히 고어의 경우 2000년 선거 혼란과 그에 따른 이미지 불식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2004년 보다는 2008년 출마가 자연스런 선택으로 보여졌다. 특히 2004년 후보군으로 지목되던 사람 중에서, 이런 상황에서 조지 부시에 대항할 인물은 없었다고 보아야 무방하다. 힐러리 클린턴이 거론되긴 했지만, 그녀의 존재는 2000년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이후로 2년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는 상태였고, 그녀에게는 언제나 정치경험부족과 클린턴-르윈스키 파동의 이미지가 늘 꼬리표마냥 따라다니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신경쓸 대상은 아니었다.


특히나 고어는 2002년 11월 두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달라진 대중의 반응을 뼈저리게 경험한 터였다. 2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가정친화적이고 인간적인"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 준비했던 책들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런 현상이 고어의 2004년 당선가능성에 그늘을 드리운 것은 당연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2004년 고어의 출마는 더더욱 기피해야 할 일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고어가 왜 2002년 10월의 이라크전 관련 상하원 투표에 대해서 어떠한 의견도 표출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었는지, 그리고 그후 이라크 침공 직전까지 별다른 비난이 없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줄 것이다.


하지만 고어의 이러한 계산은 2003년 5월 힐러리 클린턴의 화려한 재등장과 함께 어긋나기 시작한다. 힐러리의 자서전 "Living History"는 그녀의 대중적 인기를 재확인해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단숨에 힐러리 클린턴은 그 짧은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3년여간 묵묵히 구축되어온 그녀의 상원내 세력은 민주당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그녀는 현재 민주당 상원내 넘버 3요, 2004년 선거를 고비로 넘버 1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끌어내는 거대한 정치자금 동원력은 고어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고어와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는 신민주당(New Democrats)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지지기반을 공유한 가운데 2008년 민주당 예비선거에 나섰을 경우 고어의 패배는 빤히 내다보이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가 고어의 부시행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때이며, 고어의 목소리가 클린턴 부부로 대표되는 중도파 신민주당의 목소리와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한 때이다. 그전에도 고어는 몇차례 강연을 통해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비난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감세정책과 관련된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었지,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삼가해 왔었다. 물론 빌-힐러리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중도계열의 신민주당 세력은 부시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에 대해 표결로 승인하였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줄곧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고어와 빌-힐러리 클린턴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셈이다.


이러한 마당에 하워드 딘으로 대표되는 민주당내의 민주당(Democratic Wing of the Democratic Party), 구민주당 세력의 급작스런 부상은 고어에게는 구원의 목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1992년 클린턴 행정부 집권이래 중도계열의 신민주당에 아랫목을 내준 채 숨죽이고 있던 진보적 경향의 구민주당 세력은 전후 이라크내 미군 사상자 증가와 정국불안 등을 등에 업소 하워드 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점점 목소리를 높여갔던 거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선거유세활동, 풀뿌리 정치구호 등을 통해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까지 끌어모으면서, 기존 신민주당 세력을 위협할 만큼 민주당내 다른 하나의 축을 이루는 커다란 대체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선거전의 출발인 아이오와 카커스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워드 딘을 지지하고 나선 고어의 전례없는 행동은 두가지 설명을 가능케 한다. 첫째는 딘의 예비선거 당선이 고어의 2008년 선거전에 미칠 영향이다. 딘의 대통령당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거전문가들 열에 아홉이 두손을 절래절래 흔들만큼 물음표 투성이다. 그의 베트남전 군기피여부는 말할 것도 없고, 동성-양성연애 커플에 대한 법적 혼인 지위 인정(Civil Union), 교육세 일괄징수-균등배분, 균형잃은 의료보험정책 등 논란투성이의 정책들 하며,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자신이 버몬트 주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행적을 담은 공문서 400상자를 "법의 이름으로" 10년동안 봉하게 하여 감추고 공개하지 않는 것 등등...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능력에, 무엇보다도 당선을 위해 필요한 중도적 성향의 표를 딘이 과연 끌어모을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회의까지. 하워드 딘의 당선가능성에 의문을 짙게 드리우는 요소들은 너무 많다(물론 딘과 그의 지지자들은, 그간 현실정치에 대한 회의로 투표소에 나오지 않았던 숨은 민주당 표를 끌어모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고어가 지지선언을 하기 전 하워드 딘의 상태는 무척 불안했다. Confederate Flag(인종차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깃발)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이라든지, 나머지 후보들의 딘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딘을 수세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 아이오와에서는 딕 게파트 하원의원에 근소한 차로 뒤지고 있었고, 뉴햄프셔주 정도를 제외하면 그후 벌어질 2월 3일의 민주당 7대주 예비선거에서도 사우스캐롤라이나(존 에드워즈/웨슬리 클락/하워드 딘/딕 게파트의 박빙접전), 애리조나(조셉 리버만 우세) 등 대부분 지역에서의 여론조사 결과가 딘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던 거다. 이러한 사항들은 하워드 딘 돌풍이 조기에 진정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잉태하는 것이었다.









딘 & 제시 잭슨 주니어


이런 판국에 고어의 갑작스런 지지선언은, 하워드 딘에게 대세론의 힘을 실어준 결정적 한방이었던 거다. 고어의 지지는 중도계열의 신민주당 세력 일부와 남부 흑인층의 지원이라는 힘을 딘에게 더해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고어 자신이 신민주당 운동의 주역 중 한명으로 일정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었던데다, 2000년 선거에서 역대 누구보다도 많은 남부 흑인의 지지를 얻어내지 않았던가. 하워드 딘의 약점 중 하나가 소수인종에 대한 어필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고어는 그의 이런 약점을 단숨에 플러스로 전환시켜 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어의 정치적 미래, 특히 2008년 대선을 놓고 보면, 하워드 딘은 매우 적절한 후보였다. 고어가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일단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는 2004년 대선에서 패배할 민주당 후보, 둘째는 클린턴 부부가 장악한 중도 신민주당 세력을 견제하고 고어 자신의 세력기반이 되어줄 새로운 지지층. 딘의 당선가능성에 대한 의문 부호들은 첫째 조건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거니와, 설사 딘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고어는 그의 초기 지지를 대가로 일정부분의 각료임용권을 행사할수 있다는 점에서 나쁜선택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지지세력이 딘의 2004년 민주당 후보 등극을 통해서 민주당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할 경우, 고어는(딘의 낙선과 함께) 그 세력을 그대로 접수할 수 있게 되고, 그 세력을 배경으로 2008년 대선전에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민주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세력의 중심에는 MoveOn.org라는 거대 시민운동 세력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지 소러스와 기타 단체가 기부한 1000만 달러에 달하는 MoveOn.org 운영자금 규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이다.


"소설쓰냐?"라고 비난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말두안돼!"하고 글을 접어버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본 우원이 바라보는 고어의 딘 지지성명의 배경이다.


하나더 덧붙이자면, 과거에 알 고어와 같은 전략으로 대권을 거머쥔 후보가 있었다.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간발의 차로 진 그는(2000년의 고어 vs 부시 만큼 논란많았던 선거였다) 그다음 1964년 선거에서 자신의 강경성향과는 달리 중도온건보수의 길을 걷던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애리조나주 연방 상원의원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지지하는 의외성을 보여주었다. 그후, 그해 선거에서 골드워터가 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 패배한 뒤, 스스로를 온건보수의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골드워터의 세력을 흡수한 가운데 1968년 대선에 도전해서 대권을 거머쥐었다는 거다...


뭔가, 비슷한 시나리오라고 생각되지 않나?


글이 많이 길어졌다. 세번째 질문은 "하워드 딘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할수 있을까? 하워드 딘의 본선경쟁력은?"인데, 이건 다음 기회에 디벼보기로 한다. 하지만 조금의 힌트가 필요하다면:


첫째는, 아이오와 카커스의 결과가 딕 게파트에게 가느냐? 아니면 하워드 딘의 승리냐? 이 결과는 속칭 하워드 딘 대세론이 얼만큼 힘을 받느냐...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것이다.


둘째는, 2월 3일의 민주당 7대주 예비선거에서 과연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누가 거머쥘것인가? 더 자세히 적자면,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인가? 웨슬리 클락 장군인가? 아님 알 고어의 지원을 받은 하워드 딘인가? 하워드 딘이 이곳에서 1위를 하는 경우 게임은 끝난다고 봐두 좋다. 하지만 존 에드워즈나 웨슬리 클락이 1위를 하는 경우, 민주당 예비선거는 딘의 구민주당세력 대 에드워즈/클락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내 중도파의 2파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세째는, 과연 2002년 한국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40% 안팎의 지지로 꽁꽁 묶었던 이회창 불가론 같은 것이 2004년 미국대선에서 부시불가론의 형태로  대중사이에 존재할 것인지의 여부, 이걸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럼 이만...



 
미국정치를 정리해보겠다며 무작정 이일에 뛰어든
그냥그림(jspictur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