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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나는 그 놈이 좋다...

2003.6.22.일요일
딴지 스포츠부


 

 

1998년 5월 6일 시카고.

 

 

시카고 컵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가 열린 그날 시카고엔 비가 내렸다. 컵스의 경기가 늘 그렇듯 평일 낮경기였고, 시카고가 늘 그렇듯 바람이 많이 불었으며, 시카고의 5월이 늘 그렇듯 빗방울은 아직도 차가웠다. 그러나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우리나라 야구장 분위기에 적응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미국 야구장은 산만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척 척 척 박자에 맞춰 박수며 고함이며를 유도해주는 응원단장도 없고, 쉬는 시간이면 단상에 올라가서 총채를 흔들어대는 치어리더도 없으며, 고성능 스피커에서 나오는 강한 비트의 음악은 더더욱 없다. 단조로운 오르간 소리, 묵직한 톤의 남자 장내 아나운서, 그리고 게임이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잡담하며 떠들어대는 관중들... 야구장 관람석에서 하루종일 듣는 소리는 "와~"하는 관중의 함성보다는 "웅성웅성" 혹은 "와글와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도 비슷했다. 땅콩 까먹고 맥주 마시고 핫도그 먹고 웅성웅성 시끌시끌... 평일 낮경기였으니 사람도 없고 텅텅 빈 관중석.... 그러던 맥빠진 분위기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캐리 우드

 

스무살짜리 신인 투수, 메이저리그 경력 24일짜리 애송이 투수 캐리 우드의 끝없는 삼진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1회 세명, 2회 두명으로 시작한 삼진 행진은 5타자 연속, 한명 건너뛰고 7타자 연속 하는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이어졌다. 외야 관중석의 K자 마분지는 이미 열두어개 정도에서 동이 나 버렸고, 삼진이 추가될 때마다 그 옆자리 관중들이 한명씩 한명씩 차례로 웃통을 벗어 몸에 K자를 쓰기 시작했다.

 

도대체 삼진이 몇개인지 셀 수가 없었다. 7회초 휴스턴의 공격이 끝나자 장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금까지 케리 우드의 탈삼진 갯수는 15개이며, 내셔널리그 기록은 19개, 메이저리그 기록은 로저 클레멘스가 두 차례 기록한 20개라는 방송이었다.

 

남은 건 두 이닝. 8회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계속 스트라이크를 던져댔다. 한명, 또한명, 그리고 다시 한 명. 세명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탈삼진 18개! 이제부터는 기록이었다.

 

9회초 수비가 시작되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섰다. 첫 타자는 대타 빌리 스파이어스. 역시 헛스윙으로 삼진. 안내방송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도 소리쳐서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들 속으로 세고 있었다. 19개!

 

다음 타자 크레이그 비지오는 삼진이라도 면해보려는 듯 얍삽하게 툭 갔다댔다. 유격수 땅볼 아웃.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마지막 타자 데렉 벨. 하나만 더 잡으면 메이저리그 기록이지만 남은건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캐리 우드는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슬러브를 던졌고 벨은 허무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20개!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타이기록을 20살짜리 투수가 해낸 것이었다. 동료들은 마운드로 뛰어나갔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미 스탠드는 차가운 비에 젖었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던 관중들은 그 순간을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다. 행운스럽게도 그 15,738명 중에 있었던 나를 비롯해서....
 

 

 

다음날 시카고의 각 신문과 방송은 난리가 났다. 강속구 투수의 계보, 놀란 라이언과 로저 클레멘스의 뒤를 이을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다 텍사스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 해 케리 우드는 팔꿈치 부상을 입는다. 천신만고끝에 아슬아슬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시카고 컵스는 첫 라운드에서 연패를 당하며 탈락했고, 우드는 다음 해 시즌 초 팔꿈치 인대가 아예 끊어져 버린다. 그리고 다른 곳에 있는 인대를 떼어다가 팔꿈치에 못으로 고정시키는 타미 존 수술을 받게 된다.

 

20 탈삼진 경기에서 100마일짜리 직구를 두번이나 던졌던 그는, 이제 96~97마일 밖에(?) 던지지 못한다. 그러나 공의 위력은 여전해서 올 시즌 내셔널리그 탈삼진 수위를 달리고 있다.






 
 

 

로저 클레멘스

 

한편 20 탈삼진을 두번이나 기록했던 로저 클레멘스는 챔피언 반지를 끼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양키스로 자리를 옮겼고, 소원대로 두번이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하게 된다.

 

그리고 올해, 탈삼진 공동 기록보유자인 클레멘스와 우드는 역사상 처음으로 -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 맞붙었다. 이제 만 40세가 된 클레멘스, 그리고 24세가 된 우드,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로 갈라져 있어 맞붙을 기회가 없던 두 명이 2003년 6월 7일 대결하게 된 것이다.

 

미국 전역은 들끓었다. 시카고 컵스와 뉴욕 양키스는 1938년 월드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맞붙는 것이었고, 그때가 바로 그 유명한 (그리고 진위 논쟁도 있는)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이 나왔던 바로 그때이기도 했다. 예고 홈런이라는 치욕과 월드시리즈 패배를 당한 컵스가 65년만에 설욕할 것이냐 못할 것이냐 하는 이야기들이 매스컴을 장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저 클레멘스의 생애 통산 300승이 걸려 있는 날이기도 했다. 대기록 작성의 순간을 과연 목격할 수 있을 것인지... 게다가 다른 투수도 아니고 메이저리그 탈삼진 공동기록보유자인 케리 우드와의 맞대결... 암표 값은 1500달러(거의 200만원)까지 치솟았고, 당연히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한 마디로 올해 최고의 빅 이벤트, 아니 최근 몇년간을 통털어 최대의 빅매치였다.

 

시카고 리글리 필드 앞의 전광판에는 < Cubs vs. Yankees > 대신 < Wood vs. Clemens >라는 말이 빛나고 있었고, 역시 예상한 대로 두 투수의 숨막히는 투수전이 이어졌다. 우드는 퍼펙트게임을 이어가며 삼진행진을 계속했고, 클레멘스도 1회 첫 타자에게 안타 맞은 것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타자들을 제압해갔다. 이것은 야구의 클래식이라며 감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상기되어 있었다.

 

바로 그 날이었던 것이다. 최희섭이 공을 잡고 땅에 머리를 부딪혀 앰뷸런스에 실려간 날이....

 

18분동안 경기는 멈췄고, 앰뷸런스가 그라운드 안에까지 들어와 최희섭을 실어갔으며, 의식을 잃은 최희섭은 관중들의 기립박수와 "희섭초이" 연호 속에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5회초 양키스 공격. 일본 출신 타자 마쓰이에게 우드는 불의의 홈런 한 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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