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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알고 보면 재밌다

2003. 7.3 목요일
딴지일보 스포츠부

"요즘 씨름선수 중에서 누구 젤 좋아해?" 본 기자, 기사 쓰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봤더니 열이면 열 사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최근엔 씨름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씨름은 어느덧 팬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한창 잘 나갈 때 8개나 됐던 팀 수는 현재 3개(현대, LG, 신창건설)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스타급 선수들의 이름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낯설 따름이다.


솔직히 본 기자도 경기하면 보긴 본다만 아, 재미없어 요런 생각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인데다가 기술보단 덩치빨로 밀어붙이고, 단조롭고 밋밋한 기술이 판을 치니 재미있을 턱이 있나.


그러나 2003년 들어 씨름판이 싹 바뀌었다. 침체됐던 모래판에 활기가 넘치고, 지루하기 짝이 없던 승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동안 씨름에 관심 끄고 살던 사람들도 모래판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기술씨름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럼 상반기 대회 결산도 할겸 씨름판으로 가보자.








 금강급


올해 모래판에 일어난 변화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금강급의 부활이다. 금강급은 91년 7월 이후 폐지됐었는데 씨름의 인기회복 이라는 중차대한 목표 아래 12년만에 민속씨름 무대에 재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아다리가 딱 맞아 떨어졌다. 금강급은 지하 1,273m 밑으로 추락한 씨름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급(90.0kg 이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화려한 기술을 선보인다는 데 있다. 백두급, 한라급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뒤집기가 속출하고 모래판 10cm 위에서 승패가 헷까닥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어찌나 잽싸고 빠른 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도 누가 이겼는 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덕분에 금강급 경기 할 때면 심판들은 땀을 뻘뻘 흘리지만 팬들은 기술씨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으니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하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금강급의 판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3강 체제라 할 수 있겠다. 장정일, 김유황(이상 현대), 이성원(LG)이 빅 쓰리를 형성하고 있다. 상반기 대회에서 장사를 차지한 적이 있는 선수는 장정일(2번), 김유황, 이성원(이상 1번) 등 3명이 전부다.


먼저 장정일을 보자꾸나. 장정일은 3월(영천), 4월(진안)대회에서 연속으로 꽃가마를 탔다. 그의 경기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장정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뇌리에 꽉 박혔을 거다. 본 기자도 장정일이 보여주는 현란한 기술에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오죽하면 리틀 이만기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특히 뒤집기는 가히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단순히 멋져라는 말로는 표현 불가능한 환상적인 뒤집기. 본 기자, 최근 씨름 보면서 황홀경에 빠진 건 이때가 처음 아니었나 싶다.






장정일 뒤집기 동영상 보기


어떠신가. 죽이지? 이 대회(보령)에서 장정일은 아깝게 1품에 그쳤지만 그의 존재를 팬들에게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장면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뒤집기를 보면서 침 흘리고, 손뼉을 마주쳐 왔지만 이 뒤집기는 그 중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하겠다.


그렇담 기술만 좋냐. 아니다. 이만기-허 주 콤비가 매번 침 튀기며 극찬할 정도로 외모도 출중하다. 승리한 후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포효하는 모습도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경기할 때 보면 항상 깔끔하게 손 본 헤어스타일이 눈에 띈다. 표정도 언제나 스마일~ 스마일~. 어때? 이 정도면 준비된 스타 아니겠는가.









장정일의 덤블링 세리머니(뉴시스)


다음은 이성원 차례다. 이성원은 프로 6년차로 작년까지만 해도 한라급 선수였는데 올 시즌 들어 한 체급 낮췄다. 지난 6월 장성대회에서 장사가 됐을 때 이성원의 감회는 남달랐을 게다. 7수 끝에 밟은 정상이었으니까.


이성원은 한라급 시절에 4차례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1품에 머물렀고, 금강급으로 체급을 낮춘 올해에도 3,4월 대회에서 연거푸 2등에 그쳤었다. 참으로 오랜 기간 2등 징크스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6월 대회 결승에서 김유황을 누르고 우승이 확정되자 천하를 움켜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꽃가마에 올라탔을 땐 눈물을 글썽글썽 거리기도 했다. 본 기자, 항상 침착하고 담담한 포커페이스 이성원이 그렇게 방긋 방긋 웃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도 준결승에서 장정일을 꺾고 얻어낸 성과였기에 더욱 더 값졌을 거라 생각된다. 6년 여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2등 징크스에서 기분좋게 탈출한 이성원의 상승세가 당분간 계속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김유황. 김유황은 대학 재학 중에 민속씨름판에 뛰어든 겁없는 새내기다. 얼핏 보면 장난끼가 덕지덕지 붙은, 무척 앳띠어 보이는 인상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눈매가 아주 다부지고, 전체적인 이미지도 야물딱져 보인다.









상대를 모래판에 눕힌 후 포효하는 김유황
(뉴시스)


김유황은 5월 보령대회에서 팀동료 장정일을 제치고 금강장사에 올랐다. 대부분이 장정일의 3연속 우승을 점치는 분위기였지만 2-2 상황에서 기습적인 뿌려치기로 예상을 깨고 장사 타이틀을 따냈다. 그의 나이 22살. 아직 새파란 나이임을 감안한다면 김유황의 앞날은 아주 창창하다 하겠다.



 한라급


금강급이 호쾌한 기술과 빠른 스피드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한라급은 힘과 기술이 적절히 가미된 씨름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한라급(105.0kg 이하) 역시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용대(현대), 모제욱, 김기태(이상 LG) 등 요 세 선수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장사 타이틀을 나눠먹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4번의 정규대회 한라급 경기에서 세 선수는 장사 타이틀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통산 12번째 한라장사에 오른순간 환호하는 김용대(뉴시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선수는 김용대다. 탱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넘치는 파워를 바탕으로 상대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폼이 성능좋은 탱크를 연상시킨다.


김용대는 3월 대회에서 통산 11번째 한라봉을 정복하며 금세라도 김선창의 최고기록(12번)을 깨뜨릴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기록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4,5월 대회에서 각각 4,5품에 그치며 슬럼프 조짐을 보였다. 항상 자신만만해 보이던 그의 얼굴에서도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지 답답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김용대의 저력은 무서웠다. 상반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6월 장성대회에서 숙적 모제욱을 꺾고 올 시즌 두 번째로 한라장사에 등극했다. 통산 12번째 황소트로피를 품에 안는 기분 째지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 소개할 선수는 김용대와 함께 오랫동안 한라급의 터줏대감으로 활약해온 모제욱. 통산 10번 한라장사에 오른 기록을 갖고 있는 모제욱은 변칙기술의 달인이라고 불린다. 왜냐? 척 보기에 아주 희한하고 이상야릇한 기술로 상대방을 농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하기 무척 까다로운 상대로 꼽힌다. 또한 장기전에선 거의 지는 법이 없다. 다양한 기술을 무기삼아 요만큼의 빈틈도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


모제욱의 트레이드 마크는 오른샅바 끼워치기. 본 기자, 모제욱이 나오면 언제쯤 이 기술이 나올 지 아주 관심있게 지켜보곤 한다. 이 기술은 체력이 바닥나거나 위기의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데 특히 5월 보령대회 결승전에서 보여줬던 오른샅바 끼워치기는 압권이었다.









모제욱이 오른샅바 끼워치기를 시도하자 김기태가 차돌리기로 응수하고 있다(뉴시스)


자, 그럼 대체 오른샅바 끼워치기가 뭐시냐. 아쉽게도 보령대회 결승전 당시 동영상은 구하질 못했다. 대신 자인단오장사대회 결승전에서 모제욱이 구사했던 변칙기술(오른샅바 끼워치기, 뒤허리 감아 밀어치기)들을 보여주겠다. 모두들 즐감하시라.






모제욱 변칙기술 동영상 보기


다음 주자는 한라급 3인방 중 막내인 김기태 되겠다. 프로 2년차인 김기태는 신참급이지만 고참급 선수들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기량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특기는 안다리. 김기태의 안다리 공격에 제대로 걸리면 웬만해선 빠져나오질 못한다. 장정일의 뒤집기, 모제욱의 오른샅바 끼워치기만큼이나 위력적인 공격기술 되겠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도 받쳐주니 그야말로 복덩이가 아닐 수 없다.


4,5월 대회 결승에서는 두 번 모두 같은 팀의 모제욱과 대결했는데 장군멍군이었다. 승패보다도 대선배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기 기량을 맘껏 발휘하는 배짱 두둑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뻗어나가고 있는 김기태가 천하를 호령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그밖에 주목해야 할 선수로는 새내기 이준우(신창)가 있겠다. 이준우의 가장 큰 장점은 꾸준함과 착실함이다. 그는 상반기 4개 대회에서 모두 4강 안에 들었다. 정상을 향해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나가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백두급


백두급(105.1kg 이상)은 신-구 다툼이 치열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존 강호들이 장사 타이틀을 독식했지만 올해 들어서 신진세력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테크노춤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는 홍마니(뉴시스)


신진세력의 선두 주자는 입단 전부터 많은 화제를 뿌린 최홍만(LG)이다. 올해 민속씨름 무대에 첫 선을 보인 최홍만은 신장 218cm로 국내 최장신 씨름선수. 그는 60년대 박범조(205cm)- 이봉걸(207cm)- 김영현(217cm)의 거인 계보를 잇는 선수다.


가장 관심을 끌어모은 건 김영현과 최홍만의 대빅뱅. 한 시대에 골리앗 두 명이 격돌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최홍만의 우세승. 지난 1월 설날장사대회 단체전에서 계체패했던 최홍만은 개인전 8강전에서 배지기에 이은 잡채기로 김영현을 이겼고, 3월 대회에서 또다시 승리했다. 두 선수는 경기 스타일이 좀 다른데 김영현이 밀어치기 일변도라면 최홍만은 밀어치기, 배지기 등을 모두 구사할 줄 안다. 그러니까 홍마니가 훨씬 유리하겠지?


최홍만은 설날대회와 3월 대회에서 연거푸 2품에 그쳤지만 데뷔 4개월 만인 4월 대회에서 장사로 우뚝 섰다. 승리한 뒤에는 산만한 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아주 귀여운 표정으로 테크노 춤을 추는데 너무 앙증맞아서 꽉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깜찍발랄한 테크노춤 세리머니를 보고 싶어서 홍마니가 이기는 걸 은근히 바라는 사람도 있다지? 사실은 본 기자가 그렇다. 흐흐


신진세력의 또다른 유망주는 올해 입단한 박영배(현대)다. 박영배는 신장 184cm로 백두급 선수 중 젤 작은 땅꼬마(?)인데 경기할 때 보면 정말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면서 씨름 참 영리하게 잘한다. 특히 아마 때부터 최홍만 킬러로 유명했는데 프로에 와서도 최홍만에게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태현, 황규연 등 베테랑 선수들을 수 차례 꺾는 등 패기만만하고 겁대가리 없는 신인이다. 특기는 번개같은 차돌리기로 요 기술에 벌써 여러명 나자빠졌다.









주특기인 차돌리기를 시도하는 박영배(뉴시스)


물론 신진세력의 기세가 무섭긴 하지만 기존선수들의 파워는 여전하다. 1월 김동욱(현대), 3월 이태현(현대), 4월 최홍만(LG), 5월 이태현(현대), 5월 자인단오장사대회 김영현(신창), 6월 염원준(LG) 등 4월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연륜있꼬 노련미 넘치는 기존 스타급 선수들이 장사에 올랐다.


올 시즌 한 번도 정상을 밟지 못했지만 노장 김경수의 활약도 눈여겨 볼 만하다. 김경수는 3,4월 대회에서 잇달아 1품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인정사정 없이 상대 가슴팍을 파고들며 기세좋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본 기자, 김경수가 괜히 들소로 불리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기술씨름의 시대도 도래하고 했으니 기술씨름의 달인 황규연의 살인 보조개와 눈물 한 바가지를 동반한 감동적인 정상포효를 다시 한 번 봤으면 하는 소박하지만 아주 절실한 바람을 가져본다.








알고보면 무지무지 재밌는 씨름. 6월 장성대회를 끝으로 상반기 대회는 끝났지만 9월 추석장사대회를 시작으로 다시 하반기 대회의 막이 오른다. 그러니 3개월만 꾹 참고 기다려라.  


덧붙여
이건 뽀오너스 되겠다. 본 기자가 녹화테이푸 돌려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잼난 장면(2001년 천하장사대회 준결승전 김경수vs김영현)이다.
요기를 누르시라. 윤석찬, 김정필 선수의 은퇴를 축하드리며..  


                      2001천하장사대회를 잊을 수 없는
도우넛(bluesky@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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