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여우와 솜사탕이 뭐길래 사건 (2)
김수현은 2월 25일 서울 지방 법원 남부지원에 여우와 솜사탕 방송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3월 28일 법원은 일단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각하였다. 아래는 서울 지방 법원 남주지원의 여우와 솜사탕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그 판결이 있은 직후 MBC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여우와 솜사탕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판결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 이라는 글을 통해 실은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적으며 오명을 벗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내용은 또 이렇다. 클릭 "표절인건 맞는데 신청은 기각한다"는 법원의 결정으로 1라운드가 마치 양쪽의 손을 다 들어준 것처럼 정리되면서 끝나는가 싶더니 지난 주 김수현씨는 MBC에 24억, 작가와 피디에 각 3억 씩 총 30억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우리나라에서 지적 재산권 침해와 관련해서 이만한 규모의 손해 배상액이 청구된 적이 없다는 점과 함께 드라마 권력 김수현과 드라마 왕국 MBC와의 싸움이라는 점 등등에서 여러모로 꽤 잼나는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짱끼리 붙으면 잼쟈너. 근데 이 소송 잼날 뿐만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데, 드라마 표절에 대한 수많은 시비들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법정 싸움과 대규모의 손해 배상까지 법적인 조치가 취해진 경우가 거의 없는 고로 이번 사건의 판결이 향후 일어날 많은 유사 사건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재판의 결과는 중요하고 흥미진진하다. 아직 김수현 작가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MBC 의 입장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네티즌들은 이게 맞네 저게 맞네. 김수현이 잘했네, 못했네 핏대 올리기에 전념하고 있다. 내 작품 훔쳐갔으니 돈내놓으라는 거에 뭐 그리 틀린 말이 있겠냐마는 시끌 시끌한거 보니 이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가 부다. 간단히 논점들을 정리해 보자
그런데 과연 이 0.75%의 유사성이란 근거가 있는 소리일까? 글쎼. 법적으로 표절은 딱히 문자적으로 복사된 것 뿐만이 아니라 포괄적, 비문자적으로 설정이나 스토리 등을 베낀 것도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그럼 몇 푸로나 베낀거냐고 물으면 모르는 거 없는 본 기자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가 초기에 기획될 때부터 <사랑이 뭐길래>의 플롯을 의도적으로 카피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괜찮은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갈등을 구축하는 거 쉬운 일 아니다. 그거 쉬운 일이었으면 글쟁이가 세상에서 젤 쉽게? 많은 작가나 작곡가들이 쉽게 표절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도 아마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작곡가가 화성학 몰라서 표절 하는거 아니구 작가가 글빨 딸려서 표절하는 거 아니다. 아이디어는 없는데 뭔가 만들어 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검증받은 남의 것에 대한 유혹이란 거, 경험상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거기에 안들킬지도 모른다는 무사안일에 이 바닥이 다 그렇지라는 학습된 생각까지 더해지면 남들도 다 하는 표절의 넓은 길로 들어서는 거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치만, 내가 돈 없다구 남의 돈 뺏어서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말 연속극 아이디어가 없음 주말 연속극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써야겠다면 정당하게 지불하고 써라. 몰래 도둑질 하는건 나쁜 거다.
그 당시 판결의 근거는 다음과 같은데, KBS가 표절 사실을 알고 있었다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본을 감독, 심의할 의무를 위배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며, KBS와 작가와의 관계가 일반적인 사용자 피사용자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방송국 혹은 제작사가 특별한 주의 감독을 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방송 작가들 사이에서는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표절이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시에는 모든 책임을 작가가 지겠다는 일종의 각서등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근데 작가만 책임지라는게 과연 맞을까? 위의 경우에서는 실제로 방송국 혹은 제작사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몰랐다" 라는 거 꽤 오래된 변명이기도 하지만 잘 먹히는 변명이기도 하니까 그냥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MBC가 표절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넌센스다. 그리고 만약에 알았다면 MBC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표절의 근거들이 꽤 많이 제공된 후에도 MBC는 안했다 배째라 자세를 취했지 몰랐다고 그러진 않았으니까 혹시 나중에 딴 소리 하면 잘 기억했다가 알려주도록 하자. 그리고 한 두 구절 베낀 거면 몰래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스토리 라인이 비슷한, 기획 단계부터 시끌 시끌 했던 작품에 대해 연출진이 모를 수 있을까? 만약에 연출자의 책임이 인정된다면, 당연히 일상적인 고용 피고용관계에 놓여있는 MBC도 감시와 감독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저작 재산권을 침해한 자가 침해 행위에 의하여 이익을 받았을 때에는 그 이익의 액을 저작 재산권자가 입은 손해액으로 규정한다. (93조 2항) 저작 재산권자는 위 2항의 규정에 의한 손해액 외에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얻을 수 있는 금액에 상당하는 액을 손해액으로 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93조 제 3항)
즉, 원작을 무단으로 사용해서 얻은 모든 이익과 김수현이라는 작가가 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받을 수 있는 모든 돈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건데.. 이게 대체 얼마나 될까? 3월 25일 있었던 <방영금지 가처분에 대한 재판>에서 MBC는 이 작품을 중단 했을 때 매회 2억 8천 620만원의 광고 수익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권위에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기각을 요구하였다. 광고수익만 한회에 2억 8천 620만원이니까 50회를 곱하면 140억 . 뭐 좀 덜 붙은 때도 있다고 쳐줘서 한 120억 정도라고 하자. OST 판매로 얻은 수익이나 프로그램 판권이나 비디오 판매액도 상당하겠지만 그냥 통크게 몇 억 쯤은 제껴 버린다고 하더라도 120억 안팍의 실제 이익이 발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20억에서 표준 제작비 빼고 이리 저리 경비 빼구 100억 남았다고 치자. 글타고 이 100억 다 받을 수는 없쟈너. 인화 수교 얘기도 있구 동서가 괴롭히는 얘기도 있으니까.. 아마 그래서 30억 정도로 생각한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초반 스토리, 즉 전체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설정의 상당 부분을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져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 달라고 해도 MBC가 억울해 하면 안될거 같긴 하다. 글게 돈 아까우면 베끼지 말지 그랬냐...
다른 사람이 아닌 김수현이 소송을 제기 했다는 이유 때문에 비슷한 비난의 소리가 나오는 듯 하다. 김수현이 꽤 오랫동안 드라마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왔고 그러다보니 미움도 많이 받았다는 거 사실이긴 한데, 이 아줌마, 작가들의 위상 확립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만큼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선배작가가 후배작가를 위해줘야 한다는 거 백번 옳은 말이다. 도와주고 도움받고 뭐 이러면서 살아야 명랑 사회 이룩되는 거 아니겠냐. 근데 진짜 선배로서 해줘야 할 일이 뭔지 한번만 생각해보자. 표절 불감증으로 닥치는 대로 남의 작품 가져다가 쓰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고 살 게 내버려 두는 게 잘하는 짓일까 아니면 정말 제대로 된 경쟁으로 좋은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작품 억울하게 뺏기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 주는게 도와주는 걸까. 표절 문제, 방송국의 불감증과 풍토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고쳐지기 힘든 문제이다. 이 사건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더 좋구, 똥꼬털이 파르르 떨릴 만한 액수의 손해배상금 지급이 법정에서 결정된다면 더 좋겠다. 그러면 남의 작품 놓구 베껴보려던 사람들 몹시 불안해지면서 "시바 얼마를 물게 될지도 모르는데 걍 내머리 짜내자"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드라마 권력으로서 김수현이 해야만 하는 가장 훌륭한 일이 아닐까?
남의 거 훔쳤으면 벌받아야 된다는 상식 정도는 당연히 통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단 말이다. 표절 없는 명랑 사회 구축의 한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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